생물학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
이시카와 마사토 지음, 이정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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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모르게 일본 냄새가 풍기는 제목 답게 일본인 진화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51가지나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들이 사실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아래와 같은 상황들은 누구나 거의 매일 겪는 상황들이지만 이런 느낌이나 감정들이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만년에 걸쳐 축적되 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pg 10-11)

51가지나 되니 분량이 꽤 많을 것 같지만 한 꼭지당 4페이지 정도에 글씨도 크고 간격도 넓어서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각각의 행동들이 연관성이 크게 없기 때문에 목차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부분만 찾아 보기에도 좋고

각 꼭지별 호흡이 길지 않아서 출퇴근 길 대중교통이나 화장실에서 잠깐씩 보기에도 좋을 책이었다.

학자가 쓴 책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집필된 책이어서 설명이 매우 쉽다는 것도 특징이다.

문장이 쉽다는 건 읽기에는 장점이지만, 읽은 후 머리에 남는 정보의 양도 적다는 측면에서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

특히나 거의 대부분의 꼭지들이 '진화를 이렇게 한 결과이니 넘 자책하지 말고 살아라' 수준으로 마무리 되고

있어서 읽다보면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저자가 문장을 상당히 재미나게 쓰는 편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덕분에 분량 대비 인상깊은 구절이 많았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모두 개성이다.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불편하다면 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른 대처법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pg 17)

충동구매를 통해 경제는 더욱 활성화되므로, 사회적으로는 '충동구매=장려되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물건을 구매한 후에 '다른 걸로 살 걸'하는 후회가 든다면,

더 노력해서 그것까지 살 돈을 모으자.

(pg 47)

사용하고 싶을 때 찾을 수 없다면 그 물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리하는 데 방해가 되므로 버리는 게 좋다.

하지만 물건을 버리면 재산을 잃는 것 같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미 가치가 없어졌지만 애착만 남아서 가지고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pg 68)

우리의 조상들은 수렵채집 활동에서 실수했던 부분을 후회했기에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후회한 결과, 사냥감의 행동 패턴, 나무 열매가 익는 시기 등을 습득할 수 있었으므로 먹을 것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면 행동의 성공률이 높아지므로 후회는 원래 좋은 것이다.

(pg 107)

제비나 참새처럼 암수가 함께 새끼를 키우는 종은

수컷과 암컷의 겉모습에 차이가 거의 없다.

즉, 암컷이 혼자서 육아를 담당하는 종은 수컷이 덩치가 크거나 깃털이 화려한 경향이 있다. 한가한 수컷이 외모를 꾸미는 데 정성을 쏟는 것이다.

(pg 190)

다 읽은 뒤 뭔가 대단한 진화심리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책 자체가 읽기에 재미가 있는 편이며 읽는 동안 자신이나 주변인들을 돌아보며 어떤 사람이 이런 케이스에

잘 맞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제목은 약간 일본어 번역투 냄새가 나지만 본문의 번역은 그렇지 않아서 읽으면서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케이스들은 인류가 수렵채집생활을 할 무렵부터 축적된 것들이다.

이 때부터 우리 유전자 속에 이런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걸 알고나면 마음은 좀 편해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더 이상 수렵채집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도 누누히 강조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본능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사고나 행동들을 현대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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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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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이름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했었다.

평소 독서 영역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역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였는데

그 책은 역사책이면서도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저자가 본래 뛰어난 문학가였기 때문일텐데,

이번 기회에 슈테판 츠바이크 문학의 진수를 접할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비롯한 그의 중단편 6편이 실려있다.

해설을 제외하면 35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총 여섯 편의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알차게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단편들의 모음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무작위로 작품을 선정해 묶은 것 같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주제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한 비밀'과 '불안'은 불륜에 빠진 여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모르는 여인의 편지'와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절절한 짝사랑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과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작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비슷한 점도 있다.

예를 들면 '모르는 여인의 편지'와 '보이지 않는 소장품',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내용의 대부분이 한 인물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찔한 비밀'과 '불안'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다루고 있는데,

전자는 주로 불륜 당사자의 아들의 시각에서, 후자는 주로 불륜 당사자의 시각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다.

짧은 길이의 소설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거리의 흡입력이나 등장인물들의 심경 묘사에 있어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들이 담겨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번역 역시 너무도 깔끔한데, 이전에 읽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번역가가 이번 작품도 번역해서 그런지

읽는 동안 이 책이 원서를 번역한 것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아래부터는 각 작품들을 읽으면서 잊고 싶지 않았던 문구들을 옮겨두었다.

아래 두 구절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려는 것을 목격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불륜'이라는 것은 모르는 아이가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닫는 구절이다.

어떻게 바람피는 엄마를 보고 아래와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에드거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유복한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삶 양옆으로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아득한 낭떠러지가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직업과 타고난 팔자 같은 것이 있음을, 자신의 삶 주변에 수많은 비밀이

손을 뻗치면 잡힐 만큼 가까이 있었지만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았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pg 94, 아찔한 비밀)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삶이라는 깊디깊은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pg 107, 아찔한 비밀)

아래 문구는 작품 속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구절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싶어 기억에 남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또한 아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항상 당신 주위에 머물며 긴장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지만, 당신은 전혀 느끼지 못했지요.

당신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계태엽의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요.

시계 태엽은 어둠 속에서 쉬지 않고 당신의 시간을 세고 나누며,

들리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를 내며 당신을 따라다니지만,

당신은 초침이 수백만 번 똑딱거리는 동안 무심히 딱 한 번 힐끗 시선을 던질 뿐이잖아요.

(pg 192), 모르는 여인의 편지

아래 구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소장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구다.

개인적으로는 '수집'이라는 것에 잠시 미쳐 있었던 과거가 떠올라 가슴에 깊이 남았다.

저 위 창가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환한 얼굴은 착한 망상이라는

흰 구름에 싸여 살포시 우리의 역겨운 현실 세계 위로 솟아 있었습니다.

그 얼굴이 쫓기듯 거리를 바삐 오가는 퉁명스러운 사람들 위에

둥둥 떠있던 광경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오래된 속담이 절로 떠오르더군요.

괴테가 한 말일 겁니다. "소장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pg 259, 보이지 않는 소장품)

다음 구절들은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미련을

작품 속에 남겨둔 것이 아닐까 싶어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이다.

얼마 전까지 자살로 삶을 끝낸 작가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서평을 남긴 나이지만,

이런 문장들을 보면 이 책의 저자는 정상 참작(?)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과 정신과 감정과 고통! 우리는 언제나 오만하게 이런 것들에 대해 언급하곤 하지만,

저는 이들이 지극히 약하고 보잘것없고 형체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경악하곤 합니다.

정신적 고통이 최대 용량에 달했을 때조차도 괴로워하는 몸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그런 순간에도 벼락 맞은 나무처럼 쓰러져 죽지 않고,

계속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pg 343), 어느 여인의 24시간

그러나 제가 방금 말했듯이, 고통은 비겁합니다.

고통은 살고자 하는 막강한 요구 앞에서는 움찔 물러섭니다.

살고자 하는 요구는 우리의 정신 안에 있는 죽음을 향한 열망보더 더 강하게,

우리의 육신 속에 뿌리내리고 있나 봅니다.

(pg 344), 어느 여인의 24시간

특히 아래의 문장은 잊혀지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아래의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맺혔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에는 살아낼 힘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심오한 힘을 지니고,

나이는 온갖 감정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희한한 위력을 행사합니다.

(pg 346, 어느 여인의 24시간)

슈테판 츠바이크.

옛날 작가이기도 하고 작품 속 세계도 너무나 오래된 세계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 들어가면

늘 그 시대의 인물이 되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나는 여성으로 단 한 순간도 살아본 적이 없지만 그의 작품 속 여성들에게는 감정 이입이 너무 잘 된다.

이는 그의 탁월한 문장력이 높은 수준의 심리학 이론을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이쯤이면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출판사가 무료로 나에게 책을 증정함으로써 작성된 서평이다.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광고판 역할을 자처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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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개그를 권함 - 말놀이가 인간 행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김철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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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그냥 인터넷 서점 둘러보다 충동적으로 사게 되었다.

평소에 아재개그를 종종 하는 편인지라 아재개그로 책을 썼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단순히 '아재개그를 잘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기 보다는 국어 전공자로서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를 통해

언어 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아재개그'라고 하는 단어가 보통 긍정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만큼 언제 어디서나 하고 다니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저자도 윗 사람이 함부로 던지는 권력형 아재개그,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말장난은 지양하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로 노는 행위는 인간인 이상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으니 위에 해당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놀아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저자는 '말장난'이라는 말 대신 '말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경험 속에 너무나 단단히 얽혀 있어서

언어 없는 생활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구상 어디서나 두 명 이상만 모이면 곧 말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을 건넬 상대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기르는 개에게,

심지어 풀포기에게까지 말을 건다.

사회적 관계에서 승리는 빠른 자가 아니라 말 잘하는 이에게 돌아간다.

(pg 28, 스티븐 핑커, "언어본능" 에서)

말놀이를 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이라거나 말놀이를 잘 하기 위한 법칙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맥락을 뒤트는 것, 소리가 비슷한 단어들을 활용하는 것, 운율(라임)을 맞추는 것 등등 저자가 구분해 놓은

다양한 말놀이 분류들이 있지만 핵심은 그저 많이 읽고 많이 말해보고 많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언어에 '규범'이라는 올가미는 가당치 않다.

언어는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맘껏 주무를 수 있는 놀잇감 같은 것이다. - 중략 -

사람이 말을 주물러대면 말은 변할 수밖에 없다. - 중략 -

한편 말이 변한다는 것은 곧 사람살이가 변한다는 말이다.

(pg 66)

다만 말놀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언어 경험이 풍부하면 좋다고 한다.

풍부한 언어 경험이 풍부한 말놀이를 가능하게 하고 말놀이를 통해 말을 계속 공부하다보면 이것이 다시

언어 경험으로 축적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말놀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주 하라고 저자는 권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말놀이 능력은 곧 인간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즉 맥락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이 말놀이를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것은,

삶의 곡절이 많았든 독서량이 많았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직간접 경험이 풍부하다는 말과 같다.

어린이들에게 말놀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pg 94)

말놀이는 무한대의 맥락 속에서 한 가지를 집어내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직관이다.

인공지능의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직관의 작동속도는 절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직관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 본능이 발현되는 데는 경험 축적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언어적 직관은 풍부한 언어 경험에서 나온다.

(pg 198)

저자가 분류한 말놀이 분류마다 다양한 말놀이 샘플들이 등장한다.

솔직히 아주 웃긴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발상을 잠시 전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물론 가끔 아래와 같이 킹받게 웃긴 부분도 있긴 하다.)

뭔가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거나 참신한 시각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적었지만 평소에 말장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고 자신의 말놀이 수준을 높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의 본질은 남을 웃기는 게 아니라 내가 웃는 것이다.

'혼자 웃기'는 실성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말놀이꾼들은 남을 웃기기 전에 혼자서 먼저 웃는다.

사람들이 남을 웃기고자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웃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남의 몸을 씻기는 손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남을 웃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웃게 된다.

(pg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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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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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인간 실격'이라는 작품 자체는 생소하지 않았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지만 읽어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일독하게 되었다.

첫 페이지에 소개글을 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작품이었다.

배경이 1930년대 일본이다.

따라서 어림잡아 대충 100년 전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나 지금의 20대와 100년 전의 20대가 비슷한 삶을 살았을 리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나이 개념으로는 소설 속 주인공이 줄곳 뒷방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해대지만 실제로는 고작해야

20대까지 겪은 일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괜히 나이 20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대장부라 불릴 수 없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요조'라는 한 남자의 짧은 생애를 담고 있다.

앞 뒤로 요조의 기록을 전해들은 사람의 소감이 담겨 있긴 하지만 서사를 위한 장치 정도에 지나지 않고

분량의 대부분은 요조가 직접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편지같은 느낌으로 서술되어 있다.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스토리 자체가 중요한 편은 아닌지라 주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요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이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고 남들처럼 진심으로 웃고 떠들 수 없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짓들을

하며 자란다.

사람들은 그런 요조를 유쾌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그의 어두운 이면을 간파해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요조는 자신의 본 모습을 더욱 깊은 가면으로 가리고 끝없는 자기 혐오와 염세로 삶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따랐던 모양인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성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혐오를 거두게 할 수는 없었고 술과 여자, 마약에 중독되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

결국 정신병원을 거쳐 폐인이 되고 만다.

이 대목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겁니다.(pg 163)'이다.

그의 회고록은 아래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7세였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에서 살아온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건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건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pg 165-166)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솔직히 난 도무지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요조의 삶이 나에게 주는 공감대가 정말 1%도 없는 것 같다.

나름 자기혐오 면에서는 나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보면 무언가 모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이 책에 비하면 난 굉장히 긍정적인 자아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위에 적은 문구도 문장 자체로만 보면 진리에 가깝지만 사실 그의 삶이 아비규환이었던 이유는 그 스스로 만든

측면이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서평을 찾아봤는데 누군가는 요조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전후 일본에 다가온 사회 침체와 그로 인한 젊은이들의 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고 징징대며 여러 여자들에게 기생하다 부여된 삶을 한심하게 마감하는 한 인간이 보일 뿐이었다.

책 표지 하단에 '다자이 오사무가 그려낸 청춘의 고독과 불안, 절망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절절하고 유효하다'라고

했지만 글쎄...당장 취업문을 뚫기에도 바쁜 이 시대의 청춘들이 부잣집에서 태어나 술과 여자로 인생을 탕진하는

자의 삶에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리 크지 않은 기업주의 자식들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결국에는 자살에 성공(?)한 작가의 유서겪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읽어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친동생을 자살로 잃은 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을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는 내 개인적인 편견

탓이기도 할 것이다.

책에게도 엄연히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보다 어린 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표지를 요즘 웹툰처럼 디자인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책 표지가 이렇게 되어 있으면 뭔가 중2병스러움이 느껴져서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어갈수록 그 내용이나 문체도 뭔가 중2병스러워서 표지가 주는 선입견이 독서 경험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이 일본에서는 워낙 유명하고 이후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일테니 지금 우리가 쓰는

'중2병'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작품들 역시 이 작품의 영향 아래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가정한다면

내가 받은 느낌도 일리가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일본에서 나오는 문화 컨텐츠들을 접할 때 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보인다면

무언가 아는 척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본 특유의 '삶에 대한 회의'가 담긴 컨텐츠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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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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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들어 문학 작품들을 자주 읽고 있다.
워낙 비문학 쪽만 읽어왔던 터라 작가들도 잘 몰랐는데 올해 걸출한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는 느낌이다.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된 고바야시 야스미 역시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호러와 SF, 미스터리 분야에서 엄청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작가이며 이 작품이 작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인데 이것만 읽어도 작가의 미스터리, SF 역량은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초반 설정 자체는 약간 진부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부로라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 시설에는 모두 노인들만 있는데 이상한 건 왜 그 시설에 오게 되었는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부로는 문득 자신이 그 시설에 갇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동료들을 모으게 된다.

스토리가 워낙 흥미진진해서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작성하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스토리가 일부 포함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니 
작가의 팬이거나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사전 정보 없이 일단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메시지도,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고 
결국 읽는 동안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더없이 재미난 작품이었다. 
약 300페이지 정도의 보통 길이를 가진 책인데 첫 장을 편 뒤 그 자리에서 다 읽었을 정도로 
몰입도가 좋았다.

키워드 자체가 스포일러긴 하지만 유전자 조작, 로봇, 인공지능, 딥러닝 등 요즘 핫한 SF적 키워드들이
모두 다뤄짐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복잡하거나 문장이 현학적이지도 않았다. 
특히 개인적으로도 너무 재밌게 읽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에서 차용된 로봇 3원칙이 
이번 작품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져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보거나 읽는 건 내용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아닐까?
기억에 남김으로써 인간은 변화한다.
 (pg 24)

초반에 등장하는 문구지만 읽는 순간에도 인상깊은 구절이어서 인용했다.
사실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 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이기도 하다.
이 문구를 읽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을텐데 다 읽은 후 이 구절을 보면 '오...설계 보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만났는데 이 작품이 유작이라고 하니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접해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으니 다음에 읽을 작품들을 고르기는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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