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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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인간 실격'이라는 작품 자체는 생소하지 않았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지만 읽어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일독하게 되었다.

첫 페이지에 소개글을 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작품이었다.

배경이 1930년대 일본이다.

따라서 어림잡아 대충 100년 전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나 지금의 20대와 100년 전의 20대가 비슷한 삶을 살았을 리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나이 개념으로는 소설 속 주인공이 줄곳 뒷방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해대지만 실제로는 고작해야

20대까지 겪은 일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괜히 나이 20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대장부라 불릴 수 없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요조'라는 한 남자의 짧은 생애를 담고 있다.

앞 뒤로 요조의 기록을 전해들은 사람의 소감이 담겨 있긴 하지만 서사를 위한 장치 정도에 지나지 않고

분량의 대부분은 요조가 직접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편지같은 느낌으로 서술되어 있다.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스토리 자체가 중요한 편은 아닌지라 주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요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이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고 남들처럼 진심으로 웃고 떠들 수 없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짓들을

하며 자란다.

사람들은 그런 요조를 유쾌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그의 어두운 이면을 간파해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요조는 자신의 본 모습을 더욱 깊은 가면으로 가리고 끝없는 자기 혐오와 염세로 삶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따랐던 모양인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성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혐오를 거두게 할 수는 없었고 술과 여자, 마약에 중독되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

결국 정신병원을 거쳐 폐인이 되고 만다.

이 대목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닌 겁니다.(pg 163)'이다.

그의 회고록은 아래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7세였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에서 살아온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건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건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pg 165-166)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솔직히 난 도무지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요조의 삶이 나에게 주는 공감대가 정말 1%도 없는 것 같다.

나름 자기혐오 면에서는 나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보면 무언가 모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이 책에 비하면 난 굉장히 긍정적인 자아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위에 적은 문구도 문장 자체로만 보면 진리에 가깝지만 사실 그의 삶이 아비규환이었던 이유는 그 스스로 만든

측면이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서평을 찾아봤는데 누군가는 요조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전후 일본에 다가온 사회 침체와 그로 인한 젊은이들의 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고 징징대며 여러 여자들에게 기생하다 부여된 삶을 한심하게 마감하는 한 인간이 보일 뿐이었다.

책 표지 하단에 '다자이 오사무가 그려낸 청춘의 고독과 불안, 절망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절절하고 유효하다'라고

했지만 글쎄...당장 취업문을 뚫기에도 바쁜 이 시대의 청춘들이 부잣집에서 태어나 술과 여자로 인생을 탕진하는

자의 삶에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리 크지 않은 기업주의 자식들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결국에는 자살에 성공(?)한 작가의 유서겪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읽어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친동생을 자살로 잃은 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을 도저히 좋게 봐줄 수가 없는 내 개인적인 편견

탓이기도 할 것이다.

책에게도 엄연히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보다 어린 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표지를 요즘 웹툰처럼 디자인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책 표지가 이렇게 되어 있으면 뭔가 중2병스러움이 느껴져서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어갈수록 그 내용이나 문체도 뭔가 중2병스러워서 표지가 주는 선입견이 독서 경험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작품이 일본에서는 워낙 유명하고 이후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일테니 지금 우리가 쓰는

'중2병'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작품들 역시 이 작품의 영향 아래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가정한다면

내가 받은 느낌도 일리가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일본에서 나오는 문화 컨텐츠들을 접할 때 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보인다면

무언가 아는 척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본 특유의 '삶에 대한 회의'가 담긴 컨텐츠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번쯤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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