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개그를 권함 - 말놀이가 인간 행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김철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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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그냥 인터넷 서점 둘러보다 충동적으로 사게 되었다.

평소에 아재개그를 종종 하는 편인지라 아재개그로 책을 썼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단순히 '아재개그를 잘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기 보다는 국어 전공자로서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를 통해

언어 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아재개그'라고 하는 단어가 보통 긍정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만큼 언제 어디서나 하고 다니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저자도 윗 사람이 함부로 던지는 권력형 아재개그,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말장난은 지양하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로 노는 행위는 인간인 이상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으니 위에 해당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놀아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저자는 '말장난'이라는 말 대신 '말놀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경험 속에 너무나 단단히 얽혀 있어서

언어 없는 생활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구상 어디서나 두 명 이상만 모이면 곧 말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을 건넬 상대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게, 기르는 개에게,

심지어 풀포기에게까지 말을 건다.

사회적 관계에서 승리는 빠른 자가 아니라 말 잘하는 이에게 돌아간다.

(pg 28, 스티븐 핑커, "언어본능" 에서)

말놀이를 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이라거나 말놀이를 잘 하기 위한 법칙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맥락을 뒤트는 것, 소리가 비슷한 단어들을 활용하는 것, 운율(라임)을 맞추는 것 등등 저자가 구분해 놓은

다양한 말놀이 분류들이 있지만 핵심은 그저 많이 읽고 많이 말해보고 많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언어에 '규범'이라는 올가미는 가당치 않다.

언어는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맘껏 주무를 수 있는 놀잇감 같은 것이다. - 중략 -

사람이 말을 주물러대면 말은 변할 수밖에 없다. - 중략 -

한편 말이 변한다는 것은 곧 사람살이가 변한다는 말이다.

(pg 66)

다만 말놀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언어 경험이 풍부하면 좋다고 한다.

풍부한 언어 경험이 풍부한 말놀이를 가능하게 하고 말놀이를 통해 말을 계속 공부하다보면 이것이 다시

언어 경험으로 축적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말놀이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주 하라고 저자는 권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말놀이 능력은 곧 인간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

즉 맥락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이 말놀이를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것은,

삶의 곡절이 많았든 독서량이 많았든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직간접 경험이 풍부하다는 말과 같다.

어린이들에게 말놀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pg 94)

말놀이는 무한대의 맥락 속에서 한 가지를 집어내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직관이다.

인공지능의 연산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직관의 작동속도는 절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직관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 본능이 발현되는 데는 경험 축적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언어적 직관은 풍부한 언어 경험에서 나온다.

(pg 198)

저자가 분류한 말놀이 분류마다 다양한 말놀이 샘플들이 등장한다.

솔직히 아주 웃긴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발상을 잠시 전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물론 가끔 아래와 같이 킹받게 웃긴 부분도 있긴 하다.)

뭔가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거나 참신한 시각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적었지만 평소에 말장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고 자신의 말놀이 수준을 높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의 본질은 남을 웃기는 게 아니라 내가 웃는 것이다.

'혼자 웃기'는 실성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말놀이꾼들은 남을 웃기기 전에 혼자서 먼저 웃는다.

사람들이 남을 웃기고자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웃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남의 몸을 씻기는 손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남을 웃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웃게 된다.

(pg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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