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이름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했었다.
평소 독서 영역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역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였는데
그 책은 역사책이면서도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저자가 본래 뛰어난 문학가였기 때문일텐데,
이번 기회에 슈테판 츠바이크 문학의 진수를 접할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비롯한 그의 중단편 6편이 실려있다.
해설을 제외하면 35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총 여섯 편의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알차게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단편들의 모음이지만 아무 고민 없이 무작위로 작품을 선정해 묶은 것 같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주제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찔한 비밀'과 '불안'은 불륜에 빠진 여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모르는 여인의 편지'와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절절한 짝사랑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과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작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비슷한 점도 있다.
예를 들면 '모르는 여인의 편지'와 '보이지 않는 소장품',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내용의 대부분이 한 인물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찔한 비밀'과 '불안'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다루고 있는데,
전자는 주로 불륜 당사자의 아들의 시각에서, 후자는 주로 불륜 당사자의 시각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다.
짧은 길이의 소설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거리의 흡입력이나 등장인물들의 심경 묘사에 있어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들이 담겨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번역 역시 너무도 깔끔한데, 이전에 읽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번역가가 이번 작품도 번역해서 그런지
읽는 동안 이 책이 원서를 번역한 것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아래부터는 각 작품들을 읽으면서 잊고 싶지 않았던 문구들을 옮겨두었다.
아래 두 구절은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려는 것을 목격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불륜'이라는 것은 모르는 아이가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닫는 구절이다.
어떻게 바람피는 엄마를 보고 아래와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