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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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윤리적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문제는 이 윤리관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범죄자도 수감 후 인터뷰해 보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점점 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도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인문학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도전적이다. '무엇이 옳은가'

400 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에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내가 지금 윤리적 혹은 비윤리적이라

믿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저자는 미래학자답게 세상의 변화, 그중에서도 기술의 변화가 윤리관 변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서의 변화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좋은 방향일 수도, 나쁜 방향일 수도 있다.

일례로, 현재의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예 제도 폐지가 옳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노예 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는데 기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만일 모든 주변 사람이 당신에게 잘못된 일을 가르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진실에 눈뜰 수 있겠는가?

(pg 157)

세계 최초로 노예제를 폐지한 곳은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이 최초로 발생한 곳 역시 영국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두 사실이 결코 우연한 일일 수 없다.

기계가 노예의 노동력보다 효율적인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쩌면 노예가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업 형태가 미래에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긴 어렵겠지만, 만약에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금과 같은 고용 형태는 사라지고 유토피아적인 생산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후손들은 우리 세대 역사를 읽으면서 '와..어떻게 사람한테 주 5일이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일을 시켰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자본 축적의 고도화와 빈부 격차의 심화로 노동자의 인권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지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온다면 후손들은 '와..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다고? 노동자 감시를 안 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윤리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계속해서 다양한 주제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어째 날이 갈수록 진짜 정보를 찾기는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정보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쓰레기 같은 정보 역시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SNS와 인터넷 게시글,

신뢰할 수 없는 '뉴스'에 의지한다.

이런 플랫폼의 대부분은 구독료가 아닌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므로,

플랫폼 사용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익 역시 늘어난다.

특정 대상을 비난할수록 조회 수와 '좋아요' 수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굳이 상대에 대한 비난 강도를 낮출 이유는 전혀 없다. - 중략 -

즉, 분노는 트래픽(접속량)을 높이고 수익은 그와 비례하여 늘어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극좌와 극우는 점점 관대함을 잃고

'저쪽 사람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믿으려 든다.

(pg 141)

저자는 미국의 현실을 쓴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OOO의 뉴스 공장'과 'O로O로연구소', 그리고 이런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우리 대중들을 떠올리게 한다.

(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명백히 한 쪽의 편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봤을 때의 시각은 똑같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현실에서 개인이 특정 사안에 대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정 수준 이상 자리 잡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에도 아래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과거 세대가 했던 행동들을 비판하고자 할 땐 지금 진행되는 윤리적 차원의 여러 갈등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이치에 맞다.

가만, 내가 왜 이걸 당연한 것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걸까?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들에 대해선 그토록 분개하면서, 정작 지금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윤리적 참사에 대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 거지?

(pg 265)

우리는 서로의 인간성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로를 파괴하고 지구 전체를 말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상대를 향한 고함과 비난을 자제할 필요도 있다.

윤리, 즉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관행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집단적으로 가져야 한다.

(pg 315)

이렇게 딱딱한 주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결혼한 사람이 이혼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수군수군' 떠드는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고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았다.

지금이야 이혼했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불이익이 있다거나 매몰찬 시선을 받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재혼이라도 하면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이혼한 사람들끼리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도 나오는 마당에)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한 30년 전쯤 이혼한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 로봇 기술이 계속해서 발달해 결국 성관계는 물론 다양한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로봇이 개발되었다고 치자. (사실 지금의 기술력으로 볼 때 가까운 미래에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우리는 로봇과의 혼인 관계가 가능한지, 또 이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지를 묻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떻게 기계 따위가 인간을 대체한단 말인가?!"

하지만 사람을 대체해도 좋을 정도로 고도화된 로봇을 적당한 가격대로 구입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자로 사람보다 로봇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로봇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도 기꺼이 결혼 생활을 영위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계를 둘러싼 윤리 논쟁이 뜨거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다소 딱딱한 제목과 띠지에 인쇄된 저자의 심각한 얼굴이 읽기에 약간의 망설임을 주겠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저자 스스로도 윤리학자나 전공자에게는 이 책이 너무 쉽고 무책임하게 느껴질까 두렵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쓰여진 책이라 읽는 부담은 거의 없었다.

아래처럼 유머러스한 문장들도 많아 읽다가 피식하는 포인트도 제법 있었다. (괄호 안까지 저자가 직접 쓴 문구다.)

인간의 뇌는 전체 체중의 약 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신체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20퍼센트를 소비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다는 것이고,

아무리 봐도 그렇게나 많이 소비하는 것 같진 않은 이들도 있다.)

(pg 330)

이런 종류의 책들이 보통 그렇지만, 이 책 역시 '그래서 이게 옳다' 식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중간중간 롤스의 '무지의 장막' 사고실험을 예로 들며 '바람직한 사회란 이래야 하지 않겠니'라고 넌지시 말하기는 하나, 책 전반적으로는 변하는 세상에 맞는 새로운 윤리관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므로 미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고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직접적인 집필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미래학자답게 최근의 기술 변화 트렌드를 폭넓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기술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갈지 예상해 볼 수도 있고, 미국의 불합리한 여러 사회 제도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부분도 많아서 재미뿐 아니라 지식 습득 측면에서도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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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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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마블 영화들로 인해 익숙해진 슈퍼 히어로와 빌런의 구도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슈퍼 히어로나 슈퍼 빌런의 시각이 아닌 '빌런의 사무직원' 입장에서 쓰인 작품이다.


소설 속에는 히어로와 빌런 외에 이들을 돕는 직업군이 존재한다.

히어로들은 국가 기관에 등록되어 별도의 시설에서 지원되는 인력이 있는 반면, 당연하게도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빌런들은 몸빵용 고기방패인 '미트'나 잡다한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인 '헨치'들을 채용하게 된다.


주인공인 애나는 별 볼일 없는 빌런이 고용한 비정규직 헨치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단순한 데이터 입력 위주의 행정 직원이었지만 어쩌다 빌런 옆에 서 있게 되었다가 그 빌런을 막으러 온 '슈퍼콜라이더'라는 히어로의 이동 동선에 휘말려 하반신 장애라는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그 히어로 입장에서는 '톡' 건드린 정도였지만 일반인이었던 애나는 마치 트럭에 치인 듯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애나를 고용한 빌런은 마땅한 의료 지원조차 하지 않은 채 애나를 해고해 버린다.


절망에 빠진 애나는 자신이 하반신 장애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인지를 되묻다가 문득 히어로의 활동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이득보다 여기에 휘말려지는 일반인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던 애나는 히어로 활동의 피해량을 수치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게 되고 이 작업이 점차

온라인 상에서 큰 반향을 얻게 되자 '레비아탄'이라는 네임드 빌런이 애나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게 된다.


그날 기자 회견장에 머무른 짧은 시간 동안 슈퍼히어로는

우리 모두에게서 도합 152년의 수명을 앗아갔다.

슈퍼콜라이더는 어린아이의 새끼손가락과 E가 요구한 몸값이,

헨치들의 152년보다 귀중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중에서 행복한 시간은 손에 꼽을지도 모른다. - 중략 -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리 거지 같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pg 119)


여기까지가 1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스토리이다.

이 이후에는 애나가 레비아탄의 지원에 힘입어 자신의 강점인 데이터 수집과 온라인 홍보를 결합해 사람들이

히어로 활동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점차 히어로들의 입지를 줄여 나가던 애나는 결국 자신을 위한 나름의 복수도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더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겠지만, 일단 재미는 충분하다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일단 소재 자체가 뭔가 익숙하면서도 참신하다.

히어로나 빌런에게 사이드킥이 있는건 흔하게 보는 일이지만 그저 잡무를 위해 고용되는 헨치라는 존재가 상당히 신선했다. 게다가 그 직업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물론 나중에는 사이드킥 정도로 성장하게 되지만)


게다가 작품의 핵심 주제 역시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묻는 전형적인 주제가 아니라 히어로 활동에 따르는 부가적인 피해들이 과연 사회적 이익에 비할 때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히어로와 빌런으로 낙인찍힌 삶의 당사자들은 어떤 인간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사회가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악당화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를 주로 다루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작품이 '슈퍼'한 히어로와 빌런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쪽으로 덕질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더 익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등장하는 히어로와 빌런들이 이 작품에서는 조연인 만큼 능력치도 기존에 알려진 만화들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수준에 그치고(힘 센 애, 빠른 애, 보호막 치는 애 등으로 코믹스 팬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능력치들이 단순하다.), 이들의 복잡한 오리진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라서 기존 마블이나 DC 만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본 작품의 정신 나간(?) 세계관에 빠져들기가 한층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상화하기에도 좋을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만약 만들어진다면 짧은 영화보다는 호흡이 좀 있는 미드 형식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인 애나 역할은 미드 애로우에서 펠리시티 역을 맡았던 에밀리 벳 리카즈가 어떨까 싶다.)

중간에 히어로들의 입지를 좁혀가는 부분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기 때문에 1개 시즌 분량은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나의 복수가 마무리될 즈음 약간 질질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작품의 전개 속도

또한 마음에 들었다.

연이어 사건이 터지며 새로운 갈등 상황과 정보가 주어지니 독자 입장에서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2권을 모두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특이하던데 그래서인지 재미있는 상상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을 더 발표해 주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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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마법 열차 웅진 세계그림책 221
미첼 토이 지음,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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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단어가 모인 제목과 저자의 이름마저도 왠지 아이들이 좋아할 것만 같은 유아 책을 만났다.

이 책을 볼 만한 아이들 대부분에게 '깊은 밤'이란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어떤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질까?

이 책은 그런 상상력을 펼쳐낸 책이다.

일단 그림책이니 그림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밤을 주제로 한 책이어서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채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디테일하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아래에 샘플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양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저 양들이 모두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세던 양들이라고 한다.

그 발상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에게 읽어주는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pg 7-8)

아이와 책을 다 읽은 후 책이 마음에 들어서 검색을 좀 해 보니, 작가가 호주 출신이고 실제 멜버른의 랜드마크들이 책에 등장하는 것이라 한다.

애비가 능력이 없어 아이와 멜버른에 가보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멜버른의 야경을 구경하게 되는 것 같다.

책 속 아이의 할아버지는 아이가 다녀온 환상적인 여행 이야기를 그저 꿈 이야기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아이가 겪은 것이 진짜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마지막 페이지에 마법 열차에 탑승하고 받은 탑승권이

등장하는데, 이 탑승권이 별도의 카드로 동봉되어 있다.

아이가 이 탑승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책이 도착한 날 읽어보고는 그 날 내내 손에 들고 다닐 정도였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저 종이 조각일 뿐이지만 이런 디테일함이 아이들의 몰입감에 주는 영향은 적지 않다.

책에 나오는 티켓이 내 손에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책의 내용이 사실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기도 이따 잘 때 이걸 들고 있으면 마법 열차를 탈 수 있냐고 묻는 걸 보니 아직 아이는 아이인 모양이다.

아동용 책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아동용 책도 아이의 선호와 부모의 선호를 기준으로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아이도 부모도 좋아하는 책에 속하게 될 것 같다.

(이 말인즉 아이도 부모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책도 존재한다는 의미다.)

저자의 이름이 특이하니 기억해 두었다가 저자가 내는 아동책들은 꼭 사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 깊은 동화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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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쟁이 사과와 잔소리 할머니 제제의 그림책
휴 루이스-존스 지음, 벤 샌더스 그림, 김경희 옮김 / 제제의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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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아이 책을 만났다.

일단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눈길을 끌었다.

무슨 상을 받은 이력이 화려하던데 진짜 그만큼 대단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유아용 책이니 내용도 간단하다.

제목 그대로 심술쟁이 사과가 할머니 사과에게 잔소리를 듣는 내용이다.

할머니 사과는 심술쟁이에게 모범 사과가 되라며 여러 친구들을 보여주고 본받으라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 아이들 책이니 '어른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는 내용일 거라 예상하기 쉬운데,

이 책은 심술쟁이가 결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면서 끝난다.

처음에 아이와 같이 읽었을 때 '헐, 이렇게 끝이라고?!'라는 반응이었다.

아이도 이상하게 끝난다며 재밌어했다.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의도한 바가 와닿는 것 같았다.

심술쟁이 사과는 남들을 따라 하거나 닮는 것 대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 필요는 없다'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진리를 동화로 풀어낸 것이다.

이는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에게도 꽤나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부모는 자신이 바라는 특정한 상이 있고 그 상에 맞게 아이가 자라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육과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에게는 잔소리로 느껴질 말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묻는 부모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듯)

이제부터라도 내가 바라는 모습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묻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유아용 책이라 글 양도 많지 않은데 생각보다는 깊이가 있는 책이었다.

늘 어른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만 나오는 동화만 보다 보니 이 책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글이지만, 내용이 괜찮았기 때문에 유아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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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걸스
M.M. 쉬나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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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관능적인 표지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내 그 모습이 죽은 피해자의 자세를 묘사한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긴장감이 훅 오른다.

평범한 가정의 유부녀만을 노려 살해하지만 결혼반지 외엔 전혀 손대지 않고 성폭행의 흔적도 없이 정말 딱 살인만

하고 사라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과 이를 쫓고자 하는 한 경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약 40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두께에 범인과 피해자, 그리고 사건을 쫓는 경위의 시각이 계속해서 바뀌며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후반부에 이르면 나름의 반전을 주는 엔딩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범인이 피해자를 발굴(?)하는 장소가 가상 세계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속이라는 것이

흥미를 더한다.

나 역시 WOW라는 게임에 빠져 몇 개월을 허비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게임인데 이 소설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작품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남기기에 앞서 책장을 덮고 딱 느낀 소감을 말하자면, 누군가 이 책이 재미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나 스릴러 팬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한 작품이냐고 물으면 약간의 망설임과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아래에 서술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조금 있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담하게도 작품 초반부터 범인의 시각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독자는 시작부터 범인의 실명은 물론, 범행 동기와 계획, 방법까지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고 시작한다.

반면 우리의 주인공인 조 프루니에 경위는 소설의 후반부까지도 범인의 주요 행위가 게임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가는 범인의 신출귀몰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뻘짓만 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그리고 그 짓이 뻘짓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 수밖에 없는 독자의 입장은 솔직히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매력적인 빌런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마틴은 능력 있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 특화되어 있다.

여성을 사로잡는 언변과 좋은 머리,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나지도 않은 외모를 지녔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독특한 자신만의 살인 철학까지 가진 그야말로 매력적인 빌런상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근원이 친모의 정신적, 성적 학대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바람피우는 유부녀만을 골라 살해한다는 다소

식상한 오리진 스토리를 가진 것이 못내 아쉽다.

게다가 그에게 현혹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피해자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범인을 쫓기 위해 주변 관계가 소홀해질 정도로 수사에 매달리는 워크홀릭 경관까지 묘하게 어디선가 본 듯한 판에 박힌 등장인물들이 작품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반전으로 작가가 제시한 범인의 최후 역시 작품의 후반쯤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전형적인 인물들만 나오다가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니 당연히 무언가 있겠다고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WOW라는 게임에 익숙하기도 하고 블리자드의 배틀넷 시스템도 익숙해서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평소 게임을 즐기지 않는 독자라면 범인과 피해자의 상호작용은 물론, 배경의 설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엔딩이 아주 깔끔한 맛은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 이 찜찜함이 어떻게 해소될까 하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이 조 프루니에 경위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 한다.

아쉬운 점을 많이 남기긴 했으나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느낀 아쉬움이기도 해서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사건과 전개를 보여줄지 궁금하긴 해서 나중에 한국어로 발간된다면 또 읽어볼 것 같다.

(부디 우리의 주인공이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보여지길 바란다.)

"그녀의 일상을 소소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더라고.

모두에게 투명인간으로 간주되는 삶은 영혼을 갉아먹을 수 있지.

어째 익숙하지 않아?"

(pg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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