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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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마블 영화들로 인해 익숙해진 슈퍼 히어로와 빌런의 구도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슈퍼 히어로나 슈퍼 빌런의 시각이 아닌 '빌런의 사무직원' 입장에서 쓰인 작품이다.


소설 속에는 히어로와 빌런 외에 이들을 돕는 직업군이 존재한다.

히어로들은 국가 기관에 등록되어 별도의 시설에서 지원되는 인력이 있는 반면, 당연하게도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빌런들은 몸빵용 고기방패인 '미트'나 잡다한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인 '헨치'들을 채용하게 된다.


주인공인 애나는 별 볼일 없는 빌런이 고용한 비정규직 헨치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단순한 데이터 입력 위주의 행정 직원이었지만 어쩌다 빌런 옆에 서 있게 되었다가 그 빌런을 막으러 온 '슈퍼콜라이더'라는 히어로의 이동 동선에 휘말려 하반신 장애라는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그 히어로 입장에서는 '톡' 건드린 정도였지만 일반인이었던 애나는 마치 트럭에 치인 듯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애나를 고용한 빌런은 마땅한 의료 지원조차 하지 않은 채 애나를 해고해 버린다.


절망에 빠진 애나는 자신이 하반신 장애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것인지를 되묻다가 문득 히어로의 활동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이득보다 여기에 휘말려지는 일반인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던 애나는 히어로 활동의 피해량을 수치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게 되고 이 작업이 점차

온라인 상에서 큰 반향을 얻게 되자 '레비아탄'이라는 네임드 빌런이 애나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게 된다.


그날 기자 회견장에 머무른 짧은 시간 동안 슈퍼히어로는

우리 모두에게서 도합 152년의 수명을 앗아갔다.

슈퍼콜라이더는 어린아이의 새끼손가락과 E가 요구한 몸값이,

헨치들의 152년보다 귀중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중에서 행복한 시간은 손에 꼽을지도 모른다. - 중략 -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리 거지 같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시간이다.

(pg 119)


여기까지가 1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스토리이다.

이 이후에는 애나가 레비아탄의 지원에 힘입어 자신의 강점인 데이터 수집과 온라인 홍보를 결합해 사람들이

히어로 활동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점차 히어로들의 입지를 줄여 나가던 애나는 결국 자신을 위한 나름의 복수도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더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하겠지만, 일단 재미는 충분하다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일단 소재 자체가 뭔가 익숙하면서도 참신하다.

히어로나 빌런에게 사이드킥이 있는건 흔하게 보는 일이지만 그저 잡무를 위해 고용되는 헨치라는 존재가 상당히 신선했다. 게다가 그 직업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물론 나중에는 사이드킥 정도로 성장하게 되지만)


게다가 작품의 핵심 주제 역시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를 묻는 전형적인 주제가 아니라 히어로 활동에 따르는 부가적인 피해들이 과연 사회적 이익에 비할 때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히어로와 빌런으로 낙인찍힌 삶의 당사자들은 어떤 인간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사회가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악당화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를 주로 다루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작품이 '슈퍼'한 히어로와 빌런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쪽으로 덕질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더 익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등장하는 히어로와 빌런들이 이 작품에서는 조연인 만큼 능력치도 기존에 알려진 만화들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한 수준에 그치고(힘 센 애, 빠른 애, 보호막 치는 애 등으로 코믹스 팬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능력치들이 단순하다.), 이들의 복잡한 오리진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라서 기존 마블이나 DC 만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본 작품의 정신 나간(?) 세계관에 빠져들기가 한층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상화하기에도 좋을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만약 만들어진다면 짧은 영화보다는 호흡이 좀 있는 미드 형식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인 애나 역할은 미드 애로우에서 펠리시티 역을 맡았던 에밀리 벳 리카즈가 어떨까 싶다.)

중간에 히어로들의 입지를 좁혀가는 부분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기 때문에 1개 시즌 분량은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나의 복수가 마무리될 즈음 약간 질질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작품의 전개 속도

또한 마음에 들었다.

연이어 사건이 터지며 새로운 갈등 상황과 정보가 주어지니 독자 입장에서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2권을 모두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특이하던데 그래서인지 재미있는 상상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을 더 발표해 주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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