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 걸스
M.M. 쉬나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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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관능적인 표지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내 그 모습이 죽은 피해자의 자세를 묘사한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긴장감이 훅 오른다.

평범한 가정의 유부녀만을 노려 살해하지만 결혼반지 외엔 전혀 손대지 않고 성폭행의 흔적도 없이 정말 딱 살인만

하고 사라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과 이를 쫓고자 하는 한 경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약 40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두께에 범인과 피해자, 그리고 사건을 쫓는 경위의 시각이 계속해서 바뀌며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후반부에 이르면 나름의 반전을 주는 엔딩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범인이 피해자를 발굴(?)하는 장소가 가상 세계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속이라는 것이

흥미를 더한다.

나 역시 WOW라는 게임에 빠져 몇 개월을 허비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게임인데 이 소설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작품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남기기에 앞서 책장을 덮고 딱 느낀 소감을 말하자면, 누군가 이 책이 재미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나 스릴러 팬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한 작품이냐고 물으면 약간의 망설임과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아래에 서술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조금 있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담하게도 작품 초반부터 범인의 시각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독자는 시작부터 범인의 실명은 물론, 범행 동기와 계획, 방법까지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고 시작한다.

반면 우리의 주인공인 조 프루니에 경위는 소설의 후반부까지도 범인의 주요 행위가 게임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가는 범인의 신출귀몰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뻘짓만 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그리고 그 짓이 뻘짓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 수밖에 없는 독자의 입장은 솔직히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매력적인 빌런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마틴은 능력 있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 특화되어 있다.

여성을 사로잡는 언변과 좋은 머리,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나지도 않은 외모를 지녔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독특한 자신만의 살인 철학까지 가진 그야말로 매력적인 빌런상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근원이 친모의 정신적, 성적 학대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바람피우는 유부녀만을 골라 살해한다는 다소

식상한 오리진 스토리를 가진 것이 못내 아쉽다.

게다가 그에게 현혹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피해자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범인을 쫓기 위해 주변 관계가 소홀해질 정도로 수사에 매달리는 워크홀릭 경관까지 묘하게 어디선가 본 듯한 판에 박힌 등장인물들이 작품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반전으로 작가가 제시한 범인의 최후 역시 작품의 후반쯤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전형적인 인물들만 나오다가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니 당연히 무언가 있겠다고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는 WOW라는 게임에 익숙하기도 하고 블리자드의 배틀넷 시스템도 익숙해서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평소 게임을 즐기지 않는 독자라면 범인과 피해자의 상호작용은 물론, 배경의 설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엔딩이 아주 깔끔한 맛은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작품에서 이 찜찜함이 어떻게 해소될까 하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이 조 프루니에 경위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 한다.

아쉬운 점을 많이 남기긴 했으나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느낀 아쉬움이기도 해서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사건과 전개를 보여줄지 궁금하긴 해서 나중에 한국어로 발간된다면 또 읽어볼 것 같다.

(부디 우리의 주인공이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보여지길 바란다.)

"그녀의 일상을 소소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더라고.

모두에게 투명인간으로 간주되는 삶은 영혼을 갉아먹을 수 있지.

어째 익숙하지 않아?"

(pg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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