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윤리적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문제는 이 윤리관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범죄자도 수감 후 인터뷰해 보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점점 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도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인문학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도전적이다. '무엇이 옳은가'

400 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에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내가 지금 윤리적 혹은 비윤리적이라

믿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저자는 미래학자답게 세상의 변화, 그중에서도 기술의 변화가 윤리관 변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서의 변화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좋은 방향일 수도, 나쁜 방향일 수도 있다.

일례로, 현재의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예 제도 폐지가 옳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노예 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심지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는데 기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만일 모든 주변 사람이 당신에게 잘못된 일을 가르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진실에 눈뜰 수 있겠는가?

(pg 157)

세계 최초로 노예제를 폐지한 곳은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이 최초로 발생한 곳 역시 영국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두 사실이 결코 우연한 일일 수 없다.

기계가 노예의 노동력보다 효율적인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쩌면 노예가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업 형태가 미래에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긴 어렵겠지만, 만약에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금과 같은 고용 형태는 사라지고 유토피아적인 생산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후손들은 우리 세대 역사를 읽으면서 '와..어떻게 사람한테 주 5일이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일을 시켰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자본 축적의 고도화와 빈부 격차의 심화로 노동자의 인권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지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온다면 후손들은 '와..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다고? 노동자 감시를 안 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윤리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계속해서 다양한 주제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어째 날이 갈수록 진짜 정보를 찾기는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정보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쓰레기 같은 정보 역시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SNS와 인터넷 게시글,

신뢰할 수 없는 '뉴스'에 의지한다.

이런 플랫폼의 대부분은 구독료가 아닌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므로,

플랫폼 사용자들의 몰입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익 역시 늘어난다.

특정 대상을 비난할수록 조회 수와 '좋아요' 수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굳이 상대에 대한 비난 강도를 낮출 이유는 전혀 없다. - 중략 -

즉, 분노는 트래픽(접속량)을 높이고 수익은 그와 비례하여 늘어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극좌와 극우는 점점 관대함을 잃고

'저쪽 사람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믿으려 든다.

(pg 141)

저자는 미국의 현실을 쓴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OOO의 뉴스 공장'과 'O로O로연구소', 그리고 이런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우리 대중들을 떠올리게 한다.

(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명백히 한 쪽의 편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봤을 때의 시각은 똑같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현실에서 개인이 특정 사안에 대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정 수준 이상 자리 잡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에도 아래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과거 세대가 했던 행동들을 비판하고자 할 땐 지금 진행되는 윤리적 차원의 여러 갈등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이치에 맞다.

가만, 내가 왜 이걸 당연한 것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걸까?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들에 대해선 그토록 분개하면서, 정작 지금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윤리적 참사에 대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 거지?

(pg 265)

우리는 서로의 인간성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로를 파괴하고 지구 전체를 말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상대를 향한 고함과 비난을 자제할 필요도 있다.

윤리, 즉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관행들은

앞으로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집단적으로 가져야 한다.

(pg 315)

이렇게 딱딱한 주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결혼한 사람이 이혼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수군수군' 떠드는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고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았다.

지금이야 이혼했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불이익이 있다거나 매몰찬 시선을 받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재혼이라도 하면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이혼한 사람들끼리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도 나오는 마당에)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한 30년 전쯤 이혼한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 로봇 기술이 계속해서 발달해 결국 성관계는 물론 다양한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로봇이 개발되었다고 치자. (사실 지금의 기술력으로 볼 때 가까운 미래에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우리는 로봇과의 혼인 관계가 가능한지, 또 이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지를 묻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떻게 기계 따위가 인간을 대체한단 말인가?!"

하지만 사람을 대체해도 좋을 정도로 고도화된 로봇을 적당한 가격대로 구입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자로 사람보다 로봇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로봇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도 기꺼이 결혼 생활을 영위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계를 둘러싼 윤리 논쟁이 뜨거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다소 딱딱한 제목과 띠지에 인쇄된 저자의 심각한 얼굴이 읽기에 약간의 망설임을 주겠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저자 스스로도 윤리학자나 전공자에게는 이 책이 너무 쉽고 무책임하게 느껴질까 두렵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쓰여진 책이라 읽는 부담은 거의 없었다.

아래처럼 유머러스한 문장들도 많아 읽다가 피식하는 포인트도 제법 있었다. (괄호 안까지 저자가 직접 쓴 문구다.)

인간의 뇌는 전체 체중의 약 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신체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20퍼센트를 소비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다는 것이고,

아무리 봐도 그렇게나 많이 소비하는 것 같진 않은 이들도 있다.)

(pg 330)

이런 종류의 책들이 보통 그렇지만, 이 책 역시 '그래서 이게 옳다' 식의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중간중간 롤스의 '무지의 장막' 사고실험을 예로 들며 '바람직한 사회란 이래야 하지 않겠니'라고 넌지시 말하기는 하나, 책 전반적으로는 변하는 세상에 맞는 새로운 윤리관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므로 미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고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직접적인 집필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미래학자답게 최근의 기술 변화 트렌드를 폭넓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기술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갈지 예상해 볼 수도 있고, 미국의 불합리한 여러 사회 제도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부분도 많아서 재미뿐 아니라 지식 습득 측면에서도 꽤나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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