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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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이 무슨 개념인지 설명하는 책인가?' 싶은데, '대한민국에서 PC가 나아가야 할 길' 정도의 부제가 붙어 있다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본 뒤 대중들의 상당수가 PC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피곤함을 극복할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으로 따지자면 나 역시 빨갱이에 가깝지만 사실 지금 국내의 PC는 너무 성역화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불편함을 언제부턴가 느껴왔다.

PC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언제나 옳고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보수적인 꼰대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PC가 최근 문화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구 사회는 이미 정치는 물론이고 교육기관이나 직장 등 일상생활 수준에서도 PC 운동이 상당 기간 벌어져왔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인종 기반을 가진 국가들에서는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확산이 가장 큰 성취일 것이고, 여타 국가들에서는 페미니즘의 확산을 주요 성과로 들 수 있겠다.

정치 제도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대형 콘텐츠 메이커들이 이 시류에 편승해 콘텐츠 제작의 기반 사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SNS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PC의 사상을 전방위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PC 메시지가 담긴 글과 사진을 퍼나르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야말로 PC가 현대사회의 주류 사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 양상이 너무 과도하게, 그리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확산되다 보니 대중들에게서 반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데에 있다.

특히 PC가 '내가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PC의 근본 이슈들이 대부분 좌파들의 이슈였던 만큼 그 반감 역시 우파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반감들이 모여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좌파 진영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PC는 지금 위협에 처해있다.

2015년 10월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잘 말해준다. "PC가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는 진술에 동의한 사람은 62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진술이 트럼프가 한 말이라는 걸 밝혔을 땐 동의율은 36퍼센트로 급감했지만,

응답자들의 정파적 반감을 감안하자면 'PC 피로증'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pg 29)

그렇다면 PC 운동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PC 운동가들의 교조적이고 오만한 태도일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엔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 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 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운동 방식의 문제는 과유불급의 원리와 관련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압축해 지적할 수 있다. - 중략 -

어떤 사람이 무심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고

지적하는 것과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PC에 근거한 비판은 곧잘 후자의 딱지 붙이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pg 30-31)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PC를 강조하기 위해 여성이나 유색인종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PC 요소를 끼워 넣기 위해 기본 서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이를 지적하면 '공부를 더 하라'거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딱지를 붙여버리니 PC를 옹호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 전반에 걸쳐 PC에 관련된 다양한 논쟁들을 취합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해외 사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최근에 있었던 싸이의 흠뻑쇼를 둘러싼 논쟁(가뭄이라 농민들은 고통 받는데 물 펑펑 쓰는 쇼를 꼭 해야 하나에 관한 논쟁)까지 두루 다룬다.

예시 후에는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PC에 대한 쟁점을 압축해 소개한다.

PC에 반대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PC가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는 혐오 발언의 자유 또한 자유로 봐야 하는가 하는 또 다른 논쟁을 낳기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한 실수나 악의가 없는 발언에 관해서도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비난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PC를 옹호하는 자들이 대체로 말만 하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위선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서 슬랙티비즘(SNS에서만 올바름을 외치는 게으른 행동주의를 비꼬는 말)에 관한 논쟁도 소개된다.

일면 위선의 태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분명 관점 전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예를 들면, SNS에 #AllLivesMatter 태그만 달아놓을 뿐 실질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의견과 그렇다 하더라도 이 태그를 다는 행위 자체가 그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계급의 문제는 계급문제를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좌파 진영에서 주로 제기되는 문제로, PC가 사람들의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 진짜 중요한 계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시각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시각에 대해 모두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들의 의견 자체가 PC의 불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 운동 자체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나와 견해가 다른 자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방법으로는 충분한 동의와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PC에 대한 논쟁이 일면 '싸가지'와 '과유불급'의 문제라고 본다.

사실 나는 PC의 생명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지적질'을 받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 중략 -

특정인을 겨냥해 속된 말로 잘난 척하면서 싸가지 없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pg 88)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기분 나쁘게 말하면 듣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PC 운동을 통해 진짜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현재의 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상대편을 까내리기 위해 PC적인 접근을 활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 대선에서 매일 국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를 뽑게 한 많은 원인 중에 PC에 대한 사람들의 지긋지긋함이 상당히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탁한다. 아니 읍소하련다. 제발 그러지 말자.

PC를 남에게 으스대는 '완장'의 용도로 쓰지 말자.

그건 PC를 죽이는 일이다.

(pg 100)

책의 후반부에는 PC 운동이 야기한 가해자 지목 문화와 피해자 의식 문화의 폐해와 사회적 약자에게 '선'의 프레임을 씌우는 언더도그마 현상까지 간단하게 훑고 있다.

모든 현상들이 최근의 대한민국에서도 활발하게 관찰되는 현상들이며 책에도 비교적 최신 사례(장애인 지하철 시위와 이를 바라보는 이준석의 관점 등)들이 실려있는 편이라 지금 시점에 읽기 딱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PC 운동이 일어난 것인데, - 중략 -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는 걸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pg 60)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괴물과 싸우다 보면 나도 괴물이 되기 쉽다.

(일베와 싸우기 위해 탄생했던 메갈을 보면 그 둘의 차이는 그저 염색체 하나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PC가 딱 이런 모양이지 않은가 싶어 씁쓸한 느낌이 들 따름이다.

주제 자체가 가볍진 않지만 저자가 쉬운 문체로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하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은 없다.

분량도 후미의 주석을 제외하면 170페이지 정도의 소책자라서 한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정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최근 정치적 입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민주당이나 국짐당이나 할 것 없이 까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PC에 대한 견해만 비슷하다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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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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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슴 아픈 10대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제목과 표지 그림이지만 그 옆에 달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쉽게 풀리지 않을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느낌의 책이지만 역시나 그의 소설답게 몰입감이 좋아서 책이 도착한 날 모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여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30대 남성인 데쓰로는 학창 시절 미식축구를 같이 하던 동기들을 만난 후 귀갓길에 미식축구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미쓰키는 데쓰로에게 세 가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자신이 FTM 트랜스젠더라는 것, 데쓰로의 아내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 중이라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한 술집 종업원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스토커였고 이를 미쓰키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죽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데쓰로는 미쓰키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니만큼 미쓰키가 말한 것이 모두 단순한 사실일 리 없으므로 사건의 큰 흐름은 당연히 살인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의문스러운 살인 사건의 해결보다는 미쓰키처럼 조금 특별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프리랜서 스포츠 작가인 데쓰로는 사회 통념상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가 사건을 쫓으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 있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소수자로는 FTM, MTF 트랜스젠더는 물론, 레즈비언과 반음양(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들이 살아가며 겪고 있는 고민의 양상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작품 중반에 남성과 여성을 뫼비우스의 띠로 묘사한다.

누구나 자신은 앞 혹은 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둘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후반에는 이를 스펙트럼으로도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유가 더 와닿았다.)

양 극단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스펙트럼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100% 남자), (95% 여자 + 5%남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개인은 물론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지점이 50%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반음양으로 태어난 어린 달리기 선수의 대사였다.

"결국은 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자신과의 차이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어요.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 중략 -

"내게 남녀는 나 이외의 인간이에요.

다들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누는 것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

(pg 268)

조사 도중 성 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에야 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도 많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이 발간된 것은 무려 20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즈음 가수 하리수가 데뷔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니 이때에는 자식이 성 소수자인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 연을 끊고 살던 한 아버지는 노년에 이르러 아래와 같은 고백을 한다.

"니시와키 씨, 자녀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요?"

"아이가 없어서 심정을 모른다고 하시려는 건가요?"

"아뇨. 그런 말은 안 합니다." - 중략 -

"아이가 있든 없든 그 마음은 이해할 겁니다.

다만 아이가 있으면 조금은 더 상상하기 쉽겠죠."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요?"

"아뇨. 부모의 이기심이죠."

(pg 340)

살인사건의 진상은 책의 중후반부쯤 되면 대충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상을 밝혀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 이들이 대체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나 '호적'이라는 것에 등록되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 역할에 맞춰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한다.

(사실 주민등록번호와 금융실명제가 사회의 근간이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자신이 평범한 남성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데쓰로는 이들을 만나면서 성 정체성과 성 역할을 단순히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은 여성의 마음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성으로 여성을 사랑하면서도 육체가 여성인 것에 괴로워했다.

자살이라는 결론은 같았으나 그곳에 도달한 길은 전혀 다르다.

다만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이른바 윤리라 불리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윤리가 반드시 인간의 옳은 길을 드러낸다는 보장은 없다.

대부분은 그다지 대단한 근거도 없는 사회 통념에 불과하다.

(pg 397)

'살인사건의 추적'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성 소수자들의 삶과 맞물려 독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마다 성별이 헷갈려서 '그래서 남자라는 거야, 여자라는 거야'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었지만 읽다 보니 작가가 '이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도 구체적인 것은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결말 역시 깔끔했다.

일반적인 소설의 두 권 정도에 해당하는 다소 긴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어려운 문장도 없고 진상에 서서히 다가가면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흥미를 계속 이어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포함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만 총 8개의 작품을 읽었는데 아직도 못 본 작품이 수두룩하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배제하려 하죠.

아무리 성정체성장애라는 단어가 부각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어요.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우리 마음은 전해지지 않을 거예요.

짝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pg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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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하는 양자역학 -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 구조를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는 색다른 물리 강의
마쓰우라 소 지음, 전종훈 옮김, 장형진 감수 / 보누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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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돌이로 근 40년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연 김상욱 교수라 할 수 있다.

그의 말과 글 솜씨에 반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을 맛보기 위해 나름 교양서를 몇 권 읽었다.

그러던 중 '교양서보다 깊고, 교과서보다 쉽다'라며 "츄라이 츄라이"를 외치는 책이 나와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문돌이들과 동일하게 수식에 극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지만 '중, 고등학교 수준'의 수식만 활용해 설명했다는 말에 그래도 문과 치고는 수학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안심(?)하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식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나의 수학 지식은 수능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깔끔하게 휘발되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 중 내가 이해한 부분은 진짜 너그럽게 봐줘야 한 15%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로운 시각은 양자역학과 고전물리학의 관계였다.

기존에 읽어 온 교양서에서는 고전물리학은 거시적인 역학,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역학으로만 단순하게 설명했다.

즉 현실 세계는 거시적이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을 적용해야 하고 원자와 전자 수준으로 작은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훨씬 더 큰, 더 근본적인 개념이고 고전물리학은 양자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즉 둘이 전혀 다른 개념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의 상위호환인 셈이다.

이 세계는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는 그 규칙대로 움직이는 상태밖에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하다고 느낀 것뿐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자연계에 규칙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다.

(pg 33)

김상욱 교수가 한 강연에서 '사실 우주에서는 죽어있는 것이 디폴트고 살아 있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인용한 문구에도 비슷한 시각이 들어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모두 양자로 되어 있고, 이들이 모여 양자의 특징인 중첩과 불안정성을 잃은 대신 지금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분자 수준의 특징들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전물리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이해했다.

한편 여러 상황 증거로 볼 때,

갓 태어난 우주에는 거의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주변에 있는 여러 원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

바로 별 내부에서 합성됐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옛날 큰 항성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그 항성 안에서 합성된 무거운 원소가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태양계를 형성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별의 조각'인 것이다.

(pg 87)

이 책을 이해하고자 지금부터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행렬 부분은 너무 중요해 보여서 유튜브 수능특강으로 기억을 되살려가며 행렬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애를 썼다.

수학이 싫어 문과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했을법한 생각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대체 행렬 따위를 배워서 어디다 쓸까 궁금했었는데 양자역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행렬이었다.

한 좌표에서의 위치와 속도가 정해진 것을 대상으로 하는 고전 물리학과는 달리 양자는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행렬로 표기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수의 곱셈과 달리 행렬의 곱셈에서 앞, 뒤 순서를 바꾸면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처럼 양자를 행렬로 표시함으로써 위치와 속도의 불확정성을 수학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불확정적이며,

그 측정치에는 반드시 그 불확정성만큼의 오차가 있다.

그리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에는

플랑크 상수에 비례하는 하한이 있다.

오늘날 '불확정성의 원리' 또는 '불확정성 관계'라고 부르는 양자의 특징적인 성질이다.

(pg 103)

즉 양자 상태에는 확정된 물리량 정보가 처음부터 들어 있지 않으며, 고전물리학처럼

측정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값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 중략 -

한 번 측정하는 값을 예측할 수 없다면, 양자라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무법 상태에 있는 것일까? - 중략 -

같은 조건으로 몇 번이고 측정을 반복하면 잘 측정되는 값,

측정되지 않는 값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측정치의 분포'다.

(pg 113)

수식이 조금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의 양자역학 교양서와 흐름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기에 이를 양자라고 부른다는 설명부터 시작해 양자컴퓨터에 대한 전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양자의 불확정성, 중첩, 얽힘 등을 설명하는 것도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그 설명에 수식이 조금 더 포함되어 있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수식이 있어서 이해가 더 쉬운 사람도 있겠고, 되려 수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나 같은)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수식이 다소 어렵다면 그냥 설명만 쭉 읽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양자역학을 책 한 권으로 이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주제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긴 한다.

그리고 수학으로의 접근을 더 하지 않으면 글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은 대충 이 정도겠구나 하는 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목처럼 양자역학을 직감으로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책에서 양자를 설명하는 시각에도 행렬역학, 파동역학, 경로적분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듯이, 양자역학을 비전공자에게 소개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만큼 시중에 많은 교양서들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이 비전공자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양자역학은 모든 상태가 중첩한 양자 상태를 다루지만,

우리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를 실제로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까다로운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pg 218)

앞으로 수십 년 정도는 고전 컴퓨터도 계속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중략 -

양자컴퓨터가 모든 계산기를 대체하는 미래는 반드시 온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매사를 보는 관점이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pg 258)

개인적으로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기에 이 책에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양자역학에 관한 교양서 한두 권 정도는 읽어 보거나 최소한 유튜브 강의 영상이라도 보고 나서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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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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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읽고 나면 뭔가 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읽을 땐 희한하게 새로운 것 같고 희한하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런 그가 이번에는 '후회'라는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저자도 유명한 프랑스 노래를 인용하긴 했지만, 국내 가요에서도 후회는 가사의 단골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회가 개인에게 심적은 물론 육체적으로까지 부담을 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려 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흔히 '지금부터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라는 목표를 내심 세우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후회를 제대로만 한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단이 친절하게도 책 서두에 등장한다.

후회는 건강하고 보편적이며 인간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후회는 값지다. 후회는 명료하게 해준다. 후회는 가르침을 준다.

제대로만 하면 곤경에 빠질 이유가 없다.

후회는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다.

(pg 27)

이 책을 한 문단으로 정리하라고 하면 저 내용이 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의문은 이것일 것이다.

과연 후회란 무엇이고, 후회를 어떻게 해야 건강한 방법으로 후회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후회는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산물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두뇌활동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했거나 혹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행동의 결과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산출되는 감정의 하나가 후회이기 때문에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후회가 없는 사람들은 심리적 건강의 본보기가 아니다.

그들은 보통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pg 45)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뇌의 특정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후회라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너무 후회에 매몰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당히(?)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도 맞다는 의미다.

그럼 사람들은 어떤 일을 주로 후회할까?

저자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광범위한 사례 연구와 직접 실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후회를 일정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이를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기반성 후회 : 공부나 건강 등 장기적인 삶의 안정을 위해 했어야 했거나 하지 않아야 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

ex: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금연하지 않은 것, 젊을 때 저축을 더 하지 않은 것 등

2. 대담성 후회 :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지 못했거나 소극적으로 한 것들에 대한 후회

ex: 이상형을 만났는데 말을 걸지 못한 것, 이직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 것 등

3. 도덕성 후회 : 자신의 도덕기준에 반하는 행동을 했거나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

ex: 누군가를 괴롭힌 것, 왕따 당하는 친구를 감싸주지 못한 것 등

4. 관계성 후회 : 누군가와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끊어질 행동 혹은 바로잡을 행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ex: 죽은 가족에게 모질게 한 것, 사과하는 친구를 받아주지 못한 것 등

재미있는 것은 이 중에서도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이다.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있지만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사실 바로잡을 기회를 만들기조차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했던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보다 했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를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지 않은 행동'들이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 말고)

이런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설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방법으로 '후회 복권'이라는 방식도 소개하는데 매우 재미있으니 동기부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제 후회의 유형도 알았으니 후회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일단 후회를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 써보는 것도 좋고 말로 표현하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후회를 하고 있고, 그 후회가 어느 유형이며 그 유형의 후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너무 후회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후회는 당연히 너무도 힘든 감정이기 때문에 여기에 매몰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의 감정(비하가 아닌)을 가지고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후회를 진지하게 하면 무엇이 좋아질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자가 말한 바를 몇 구절 인용한다.

후회를 예측하면 사고 속도가 느려진다.

뇌가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전에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숙고할 시간을 빌어준다.

예측된 후회는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극복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pg 255)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백 가지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행복에 결정적인 것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도 많다.

그 차이를 이해하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후회(사람을 미치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고, 부정할 길 없이 진정한 감정)는

잘 사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pg 271)

결국은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후회라는 의미다.

읽을 땐 엄청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정리하고 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내용인가 싶긴 하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후회라는 감정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의 전환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후회는 나를 더 낫게 만든다. 후회는 내게 희망을 준다.

(pg 280)

인간에게 후회라는 감정이 생긴 근원을 진지하게 따져 묻자면 우리의 자유 의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든 사실은 모든 게 다 더 높은 의지에 따라(그게 신이든 운명이든 뭐라고 불리든 간에)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집단(설문조사에 참여한 미국인 4명 중 3명)은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며, 동시에 대부분의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믿음을 피력한 것이다.

이 신비로운 집단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이들을 '인간'으로 명명했다.

(pg 277)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을 참 잘 설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구절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 책에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다니엘 핑크의 저서답게 굉장히 읽기 편하다.

번역이 깔끔하기도 하지만 원문 자체를 번역에 무리가 없게 친절하게 썼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진행한 설문 사례들도 많이 등장하고 후회와 관련된 연구 사례들도 핵심만 잘 소개하고 있어서 어렵다는 느낌 없이 누가 읽어도 공감이 되는 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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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걷는사람 소설집 5
조영한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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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내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음울한 작품을 만났다.

오죽하면 책 후미에 실린 추천사에서조차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 소개에 '우리 현실 어디에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집중했다는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잘 담아낸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기대였다.

그 기대는 훌륭하게 충족되었으나 이렇게까지 '잘' 표현할 줄은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잘' 표현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책을 덮은 후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BTS다, 오징어 게임이다 해서 갈수록 위상이 높아져가는 대한민국이지만 마찬가지로 이 나라를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기생충' 역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빈부격차 스펙트럼의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차이라면 여기에는 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단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일말의 유쾌한 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 '전직 알바'의 시각에서 보는 '사장'도 내 입장에서는 그리 윤택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대학 조교, 시간강사, 정육업자 정도가 그나마 '직업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이고, 나머지는 '기타 일용직'으로 분류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건물 유리창을 닦거나 절의 연등을 다는 등 소위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성매매 업소의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라는 법의 경계 밖에 있는 직업도, 전염병 지역의 가축을 매장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해야 하는 직업까지 폭넓게 소개된다.

작품은 매우 담담하다.

작가는 애써 이들을 가엽게 여기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사건들과 그 속에 있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거기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어줄 뿐이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용직이면서 내일 일이 없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면서 폭력이 없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가축들을 생매장하면서 고기가 맛있게 느껴지길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는 등장인물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담배와 열패감이다.

책을 읽는데 묘하게 담배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작품 속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나도 흡연자로 지낼 당시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한숨을 쉬는 행위와 비슷해서 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모습이다.

자신의 한숨을 담배연기로 가리고 있는 느낌, 담배를 핑계로 마음껏 한숨이라도 쉬는 느낌.

그리고 그 담배연기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과 그럼에도 숨을 쉬며 음식을 먹는 이들이 느끼는 열패감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였다.

각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얽혀 있어서 단편집이라 봐도 되고, 어차피 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고 있으니 옴니버스 식의 한 작품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일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등장인물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도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작가가 섣불리 꿈과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신이 맡은 과업을 해야 할 것이었다.

별다른 희망도, 보람도, 기대도 없이.

(pg 204)

어찌 됐든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직업들이고 그들의 삶이 소설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의 실체일 것이다.

이 작품은 불편함을 준다.

머나먼 이국 땅의 굶주린 아이들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함을 준다.

애써 가린 눈을 돌리면 보일뿐더러 자신 역시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한 발만 삐끗하면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함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읽기에 편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같은 불편함을 느껴봤으면 한다.

창가에 걸어 놓은 부채꼴 모양의 리넨 커튼이 미풍에 조금씩 흔들렸다.

눈으로 좀처럼 잡아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곳에도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거나,

저렇게 잘 보이지 않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pg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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