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물리학 특강, 개정판
제프리 베네트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양자역학을 비롯한 과학 교양서를 몇 권 접하고 있는데 워낙 자연과학 기본 지식이 적다 보니 솔직히 이해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는 책들이 나오면 반가운 기분으로 집어 들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일반 독자 수준에 맞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발간된 지는 꽤 되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새로 나올 정도로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인기가 많은 책이라 한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속도가 변하면 시간 흐름이 달라진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면 에너지의 증가분이 물체의 질량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도로밖에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 책을 통해 그래도 상대성 이론이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인지 정도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지구의 평균적인 중력 하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에는 뛰어났지만,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정도로 빠르거나 물체의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큰 행성이나 항성을 대상으로 할 경우 오차가 크게 발생했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에서 밝혀낸 바에 의하면 '운동'은 '상대적'이고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다.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또 실제 우주에서 그 계산이 맞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대성 이론은 '이론'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성 이론으로 인류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질량을 가진 물질은 중력을 발생시키며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의 유산은 보통 그의 발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그가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신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공간과 시간이 따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고,

중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으며,

그의 이론은 이제 블랙홀 같은 특이한 물체에서부터

우주 전반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이해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pg 243)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우리가 지구 안에서 일상적으로(미미한 질량과 속도를 가진 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을 실제로 관찰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상대성 이론의 결과를 수식이 아닌 '사고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자의 머릿속에 우주선을 두 대 띄워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 실험을 유도한다.

그러면서 물체의 속도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빛의 속도는 왜 함께 변할 수 없는지, 그리고 속도가 변화할 때 그 변화 주체에게 발생하는 현상들이 무엇인지 등등 상대성 이론을 통해 알아낸 것들을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준다.

책의 시작과 끝에 상대성 이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었던 블랙홀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그 어떤 빛도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관측을 통해서는 블랙홀이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의 연구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질량을 가진, 그러면서도 크기는 작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블랙홀'이라 명명하고 이것이 전 우주에 엄청나게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물질도 블랙홀 안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만큼 블랙홀의 내부를 물리적인 예측이 아닌 경험적인 연구로 더 알아낼 방법은 아직까진 없다.

이 부분에서 최근에 역주행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 제목이기도 한 '사건의 지평선'에 대한 개념도 소개되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요약하면 사건의 지평선은 본질적으로 블랙홀 내부와 바깥 우주 사이의 경계다.

바깥에서 봤을 때 사건의 지평선은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즉, 바깥 우주로 돌아오기가 불가능해지는 장소이고, 시간이 멈춘 것으로 보이는 장소이며, 빛이 무한히 적색이동을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경계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물체에게 사건의 지평선은 그저 블랙홀 안에서 기다리는 운명으로

향하면서 그 너머로 가면 바깥 우주와 더 이상 접촉할 수 없는 장소일 뿐이다.

(pg 192)

사건의 지평선 안의 어떤 것도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관찰 증거나 실험 증거를 모을 방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홀의 안은 관찰 가능한 우주 밖에 놓여 있듯이 과학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pg 214)

저자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소개를 끝낸 후 과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인류가 이렇게 발전해 온 원동력에 과학적 지식의 단순한 축적뿐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로 무장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증거가 충분히 강력해지면 과학자들은 결국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학의 정의도

'증거를 이용하여 우리가 합의에 이르게 돕는 방식'이다.

(pg 221)

상대성 이론의 시작은 물론 아인슈타인이었지만 그의 생각을 '이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뒤에 이어진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과 관측, 계산의 결과였다.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론이었지만 데이터를 통해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은 진리에 가깝다고 보는 과학적 태도가 이러한 과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은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인슈타인의 가장 큰 유산은

과학적 사고의 엄청난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십 대 시절에 만약 빛을 타고 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워서 이 질문을 실제적으로 조사했고,

여러 가지 생각의 결과를 탐구했다. 이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pg 243)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상대성 이론이 그리 쉬운 주제일 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나 역자가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만들어 내려고 상당히 노력했다는 점이 읽으면서 잘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번역된 글이 매끄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서 역자의 노력도 높이 사고 싶다.)

그림과 도표도 많아 사고 실험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이해하기가 꽤 좋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맛보고 싶은 사람뿐 아니라 일반 상식 측면에서도 과학적 사고 실험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 볼 수 있었기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아서 제목만 보고 '벽돌책'을 상상했다면 결코 부담되지 않는 양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저자는 아래의 문단으로 책을 마치고 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옮겨두고 싶었다.

시공간의 이해에 근거해 볼 때, 시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영원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 사건이 일어나면,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고, 이들 사건을 함께 모으면

당신은 우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가 남길 흔적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되도록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pg 248-249)

우주에 수많은 은하가 있지만 우주 공간 자체가 점점 더 빠르게 확장하고 있고 어떤 은하들은 빛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직접 행성들을 돌면서 우리 이외의 생명체를 찾아다니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다른 지적인 존재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온 우주에 우리들밖에 없다고 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의 흔적이 영원히 우주에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지만 겸허하게 들리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작품이 김영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라는 말에 읽어보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 중 네 번째로 읽은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읽은 감상을 남기기가 가장 어려운 느낌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작품의 주 화자는 자살을 컨설팅해 주는 한 남자다.

작품 속에서 총 두 명의 여인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도록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무의식 깊은 곳에 감금해두었던 욕망을 끄집어내고 싶을 뿐이다.

일단 풀려난 욕망은 자가증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상상력은 비약하기 시작하고 궁극엔 내 의뢰인이 될 소질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등장하는 '유디트'라는 작품명으로 불리는 여성은 시종일관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며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C라는 영상 예술에 종사하는 남성과 택시 기사를 하는 K라는 남성인데 이 둘은 형제 사이다.

유디트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C는 '미미'라는 행위예술가를 만나 협업을 하게 된다.

영상 매체에 찍히는 것을 줄곧 거부하던 미미는 예외적으로 C와 영상작업을 함께 하게 되고, 이후 역시 자살 컨설턴트를 만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스토리를 정리했는데 다 읽은 지금 봐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떤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좀 찾아봤으나 딱히 공감이 가는 것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을 읽은 뒤와 느낌이 비슷했다.

본래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상 소설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장인물들의 행보나 선택이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원래 염세적인 캐릭터였던 유디트의 선택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주도적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 미미의 행보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었고, 형제 관계면서도 서로에게 관심도, 무관심도, 증오도, 애정도 아닌 그 무언가의 관계인 C와 K의 사이도 짧은 내 인생 경험으로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이는 물론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이 가장 클 것이고, 분량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섹슈얼한 장면이 꽤나 많이 나와서 자극적인 맛에 계속 읽게 된 것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명화들을 빌어 등장인물이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좋았다는 점도 몰입도를 높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꽤 많이 팔리는 책인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왜인지 나는 이런 염세적인 느낌이 나는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들을 읽은 편인데, 내 취향엔 그의 최근작들이 더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부족한 내 취향과 이해력을 탓하는 시간이었지만 꽤나 독특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 사랑 맑은아이 15
신영란 지음, 오오니시 미소노 그림 / 맑은물 / 202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아이 책이지만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백과 형식의 책이 아닌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는 무슨 내용일지 꽤나 신경이 쓰인다.

아동용이라 하더라도 내용상 폭력적인 부분이나 차별적인 요소가 없는지를 한 번쯤 고민해 보게 되는데 이 책은 아이를 향한 아빠의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읽어줄 수 있었다.



표지에 보이는 황제펭귄에 관한 이야기다.

황제펭귄의 암컷은 알을 낳으면 수컷에게 알을 품게 하고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데, 이때 알이 부화한 후 새끼에게 먹일 수 있도록 소화 기관이 아닌 별도의 먹이 저장 주머니에 저장해둔다.

암컷이 돌아오면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먹인 후 수컷이 교대해 먹이를 찾으러 떠난다.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이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 책의 내용에도 실제 황제펭귄의 이러한 습성이 잘 녹아있다.

표지에 그려진 슬퍼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이야기의 스포를 담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고 있던 아빠였지만 날씨의 변덕으로 알이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깨져버리고 만다.

알을 잃어버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아빠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를 알 대신 품는다.

모든 펭귄들의 알이 부화했지만 당연히 얼음덩어리는 부화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아빠에게 어디선가 고아 펭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빠 펭귄은 그 고아 펭귄을 자식으로 삼아 키우기로 결심한다.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엄마 펭귄은 그 새끼가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새끼에게 자신이 저장해 둔 먹이를 먹이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슬프지만 감동이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자신의 DNA를 물려받지 않은 어린 개체를 정성 들여 키운다는 것은 인간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황제펭귄은 고아 펭귄이 발생할 경우 알을 잃은 성인 개체가 돌보려 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동물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모를 잃었지만 양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랄 새끼 펭귄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책을 다 읽어준 후 아이에게 "이 새끼 펭귄은 이제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엄마랑 아빠랑 잘 지낼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야기 자체의 서사도 좋았고 흔하지는 않겠지만 모든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만 맺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간접적으로 인지시켜줄 수도 있었던 따뜻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서수지 옮김, 김석현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 전공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사실 '물리'와 '재미'가 같이 쓰기 좋은 단어의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관심이 끌린 책인데, 다 읽은 소감을 먼저 말하자면 의외로 진짜 '재미'가 있었다.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하면 물리를 너무 재미있어하는 한 물리학자가 자신의 평소 사고방식이 얼마나 독특한지 소개하는 에세이라 할 수 있겠다.

대단한 물리적 지식을 알려준다기보다는 물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소개가 많고 반쯤은 '내가 이렇게 독특하고 천재적인 사람이다'라는 자기 자랑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볍게 읽힌다.

어린 시절,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여든 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수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80년에 단순히 365일을 곱했다. 답은 3만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가고 하루를 보냈다.

이 생활을 3만 번 반복하기만 해도 내 인생은 끝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진실을 알고 나니 두려워졌다.

(pg 129)

단순히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저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독특한 사고를 해왔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초등학생이 인생의 유한함을 계산을 통해 깨닫다니 그 시절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나로선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이 우수한 성과를 얻기 쉽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책 구석구석에 잘 드러난다.

이론물리학자의 작업이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풀고 싶은 문제를 만나고,

그 문제에 몰두하는 데 자신을 바치고,

또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는 돈이 아닌 자신의 탐구심을 충족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g 149)

당연히 과학, 특히 물리학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많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을 사랑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할 테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으로는 자신의 생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기에 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면 은퇴 시점을 기다리게 마련일 텐데 저자는 은퇴 이후에도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내게 연구는 취미다. 즐겁고 신이 나서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특정한 나이가 되면 끝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g 247)

폭넓은 과학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학생이라면 물론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보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 역시 과학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도움이 된다는 관점은 근시안적이고 국소적이다.

중력파의 예언부터 관측까지 100년 사이에 인류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이 발견이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의 기준 자체가 바뀔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초 과학의 발견은 보편성에 중점을 두는 게 자연스럽다.

도움이 될지 여부는 보편성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갈림길 중 하나가 아닐까.

(pg 141)

정말로 과학이 일반 사회와 분리되어버리는 순간에 과학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러나 현실에서 과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과학의 성과 중 아주 일부가 기술로 이어져 인류 생활에 변혁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또 과학이 인류가 지닌 궁극의 논리 구조인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g 171)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궁리하는 저자의 삶을 엿보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문돌이로 타고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자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겠지만 저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인 SF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인간을 쏙 빼닮은 휴머노이드와 장기 생산용 클론을 가전제품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다.

무분별한 휴머노이드와 클론의 범람으로 등록되지 않은 개체들은 수용소로 격리해 처분해 버리는 사회.

주인공인 철이는 평생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았던 휴머노이드다.

그의 아버지 혹은 개발자는 인공지능에 윤리를 부여하는 기술자로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교 역할을 할 개체를 만들 생각으로 철이를 만들었다.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

혹시 그게 바로 나 아니었을까?

때문에 로봇이긴 하나 먹고 자야 하며 초인 같은 힘도, 엄청난 속도의 연산 능력도 없이 아버지의 회사 캠퍼스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잠시 캠퍼스를 벗어나게 된 그는 경비대의 단속에 걸려 수용소에 격리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봇인 줄 몰랐던 애완용 휴머노이드 민이와 클론으로 태어난 선이를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꽤나 철학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애초에 주인공의 이름도 '철학'의 '철'자를 따 지어졌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면 단골로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배(이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딜레마도 다루어진다.

기계의 발달로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가는 세상에서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게다가 실험실에서 복제된 클론은 당연히 인간일진대 명백히 필요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그들을 다른 평범한(?) 인간의 도구처럼 사용하고 처분하는 것은 정당한가.

철이가 만난 선이는 마치 도인과도 같은 세계관을 지녔다.

원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 세상에서 '의식'을 가진 개체가 탄생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에 너무도 소중하고 때문에 각 개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끝나면 비로소 우주의 구성 요소로 돌아가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의식을 가진 개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도 말한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수용소를 떠난 뒤 만나게 된 '달마'라는 로봇은 개별 의지를 지닌 AI들을 모두 통합해 하나의 군체의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얼핏 더 거대한 그 무엇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측면만 보면 둘의 세계관이 비슷해 보이지만 철이는 그 안에 담긴 차이를 느끼고 고민에 빠진다.

기계인 철이와 인간인 선이가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당연히 같지 않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기나긴 세월이지만 기계의 기준으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흐르고 철이가 선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뒤 내린 선택은 긴 여운을 남겼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옳았다.

훗날 때가 왔을 때, 선이도 나도 일말의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SF 영화로 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 맨'이 동시에 떠오르는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덤덤한 문체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읽은 김영하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꼭 영상화가 되면 좋겠다.

그것도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주면 작품의 분위기와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OTT 기업들이 최근 한국 콘텐츠에 돈을 쏟아붓는데, 빨리 이 좋은 이야기가 거대 자본을 만나 독특한 영상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탄생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