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 우주여행, 태양계의 행성들! 신통방통 과학 탐구 그림책 2
존 디볼 지음, 박서경 옮김 / 상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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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이와 함께 세계지도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어디 있는지를 알려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한 아이가 '엄청 쪼그맣구나'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지구도 엄청 커다랗게 느껴지겠지만 태양계만 보더라도 지구보다 큰 행성들이 존재하고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같은 은하도 엄청나게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아이에게 우리가 속한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알려주는 책이 있어서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태양계 행성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는 책이다.

'수성, 금성은 너무 뜨겁고 천왕성 해왕성은 너무 춥다' 정도로 간략하게 소개해 주는 책이지만 의외로 지구의 자전 속도가 1,660km라는 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알려주는 등 정보가 적은 편은 결코 아니다.

아이에게 1년이 365일인 이유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365일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책을 읽으면서 알려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면서 행성의 순서를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어 이 목록에서 제외된 시기가 2006년이라는 것도 나와 있어서 나도 몰랐던 정보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행성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 같은데 행성들의 모습이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아이의 눈 높이에 맞게 화려한 색채로 각 행성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려져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글씨 부분을 다 읽어준 다음에도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우주는 아직도 인류가 알아내지 못한 비밀들로 가득하다.

아이는 그저 재미난 그림책을 하나 읽었을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하염없이 작은 존재라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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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개정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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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지만 사실 제목보다는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이라는 부제가 책 내용을 더 잘 말해준다.

구글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경제학자인 저자가 빅데이터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기존의 학술 연구를 위한 기초 데이터 확보용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의 방법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거짓으로 답변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설문의 타당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응답자가 거짓으로 답변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진실을 말할 '유인'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구글에 검색을 할 때에는 거짓이 아닌 자신의 평소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구글 사용자들의 검색 기록이라는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사회적으로 유용한 시각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결과로 야구 선수의 미래 예측부터 사람들의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고 충격적인 사실은 언론이 편향성을 갖는 이유를 분석한 글이었다.

흔히들 언론사의 소유주나 편집장 등 정치적 견해를 밀어붙일 수 있는 계층의 입맛에 따라 특정 관점을 제시해 해당 언론에 노출되는 대중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일정 부분 이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은 소유주나 편집장에 따라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 어느 당이 우세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독자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방향으로, 즉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중에게 영향을 주려는 기업이나 부자들이

미국의 저널리즘을 지배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겐츠코프와 셔피로의 논문은 소유주의 두드러진 동기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유주는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서 더 큰 부를 쌓고자 한다. - 중략 -

거대한 음모 따위는 없다. 그저 자본주의가 존재할 뿐.

(pg 127-12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일정한 수준의 경향성을 포착하기는 쉽지만, 이것이 곧 명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빅데이터 활용의 가장 유명한 예시 중 하나인 허리케인과 딸기맛 팝타르트 사례에서도 보듯이 허리케인이 올 때 사람들이 왜 딸기맛 군것질거리를 더 많이 구매하는지 그 이유를 빅데이터 자체에서 찾을 수는 없다.

데이터는 단지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고 기업에서는 이를 활용해 수익을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신의 목표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모델이

어떻게 좋은 효과를 내는지 정확한 이유를 너무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정확한 수치만 얻으면 그만이다.

(pg 102)

하지만 저자는 빅데이터가 주는 명확한 장점이 있고, 빅데이터의 활용으로 사회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활동이 가능해지리라 보고 있다.

물론 빅데이터가 기존의 연구 방법론들을 모두 대체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데이터 취합에 있어서 속도와 비용의 절감은 물론이고 객관적이고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보다 명확한 상관관계를 찾아내며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사회과학을 보다 '과학적'인 활동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말한다.

구글 검색 데이터나 인터넷에 있는 다른 진실의 샘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인간 마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어둠을 마주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둠과 싸우는 데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세상의 문제에 관한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문제를 고치는 방향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다.

(pg 205)

나는 빅데이터가 폭로하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는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내다본다.

그렇다고 어떤 문제에든 단순히 데이터만 갖다 대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빅데이터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개발해온 다른 모든 방법의

필요성을 없애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를 보완한다.

(pg 315)

다만 저자가 구글 출신이기에, 그리고 자신이 데이터 과학자이기 때문에 빅데이터 활용을 장밋빛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저자도 빅데이터의 활용에서 경계해야 할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활용과 데이터 소유 주체의 권력 남용 문제를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갖는 빅데이터의 무서운 점(내 인터넷 사용 활동의 모든 부분이 어딘가에 기록되고 있고 이를 기업의 수익 활동의 일환으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쇄할 정도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인터넷상의 데이터는 기업들에게 어떤 고객을 피하고

어떤 고객을 착취할지 알려준다.

또한 고객들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기업이 어디이고,

어떤 기업이 그들을 착취하려 하는지 알려준다.

빅데이터는 지금까지 소비자와 기업 간의 싸움에서 양쪽 모두를 도와왔다.

우리는 그것이 공평한 싸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pg 328)

저자가 위와 같이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돈의 이동 방향을 보면 빅데이터가 누구의 편이기가 쉬울지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빅데이터 활용이 개별 소비자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물론 인터넷에서 쇼핑할 때 원하는 상품이 더 빠르게 등장할 확률이 높아지기는 했지만)는 그리 체감할 정도가 아니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의 상식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비록 구글 출신이어서 구글에 편향된 시각으로 집필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긴 하지만 책 자체는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구글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기에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등장하는 사례들도 하나같이 흥미롭고 저자의 문체도 상당히 재치있다.

데이터 과학자다운 결말도 재미있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적절한 방법으로 끝맺을 것이다.

데이터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이 망할 결론을 그만 쓸 것이다.

빅데이터가 말하길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니까.

(pg 349)

빅데이터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들의 비율은 7%가 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는 굉장한 소수인 셈이다.

빅데이터의 맛을 알게 된 기업들은 데이터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인 이상 돈이 있는 곳에 인재가 몰리게 마련이다.

미래를 대비함에 있어서도 앞으로 꽤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이라는 점에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살짝 두꺼워 보이지만 내용이 그리 어렵지는 않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므로 빅데이터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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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없이도 잘만 큽니다 - 아직도 돈으로 키우려 합니까?
이경숙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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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사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 사는 동네가 조금 특이하게 교육열이 높다 보니 나도 주변의 부모들을 보면 우리 아이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외벌이 직장인이 한 달 벌어봐야 빤하니 마음 편히 사교육을 시킬 여유도 되지 않아 사실상 반강제로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던 차에 책 제목을 보고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줄지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만 넷을 키웠고 학원 운영, 학습지 교사 등의 경력으로 많은 학생들을 만나본 경험을 책 안에 풀어놓았다.

이런 책을 쓰면 으레 '그 집 자식들은 얼마나 잘 됐길래 아는 척이냐?'라는 반응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도입 부분에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 공기업들에 다니는 아이들 자랑도 깨알같이 수록해 두었다.

제목만 보면 사교육을 일절 하지 않고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 같지만 사실 저자도 사교육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교육의 주체가 '부모'가 아닌 '아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하니까, 이 과목 성적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아이가 잘하는 것 같으니까 하는 사교육은 모두 부모의 바람에 따른 사교육이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가 부족함을 느껴서, 아이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을 내서 하는 사교육은 아이가 주체가 된 사교육이라 할 수 있겠다.

부모가 능력이 안 돼서 속상하다는 한탄은

소위 '비싸고 좋은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돼서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한 데 대한 '변명'일 수 있다.

사교육을 시키기에 앞서 아이가 어떤 수준인지, 어떤 상황인지,

아이의 흥미는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pg 34)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중요하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시간을 변경해가며 아이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 온 저자의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대화의 기회라는 것을 어쩌다 한 번 갖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일과의 하나로 꾸준하게 가지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매일 저녁 시간을 정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려면 부모가 자신의 휴식 시간을 일정 부분 육아에 할애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도 육아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부분인데 저자의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했다고 한다.

네 자녀들이 서로 나이 차이가 있으니 손위 형제들이 읽는 수준 높은 책들도 비교적 빨리 접하게 된다.

요즘처럼 자녀가 한 둘 정도밖에 안된다면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사교육을 시키더라도 책을 늘 가까이하라고 권하고 싶다.

책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사교육 없이 잘 키웠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하나같이 독서를 많이 시켰다고 한다.

(pg 41)

그 밖에도 사교육에 고민을 많이 해 본 부모들에게는 귀가 솔깃할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다.

저자가 쓴 짧은 에세이들을 묶어놓은 형태로 목차나 순서가 논리정연하다는 느낌은 없는지라 처음부터 쭉 읽는 것도 좋고, 궁금한 부분을 그때그때 읽어도 좋을 책이다.

물론 읽는다고 모두 다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을 아는 것보다 실제로 행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예습, 복습의 중요성이야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학창 시절에 예복습 잘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원래 육아에 '정답'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다.

'금쪽이' 프로그램만 봐도 매주 나오는 아이마다 보여주는 증상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도 다 다르다.

저자의 아이들에게는 통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도,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육아에 대한 정답을 얻겠다는 기대보다는 사교육으로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가겠다는 기대를 안고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사교육의 목표를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잘하면 할수록 비교 대상인 친구들의 수준도 높아진다.

남들보다 더 잘한다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비교 대상이나 기준은 어제의 아이여야 하고,

사교육은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지원할 때 부담이 적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아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시작해도 늦지 않다.

(pg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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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구
윤재호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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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이 책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보통 책을 읽은 후 악평을 남길 것 같으면 글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하지만 작품이 미완으로 끝났고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라 하니 다음에는 보다 좋은 작품이 탄생했으면 하는 마음에 한 글자라도 남겨보려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느낌은 기시감이었다.

작품의 배경 설정에 어디선가 많이 본 것들을 섞어놓은 느낌이 강했다.

지표면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 그 행성에 있는 막강한 토착 생물과 희소한 자원, 지하에 굴을 파고 숨어서 활동하는 반란군은 누가 보더라도 '듄'의 설정에서 따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명확한 신분 계급 사회와 이로 인한 차별, 지배 계층은 높은 곳에 있는 화려한 도시에 살고 아래에 있는 하층민들은 그곳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노동으로 부려지며 언젠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동경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 어쩌다 가끔 제비뽑기나 격투 대회를 통해 그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정은 '알리타'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아예 창의적인 새로운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기에 설정 자체가 다른 작품과 비슷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개에 있어서도 예측 가능성이 높다면 이는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싸우면서 "쳇! 정말 약해 빠졌군." 따위의 대사를 내뱉는 적들은 지나친 식상함을 불러왔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의 모습을 한 지배계층이 사실 인간을 먹이로 삼아 영생을 꾀하는 다른 외계 종족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작품의 분위기도 꽤 달라지고 몰입도도 좋아졌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해성이 싸움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데 이 부분이 마치 옛날 소년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름 재미있었다.

SF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마법사도 나오고 외계 생물체도 마치 판타지에 나올법한 괴물의 형태여서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다.

"우린 자유롭지 못한 이 세상을 다시 바로 잡으려는 거예요.

스스로 결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나요? 생각해 봐요.

당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 말이에요."

(pg 179)

자라온 배경과 삶의 궤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유'라는 가치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는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매력적이었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책을 덮은 뒤에는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느낌이 들게 끝이 난다.

이제 모든 인물들이 시작점에 선 듯하고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자는 더 큰 야망을 품고 있다.

배경이나 심정 묘사가 거의 없고 사건 위주의 서술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라 하니 후속작에서는 이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펼쳐지리라 생각한다.

작가가 본래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영상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안고 집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이 작품이 영상화의 기회를 만날 것 같다는 기대는 들지 않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대사 부분은 꼭 전문 작가의 손을 거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요즘 책 답지 않게 오타나 비문이 꽤 많은 편이므로 다음 판본이 나온다면 오탈자 검수를 보다 꼼꼼하게 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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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사의 사랑
이순원 지음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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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을 만났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인 '박제사'가 등장하는 것부터 신선하다.

작품의 주인공인 박인수는 두 자녀를 둔 남성으로 한 동물연구소에서 동물 사체를 박제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평소와는 달리 새벽에 집에 가게 되었는데 아내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했고 두 줄이 떴다는 걸 알게 된다.

정관 수술을 받은 본인의 아이일 리 없어 아내를 다그쳤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돌연 자살해버린다.

대체 어떤 사내이길래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그 남자의 비밀을 지키려 했을까를 절박하게 알고 싶었던 박인수는 아내의 핸드폰에 남겨진 문자를 토대로 나름의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평생에 없었던 한 경주마의 박제 의뢰를 받는데, 그 말을 너무도 아꼈던 말의 주인이 자신이 조각을 한 경험이 있으니 박제를 돕고 싶다며 박인수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박인수가 아내의 죽음에 담긴 비밀을 밝혀내면서 평생의 걸작이 될 말 박제를 만드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수인...

당신과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나는 꼭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 오늘의 일을 돌려줄 것이다.

(pg 17)

굳이 생물학적인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남성에게 있어서 자신의 배우자가 타인의 아이를 밴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박인수는 그 결과 배우자의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할 길도 없어 오히려 아버지인 자신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분노에 찬 박인수는 아내가 남긴 흔적을 뒤쫓지만 그 흔적에서 오히려 아내의 힘들었던 삶의 모습들을 찾아내면서 생전에 아내의 상처를 더 보듬어주지 못했던 박인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아내를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다.

배신의 분노와 안타까움과 연민이 함께 남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불쌍하다가도 분노가 치밀고, 용서 못 할 배신감이 치밀다가도

다시 한없이 불쌍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붙잡고 펑펑 울고 싶을 만큼 마음이 여리고 아픈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단호한 부분이 있었다.

(pg 71)

독특한 점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건 해결 못지않게 말 박제를 만드는 일도 꽤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처음 가죽을 벗길 때부터 최종 도색에 이르기까지 박제의 전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만드는 것이라는 게 잘 느껴졌다.

아내의 죽음을 밝혀내고자 했던 조사로 점차 아내의 삶을 알게 되었듯, 말의 죽음을 기리려던 말 박제는 말이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내게 되었다.

작품 뒤 해설에서도 아내의 삶과 말 박제가 동일한 선상에서 다뤄지고 있음을 짚어주고 있다.

말을 박제하려면 살아 있을 때 말의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진상에 접근하는 일은

아내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pg 308-309, 작품 해설 중)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리얼리티를 잘 살리고 있어서 형사도 아닌 박인수가 미스터리를 직접 해결하는 전개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경찰의 수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나름 반전도 있는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도입에서 분노감에 휩싸여 복수를 다짐했던 박인수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야 모든 전말을 알게 되지만 그때 이미 복수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허망해진 가슴을 안고 다시 박제사의 삶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박인수의 마음에 가을이 빈 들판처럼 유독 허망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였다.

(pg 299)

추리소설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피비린내 나는 살인 현장이나 냉철한 탐정 같은 캐릭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읽는 동안 굉장히 잔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날씨와 환경적인 묘사도 풍부하고 박인수의 내면 묘사도 심경 변화에 충실하게 잘 서술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읽은 후 여운도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일본 느낌 물씬 풍기는 천편일률적인 추리소설들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면 한국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본 작품이 꽤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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