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 잘 살려고 애쓸수록 우울해지는 세상에서 사는 법
고태희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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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없나 전자도서관을 뒤지던 중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읽게 된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사실 '힘내'라는 말을 듣고 진짜 힘이 났던 적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차 조심하라고 하는 잔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들 하기 싫어서 안 할까.

저자는 이러한 말이 진짜 싫을 수밖에 없었던 우울증 환자다.

정확한 병명은 '2형 양극성 정동장애'로 흔히 조울증이라 불리는데 우울증이 더 깊어진 단계라 보면 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병을 완치한 경험이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겪고 있는 우울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나도 몇 년 전 우울증으로 친동생을 잃은 유가족인지라 관심이 갔다.

읽고 나서 어쩌면 생전의 그 녀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로랍시고 해봐도 도리어 화를 내기 일쑤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소외감 느끼는 것 같고..

저자 역시 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런 말들은 그 의도와 다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언을 실천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의지가 생기는 것은 일상생활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증상이 호전된 후의 이야기다.

어떤 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저자는 그저 곁에 있어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말이야 쉽지 사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늘 같이 붙어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친구라면 더욱이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 자체가 위선으로 들리기 쉽다.

저자 역시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케이스여서 걱정되지만 병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에게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정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병을 극복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꽤 들겠지만 당신 곁에 붙어 있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였다.

기간이 길지 않다면 그럭저럭 위로하며 지나갈 수 있겠지만 병세가 쉽게 좋아지지 않고 장기화되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지치게 마련이다.

솔직히 '그럼 뭐 어쩌라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내 동생 역시 중학생일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으니 근 15년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간 케이스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적잖이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다.

홀로 부산에 내려가겠다며 가족들을 떠나서 살았으니 강제로 병원을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을 억지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끌고 올 수도 없었다.

정신적인 문제이니 병을 불러오는 원인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피플 플리저(people pleaser)로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아왔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겪은 왕따 경험, 가스라이팅 고수였던 전 직장 대표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나는 소속되고 싶다'에서 피플 플리저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정신 질환을 앓기 쉽다고 했었다.

저자 역시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타인의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면 심하게 좌절하는 등 전형적인 피플 플리저의 모습이 책 곳곳에 보이는데 이것이 발병에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동생 역시 '독립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특정 나이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주입받고 자라서 그런지 나이 먹고 부모님한테 신세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었다.

(그래봐야 떠날 때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사실 좀 더 기대도 될 나이긴 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옳은 교육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항상 너의 뒤에 있을 테니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고 살려무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나는 동생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서 동생이 겪은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나도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간 저자의 병세도 현재진행형이니만큼 책에 뭔가 끝맺음이 있지는 않다.

다만 우울증을 겪는 환자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 형태를 보일 수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 보면 되겠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저자를 보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증세가 꽤 호전된 후에 쓴 글이겠지만 아래와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물론 저자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호의를 곡해해서는 안 된다.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작은 격려라도 건네받았다면 그들의 호의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기분을 망칠 각오를 하고 곁에 온 그들의 용기를 이해해야 한다. - 중략 -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어째 신년부터 정신질환 관련 책을 연달아 읽은 셈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잃은 후 환자가 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스스로가 자살자 유족으로서 우울함에 빠져들지 않고 있는지 스스로 체크해 보기 위함이었다.

읽으면서 저자보다는 저자의 남편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되는 걸 보니 다행히 난 우울증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면 생전의 그 녀석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책을 녀석이 죽기 전에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녀석을 대할 수 있었을까.

설령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15년간 녀석의 들쑥날쑥한 병세에 지쳐 있었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어차피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책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저자는 이런 상실감을 남겨두고 떠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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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속되고 싶다
호란 량 지음, 박은영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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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자 대만계 영국인인 정신의학과 의사가 집필한 책.

굳이 저자의 배경을 언급한 이유는 책 내용 속에 그녀가 의사로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저자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사례들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제목답게 책 내용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속감'이라는 감정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부족할 경우 각종 정신질환에 노출되기 쉽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특히 저자가 아동 정신의학 전공이라서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미성년자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례에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에게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네 가지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중 첫 번째인 '공허'의 감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유대감이 부족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당연히 아이일 때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이 감정을 크게 느낄수록 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나는 아동 정신과 의사로서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수용과 지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최대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수용과 지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신 건강 백신이나 마찬가지이며,

다른 백신처럼 아이를 완벽히 보호해 주지는 않아도 꼭 필요하다.

자신감을 지닌 행복한 어린이는 자기 인식과 참을성, 유머로 무장해서

어지간한 난관은 극복해 낼 수 있다.

(pg 65)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학교로 가게 되고 이때부터는 '부적응' 문제가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이후에 등장하는 원인인 '비위 맞추기'와 '외로움' 역시 '부적응'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통증이나 어지러움 등 신체적인 이상이 있어 여러 검사를 해봤는데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정신적인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누구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 거절하는 용기가 있어야 옳은 것을 찾는다.

우리가 찾는 것은, 단지 우리를 참고 받아들이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는 곳이다.

(pg 106)

저자는 개인에게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입장뿐 아니라 다 큰 성인이 자신을 돌봄에 있어서도 어떤 것들이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특히 자기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다른 이의 기분을 맞추는 사람(피플 플리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웰빙의 증진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당신이 하는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pg 145)

그리고 사람에 지쳐 모든 관계를 끊고 살겠다고 결심한다 해도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혼자 산에 들어가 살 작정이 아니라면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연인들도 사회적 관계가 아예 없이 100% 자급자족으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인간의 본능인 '우리'와 '저들'을 나누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타인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타인을 더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제정신'과 '정신 이상',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누는 일이 너무 잦고 '우리'로 묶이는 일은 너무 없다.

사실은 '속함'과 '속하지 않음' 역시 하나의 시각일 뿐이며,

사회가 특정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깎여 나가고 변화될 수 있다.

- 중략 -

대부분 태도를 바꾸는 일에는 별다른 대가가 필요치 않다.

그저 다른 관점이 필요할 뿐이다.

(pg 218)

하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사회 그 자체를 바꾸는 것 이상의 효과는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개인들이 갖는 정신질환의 상당수가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하거나, 혹은 이 때문에 더 악화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부색이 달라서, 여성이어서, 이민자여서, 경제력이 부족해서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위에 열거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정신질환의 발견 자체가 늦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발견하더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더라는 점이다.

사회는 이들을 잊었다. - 중략 -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딸, 아들, 자매, 형제이며, 이들의 존재에서 눈을 돌리는 게

더 편하다고 해도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이들 존재의 불행은 우리 사회의 누적된 실패의 결과다.

내가 이처럼 사회의 가장 힘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렇게 해야 우리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포용과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pg 245)

저자는 자신이 이민자와 여성으로서 겪어온 수많은 차별 사례를 열거하며 이러한 것들이 아직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면 정신 질환의 사회적 감소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야 인종으로 인한 정신 질환 발병 비율을 측정하긴 어렵겠지만, 사회적 계층이나 성별, 사는 지역, 주거 형태에 따른 비율을 연구해 보면 유의미한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회적으로 부유하거나 유명한 연예인들도 우울증을 겪지만 비율로 보면 미취업 청년들이나 은퇴한 노인 빈곤층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의사가 저술한 책이어서 보다 학술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학적인 내용은 사례 위주로만 등장하고 생각보다 PC(정치적 올바름)적인 내용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고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저자의 영국 사회에 대한 분노가 상당한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국가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사회 혼란이 심화되고 있기에 저자의 업무 분야인 사회 복지나 보건 제도 같은 것들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런 모양이다.

때문에 단순한 심리학이나 정신 질환 관련 책이라 생각하고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자체는 충분한 의미가 있고,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봐 온 바에 따르면, 최선의 해법은 의료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지지해 줄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pg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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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또를 이긴 대단한 다섯 자매 암산이 즐거운 전래동화 시리즈 5
정미영 지음, 고아라 그림 / 라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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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재밌어하고 읽어주는 부모도 마음이 흡족한 '암산이 즐거운 전래동화'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앞 절반 부분에는 전래동화가 있고 뒤 절반에는 난이도에 따른 수리 문제와 문해력 향상을 위한 단어 공부 콘텐츠가 실려 있어서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아이와 함께 할 것이 많은 시리즈다.

보통 전래동화에서 누군가를 무찌르는 이야기는 대체로 남성이 주인공이기 쉬운데 이번 작품은 자매가 주인공이라 하니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호랑이 사또를 이겼다고 하니 아이도 읽기 전부터 흥미를 가졌다.

딸 부잣집 이야기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여행을 떠나며 만나게 되는 의자매 사이였다.

자매들이 마치 엑스맨처럼 특수능력들이 있는데 능력대로 이름을 지어놔서 이름이 굉장히 재미있다.

천리안을 가진 첫째는 '천리보니', 괴력의 장사 둘째는 '가뿐번쩍', 백발백중의 명사수 셋째는 '듣고쏘니', 입에서 태풍이 나오는 넷째는 '태풍입김', 머리를 묶으면 주변을 꽁꽁 얼리는 막내 '얼음땡땡'까지 자매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아이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사또로 둔갑한 호랑이를 만나게 되고 이를 다섯 자매의 각기 다른 능력을 활용해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후반에 등장하는 수리 문제들은 '집합', '그래프' 같이 초등학교 정도는 가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이 많아서 6살인 우리 딸에게는 조금 어려운 수준이지만 단어 퀴즈 같은 것들은 이야기를 잘 읽었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서 이런 것들 위주로 먼저 풀어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재밌기 때문에 이야기만 즐겨도 충분한 가치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전래동화를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래동화에 성차별 요소가 많아서 읽어줄 때 주의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요소가 없어서 더 좋았다.

이 책이 다섯 번째 이야기인데 앞으로도 계속 나와서 재미와 교육적 요소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시리즈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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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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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벌써 네 번째 읽은 가키야 미우의 작품.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 그만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 읽을까 말까 망설였었는데 표지에 보이는 토끼가 너무 귀여워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본인이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작품의 화자가 중년 여성일 경우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지는데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중년의 여성이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저자가 고령화, 저출산, 지방소멸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내는데 이 작품 역시 고령화 시대의 중년 여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처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 이야기다.

오십 대 중반, 본인도 젊은 시절처럼 몸이 날렵하지 않은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4층에서 평생을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시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키야 미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편이라는 존재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 값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는 며느리인 모토코의 몫이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긴 하지만 온갖 쓰레기와 사용한 흔적도 없는 잡동사니들이 넘쳐나는 시어머니 집을 보면서 오랜 시간 투병하며 스스로의 죽음 이후를 준비하고 깔끔하게 떠난 친정어머니를 떠올린다.

작품의 중반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짜증을 참아내며 어떻게든 짐을 줄여보려 애를 쓰는 상황이 이어진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pg 264-265)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시어머니의 이웃들을 만나게 되고 시어머니가 살아온 흔적들을 되짚어 본다.

타인에게 피해가 되기 싫어 깔끔하게 떠난 친정어머니는 그랬던 만큼 가족들에게도 속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래서 떠난 뒤 추억할 만한 물건도, 기억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시어머니는 오지랖이 넓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했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토코는 성향이 180도 달랐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삶을 보며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데 똑같은 면을 보더라도 누구는 장점으로, 누구는 단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먼저 떠나간 두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제각각이네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건 남들과 비교하는 걸 싫어하셨지요.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pg 308)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는 과정은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이별은 미리 준비하기 어렵지만 물건과의 이별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떠난 뒤 남은 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평소에 물건과의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친할머니가 작품 속 시어머니처럼 맥시멀리스트셨고, 외할머니는 미니멀리스트셔서 작품 속 모토코에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직 두 분 다 살아 계시긴 하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계셔서 미리 짐 정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그러니 조만간 엄마에게도 이 작품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 엄마는 어떻게 느끼게 될지 궁금해진다.

300쪽이 살짝 넘는 분량인데 책이 작고 폰트가 큰데다 문장의 가독성이 좋아서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반전이 있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일들과 대화 속에 잔잔한 감동이 숨어있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아직 중년도 아니고 여성이었던 적도 없는데 희한하게도 공감이 잘 되었다.

그러니 중년 여성이라면 더욱 공감이 잘 될 것이다.

나도 읽고 나서 꼭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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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구멍만 겨누는 가짜 명궁 꾀돌이 암산이 즐거운 전래동화 시리즈 4
정미영 지음, 고아라 그림 / 라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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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땅속 괴물을 물리친 용감한 막둥이'라는 책으로 먼저 접했던 '암산이 즐거운 전래동화' 시리즈의 최신작이 나와 바로 집에 들이게 되었다.

아이가 전래동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용된 단어의 수준도 좋고 이야기가 끝난 후 아이와 함께 수리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부모 입장에서도 아주 마음에 들었던 시리즈다.

전래동화라고는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최근에도 이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는걸 보면 작가의 창작 동화인 모양이다.

일단 제목부터 너무 재밌다.

아이들이 제목만 읽어도 책장을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밤마다 부엉이가 찾아와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는 공주가 있어 왕이 이 부엉이를 잡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소문을 들은 꾀돌이는 무작정 활과 화살을 사들고 궁궐로 향한다.

한 번도 활을 쏴 본 적이 없었던 꾀돌이는 길에 떨어져 있던 참새의 똥구멍에 화살을 꽂아 궁궐 안으로 던진 후 자신이 쏜 참새를 찾아달라고 말하자 궁궐 경비대가 깜짝 놀라며 왕에게 꾀돌이를 데려간다.

활은 쏘지 못하지만 이름처럼 머리가 좋은 꾀돌이는 꾀를 내어 부엉이 역시 똥구멍에 화살을 꽂아 잡아내고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나라에 엄청난 호랑이가 나타나 왕이 꾀돌이에게 이 호랑이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번에야말로 죽겠구나 하며 길을 떠난 꾀돌이가 우여곡절 끝에 호랑이까지 똥꾸멍에 화살을 꽂아 잡아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쌍하게 똥구멍에 화살이 박혀 죽는 동물이 꽤 많이 등장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읽는 내내 아이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름처럼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꾀돌이의 모습에 아이들도 '호랑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고 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뒤에 나오는 수리 문제들은 난이도가 꽤 있어서 6세인 우리 아이는 잘 풀어내지 못하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앞부분만 읽어도 아이가 굉장히 좋아해서 책을 읽어주는 부모 마음도 좋았다.

여전히 그림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용이 좋아서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계속해서 아이와 함께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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