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벌써 네 번째 읽은 가키야 미우의 작품.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 그만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 읽을까 말까 망설였었는데 표지에 보이는 토끼가 너무 귀여워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 본인이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작품의 화자가 중년 여성일 경우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지는데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중년의 여성이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저자가 고령화, 저출산, 지방소멸 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내는데 이 작품 역시 고령화 시대의 중년 여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처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 이야기다.

오십 대 중반, 본인도 젊은 시절처럼 몸이 날렵하지 않은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4층에서 평생을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시어머니의 유품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키야 미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편이라는 존재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 값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는 며느리인 모토코의 몫이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긴 하지만 온갖 쓰레기와 사용한 흔적도 없는 잡동사니들이 넘쳐나는 시어머니 집을 보면서 오랜 시간 투병하며 스스로의 죽음 이후를 준비하고 깔끔하게 떠난 친정어머니를 떠올린다.

작품의 중반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짜증을 참아내며 어떻게든 짐을 줄여보려 애를 쓰는 상황이 이어진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pg 264-265)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시어머니의 이웃들을 만나게 되고 시어머니가 살아온 흔적들을 되짚어 본다.

타인에게 피해가 되기 싫어 깔끔하게 떠난 친정어머니는 그랬던 만큼 가족들에게도 속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래서 떠난 뒤 추억할 만한 물건도, 기억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시어머니는 오지랖이 넓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했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토코는 성향이 180도 달랐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삶을 보며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데 똑같은 면을 보더라도 누구는 장점으로, 누구는 단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먼저 떠나간 두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제각각이네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건 남들과 비교하는 걸 싫어하셨지요.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pg 308)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는 과정은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이별은 미리 준비하기 어렵지만 물건과의 이별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떠난 뒤 남은 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평소에 물건과의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친할머니가 작품 속 시어머니처럼 맥시멀리스트셨고, 외할머니는 미니멀리스트셔서 작품 속 모토코에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직 두 분 다 살아 계시긴 하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계셔서 미리 짐 정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그러니 조만간 엄마에게도 이 작품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 엄마는 어떻게 느끼게 될지 궁금해진다.

300쪽이 살짝 넘는 분량인데 책이 작고 폰트가 큰데다 문장의 가독성이 좋아서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반전이 있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일들과 대화 속에 잔잔한 감동이 숨어있는 작품이었다.

역시나 아직 중년도 아니고 여성이었던 적도 없는데 희한하게도 공감이 잘 되었다.

그러니 중년 여성이라면 더욱 공감이 잘 될 것이다.

나도 읽고 나서 꼭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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