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1학년을 부탁해 - 개정판 랄랄라 학교생활 1
이서윤 지음, 윤유리 그림 / 풀빛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이야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들게 마련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라면 그 체감이 몇 배는 빠른 느낌이다.

나 자신의 늙는 속도도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는 속도를 지켜보는 체감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갓난쟁이를 안고 '이걸 언제 키우나' 했었는데 벌써 1년 후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아직 취학 전인데 키가 120센티가 넘어가니 그야말로 허우대는 멀쩡한데 아직도 천둥벌거숭이마냥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학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숙지하면 좋을 내용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동화로 풀어낸 책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부모 입장에서야 이런 책은 아이에게 일부러라도 읽게 하고 싶은데 문제는 아이도 흥미를 느끼느냐가 아닐까 싶다.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아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니만큼 영유아 동화책보다는 글씨가 다소 많은 편이지만 서술이 매우 친절하고 동화의 내용도 상당히 재밌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잘 수록된 느낌이었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새로운 일정에도 적응해야 하는 등 아이에게도 학교란 굉장히 낯선 곳이기 마련인데 아이들이 걱정할 부분들을 미리 읽어봄으로써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 좋을 것 같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스스로 생각해서 적어본다거나, 자신만의 학교 가는 길 약도를 그려보는 등의 활동들도 마련되어 있어서 읽는 동안 아이의 집중력을 유지하기에도 좋았다.

후반부에는 나 같은 초보 부모를 위해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해주면 좋을만한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이 취학 전에 구구단을 떼고 들어갔던지라 수학을 어디까지 해줘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단순한 덧셈, 뺄셈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아이랑 산수 연습하다 혈압 터질 뻔했는데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어 보여서 스스로를 안심시키기로 했다.)

엄청 잘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학교 다닐 때 정도만 해주면 좋겠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것도 욕심이구나 싶을 때가 많다.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고 아이들은 1년 사이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만큼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 하지만 워낙 교육열이 특이하게 높은 동네에 살다 보니 남들처럼 이것저것 시켜주지 못하는 형편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부모들의 마음이 다 비슷비슷하게 마련인지 아이와 부모 모두 차분하게 취학 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나와서 개인적으로 반가운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타고라스 생각 수업 - 수학자는 어떻게 발견하고 분석하고 활용할까
이광연 지음 / 유노라이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학은 학창 시절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힌 과목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가 끝나자마자 수학에 대한 관심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라는 생각을 갖게 된 요즘, 그 과학 이론들이 모두 수학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수학 역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어났다.

그러던 와중에 쉬워 보이는(?) 수학 관련 교양서가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다.

나도 그렇지만 '수학'이라고 하면 일단 긴장부터 하고 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생을 수포자로 살아온 나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서 나오는 최소공약수나 최소공배수 정도의 개념은 알 것이라 생각하고 서술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다행한 건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만 알고 있으면 내용을 따라가는데 문제가 없다. (즉, 어떤 수의 최소공약수나 최소공배수를 직접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책을 읽을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저자는 일반 대중들이 수학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가지고 있을 의문인 '대체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서 시작하고 있다.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요약하면 '수학적 사고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그래프나 입체도형의 면적과 부피를 구해야 할 일은 거의 없겠으나 자신의 생각이나 요점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할 일은 굉장히 많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일에 수학적 사고방식이 굉장히 유용하다는 것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구글의 입사 시험에 등장해 유명해진 '페르미 추정' 같은 사고 연습은 막연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적 논리 전개 방식으로 실제 사회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논리력을 키우려면 수학에서는 하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나머지를 연결해 알아가는 '생각의 끈'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연결된 끈을 찾을 수 있는 지헤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학을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pg 96)

또한 수학은 세상을 보다 단순하게 만들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형시킨다.

복잡한 세상을 '카테고리화',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인간의 특성이 수학을 통해 비약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예시들은 지금 인간의 눈으로는 '진짜 그랬을까?' 싶지만 실제 수천 년 전 인류에게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인류가 '닭 두 마리'의 2와 '이틀'의 2가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수천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pg 168)

물론 저자는 이런 실제적인 유용함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자연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수학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글로벌하게 통용될 수 있는 언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문이 발전함에 있어서 특히나 수학은 숫자와 수식으로 증명되면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라는 것이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우주의 진리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일반적인 독자 입장에서는 '수학'이라는 분야는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매년 30만 건에 달하는 수많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런 발견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는 것도 힘들 정도라 한다.

저자는 17세기까지도 '0'의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을 예로 들며, 수학적인 발견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처음 발표했을 때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식이 되었듯,

현재 매우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수학도

미래에는 상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류의 발전을 읽고 나아가려면 수학적 사고가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pg 176)

이 책을 읽고 싶어 할 사람들 중에는 어떻게 하면 본인이나 자식이 수학을 잘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서 읽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여러 방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방법은 아래의 방법이었다.

결국 수학 역시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무슨 답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이해력', 즉 텍스트나 수식으로 된 문장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한 가지 방법 중에 "책을 읽으세요"라는 답을 줄 수 있겠네요.

수학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은 '이해력'을 기르는 것인데,

독서야말로 이해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스스로 수학에 관련된 책을 읽고 수학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수학 공부는 자연스럽고 흥미로워질 것입니다.

(pg 265)

여하간 흥미로운 예시들도 많고 서술도 굉장히 친절한 편이어서 수학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읽은 책이었다.

재미도 있었고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수학 공부를 하고 싶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수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 자신이 수학과 얼마나 친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인데, 무작정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이라면 읽은 후 제법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수학자의 생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이용할 수도 없던 어떤 대상을 눈에 보이게끔 만듭니다.

그로 인하여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pg 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몇 권 접한 바 있는 서가명강 시리즈 중 하나로 저자의 책은 '에리히 프롬' 이후 두 번째로 읽게 되었는데 발매 시기로 보면 이 책이 더 먼저 나왔다.

이번에는 흔히 '염세주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이전에 읽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해설서가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느낌이었던 터라 그의 사상을 쉽게 다시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우리 인생이 고통이라는 고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작점은 우리가 가진 욕망이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욕망에는 끝이 없고, 욕망의 충족으로 얻는 행복은 찰나에 사라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모든 욕구가 신속하게 충족된다고 해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권태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우리가 욕망이라는 것의 지배를 받는 한 우리의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욕망이 신속하게 충족되는 상태가 행복이고

늦게 충족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상태가 고통이다.

욕망과 충족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짧을수록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행복감은 증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욕망은 즉각적으로 채워지지 않고,

채워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고와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욕망이 즉각적으로 충족되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극히 짧은 순간에 그친다. 행복은 욕망이 충족되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본다.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은총'으로 보았으며, 그 상태가 진정한 자유의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삶을 '관조'하는 자세이며 이 활동의 연장선에 인간이 추구하는 각종 예술 활동들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전에 읽었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정리를 빌면, 세계를 구성하는 '의지'는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반면 그 의지가 구현된 '표상'들은 경험할 수 있다.

예술 활동은 그 표상들 속에서 '의지', 즉 사물의 참된 모습(이데아)를 찾아가는 활동이라 정의한 것이다.

모든 욕망을 부정한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기쁨도 없이

결핍뿐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내적인 기쁨 속에서 산다.

이러한 기쁨은 바다와 같이 고요한 부동의 평화와 안식

그리고 깊은 평정과 숭고한 명랑함이 지배하는 상태다.

이처럼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삶이 고통 그 자체이며, 그가 말한 진정한 자유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을 이어가기 위한 욕망에서조차도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결국 죽음 자체도 긍정적인 것으로 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철학이 '염세주의'라는 이름표를 부여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쇼펜하우어가 '이따위 세상, 다 같이 죽어버리자'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현재 느끼는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것이다.

이때 그가 절망하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이다.

따라서 자살하는 자는 자신의 생명을 끊을 뿐이지,

살려는 의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살려는 의지를 강하게 긍정하고 있으며,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상황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여하간 그의 철학에서 주장하는 궁극적인 자유의 상태는 모든 욕망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고 그 욕망의 큰 부분이 식욕과 성욕 등 생존에 필요한 욕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저자는 쇼펜하우어가 불교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궁극의 자유를 뜻하는 단어가 '열반'이라는 뜻을 가진 'Nirvana'로 표현되어 있고, 각 개체의 삶과 죽음은 '온 우주의 의지'라는 시각에서 볼 때 그저 순환하는 미세한 한 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시각 등이 불교의 윤회, 해탈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최근에 읽은 노장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노장사상에서의 '도'가 우주를 구성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비슷한 느낌이고, 욕심을 버리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등 추구하는 삶에 대한 모습도 노장사상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지 않나 싶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노장사상처럼 인간이 규정한 모든 도덕적 관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모든 인간에게 동정심이 있고, 이 동정심이야말로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인 인간이 선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노장사상은 근본적인 인간관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불교사상과 노장사상이라는 동양 철학의 큰 두 줄기와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의 사상에 유사한 부분이 이토록 많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 사는 세상은 다 비슷비슷하고, 이 때문에 인생을 논하는 철학 역시 공통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서가명강 시리즈들이 다 그렇듯, 길지 않은 분량으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이 시리즈만큼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부담 없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빠가 돌아왔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영하의 단편집으로 처음 나온 지는 꽤 된 작품인데 몇 년 전 살짝 개정되어 나온 버전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함한 여덟 작품을 수록한 책으로 각각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다 읽는다 해도 짧은 장편 한 권 정도의 분량이라 읽는 부담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그 안에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상당히 인상적인 삶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각각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뭘까를 찾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쉽게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절대 원치 않았던 만남'이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쪽으로 사상이 트여 불쑥 찾아온 대학 동창, 이삿날 자신의 짐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안하무인의 이삿짐센터 직원, 집 나갔던 오빠가 불쑥 데리고 들어온 모르는 여자, 남 몰래 마음에 품었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사별을 겪은 친구, 원나잇이나 하려고 했는데 사랑한다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여자, 1년의 마지막 날 밤 업무 때문에 찾아온 남편의 직장 상사, 수영장에서 만난 이성의 중학교 동창, 결혼 전 친구들 모두와 아무렇게나 관계를 가졌던 한 여자 동창생에 이르기까지...

정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떻게 만나도 그저 최악이라는 말만 나오게 될 만남을 주제로 여덟 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살면서 겪기 쉽지 않은 형태의 삶들이지만 그런데도 묘하게 공감이 되면서 불편해진다.

제발 저런 상황은 겪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불쾌한(?) 사연들이 이어지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작가의 맛깔나는 문장들이 읽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 작품인 '보물선'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 '돈에 미친 사람'과 '사상에 미친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돈에 미친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자각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찬찬히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문제는 재만도 그들과 전적으로 같은 종자라는 데 있었다.

'보물선' 중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마치 그 옛날 채만식의 '치숙'을 보는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본 가족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만 유독 화자가 어린 소녀라 그런지 문체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읽는 맛이 좋았다.

스토리 자체는 평이한 느낌이지만 문체 덕분에 인상에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

나는? 엄지공주다. 나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누구도 나 따위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내가 '어디?'라고 묻지 않고 '뭐?'라고 물은 이유는 '

너도 가자'라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도대체 '너도 가자' 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라는 주격조사와 '하자'형 어미는 우리집에서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사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이어지는 '너의 의미'에서는 3류 감독이면서 지위를 이용해 어린 여자들이나 꼬셔 잠이나 자려는 주인공에게 진지하게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여성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책에서 가장 블랙코미디스러운 맛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경험은 많지만 사랑은 두려워하는 중년 남성의 찌질한 감성이 잘 살아 있다.

나는 사랑이 호르몬의 이상분비 때문에 빚어지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다.

사랑이,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멜로영화에서 그렇듯이,

애들 코 묻은 돈 우려낼 때나 써먹는, 일종의 청소년용품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내가 모르는 것은 바로 내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저 여자다.

'너의 의미' 중

언급하지 않은 다른 작품들도 모두 충분히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후미에 개정판을 내게 된 작가의 소감도 있어서 뭔가 작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작가의 바람처럼 꽤나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은 작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작가에게로 와서 소설이 된다.

그렇게 나온 소설을 읽고 사람들은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개정판을 내며'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자의 도덕경 해석본은 읽어본 적이 있어서 노장사상의 다음 타자(?)인 장자의 저술이 어떤 느낌인지도 읽어보고 싶었다.

찾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가장 최근에 발간되었기도 하고 장자의 원문과 역자의 해설이 같이 실려있다는 소개에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받아들면 일단 그 묵직함에 한번 놀라게 된다.

한자 원문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읽는 사람에게는 물론 힘든 여정이겠으나, 나처럼 해석된 부분과 역자의 해설만 읽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이해도 빠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장자가 말하는 '도'의 개념이 원래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동양 고전은 본래 금방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비유도 많고 말장난 같은 부분도 많아서 한참 읽은 것 같은데 그동안 뭐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아 진도가 팍팍 나가는 느낌을 주는 책은 분명 아닐 것이다.

8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내편, 외편, 잡편을 합쳐 총 33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 장자가 직접 썼다고 추정되는 것은 내편에 수록된 7편 정도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들의 손길이 닿았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 이해되는 부분이 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내편을 읽고 외편과 잡편으로 넘어가서인지, 이해를 돕기 위한 후학들의 서술이 덧붙여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편에서 언급한 내용이 외편과 잡편에 부연하는 식으로 구성된 글들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긴 내용이지만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도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자는 틀렸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에 대한 비중이 생각보다 큰데, 인의예지라는 인간 사회의 형식과 규칙을 중시했던 공자의 사상이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지양하고자 했던 노장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한다.

장자는 공자가 인간이 설정한 관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말한다.

백조는 날마다 씻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물들이지 않아도 검소.

흑백의 본질은 [좋다 나쁘다] 변론하기에는 부족하고,

명예의 과시는 널리 [과시]하기에는 부족하오.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서로 더불어 육지에 있으면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한 것이오!

(pg 345)

위 구절은 노자가 공자에게 해주는 말 중 하나인데, 공자의 인의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서로 위해주는 물고기처럼 살게 만드는 요인인 반면 본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넓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처럼 서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조차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삶이라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천하 사람들은 다 [자신을 희생하여] 목숨 바친다.

저들이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인의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군자라고 말하고,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재물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소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은 한 가지인데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다.

만일 자신의 행명을 헤치고 본성을 훼손하는 것이면 도척도 백이일 뿐이니

또 어찌하여 그 사이에서 군자와 소인을 [차별하여] 구분할 것인가!

(pg 220)

잡편에 실린 한 글에서는 심지어 한 도적이 공자에게 '나는 대놓고 도적질을 하지만 너는 사람들을 속여 도적질을 하는 것이니 네가 더 나쁘다'라며 호통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 그대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닦아서 천하의 여론을 장악하면서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고, 넓은 도포에 얇은 띠를 두르고

교묘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천하 군주들을 미혹되게 하여 부귀를 구하려고 하니,

도둑질이 그대보다 큰 것이 없는데,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대를 일러 도구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pg 692-693)

이처럼 공자의 사상이 인간이 만들어 낸 말뿐인 가치들을 중시하는 것이라 생각한 장자는 인위적인 도덕의 구분이나 선악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저절로 그러하듯한 경지를 본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이것을 '도'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따르게 되면 위태로울 따름이다. - 중략 -

선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하지 않고,

악한 일을 행하여 형벌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

중도의 경지를 따라 [그것을] 근본원리로 삼으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pg 101)

특이하게도 '도'를 따르는 것이 '타고난 수명 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문장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장자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전국시대로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다 죽어 나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장자는 좋은 나무일수록 목재로 베어지기 쉽듯 사람도 너무 유용하게 쓰이려고 노력하면 단명하게 된다고 말한다.

유능한 왕이나 황제 역시 자신의 유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쉬워지므로 장자가 생각한 가장 좋은 군주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현명한 왕의 다스림이란 공적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하고,

가르침이 만물에 베풀어지더라도 백성들이 믿기지 않도록 하며,

[공적이] 있는데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만물로 하여금 저마다 기뻐하게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데에 서서, [어떤 것도] 없는 데에서 노니는 것이다."

(pg 201)

'도'라는 것이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도'의 정체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도'란 그저 만물에 깃들어 있고 만물을 만물이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나도 '도'를 말로 표현했기 때문에 '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가르치거나 억지로 시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여 '자신'이라는 것마저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내면의 진정한 평화를 얻는 경지에 스스로 다다라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노닐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것이 도를 갖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덕에 좋은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고난] 본성과 목숨의 실정에 맡기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귀 밝은 것이란 그것이 남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듣는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눈 밝은 것이란 자신이 남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는 것일 뿐이다.

(pg 221)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가히 얻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오?"

[승이] 말했다.

"당신의 몸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도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소유한 것이오?"

[승이] 말했다.

"이는 천지가 형체를 맡긴 것입니다.

삶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조화를 맡긴 것입니다.

[타고난] 본성과 목숨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변화의] 허물을 맡긴 것입니다. - 중략 -

[도는] 천지의 굳센 양기이니, 또한 어떻게 얻어서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pg 503-504)

자연의 흐름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보니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가 노래를 부른 일화도 소개된다.

노래를 부르는 장자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지적하자 장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막 죽었을 때 내가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시원을 살펴보니 본래 삶이 없고, 단지 삶만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으며, 단지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도 없다네.

황홀한 사이에서 섞이고 변해서 삶이 있게 되었으며,

지금 또 변해서 죽음으로 간 것이니,

이것은 서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겪이라네.

그 사람이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안히 누워 쉬면서 잠들었는데,

내가 슬픈 곡소리를 따라서 곡을 한다면 스스로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쳤다네."

(pg 408-409)

자신의 장례를 치르려고 준비하는 제자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장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과 덧널로 생각하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생각하며,

별들을 주옥으로 생각하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할 것이니,

내 장례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 중략 -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터인데,

저쪽에서 빼앗아 이쪽에 주는 것이니 어찌 이리도 치우친 것인가!"

(pg 761-762)

솔직히 읽는 시간들이 아주 유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니었고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일독이라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각보다 크고, 처음에 이해 안 되는 부분을 그냥 넘어가다 보면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서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싶은 순간도 생겨서 뒤로 갈수록 탄력이 붙는 느낌이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나지만, 이 책은 오래 두고 생각날 때 조금씩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도 불안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무위와 자연을 외치는 장자의 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는 읽는 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장자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인간에서 너무 멀어졌다며 탄식하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노장사상이 갖는 '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의 본성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분명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