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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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는 학자지만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이 인기를 끌 시기가 마침 정신적으로 지금의 나를 형성하게 한 20대 시절이었다.

덕분에 그의 초기 저술들을 꽤 읽었던 기억도 나고 그 유명한 '국방부 불온서적'에 선정되기 전에 군대에서 그의 저작을 읽었던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읽고 나서 다음 휴가 때 집으로 반출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압수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하간 그의 이름은 어느새 40을 앞둔 나의 20대 시절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고, 유튜브를 보다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별 고민 없이 결제하게 되었다.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측면에서 그의 사상들은 이미 나온 책들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발간된 책들에서 주장했던 내용들을 식재료라는 아주 일상적인 주제들로 구분해 다시 풀어낸 것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미 그의 저작 대부분을 읽었다면 그리 신선할 것은 없는 내용이지만, 읽기에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책이라 그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장하준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첫 시작의 문을 여는 '마늘'이라는 식재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한국인을 정의할 단 한 가지의 식재료를 꼽으라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이 식재료를 통해 그는 경제학이 우리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역설한다.

경제학에는 많은 분파가 있고 각 분파마다 인간의 특성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주류 정치에 어떤 경제학 이론이 반영되는가가 바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의미다.

경제학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 중략 -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pg 33)

기존의 저작들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온 '사다리 걷어차기'에 관한 이야기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유 무역'이란 단어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 영화가 지금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스크린쿼터라는 제도도 영화 산업을 보호하던 나라라는 것을 떠올려봄직한 대목이다.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인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재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 시장 경제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 중략 -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테크놀로지, 국제 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 개인의 노력보다 -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의 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 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pg 140)

어떨 때는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기도 한다. 더 학술적인 용어를 동원하자면

'관념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학계, 국제 언론, 정책 싱크 탱크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 스스로 자유 무역이 자국에 좋은 것이라 생각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 중략 - 힘은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자기 이익에 만한다고 믿도록 만들기도 한다.

(pg 174)

기존 책들에서는 그리 강조되지 않았었던 편견에 대한 부분도 이번 책에서는 언급이 되고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코코넛'을 제배하는 지역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가 열대 지방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편견이었다.

언젠가 일하던 조직의 기관장을 모시고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그분도 대낮에 길에 누워 쉬는 사람들을 보고는 '저러니 경제 개발이 안되지' 하며 혀를 차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날씨에 냉방 시설도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 열심히 일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인 것 아닌가.(물론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사람이 죽어나가도 '하지만 생산성은 높았죠?'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설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pg 89)

높은 비율로 여성들이 담당하게 되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편견의 하나라 할 수 있다.

GDP에 무급 돌봄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데,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설명한다.

즉 여성 둘이 서로의 아이를 상대에게 돌보게 한 뒤 그 대가로 서로에게 같은 금액을 지불할 경우, 서로의 금전적인 이익이나 아이 한 명을 돌본다는 노동 투입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이 활동은 생산 활동으로 GDP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주로 여성이 담당해왔다고 여겨지는 돌봄 활동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혹여 급여가 지급된다 하더라도 돌봄 노동 종사자들의 임금이 낮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편견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레시피'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여기서 음식 이야기는 그저 운을 떼는 용도일 뿐이고 본문은 경제학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단순히 가벼운 소재에서 시작할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도 기존의 저작들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재미도 있는 편이다.(이때의 재미에는 '유머'로서의 재미도 포함된다.)

음식처럼 경제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편식하지 말고 여러 시각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는 충고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오랜만에 저자의 책을 읽었는데 역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주장이 사회적으로도 꽤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의 반향은 없는 것 같다.

주류경제학의 파워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봐야 무슨 변화가 있겠냐는 체념이 지배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때가 벌써 20년 전인데 정치권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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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줘! 아이스토리빌 53
김탄리 지음, 홍그림 그림 / 밝은미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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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을 기념해 나온 책인데 띠지에 보이듯 소파 방정환 선생의 작품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시 쓰는 공모전에서 초등 저학년 부분 수상작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방정환 선생의 '동생을 찾으러'라는 원작 소설을 모티브로 집필되었다고 한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잠깐 검색한 바로는 '누군가가 데려간 동생을 찾는 여정'이라는 소재만 차용했고 다른 부분들은 모두 재창조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특히 길이나 문체, 편집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맞게 쉽게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텍스트로 된 책에도 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읽어주고 싶어 선택한 책인데 글 양이 딱 적절한 것 같다.

물론 저학년용으로 나온 책이기 때문에 다른 페이지에는 표지와 동일한 톤의 예쁜 그림들도 많은 편이며 전체 중에서 텍스트가 가장 많은 부분이 대략 아랫부분 정도 된다고 보면 되겠다.

(pg 12-13)

'오빠는 나를 싫어해'라는 소제목에서 보이듯이 지훈이라는 아이가 동생을 다소 귀찮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빠가 학교에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가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내민 빵 한 조각에 홀라당 넘어가 어디론가 잡혀가고 만다.

게다가 거칠게 동생을 데려간 어른들 때문에 가사 상태에 빠져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버려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된다.

이 상태에서 과연 지훈이와 가족들은 어떻게 동생을 다시 찾게 될까?

어린아이들 책이지만 훌륭한 전개와 복선,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름의 반전까지 숨어 있어 마냥 어린이 책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글의 내용도 좋았지만 뭔가 따뜻해 보이는 그림의 감성도 글과 잘 어우러져서 좋았다.

아직 7세인 아이가 혼자서 읽기에는 다소 도전적인 책이지만 부모와 같이 읽는다면 아이의 독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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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 사람들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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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굉장히 재미나게 읽은 스릴러 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애비 멀린이라는 인질 협상가인데 특이하게도 어릴 적 사이비 종교가 벌인 학살극의 세 명뿐인 생존자 중 한 명이라는 설정이다.

다른 생존자 중 한 사람인 이든의 아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애비 멀린과 경찰들이 납치된 아이와 범인의 행방을 뒤쫓는 내용이다.

작품은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시각들이 교차하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나 '사이비 종교'다.

이든이 어릴 적 몸담았던 사이비 종교 단체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았던 공동체 역시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뒤늦게 그 집단을 탈출했다.

아들의 납치 역시 그 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공동체 이탈에 대한 복수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석연치 않은 부분에는 'SNS'라고 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숨어있었다.

납치된 아들의 누나가 유명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였던 것이다.

사이비 종교와 SNS라는, 마약이나 도박처럼 사람의 뇌 작동 방식을 변화시키는 두 가지의 중독성 짙은 키워드가 아이의 납치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가는 것이 이 작품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초반부터 경찰들은 수사망을 좁혀가려 애를 쓰지만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무조건적인 복종과 지도자의 강력한 통제 때문에 중반까지도 좀처럼 직접적인 단서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SNS가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사건의 윤곽이 급속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사이비 집단과 SNS가 사람들의 '진실을 보는 눈'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사이비 집단 일원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스스로 알아도, 더 높은 선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거짓말은 어떻게 보면 진실이 된다.

(pg 223)

그게 소셜 미디어의 익히 알려진 문제였다.

비틀림, 왜곡. 온라인으로 누군가를 팔로하면, 그들은 늘 완벽해 보였다.

그들의 가족은 가장 행복한 가족이고, 그들의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었다.

모든 사진이 멋지고 부럽고, 욕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알고 보면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pg 557)

최근에 사이비 종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터라 이 작품도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 것 같은데, 이미 미국에서 많이 팔린 전적이 증명하듯 작품 자체의 재미가 상당했다.

스토리의 얼개만 보자면 사건이 있고 주인공 일행이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전부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 장면들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책의 챕터가 아무런 제목 없이 번호만 쭉 붙어있는데, 그저 이 번호 순서대로 장면들을 찍어 이어 붙이면 괜찮은 영화가 한 편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서술도 거의 없어서 600페이지에 달하는 다소 두꺼운 책인데도 불구하고 금세 읽은 느낌이다.

번역이 매우 깔끔하고 자연스럽다는 말도 꼭 덧붙여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또 하나의 의문점을 남기며 후속작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이 나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애비 멀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두 권 더 있다고 한다.

국내 출시 여부는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이 잘 팔려서 조만간 읽어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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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 비밀 요원을 찾아라! 1 - 세계 7대 불가사의 꼴뚜기 비밀 요원을 찾아라! 1
헝그리 토마토 지음, 배리 애블렛 그림, 신수진 옮김 / 윌북주니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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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가 엄청 인기가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 틈새에서 깨알같이 그려진 월리를 찾는 재미가 상당했던 책인데, 그와 비슷한 콘셉트의 책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물론 숨은 그림 찾기만 있는 건 아니고 아이들이 세계 지리 지식들을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번 1권의 주제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이다.

콜로세움, 피라미드, 마추픽추, 모아이 석상 등 오래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들이 소개 대상이다.

간단한 텍스트와 그림을 통해 해당 불가사의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본적인 지식을 전해준 뒤 페이지를 넘기면 해당 건축물과 함께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이 나온다.

거기에 우리가 찾아야 하는 꼴뚜기 요원들이 각각 10명씩 숨어 있다.



당연히 그림 자체가 콘텐츠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림의 구성이 흥미롭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행동들을 하고 있고 꼴뚜기 요원들도 10마리가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찾는 재미가 있다.

체감상 어릴 적 해봤던 '월리를 찾아라'보다는 쉬운 난이도였던 것 같지만 어떤 꼴뚜기는 배경 뒤에 숨어 신체의 일부만 나와 있는 경우도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하기에는 마냥 쉽지는 않은, 흥미롭게 하기에 적당한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7세인 우리 딸은 혼자서도 척척 잘 찾아서 부모가 그리 많이 도와줄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책 후면에는 꼴뚜기 요원뿐 아니라 각각의 문명마다 중요하게 여겼던 상징들도 소개하고 이를 그림에서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게 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책들의 단점이 숨은 그림을 다 찾고 나면 다시 들춰보지 않게 된다는 것인데 이 책은 지식적인 측면도 조금은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다 찾은 후에도 몇 번은 더 읽어보고 싶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워낙 어릴 때부터 노출되는지라 한자리에서 무언가를 집중해 오래 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책들을 통해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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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정글만리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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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에 재미를 붙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읽어보지 못했던 옛날 유명 작품들을 읽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한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이제서야 넘겨보게 된 작품이다.

오래된 작품이라 익히 알려진 대로 자본주의를 향해 문을 열고 고속 성장을 하던 당시의 중국을 배경으로 돈을 좇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주인공은 한국의 상사원인 전대광이라는 인물이지만 각국의 수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등장한다.

400여 페이지짜리 3권이라 그리 적지 않은 분량인데 의외로 스토리는 별게 없다.

중국을 소개하는 글에 스토리를 곁가지로 얹어놓은 느낌이었다.

성인 버전 먼 나라 이웃 나라 중국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중국 소개 자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후 시간이 꽤 흘렀고 그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와서 그런지 그동안 우리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 혹은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이 모두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중국 특유의 '꽌시' 문화는 물론이고 '중국인들은 네 다리 달린 것은 의자 빼고 다 먹는다'와 같은 우스갯소리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널리 인식된 중국의 이미지들이 작품 내내 소개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중국을 찬양하거나 억지로 낮추어 보고 있지만은 않다.

저자 역시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으로서 중국을 최대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애쓴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눈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룩한 원동력이 된 긍정적인 측면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등장인물들이 방문하게 되는 장소에 대해서도 그곳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랜드마크나 공해 수준, 특산품, 음식 등 사람들의 생활 모습까지 상세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의 핵심은 역시 '돈'이다.

중국인들 돈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 중국 땅에 돈 벌러 들어간 사람 치고 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공감되는 돈 관련 문장들이 꽤 많았다.

얘, 제발 좀 들어라, 그런 운치 있고 고상한 짓은 취미로 평생 해도 좋으니까,

밥벌이 튼튼히 할 수 있는 주무기는 반드시 갖춰야 한다니까.

세상살이는 감상이 아니고, 더구나 적성도 아니야. 전쟁이야, 전쟁.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라구. 그러니 정신 좀 차려라.

(1권, pg 117)

자본주의-돈을 신으로 모신 이념이다.

그건 솔직담백하고 단순명료하면서도 잔인무도하고 인정사정이 없다.

신의 권능을 가진 그 물건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총소리 나지 않게 벌이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용병이 상사원이었다.

그렇게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얻는 것이 무엇인가...

그 물음 앞에서 자꾸만 커지는 것이 회의고 서글픔이었다.

돈에 원수 갚고 죽는 사람 없더라고 평생 돈을 쫓아 좌충우돌 헐레벌떡 뛰어다닌

상사원들의 삶이란 결국 하잘것없는 퇴직금에 목매단 초라한 노년이 있을 뿐이었다.

(2권, pg 10)

물론 저자의 그간 저작들처럼 중국의 지금을 만든 원동력은 평범한 민중들이 흘려온 피땀에 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그야말로 조족지혈로 느껴질 정도로 중국의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의 평범한 시민이 한 끼에 만 원짜리 식사를 한다고 칠 때 설령 재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끼니마다 천만 원짜리 식사를 하지는 않을 텐데 중국에서는 한 지역의 고위 공무원만 되어도 일반 민중이 천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으로 한 끼 식사를 대접받는다.

'태산이 높다하되~'로 시작하는 시조에 등장하는 그 태산을 매일 음식을 지고 오르는 일꾼은 하루 일당으로 태산에서 파는 맥주 반 병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다.

무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보병이 총 들고 쳐들어가지 않으면 항복을 받아낼 수 없듯이

건축기계들이 제아무리 좋다 해도 사람의 힘에 이끌리지 않고는

빌딩들이 그렇게 우람하게 설 수 없는 일이었다.

개혁개방과 함께 중국 천지를 최단 시일 내에 사통팔달로 잇고 뚫고 해서

경제 유통의 대동맥인 고속도로를 탄생시킨 것도 그들 농민공들이었다.

그리고 싼 인건비만 팔아먹는 삼류 국가가 아니라 유인 인공위성과 함께 과학 일류 국가

중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고속철 건설 현장마다 그들은 피땀을 뿌렸던 것이다.

고산지대를 돌파하며 티베트 지역을 향해 뻗어간

그 기나긴 철길이 그렇게 빨리 놓인 것도 다 농민공들이 이룩해낸 공이었다.

(1권, pg 357)

당시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제적인 관계들도 조금씩 소개된다.

물론 여기에도 서양의 것이라면, 값비싼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보는 한, 중, 일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담겨 있다.

한, 중, 일 3개국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 나라들이지만 서로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왜 싫어하게 되었는지, 왜 지금도 이 나라들이 서로 앙숙일 수밖에 없는지도 언급된다.

이남근이 간 곳은 학교 앞 스타벅스였다.

거기에는 한결같이 젊은이들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그건 부자 나라 미국이 초침 돌아가는 그 순간순간마다

더욱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중국의 돈이 돈벌이를 별로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줄기차게 태평양을 건너가고 있는 거였다.

(3권, pg 58)

종합하면 문장이 깔끔하니 술술 읽히는 맛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재밌게 읽은 소설은 아니었다.

읽으면서 계속 '소설의 탈을 쓴 중국 여행기'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저자가 중국을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공부한 것들이 많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나, 이를 모두 대사로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모두 속된 말로 '설명충'이 되어 버린다.

설정상 한국인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한국스러운 정서와 말투로 대사를 이어간다는 점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10년이 넘은 작품이어서 그런지 저자의 나이가 있어서인지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소 올드하다는 것 역시 지금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에 따르면 2016년에 중국이 G1이 될 전망이었다.

하지만 2016년에서 7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지금, 경제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인식 속 중국은 오히려 더 격하된 느낌이 강하다.

아무리 경제적인 조건이 좋아져도, 과학 기술이 뛰어나도 더불어 살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대학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중국과의 교류는 앞으로 더 늘어나고 중요도도 높아지겠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앞으로 더 좋아질지는 쉽게 전망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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