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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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로 시작된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3부작의 마지막인 '우리 슬픔의 거울'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 슬픔의 거울'이 앞선 작품들과 연계되는 부분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이 작품은 '오르부아르'를 읽지 않았다면 등장인물 소개에 다소 불친절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주인공인 마들렌이 '오르부아르'의 주인공이었던 에두아르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전작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오르부아르'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를 그리고 있다면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려는 움직임이 보일 때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남편을 잘못 만난 것 외에는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자란 마들렌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례식이 한참 진행되던 중 자신의 아들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하반신 불구라는 장애를 얻게 된다.

그녀와 아들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삼촌과 아버지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한 남성의 계략에 휘말려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

재산을 잃게 된 과정과 아들이 장애를 얻게 된 배경을 모두 알아낸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복수를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난 당신이 내 아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그 애에게 한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죠.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그녀는 마치 그들이 아직도 연인인 것처럼

그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그런 선생들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 법이죠.

(pg 579)

작가의 작품을 소개할 때 초중반부가 살짝 지루한데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진다는 점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본 작품은 마들렌이 고난에 빠지게 되는 초반부부터 상당히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복수라는 주제가 자극적인 맛을 높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개인적으로는 본 작품이 3부작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결말을 스포하고 싶진 않지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이다 결말이기 때문에 읽고 나서 찜찜함이 남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등장인물들도 개성들이 매우 강한데, 복수의 대상들도 '진짜 죽으면 속 시원하겠다' 싶을 정도의 캐릭터로 잘 짜인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600페이지가 넘는 꽤 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틈이 없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한 여인이 아들과 자신을 고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에게 죽음보다 더 한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작도 꽤 긴 작품인지라 전작을 읽은 후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하면 엄두가 잘 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므로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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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면 재미있는 어린이 속담 맛있는 교양 2
박일귀 지음, 김현후 그림 / 맛있는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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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교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시리즈로 이전의 사자성어에 이어 이번에는 속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번 책 역시 아이들이 재미나게 만화를 읽으면서 국어 공부도 할 수 있는 책이다.

드라큘라, 미라, 도깨비, 처녀귀신 등 으스스 한 이름을 가진 귀신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그림이나 하는 행동들이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춰져 귀엽게 표현되어 있다.

이전 책과 캐릭터들이 동일해서 이전 책을 읽은 아이에게는 더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딸아이도 책이 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더니 지금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읽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전의 사자성어도 그렇고 이번의 속담도 그렇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아이들의 언어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지식들인지라 권해주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만화라고 해서 전달하고 있는 정보가 적은 편도 아니다.

비슷한 속담, 반대되는 뜻의 속담이 있다면 그런 것들도 같이 알려주고 있어서 아이들이 속담의 정확한 용법을 알고 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만약 제시된 속담과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가 있다면 그것도 함께 알려준다.

예를 들어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나오면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도 함께 알려주는 식이다.

속담의 의미를 먼저 알려준 다음 그 속담이 실제로 쓰이는 상황을 만화로 보여주어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어떤 속담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점은 이전 책과 동일하게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림이 없는 책은 읽으려 하지 않는 터라 이렇게 그림이 많으면서도 좋은 지식들을 전해주는 책들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있다.

다행히 우리 딸은 책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해서 무슨 책이 되었든 집중해 읽고 있는 모습만 봐도 부모로서는 뿌듯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국어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이 영어나 수학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국어 학습을 돕는 재미난 책들이 계속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아마 이 시리즈는 나오면 나오는 즉시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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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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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한 책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류의 노화 속도보다 빨라지는 순간이 오면 이론적으로 인류는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그전 단계라 할 수 있는 '데이터로 존재하는 나 자신', 즉 '디지털 클론'이 현재 얼마만큼이나 진전되어 있는지를 다큐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

독일인 저자 두 명이 쓴 책인데 뜻밖에도 한국의 사례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몇 년 전 국내의 한 TV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너를 만났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등장하는 한 부모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이 VR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여기에는 딸의 생전에 촬영해 둔 여러 영상들이 활용되었다.

물론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생전의 딸과 더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아래에 해당 영상을 링크했는데 보고 나면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lTK8c4w0c


이처럼 이미 사람과 대화 가능한 수준의 AI는 꽤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일반적인 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AI는 이미 여러 기업에서 상용화되어 고객들을 만나며 고객 역시 자신의 민원이 해결된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AI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AI들이 죽은 사람을 구현하는 곳에 쓰인다면 우리는 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들은 이러한 AI 챗봇은 물론 마인드 업로딩, 디지털 클론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의 '흔적'이 삶이 종료된 후에도 세상에 남아 있게 될 세상을 조사하며 다양한 의문점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일단 저자들이 과학자가 아니기에 과학 기술 찬양 일변도의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디지털 클론 형성에 활용하기 위해 자동으로 일정 시점마다 사진을 남긴다거나 자신의 모든 일상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기업의 손에 들어간다는 가장 일반적인 우려는 물론이거니와 사후에 자신의 디지털 클론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아직은 온전히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꽤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케이스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사례의 부모들처럼 생전 고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혹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이러한 디지털 클론들이 대신 말해줄 수 있다면 고인을 보다 더 마음 편히 보내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그들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가져온다.

인터넷에 공개된 짧은 동영상을 본 세계의 많은 심리학 전문가가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만남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근거가 명확한 답을 내놓기에는 아직 이 기술이 지나치게 새롭다.

(pg 329)

이러한 문제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생성되느냐 하는 질문일 것이다.

일례로 우리의 뇌를 그대로 네트워크에 업로드하기(마인드 업로딩) 위해서는 뇌를 얇은 편으로 잘라 하나하나 스캔 한 결과를 업로드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뇌의 소유자는 즉시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사망 직후에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자신의 육신은 분명히 사망하지만 업로드된 데이터가 나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데이터들의 묶음이 생전의 자신과 100% 동일한 사고를 하고 반응할 것이라 보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일생 동안 꽤 일관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사람은 많이 변한다.

군대를 다녀와서 사람이 확 변하는 경우도 많고, 소극적이던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한다거나 그 반대인 사례도 꽤나 흔하게 발생한다.

결혼, 출산 등 사회적 관계가 바뀔 때에도 사람은 꽤 많이 변한다.

이렇게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자신의 정신이 육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 중략 -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 중략 -

디지털 클론들의 행동이 현실의 인간이 평범한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방식과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보다 더 큰 권력이 있을까?

지금도 우리는 사회 분위기가 봇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조작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pg 363)

게다가 위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시도의 대부분이 민간 기업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할 사실이다.

이미 데이터 기업들은 우리의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있으며 우리는 해당 기업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를 통해 암묵적으로 그러한 행위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유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게 만들지조차 우리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저자들이 과학자가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결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이러한 기술을 바라보는 일반인 시각에서 많은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할 수 있을법한 수많은 질문들을 대신해서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과학은 어디까지 대답이 가능한지, 또 우리 사회는 어디부터 대답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본래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그런지 근래 읽었던 과학 관련 교양서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더불어 언젠가 죽을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되면 이 블로그를 포함한 모든 SNS에 남은 내 흔적들부터 지워나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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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지켜 주는 눈신령님 좋은 습관 기르기 5
요시무라 아키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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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모두 안경을 쓰는지라 아이도 언젠가는 안경을 쓰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가 멀리 볼 때 인상을 쓰는 것 같다며 안과 검진을 추천했다.

검사 결과 당장은 쓸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학교에 가게 되면 필요할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은 나나 집사람만큼 시력이 나쁘지는 않지만 시력이라는 것이 나빠지긴 쉬워도 좋아지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므로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익숙한 그림체다 했더니 이전에 '코딱지 닌자'로 딸에게 먼저 인사했던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림이 익숙해서 그런지 아이도 책이 오자마자 내리 세 번을 읽어달라고 할 만큼 좋아했다.

(집에 새로운 책이 올 때 장난감을 새로 사 준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번 책 역시 아이에게 바른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재미나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요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각종 스마트 기기들의 장시간 사용은 눈 건강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TV를 가까이서 보는 아이를 눈신령님이 발견하는 장면으로 내용이 시작된다.

단순히 화면을 오래 보면 눈 깜박임이 적어져 눈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정보를 설명하기보다는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과 함께 눈싸움을 해보라는 식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부분을 습득할 수 있도록 유도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눈신령님과 함께 하는 안구 운동도 소개된다.

나도 직업이나 취미나 모니터 화면 쳐다보는 것이 전부라서 눈 체조를 따라 하는데 제법 시원함이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 가끔 생각나면 한 번씩 눈을 돌려봐야겠다.

아이들이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해주려면 부모는 본의 아니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습관마다 관련된 책을 사줄 수는 없겠으나, 부모가 생각할 때 꼭 개선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을 재미나게 풀어주는 책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 읽으며 자연스럽게 행동 변화를 유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점차 스마트 기기를 더 자주, 더 오래 사용하게 될 아이를 위해 눈 건강의 중요성을 재미나게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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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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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는 장편소설이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2-3번 정도 봐서 익숙한데 내용이 원작과 많이 다르다고 해서 이번에는 원작을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처럼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작품이며 핵전쟁 이후 방사능 먼지로 뒤덮인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인구의 대부분은 다른 행성으로 떠났고,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안드로이드를 노예처럼 사용한다.

작품은 강제노동에서 탈출해 지구로 숨어든 안드로이드들을 찾아 처단하는 현상금 사냥꾼 릭 데카드가 한 무리의 안드로이드들을 쫓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동물 살처분에도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그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기계를 살처분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안드로이드들을 쫓으며 그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녔고 겉으로도 인간과 똑같은 안드로이드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련의 테스트를 거치게 되는데, 이 테스트의 핵심은 바로 감정이입이다.

인간은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 하더라도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동요가 생기는데, 안드로이드들은 자발적인 감정이입이 아닌 프로그래밍된 반응을 출력하므로 반응에 지연시간이 있다는 것에 착안한 테스트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이입은 '머서교'라고 하는 신흥 종교의 핵심 요소로도 강조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특정 장비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머서의 고행을 직접 경험하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요즘 나오는 VR 게임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되는데, 해당 기계에서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을 경우 실제 몸도 피를 흘리는 등 굉장히 SF스러운, 그러면서도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배경이 핵전쟁 이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동식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애완동물이 새로운 사치품으로 자리 잡은 사회 모습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데카드는 키우던 양이 병으로 죽고난 뒤 새로운 양을 살 돈을 마련하지 못해 기계로 된 양을 키우는데, 안드로이드를 잡은 현상금으로 새로운 '진짜' 동물을 사고 싶은 것이 그의 행동을 이끄는 가장 큰 동기이다. (제목의 '전기양'이 이러한 기계 양을 의미한다. 전기 다음에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작품 속 사회에서는 인간과 아무리 닮았어도 유기체가 아니면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외모를 하고 인간의 말을 하며, 인간의 일을 대신 수행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표현 대로 '파리보다 못 한' 존재이다.

계속해서 인공두뇌는 최신화되지만 그들의 수명과 직결되는 배터리 수명은 4년을 넘지 못한 채로 유지된다.

그들이 오래 살기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거군요. 안 그래요?

당신 말마따나, 하다못해 동물조차도 법으로 보호를 받으니까요.

모든 생명체가요. 유기적인 것은 뭐든지요.

꿈틀거리건, 꿈지럭거리건, 구멍을 파건, 날아다니건, 무리를 짓건, 알을 까건..."

(pg 246)

지금이야 수많은 SF 작품들에서 안드로이드를 다뤘고, AI의 발달을 일반 대중들도 눈으로 목격하고 있으니 이러한 논의가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1960년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인지 와닿을 것이다.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정도로 짧지 않은 작품임에도 한번 읽기 시작하니 책을 놓을 수가 없어 결국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저자의 대표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니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원작과 비교하며 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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