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류 - 죽음을 뛰어넘은 디지털 클론의 시대
한스 블록.모리츠 리제비크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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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한 책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류의 노화 속도보다 빨라지는 순간이 오면 이론적으로 인류는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그전 단계라 할 수 있는 '데이터로 존재하는 나 자신', 즉 '디지털 클론'이 현재 얼마만큼이나 진전되어 있는지를 다큐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

독일인 저자 두 명이 쓴 책인데 뜻밖에도 한국의 사례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몇 년 전 국내의 한 TV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너를 만났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등장하는 한 부모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이 VR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여기에는 딸의 생전에 촬영해 둔 여러 영상들이 활용되었다.

물론 사용 가능한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생전의 딸과 더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아래에 해당 영상을 링크했는데 보고 나면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lTK8c4w0c


이처럼 이미 사람과 대화 가능한 수준의 AI는 꽤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일반적인 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AI는 이미 여러 기업에서 상용화되어 고객들을 만나며 고객 역시 자신의 민원이 해결된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AI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AI들이 죽은 사람을 구현하는 곳에 쓰인다면 우리는 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들은 이러한 AI 챗봇은 물론 마인드 업로딩, 디지털 클론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의 '흔적'이 삶이 종료된 후에도 세상에 남아 있게 될 세상을 조사하며 다양한 의문점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일단 저자들이 과학자가 아니기에 과학 기술 찬양 일변도의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디지털 클론 형성에 활용하기 위해 자동으로 일정 시점마다 사진을 남긴다거나 자신의 모든 일상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기업의 손에 들어간다는 가장 일반적인 우려는 물론이거니와 사후에 자신의 디지털 클론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아직은 온전히 예상하기 어렵다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꽤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케이스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사례의 부모들처럼 생전 고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혹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이러한 디지털 클론들이 대신 말해줄 수 있다면 고인을 보다 더 마음 편히 보내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그들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가져온다.

인터넷에 공개된 짧은 동영상을 본 세계의 많은 심리학 전문가가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만남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근거가 명확한 답을 내놓기에는 아직 이 기술이 지나치게 새롭다.

(pg 329)

이러한 문제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생성되느냐 하는 질문일 것이다.

일례로 우리의 뇌를 그대로 네트워크에 업로드하기(마인드 업로딩) 위해서는 뇌를 얇은 편으로 잘라 하나하나 스캔 한 결과를 업로드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뇌의 소유자는 즉시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사망 직후에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자신의 육신은 분명히 사망하지만 업로드된 데이터가 나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데이터들의 묶음이 생전의 자신과 100% 동일한 사고를 하고 반응할 것이라 보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일생 동안 꽤 일관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사람은 많이 변한다.

군대를 다녀와서 사람이 확 변하는 경우도 많고, 소극적이던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한다거나 그 반대인 사례도 꽤나 흔하게 발생한다.

결혼, 출산 등 사회적 관계가 바뀔 때에도 사람은 꽤 많이 변한다.

이렇게 주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영향을 받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자신의 정신이 육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 중략 -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 중략 -

디지털 클론들의 행동이 현실의 인간이 평범한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방식과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보다 더 큰 권력이 있을까?

지금도 우리는 사회 분위기가 봇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조작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pg 363)

게다가 위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시도의 대부분이 민간 기업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할 사실이다.

이미 데이터 기업들은 우리의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있으며 우리는 해당 기업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를 통해 암묵적으로 그러한 행위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유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게 만들지조차 우리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저자들이 과학자가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결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이러한 기술을 바라보는 일반인 시각에서 많은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할 수 있을법한 수많은 질문들을 대신해서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의 과학은 어디까지 대답이 가능한지, 또 우리 사회는 어디부터 대답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본래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그런지 근래 읽었던 과학 관련 교양서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더불어 언젠가 죽을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되면 이 블로그를 포함한 모든 SNS에 남은 내 흔적들부터 지워나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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