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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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는 장편소설이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2-3번 정도 봐서 익숙한데 내용이 원작과 많이 다르다고 해서 이번에는 원작을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처럼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작품이며 핵전쟁 이후 방사능 먼지로 뒤덮인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인구의 대부분은 다른 행성으로 떠났고,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안드로이드를 노예처럼 사용한다.

작품은 강제노동에서 탈출해 지구로 숨어든 안드로이드들을 찾아 처단하는 현상금 사냥꾼 릭 데카드가 한 무리의 안드로이드들을 쫓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동물 살처분에도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그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기계를 살처분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안드로이드들을 쫓으며 그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녔고 겉으로도 인간과 똑같은 안드로이드들을 찾아내기 위해 일련의 테스트를 거치게 되는데, 이 테스트의 핵심은 바로 감정이입이다.

인간은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 하더라도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동요가 생기는데, 안드로이드들은 자발적인 감정이입이 아닌 프로그래밍된 반응을 출력하므로 반응에 지연시간이 있다는 것에 착안한 테스트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이입은 '머서교'라고 하는 신흥 종교의 핵심 요소로도 강조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특정 장비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머서의 고행을 직접 경험하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요즘 나오는 VR 게임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되는데, 해당 기계에서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을 경우 실제 몸도 피를 흘리는 등 굉장히 SF스러운, 그러면서도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배경이 핵전쟁 이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동식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애완동물이 새로운 사치품으로 자리 잡은 사회 모습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데카드는 키우던 양이 병으로 죽고난 뒤 새로운 양을 살 돈을 마련하지 못해 기계로 된 양을 키우는데, 안드로이드를 잡은 현상금으로 새로운 '진짜' 동물을 사고 싶은 것이 그의 행동을 이끄는 가장 큰 동기이다. (제목의 '전기양'이 이러한 기계 양을 의미한다. 전기 다음에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작품 속 사회에서는 인간과 아무리 닮았어도 유기체가 아니면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외모를 하고 인간의 말을 하며, 인간의 일을 대신 수행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표현 대로 '파리보다 못 한' 존재이다.

계속해서 인공두뇌는 최신화되지만 그들의 수명과 직결되는 배터리 수명은 4년을 넘지 못한 채로 유지된다.

그들이 오래 살기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거군요. 안 그래요?

당신 말마따나, 하다못해 동물조차도 법으로 보호를 받으니까요.

모든 생명체가요. 유기적인 것은 뭐든지요.

꿈틀거리건, 꿈지럭거리건, 구멍을 파건, 날아다니건, 무리를 짓건, 알을 까건..."

(pg 246)

지금이야 수많은 SF 작품들에서 안드로이드를 다뤘고, AI의 발달을 일반 대중들도 눈으로 목격하고 있으니 이러한 논의가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1960년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인지 와닿을 것이다.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정도로 짧지 않은 작품임에도 한번 읽기 시작하니 책을 놓을 수가 없어 결국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저자의 대표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니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원작과 비교하며 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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