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로 배우는 초등 생활 어휘 그림일기로 배우는 초등 어휘
이선희 지음, 최호정 그림 / 제제의숲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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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글씨도 빨리 깨친 것 같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해 벌써 한 권을 훌륭하게 채워냈다.

물론 꾸준히 썼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으나 아직 문장이나 사용하는 단어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분명하게 보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인지라 계속해서 습관을 들여주려고 하던 차에 아이에게 딱 좋을 것 같은 책이 나와서 같이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진짜 어린이들이 쓴 그림일기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좌측에 그림일기 형식의 이야기가 있고 우측에 초등학교 1, 2학년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어휘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관련 속담이나 비슷한 뜻, 반대말 등도 잘 나와 있어서 제대로 읽는다면 맞춤법 뿐만 아니라 어휘력 향상에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에서 보이듯 트림과 방귀처럼 아이들이 관심이 크지만 실제로 쓸 때에 헷갈리기 쉬운 단어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도 경상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터라 꽤 오랫동안 트림을 '트름'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경상도 사투리로 트름이라고 한다.) 기억이 떠올랐다.

(pg 22-23)

아래와 같은 어휘 퀴즈 카드도 동봉되어 있다.

각 장마다 책과 똑같은 그림일기가 실려있고 배워야 하는 단어는 초성만 적혀 있어서 아이가 맞혀볼 수 있고 뒷면에는 단어 해설이 동일하게 실려있는 구성이다.

이 카드가 거의 책 전체의 요약본 같은 형식이어서 어디 갈 때에는 간편하게 이 카드만 챙겨가도 아이가 한참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입학을 앞두고 있다보니 국어, 수학, 영어 등 부족한 게 뭐 있나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면에서 우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어라도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 큰데, 맞춤법이나 어휘력 때문에 고민이라면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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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보 아이돌 스퀴시북 - 말랑말랑 두근두근
차리보 지음 / 삼성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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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이제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잠시 집에서 쉬고 있다.

그리 긴 방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를 매일 가다가 안 가면 집에서 뭐 하고 놀지가 부모에겐 늘 고민거리다.

그러던 중 재밌어 보이는 책을 발견해서 딸아이와 함께 놀아보았다.



처음에는 스퀴시가 뭔지도 몰랐는데, 찾아보니 안에 솜을 넣어서 폭신폭신한 감촉을 즐기며 노는 장난감들을 통칭하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에는 아이돌 인형들과 그 인형들이 입거나 들고 있을 수 있는 소품들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도안이 수록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공작 세트가 아닌 책 형태로 도안이 인쇄된 것이어서 제대로 만들려면 준비물이 좀 필요하다.

다른 물품들은 집에 다 있을법한데 코팅지나 솜은 없다면 미리 구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위질부터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 집중력과 소근육 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완성 후에는 직접 만들었다는 뿌듯함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도안 부분은 뜯기에 편하게 제작되어 있어서 페이지를 뜯어내다가 책 전체가 찢어지는 불상사도 막을 수 있어서 좋았다.

(pg 6-7)

열심히 가위질을 해보는 딸.

깨알같이 아이돌 멤버들이 키우는 고양이도 제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림도 귀엽고 색감도 따뜻한 색감이어서 여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디자인이다.



아이돌이 요즘 아이들 장래희망 1순위라는 기사를 읽고 그런가 보다 했었었는데, 얼마 전 있었던 아이의 졸업식에서 이 트렌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영상에 아이돌이 꽤 많았던 것이다. (2위가 유튜버였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는 별개로 많은 아이들이 목표로 삼기에 적합한 직업인가 고민해 볼 지점이기도 하지만, AI와 함께 살아갈 시대에 오히려 인간이 꽤 오랫동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할 것 같다.

여하간 요즘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도 아이돌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꽤 인기가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장난감의 물리적인 수명은 매우 길지만, 아이들의 심리적인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아무리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라 하더라도 며칠 지나면 금세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자기 스스로 만든 장난감은 그 심리적인 수명이 생각보다 길다.

이 책을 통해 예쁜 언니들을 직접 만들고 재미난 역할놀이도 할 수 있어 이번 방학은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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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김제동과 전문가 7인이 전하는 다정한 안부와 제안
김제동 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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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이 7인의 전문가들을 만나 진행한 대담을 엮은 책이다.

보통 한 권에 여러 꼭지가 들어 있는 책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데 이 책은 물리학자 김상욱, 건축가 유현준, 천문학자 심채경, 경제전문가 이원재, 뇌과학자 정재승,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 대중문화전문가 김창남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법한 전문가 7명의 생각을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구성이라 읽어보게 되었다.

7명 중 과학자 세 명은 이미 저서들을 통해 익숙한 이름들이었고 김창남 교수 역시 전 직장에서 자주 뵙던 분이어서(물론 나를 기억하고 계실 것 같지는 않지만) 익숙했다.

기존에 읽었던 저서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새로운 부분은 적었지만 예전에 읽었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기에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세 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경제전문가 이원재 대표였다.

뭔가 미국 MBA 출신의 경제전문가라고 하면 당연히 성장 지표를 우선하는 경제 정책을 옹호할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기본소득을 굉장히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었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GDP의 일정 부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을 차별 없이 지급하는 방안인데, 짧은 내용 안에 세제 개혁 등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까지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경제 문제가 '분배'의 문제였다면 이어지는 이정모 관장이 제기한 식량 문제와 김창남 교수가 제기한 문화적 다양성 문제 역시 '분배'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식량은 이미 전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아 썩어갈 정도로 농업 생산량은 많아졌지만 이를 시혜적으로 풀면 시장 경제가 타격을 받기 때문에 버리는 선택을 하고 있고, 문화 역시 돈이 몰리는 작품들만 노출이 되기 때문에 한 쪽에서 천만 영화가 탄생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많은 작품이 사장되는 등 선택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정모 관장의 경우 이러한 문제 역시 기술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술이 분배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줄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기술에는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처럼 기술의 발달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를 성찰하는 기회들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우리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향한 희망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물리학자이기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건축가이기에 사람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천문학자이기에 범지구적인 협력을 강조한다.

경제전문가이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는 모든 주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과학관의 수장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대중문화전문가이기 때문에 다양성과 관계의 중요성을 외친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이냐, 비관이냐 묻는다면 전 항상 낙관입니다.

"우리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이 쉽진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정말 어렵겠지만 우리는 결국 해내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pg 555)

코로나가 한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시기에 나온 책인지라 코로나 이야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나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책인데도 뭔가 옛날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빨리 팬데믹을 극복했고 빨리도 잊는 것 같다.

뒤처진 개인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하고 각자도생, 경쟁 일변도의 삶도 계속된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아직 사람들의 무의식에 깊이 남아있다.

사람은 결국 사회 속의 동물이고 사회는 국가에, 국가는 세계에, 세계는 지구에, 지구는 우주에 속해있다.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전 인류를 꿰뚫는 단 하나의 진리로 자리 잡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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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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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역시 또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한동안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발매된 작품이 너무 많아서 어딜 가나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저자의 초기작 중 하나이고 국내에 소개된지도 꽤 된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은 타자가 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들어오는 공을 뜻하는 야구 용어다.

제목답게 전도유망한 한 고등학생 야구선수가 살해된 사건으로 시작된다.

특이하게도 옆에서 키우던 개가 함께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살해된 순서가 개가 먼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면 작품 안에 폭탄 테러 미수라는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조사도 서로 다른 경찰서에서 담당할 정도로 각기 다른 사건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이 과연 어떻게 연결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고등학생들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형편이 좋지 못한 집안에서 홀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 형은 프로 입단을 목표로 야구에 매진하고 동생은 공부에 매진하는 장면은 뻔한 클리셰이지만 늘 울림을 주는 소재인 것 같다.

스포츠의 특성상 재능의 영역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로 인한 동급생들의 시기와 질투도 사건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잘 버무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야. 저 녀석들은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점수가 나겠지, 그런 생각이야. - 중략 -

그런 놈들이 바꾸긴 뭘 바꾸겠어. 바뀔 일은 한 가지뿐이야.

더는 이길 수 없게 된다는 거지."

(pg 119)

그의 주요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한 명의 천재에게만 맡겨져 있지도 않다.

많은 인물들의 증언과 관찰이 모여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져가기 때문에 읽으면서 누가 가장 의심스러운지 스스로 계속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묘미가 있어 좋았다.

물론 그래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가 나오지는 않지만, 후미의 해설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다케시라는 인물 자체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전형적인 그의 작품답게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까지 잘 챙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아직 영상화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일본이나 국내나 야구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영상화되어도 재미있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재미난 스토리를 이렇게 자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이 무얼까 항상 궁금해지는 작가라 올해에는 작가의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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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 있는 힘껏 산다는 것, 최선을 다해 죽는다는 것
진 마모레오.조해나 슈넬러 지음, 김희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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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나 장애로 겪는 고통이 너무나 심각하고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자신의 의지와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의료 조력 사망이라 한다. (존엄사,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본 책에서는 의료 조력 사망으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허용하는 '연명 치료 중단'과는 다른 제도로 환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하며 사망 과정에 의사의 개입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 제도가 불법이지만 캐나다에서는 2016년부터 법제화되어 합법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 기간 가정의로 활동하면서 생애 말년에 엄청난 고통과 시름하다 차디찬 병원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저자는 의료 조력 사망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한 순간부터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마음먹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 자체는 매우 길어졌지만 그 최후는 자신이 원치 않는 장소(병원)에서 원치 않는 사람들(의료진)에게 둘러싸인 채, 심지어는 인지 능력 저하로 자아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맞게 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도 할머니가 거동이 불가능해 꽤 오랜 시간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경험이 있어 저자의 문제의식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일이 그 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의료 조력 사망은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그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pg 114)

질병으로 인한 고통만이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니다.

차도가 없는 질환에 계속해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고, 가족관계나 친구 등 사회적인 관계가 부족해 고립된 채 서서히 죽어가야 한다는 외로움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이 아픈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때 환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의료 조력 사망이다.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대부분 가족, 특히 어머니, 배우자, 딸이 감당한다.

그들은 닫힌 문 뒤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힘든 일을 해내면서 밤을 지새우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낮 시간을 견디며, 자신이 돌보는 사랑하는 이에게 닥칠 재난을

막는 유일한 방어벽 역할을 한다.

그들이 지는 부담은 절대적이며, 자기 희생은 계산할 수조차 없다.

(pg 37)

물론 저자 역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죽음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고통 완화 프로그램을 충분히 경험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체감이 줄어들지 않거나 삶의 질이 현저히 낮게 유지될 경우 조력 사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의료 조력 사망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고통 완화 돌봄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양자 선택의 문제라도 되는 듯 반대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각을 세울 때가 많다.

그러나 1년간 독학을 하는 동안 이 두 진영은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 보였다.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양질의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통 완화 돌봄과 조력 사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pg 39)

물론 그 취지에 동의하고 환자가 직접 선택한, 환자를 위한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아도 막상 이를 시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한 의료 조력 사망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경험을 공유한다.

한 발표자가 의료 조력 사망이라는 의료행위가 이를 시행하는 의사들에게 굉장한 정신적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솓아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돌 때 가축을 살처분 하는 사람들도 한동안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데, 한동안 자신과 함께 상담하며 해당 과정을 준비해온 환자의 목숨을 내 손으로 거두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의료 조력 사망이 다른 점은 물론 내가 죽음의 사신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기꺼이 지겠다고 동의를 한 짐이다.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부도덕하거나,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옳은 일이며 친절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것이 짐이라는 사실, 언제나 짐일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pg 65)

책에는 저자가 직접 시행한 여러 환자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잘 준비되어 환자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죽는 것도 좋겠다' 싶은 사례도 있고, 환자 본인은 시행을 원했지만 성년 자식이 반대해서 끝내 시행하지 못한 사례나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끝내 혼자인 채로 시행하는 의사와 함께 임종을 맞는 좋지 않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례들에서 이 제도에 대한 저자의 투철한 사명감과 이를 시행하고자 하는 환자들의 굳은 결심을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고통의 역치도 다르고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의도 다 다르다.

스스로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때에도 삶을 부여잡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영화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처럼 하반신 마비라는 비교적 흔한 장애에도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저자가 책 내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듯이 이 제도의 가장 큰 의의는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 더 열어준다는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그저 주어진 고통을 인내하라고,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원해서 죽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인간적이지 않나 싶다.

인간의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했을 때 아직 그 절반도 채 살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나는 적어도 할머니처럼 죽고 싶지는 않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죽는다는 사치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나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내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가져갔으면 좋겠다. (쉽게 말하면 벽에 X칠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 제도가 아직 국내에는 불법이어서 더 관심 있게 읽은 것 같다.

종교적인 이유, 악용될 가능성 등 여러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제도는 없을 것이다.

본 제도가 갖는 순기능이 분명 있고 국내에도 이 제도의 도입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논의를 거쳐 제도화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의료 조력 사망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신이 있다면 자애로운 신일 것이라 믿어요. 신도 제가 한 선택을 이해할 것이라 믿어요."

(pg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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