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세계사 -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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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문과인 주제에 유독 역사에 대한 흥미는 그리 크지 않다.

가뜩이나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터라 이런저런 이름들과 연도를 외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역사 교양서보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처럼 문학적 터치가 가미된 역사책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역시 SF 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라 기대가 되었다.

책의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즉 '세계의 짧은 역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짧다고?'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한국 제목처럼 인류의 기원부터 시작해 1차 세계 대전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왜 하필 1차 세계대전에서 끝났나 하면 저자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류의 기원, 즉 단세포 생물부터 시작해 인간이 되기까지의 생물학적인 진화 과정은 물론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등장한 이후로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된 책이다.

기원전 6세기는 사실 전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시기 중 하나였다.

세계 각지에서 인간이 왕권과 신관, 제물의 전통에서 깨어나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2만 년의 유아기를 거쳐 비로소 인류가 청소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pg 103)

여러 장점이 있는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시각 자료가 굉장히 풍부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역사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고, 옛 지명이 현 국가명과 달라서 위치적인 혼란이 올 수 있는데 이 책은 지도가 필요할 때 딱 나와주는 느낌이라(게다가 풀 컬러!) 가독성이 좋았다.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나 유적지, 건축물 등의 사진 자료도 풍부해서 책을 읽는 동안 별도의 검색이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서양 사람의 시각으로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사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지역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서 꽤 균형감이 좋았다.

과거의 노예 제도는 물론이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탐욕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에서 비교적 어두운 측면들도 가감 없이 드러내 비판의 칼을 켜누는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로마가 남긴 거대한 도로와 찬란한 유적, 전통은 우리 후세대들이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 모든 영광이 좌절된 의지와 억눌린 사람들,

일그러진 욕망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g 144)

역사가의 입장에서 종교를 언급함에 있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 측면이 돋보인다.

기독교 문화권이 현재 서양 문화를 대표하고는 있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그저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

역사가의 역할에만 충실하려는 입장에서는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을 수용할 수도 없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역사가가 다루어야 할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인 것만은 확실하다. - 중략 -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서른 살 정도였는데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기록한 책은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가 있다.

네 복음서 모두 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pg 148)

다만 워낙 짧은 분량 안에 긴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사건 각각에 대한 설명이 그리 길지는 않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온 과정을 한 번에 훑기 좋다는 장점은 있지만, 특정 사건의 전후 사정이나 자세한 내막까지 알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인류에게 남기는 메시지만큼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세계정세가 이대로라면 20년 이내에 같은 전쟁이 되풀이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이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류의 정신이 진보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 깊은 감동을 남겼다.

우리가 평화를 성취하리라는 것을, 우리의 후손들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을, 모험과 성취가 확장되는 가운데

인류가 나날이 강해지리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과거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올 새벽의 여명일 뿐이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해온 것들, 현재까지 이룩한 성취들,

그리고 이제까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이 모든 역사는

인류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의 서막에 불과하다.

(pg 371)

역사 교양서치고 이 책처럼 술술 읽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꽤 옛날 책이지만 저자의 멋진 문장과 방대한 사진 자료, 적절한 주석들 덕분에 읽는 맛이 좋았다.

저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물론 SF 소설들 때문이겠으나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 뒤에는 탄탄한 역사적 토대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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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동물병원 3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3
최영민 감수, 김강현 지음, 이연.황정호 그림 / 서울문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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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인데 그중 반려동물 인구가 천오백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최근 가족 구성이 3인 이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계산하면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반려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만큼 버려지는 동물도 많다는 것이다.

유기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병들었을 때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관련 기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116511479?OutUrl=naver)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마냥 귀여운 순간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픔을 느끼고 병에 걸리며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반려동물 역시 생명이며 다양한 원인으로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해주는 '쪼꼬미 동물병원' 시리즈의 3권이 드디어 출시되어 아이에게 선물해 주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그저 3권이 나왔다는 사실만 알려줬을 뿐인데 그날부터 매일 "아빠, 쪼꼬미 동물병원 3권 언제 와요?"라는 질문을 해대는 통에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사준다고 한 적은 없었...)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책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부모로서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3권에서도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역시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 고양이 뿐 아니라 까마귀와 참새, 모란앵무 등의 새들도 많고 상자거북, 아홀로틀처럼 양서류, 파충류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읽는 동안 옆에서 같이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은 알 막힘으로 병원을 찾은 모란앵무의 사례였다.

사람만 난산일 때 제왕절개를 하는 줄 알았는데 새도 산란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했다.

다행히 알이 무정란이어서 주사기로 내용물을 빨아들여 크기를 작게 만드는 방법으로 수술 없이 배출할 수 있었다.

만약 유정란이어서 알이 파손되었다면 굉장히 안타까운 사례가 될 뻔했다.

이처럼 동물도 아플 수 있고, 그 치료에는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아이들이 단순히 비용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생명 하나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숭고한 일인지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딸이 다 읽더니 아침에 학교에 일찍 가서 또 읽을 거라며 가방에 잘 챙겨두는 것을 보면 여러 번 읽어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만화책만 읽어서 걱정인 부모들도 이렇게 좋은 내용의 만화라면 안심하고 읽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몇 권이나 더 발매될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아픈 동물들을 위해 애쓰는 수의사 선생님과 한 생명을 애정으로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반려동물 주인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을 더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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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버전
그레이스 챈 지음, 성수지 옮김 / 그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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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F에서 마인드 업로딩은 이제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많은 작품들이 마인드 업로딩 이후의 사회를 그려왔고 기술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마인드 업로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이제 막 개발되어 사회에 적용되는 시점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배경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로 보호장비 없이는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는 지구, 사람들은 더 이상 실외에서 자연을 느낄 수 없기에 '가이아'라고 하는 VR 세상을 찾는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이상적인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곳에서 사람들은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인공인 '타오이'는 젊은 여성으로 '네이빈'이라는 남성과 오래 교제하고 있었다.

'네이빈'은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아 몇 년 전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그러던 중 '가이아'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네이빈'처럼 신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업로딩을 통해 '가이아'로 떠나버린다.

지구는 더 이상 탄소 기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우리는 항상 이 지구를 떠나는 게 인류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틀렸어요. 훨씬 더 멋드러진 솔루션이 나타난 거죠.

우선 우리는 항상 신선한 공기, 싱싱한 식물, 깨끗한 물에만 의존해 왔어요.

그런데 곧 그런 원시 자원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질 거에요.

(pg 164-165)

'타오이'는 '가이아'에서 만나는 '네이빈'에게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지만 '네이빈'은 끊임없이 '타오이'에게 업로딩의 세계로 오라고 말한다.

업로딩의 인기는 엄청나서 기술 도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의 인구가 100만 명 대로 떨어진다.

이런저런 핑계로 업로딩을 미루던 '타오이'는 병을 앓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다.

'타오이'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을 따라 긴 여정에 오른다.

업로딩은 '거래'다. 더 크고, 더 새롭고, 더 빛나는 것을 위한 거래.

지구는 그 쓰임을 다했다.

지구 밖에서 새롭게 살 수 있는 곳에 관한 연구, 그리고 발전 속도는 아주 느렸다.

최소한의 저항을 받는 해결책이었다.

모두를 디지털 유토피아로 이주시키기 위해서 인류는 집단 거부 행동을 영속했다.

(pg 360)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대놓고 표현하고 있듯이 이 책은 '테세우스의 배'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뇌를 스캔해 그대로 디지털 세계로 옮길 경우에도 이를 자신이라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볼 때에도 그렇다.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피와 살이 아닌 데이터로 존재할 때 그 사람을 동일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타오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타오이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타오이 역시 인간으로서 노화와 질병을 겪으며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인구가 너무 줄어 기본적인 인프라 작동도 멈춘 세상에 남겨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실제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현실화되었다고 했을 때에도 이렇게 인기가 좋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가능한 시나리오는 죽음 이후에 뇌를 스캔해 유족이 죽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정도로 구현하는 것은 꽤 현실성이 있다고 한다.

나도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면, 그때 이 기술이 현실화되어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나라는 사람의 사유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의식도 좋았고 저자가 설계한 미래의 모습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만 소설로서 읽는 재미가 좋았느냐 하면 솔직히 약간 지루한 편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딱히 사건이라고 할만한 일들이 많지 않고 내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 길어서 그런 모양이다.

물론 기후 위기의 해답으로 '다 같이 매트릭스로 떠나자'라는 선택지를 고른 저자의 미래 사회가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에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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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마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8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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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가의 책을 읽게 된 이후로 누군가가 나에게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하루 안에 볼 수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책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가능한 일은 당연히 아닐 것이고, 기본적으로 이야기 자체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이 작품 역시 배송받은 날 다 읽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작가가 탄생시킨 탐정 캐릭터가 여럿인데, 제목을 보고서는 마술사라는 설정이 붙은 '블랙 쇼맨'이 등장하는가 했었는데 의외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다.

이 작품 역시 초반에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경찰들이 조사하다가 중후반 이후로 '유가와'가 개입하면서 실마리들이 풀어지는 전개를 보여준다.

초반에 일어나는 사건은 크게 세 가지다.

한 여성이 혼자 호텔 스위트룸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고, 뒤를 이어 사상자는 없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 사고가 몇 차례 일어난다.

그러다가 한 르포라이터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시간 차이도 꽤 나는 이 세 가지 사건들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참고로 위에서 정리한 내용은 책의 커버보다도 스포일러를 덜 담고 있다.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버는 과감히 빼버리고 읽기를 추천한다.

하단의 감상에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책을 읽기 전이라면 꽤 재미있으니 읽어보라는 추천을 마지막으로 아래의 내용은 읽기 않기를 바란다.

이번 작품에서는 '탐정 갈릴레오'로 불리는 '유가와'와 사건이 개인적으로 엮여있어서 사건 해결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유가와'가 동아리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한 고등학생을 도와 실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고등학생이 성장해 모종의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와'는 짧지만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 인물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과학 그 자체는 언제나 잘못이 없다.

그저 잘못 사용하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에는 늘 그런 측면이 있다,

과학이 좋은 일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요는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

사악한 인간의 손에 주어지면 과학은 금단의 마술이 된다,

과학자는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했어.

(pg 209)

하지만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과학을 사용함에 있어서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심하게 나눠진 사건의 조각들이 다 맞춰지는 결말에서 이 부분을 다시 한번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히 자극적인 사건들의 해결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뢰는 핵무기와 나란히, 과학자가 만든 최악의 물건이다.

어떤 경우라도 과학 기술로 인간을 해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과학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싶다.

(pg 338)

결말도 나름 모두가 해피하게 잘 끝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물을 만들어놓고, 또 그 인물이 추락할 수 있을 충분한 떡밥도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에게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물론 꼭 죄를 지은 사람이 복수를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개 개인들이 사회 지도층을 담그기는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해서 아쉽게 느껴졌다.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하고 생각했다.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다는 건 이른바 진정한 정치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단, 이 길은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끝까지 돌진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도리를 벗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pg 306)

결말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서두에서도 강조했듯이 재미만큼은 이번 작품에서도 충분히 보장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빨리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니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작품 역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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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약속 나츠메 형사 시리즈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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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읽는 저자의 작품으로 앞서 읽었던 두 작품이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총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다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단편 모음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다섯 이야기 모두 '나츠메'라는 통찰력 좋은 형사의 활약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이 작품 전에도 '나츠메' 형사가 활약하는 '형사의 눈빛'이라는 작품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등장인물 소개를 잘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의 결말을 대충 알게 되는 부작용이 있긴 할 것이다.)

처음에는 바쁜 동료들을 두고 칼퇴근을 꼬박꼬박 일삼는 얌체 같은 형사인가 했지만 사실은 몇 년 전 딸이 강도에게 둔기로 머리를 맞아 식물인간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물의 매력도가 확 올라간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보통의 경찰이나 검찰이 사건의 범인을 제대로 잡았으면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하는 반면, 나츠메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모두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첫 이야기인 '호적 없는 아이' 편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그저 한 아이가 절도 행각이 발각되자 마취 가스를 살포하고 도망친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피도 섞이지 않은 아이를 지켜내고자 했던 양부모의 애정을 발견했고, 두 번째 이야기인 '불혹'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친구를 막아냄과 동시에 그 친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정말로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까지

충분히 헤매고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불혹은, 쓸데없는 세상의 가치관에 미혹되지 않고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헤매고 고민해가는 거라고 생각해.

'피의자 사망'에서는 자칫 갱생 불가능한 쓰레기로 낙인찍힌 채 죽어버린 용의자가 사실은 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 유족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마지막 거처'에서는 살인 죄로 복역 중인 아들을 두었지만 모정을 끊을 수 없었던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아가 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마지막 이야기인 '형사의 약속'은 자신이 해결했던 사건의 피해자가 되려 가해자가 되어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나츠메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피와 시체가 난무한 작품이지만 그 안에 따뜻함을 많이 넣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범죄자들에게 사연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뉴스에서 기사로 접하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생각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증오나 욕망, 분노, 잔인함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고 지내지만 어떤 계기로 그것이 겉으로 터져 나와 점점 증식하다가

이성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거죠.

앞서 접했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사실 e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나츠메 형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후속작 '형사의 분노'라는 작품도 출간되어 있는 등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도 꽤 있어서 조만간 또 접하게 될 작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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