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 삶의 길목에서 다시 펼쳐든 철학자들의 인생론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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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남들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춤을 추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비난에 한없이 절망한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는 결국 혼자임을 기억하라.

삶에 대한 최종 평가는 남이 아닌, 결국 자신과 신의 의해 내려진다. (pg 86)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슬슬 서른의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아직도 삶은 서툰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안정적'이라 말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불안하기만 하다.

지금이 행복해서일까.

이 얼마 안되는 행복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해 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여하간 잠들기 전이 찜찜해진다면 철학책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다.

역시 책과의 인연도 우연은 없다고, 때마침 이 책이 나를 찾아왔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픽 쓰러져 잠들어 눈 떠보면 아침인" 사람들을 위해

일상 호흡에 걸맞는 철학의 지혜를 전해주는 수준으로 집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쉽게 썼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 맞게 책은 현학적 표현 없이 술술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책은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짦막짦막하게 다양한 철학자들의 책과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장자 등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되는 철학자들 외에도

헬렌 니어링, 마르셀 모스 등 생소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고민들이 다를 것이므로 모든 꼭지들이 누구에게나 다 와닿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저자가 비록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철학을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각각의 글 자체가 너무 짦아서 '이제부터 뭔가 나오려고 하나보다' 할 때 끝나는 느낌을 주는 글이 너무 많았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학자들 중 하나만 선택해서 풀어 써도 책 몇 권씩 나올 분량이라는 점은 잘 알지만

소개할 철학자의 수를 좀 줄이고 소개를 조금만 더 길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런 아쉬움들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개별 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달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잠들기 전의 찜찜함을 해결해주기에는 다소 부족한 책이었지만 그렇다고 읽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한 소개 정도라고 인지하고 접근한다면 충분히 알찬 책이다.

(적어도 어떤 철학자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아, 어떤 말을 했던 사람이구나' 정도의 아는척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현학적인 표현들이 없어서 누구나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철학이란 결국 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결국 철학자들의 조언들도 역시 '참고'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답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는 남들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춤을 추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비난에 한없이 절망한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는 결국 혼자임을 기억하라.

삶에 대한 최종 평가는 남이 아닌, 결국 자신과 신의 의해 내려진다. (pg 86)


타인의 눈에서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드는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10년쯤 지나고 나면 나는 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스스로 설정한 의미들을 잘 추구해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 자체가 워낙 다양한 주제로 쓰여 있어서 정리하기 쉽지 않았지만,

내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 몇 개를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삶의 의미는 사회를 떠나서 생각하기 어렵다.

단순히 고통을 피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는 데만 안주하는 삶은 결국 허무와 퇴폐로 이어지기 쉬운 탓이다. (pg 155)


주인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해서, 노예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고를 수 있어도, 생활의 고통과 생존의 공포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 마르쿠제 (pg 170)


지도자의 진정한 능력은 부하들이 힘도, 싸울 의지도 잃어버렸을 때 빛을 낸다. (pg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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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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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종교 행사 때는 다른 신들과 더불어 프레이야의 건강을 빌며 축배를 마시는 것이 관습이었다.

북유럽에 기독교가 들어온 뒤로 이 관습은 성모마리아나 성녀 제르투르다를 위한 건배로 변했다.

프레이야는 다른 이교의 신들과 같이 악마 또는 마녀로 규정되어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의 산봉우리로 추방되었다. (pg 215)



'신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많은 매체들에서 상상력의 기반이 되고는 한다.

특히 나처럼 만화나 게임을 좋아하면 종종 캐릭터나 무기 이름 등으로 접하게 되는데, 

북유럽 신화는 뭔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느낌이다.


그마저도 마블의 '토르'가 영화화 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 보통은 북유럽 신화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를 것이다.

마블의 광팬으로서 원작 애니메이션과 만화책까지 찾아보는 터라 영화 '토르'의 기반이 되는 신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 책의 목차와 소개를 보자마자 '이 책은 봐야겠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번 기회에 북유럽 신화 자체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었다.



일단 받아든 느낌 부터가 남다르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가 읽기도 전에 독자들을 압박한다. 

하지만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라는 책의 제목처럼 쉽게 술술 읽혀서 읽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제1신인 오딘, 프리가 순으로 서술된 후 중요 신들 위주로 서술이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에도

좋은 흐름이었다.


다만 인물들의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아서 '얘가 누구였더라' 하면서 앞 뒤를 뒤적이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는 하다.

특히나 한 신이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기도 해서 더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저스'가 우리나라에 넘어오면서 '예수'가 되었듯이

신화를 받아들이고 전승해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니 이해할만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북유럽 신화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된다.

특히 목요일이 토르의 날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화요일이 티르의 날, 수요일은 오딘의 날, 금요일은 프레이야의 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도 이 책에 등장한다.

한 욕심 많은 사람이 무엇이든 나오는 요술 맷돌을 얻었다.

그 사람은 당시에 비싼 가격에 팔렸던 소금을 만들기로 하고 배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욕심이 지나쳐 그만 맷돌을 실은 배가 침몰했고

맷돌이 계속 소금을 만들어내면서 지금 바닷물이 짜졌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 전래동화에서 봤던 내용 같은데 이 내용이 북유럽 신화 중 프레이르 신화의 한 조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영화에서 봤던 오딘, 프리가, 토르, 로키, 헤임달 같은 신 외에도

프레이르, 티르, 프레이야 등 비중이 크지만 영화에 나오지 않아 잘 몰랐던 신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끝없이 멋지기만 했던 토르가 여장을 하고 프레이야 대신 거인의 아내로 위장해 들어간다거나,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가진 오딘이 아내인 프리가에게는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영화 속 모습들과는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를 자아냈다.



이렇게 멋지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가진 신화인데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기독교식 풍습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니 아쉬움도 느껴졌다.

특히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 조각상들도 집집마다 하나씩 있었을 정도로 흔했었다는데,

우상숭배 금지 정책 때문에 모두 불태워져 이제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쉬웠다.

문화란 만들어지기는 어려워도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사실도 새삼 와닿았다.

우리나라만 봐도 이제 번거로운 김장 대신 마트에서 조금씩 사다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나.


노예 제도가 사라진 것처럼,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운 것들이지만,

그것이 패권의 이름으로 의도적, 강제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생각이 들지만, 정말 책 자체는 훌륭했다. 내가 딱 원하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 신화에 대해 어디서 아는 척 좀 하고 싶다 한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번역이 매우 깔끔하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중간중간 운문이 섞여 있어 번역이 쉽지 않았을텐데 거슬리는 부분 없이 깔끔한 느낌이었다.


목차가 신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궁금한 신의 이야기 먼저 찾아봐도 무방할 것이나,

책을 보다보면 저자가 목차에 꽤나 신경을 썼다는 것이 드러난다.

때문에 로키 부분을 빨리 보고 싶겠지만 처음부터 쭉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로키의 이야기가 꽤 후반부에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북유럽 신화와 관련된 컨텐츠들을 접하면 반가운 마음이 더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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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
김일수 외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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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만 2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어지간한 오락 영화도 관객 수 200만을 넘기기 힘든데 인문학 서적이 200만부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물론 잘 쓴 책이기는 하지만 과연, 정말 마이클 샌델이 책을 잘 써서 그만큼 팔리게 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정의에 목말라 있었고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판매량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 저마다 그리고 있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책 역시 '정의로운 사회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라는 정답을 말해주고 있지 않다.

'정의(justice)'라는 것을 정의(definition)하는 것조차도 많은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래의 명제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무언가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고,

이를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정의라는 것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총 12명의 교수들이 한 토막씩 자신의 의견들을 실은 책이다.

 

 

지금 직장에서 교수들과 함께 일할 일이 종종 있는데 교수들이야말로 정의(definition)에 목숨을 건다. (justice가 아님에 주의)

본인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인재상에 나오는 '인재'가 무엇인지를 가지고 3년씩 논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12명이 모여 책을 썼으니 '정의'에 관한 일관적인 시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다.

(게다가 12명이 각기 다른 대학 소속 교수들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각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의관을 수립해 보기에는 아주 적합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수들의 말잔치뿐인 대안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활동가들이나 언론인들의 책들이 훨씬 더 와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글 자체가 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이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 '정의'라는 것이 부재한 것은 증상인데, 이 증상의 의미와 원인, 해결책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관을 찾아나가는 좋은 지침이 되는 것이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무질서한 모습을 두고 민족성을 들먹인다.

그러나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다. -중략-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옳은 게 결국 좋은 거라는 생각이 시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한다. (pg 174)

 

책에서는 세월호 이후에 집필이 기획된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세월호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정의'를 묻는 사람들은 많았다.

착하고 법 잘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이 모두 의심받게 되었고

심지어는 역사조차도 정부에서 지정해준 역사만 옳은 역사가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베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에의 도전, 인터넷이 무한으로 쏟아내는 정보 폭격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은 이제 철학을 묻기 시작했다.

 

객관성에 대한 믿음은 '팩트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 팩트는 모든 논쟁과 모든 가치판단에 있어서 특정 의견의 진실성을 보장하고

그 의견이 다른 모든 의견을 압도하고 우위에 서도록 하는 마법의 지팡이처럼 사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팩트를 전달한다고 여겨지는 언론의 기사 한 줄, 단어 하나는 마치 성경의 문구처럼 인용된다. (pg 275)

 

언어로 표현된 모든 팩트는 언어의 편향성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로 표현된 팩트는 엄밀한 의미에서 팩트가 아니다. (중략)

진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구성물이다. 사실은 단순한 구성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구체적 실체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실을 묘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g 275)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는 것 중 진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참된가를 스스로 묻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철학을 찾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 역시 '한국사회는 이렇게만 하면 정의로워질 것이다'라고 하는 절대 명제는 제시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다. 행여나 그런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약 파는 소리만 하고 끝날 것이다.

 

정의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출발점에 새롭게 서 있는 것이고 자신의 기존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pg 31)

 

데카르트의 제1명제처럼 정의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의심할 수 없는 존재인 자신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점에서 이 책은 어떤 가이드라인을 주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의 다소 현학적인 구술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술 상 필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으나 정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12명의 교수들의 수준 높은 진단과 처방들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본다.

 

오늘날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 자식을 잃고서 깊은 절망과 시름에 잠겨 있는 이들에게조차 조롱과 무시와 폭력을 일삼는

일베충이 기승하는 나라,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pg 217)

 

우리는 이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고작해야 한 명의 유권자일뿐인 소시민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꿈이라도 꾸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아래는 사족이지만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pg 114)

 

위 글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계층에 나의 어머니가 속해 있다.

내 어머니의 이익을 우선으로 향상하는 경제정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하게 비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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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를 위한 일러스트북 - 애묘인들을 위한 귀엽고 깜찍한 고양이 드로잉북 애완동물 일러스트북
젬마 코렐 지음, 채아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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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잊는 이른바 힐링 취미들이 인기라고들 한다.

주로 색칠하기, 블록 맞추기, 퍼즐 맞추기 등등의 취미들인데 날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이전에 집사람과 함께 카페에서 컬러링 북을 함께 색칠하며 보냈던 시간이 기억난다.

시간도 잘 가고 둘만의 추억을 만들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그림을 둘이서 완성하는데 두 사람의 성향 차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오늘 소개할 책 역시 비슷한 컨셉의 그리기 책이다.

특히 고양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아내를 위해 선택한 책인데 운 좋게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비염이 심한 남편 때문에 고양이의 집사가 되는 것은 꿈도 못꾸지만 고양이는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다.

하루에도 고양이 움짤을 몇 개씩 찾아보고는 한다.

그런 아내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요렇게 생긴 책이다.

표지부터 재미나게 생긴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첫 페이지를 열면 사용법이라 하여 주절주절 쓰여 있는데 핵심은 아무 도구나 집어들고 막 그리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너무 잘 그리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사실 저자도 엄청 잘 그리는 것 같진 않아서 신뢰(?)가 간다. 

 

 

 

아래처럼 샘플들이 있고 빈 칸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백이 많이 있어서 간단한 채색 도구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

좌측 페이지 중 좌측이 내 그림, 오른쪽이 아내의 그림이다.

확실히 아내가 뭔가 더 귀여운 맛을 잘 살리는 것 같다. 

 

 

 

빈 얼굴이 잔뜩 그려져 있고 표정을 그려넣는 페이지도 있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검은색 표정은 내가, 갈색 표정은 아내가 그린 표정들이다. 

 

 

 

특히 현실적이지 않은 고양이들을 그리는 파트도 마련되어 있는데 아래에는 가상의 직업을 가진 고양이들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슈퍼히어로물 덕후인 나는 고양이로 저스티스 리그를 그려봤다.

그림이라는 것을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 그려보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그려서 나도 놀랐다;;;

아내는 역시 귀여운 녀석들을 그려 넣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맛있는 것 잔뜩 먹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지만 나와 함께 해서 그런지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기뻤다.

특별한 이벤트는 할 줄 모르지만 이 책 덕분에 기억할만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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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용이 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생소한 작가의 책을 접했다.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일은 마치 소개팅을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낯섦'이 주는 설레임이랄까...여하간 그런 느낌을 받고 싶었다.

 책 소개에 '만다라체 상 수상'이나 '할리우드가 주목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들이 관심을 끌기도 했고,

113편이라는 엄청난 양의 단편들을 묶어둔 책이라니 그 형식이 신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도전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편들의 모음이라면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접하기 전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물론 소개팅 나가면서 '아 전지현 같은 사람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못이지만, 어쨌든 내 기대와 이 책은 좀 달랐다.


조각조각의 단편들이 묶여 있는데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이야기들이 너무 짧아서 작가가 왜 이 이야기를 썼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113편이 각기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야기와 어떤 이야기는 이어지는데도 순서상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때문에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천천히 읽다보면 앞에 읽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기 쉽상이다.


작가가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들의 순서도 일부를 제외하면 그다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마치 작가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메모해 둔 공책을 출판한 것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담대하게도 '여기에 용이 있다'고 표시되었던 한 지도를 인용하면서

처음부터 천천히 읽으라는 도전장을 독자들에게 내밀고 있다.

마치 나는 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니 찾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라는 듯이 말이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도 그 상상력이 와닿을 수 있으려면 뼈대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아무리 단편이어도 독자들의 머리속에 어떤 그림이 남을 수 있어야 하는데, 책에 실린 대다수의 이야기들이 뼈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건 마치 어떤 화가가 붉은색 그림을 그려놓고 뭔지 맞춰보라고 한 뒤 못맞추면,

"이거 봉황이잖아, 상상력이 부족하네." 라고 핀잔을 주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pg 115)


위 사진은 113개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뭔가 중간에 끊긴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저게 다다.
이 책의 대부분이 위와 같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이야기인가. 사실 저런 상상 정도는 누구나 다 하지 않는가.

굉장히 좋은 이야기 거리인데 너무 뼈대만 제시해주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좋은 이야기라면 그 소재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같은 농담인데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재미가 없고, 컬투가 하면 엄청나게 웃긴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독자도 알고 있을것이라는 착각, 즉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쓴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쓴 사람이야 자신의 머릿속에는 스토리의 전후 맥락이 존재하니 이해가 갈지 모르지만 책만 보는 사람은 그것을 알리가 없다.

이를 벗어나려면 어느 정도는 배경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게 다소 부족하다.

뜬금없이 나온 등장인물이 아무런 설명 없이 다른 작품들 속을 영화 '링'처럼 왔다갔다 하는데 이를 '오 상상력 쩐다'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을 상상력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 찍어야 한다는 말인가.


상당히 혹평한 것 같지만, 113개 중 일부는 읽어봄직한 이야기들이다.

그 중 '열려있는 문'이라는 작품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도 '열려있는 문'이었는데

이 책에서 이 작품이 가장 디테일한 편이라는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시간의 길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느껴지는 시간이 상대적임을 알려주는데 문장들이 상당히 멋지다.

하지만 그 조차도 중2병 환자가 자신의 싸이월드에 남긴 글처럼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독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으나 내 개인적인 취향에서는 추천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소설 작가를 위한 아이디어 모음집 같은 느낌이랄까.

소재들의 가지를 좀 친 후 몇 가지 좋은 소재들에 충분한 살을 붙여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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