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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정의 바로 세우기
김일수 외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언제부터였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만 2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어지간한 오락 영화도 관객 수 200만을 넘기기 힘든데 인문학 서적이 200만부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물론 잘 쓴 책이기는 하지만 과연, 정말 마이클 샌델이 책을 잘 써서 그만큼 팔리게 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정의에 목말라 있었고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판매량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 저마다 그리고 있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책 역시 '정의로운 사회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라는 정답을 말해주고 있지 않다.
'정의(justice)'라는 것을 정의(definition)하는 것조차도 많은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래의 명제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무언가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고,
이를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정의라는 것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총 12명의 교수들이 한 토막씩 자신의 의견들을 실은 책이다.
지금 직장에서 교수들과 함께 일할 일이 종종 있는데 교수들이야말로 정의(definition)에 목숨을 건다. (justice가 아님에 주의)
본인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인재상에 나오는 '인재'가 무엇인지를 가지고 3년씩 논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12명이 모여 책을 썼으니 '정의'에 관한 일관적인 시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이다.
(게다가 12명이 각기 다른 대학 소속 교수들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각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의관을 수립해 보기에는 아주 적합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수들의 말잔치뿐인 대안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활동가들이나 언론인들의 책들이 훨씬 더 와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글 자체가 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이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 '정의'라는 것이 부재한 것은 증상인데, 이 증상의 의미와 원인, 해결책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관을 찾아나가는 좋은 지침이 되는 것이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무질서한 모습을 두고 민족성을 들먹인다.
그러나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다. -중략-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옳은 게 결국 좋은 거라는 생각이 시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한다. (pg 174)
책에서는 세월호 이후에 집필이 기획된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세월호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정의'를 묻는 사람들은 많았다.
착하고 법 잘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이 모두 의심받게 되었고
심지어는 역사조차도 정부에서 지정해준 역사만 옳은 역사가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베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에의 도전, 인터넷이 무한으로 쏟아내는 정보 폭격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은 이제 철학을 묻기 시작했다.
객관성에 대한 믿음은 '팩트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 팩트는 모든 논쟁과 모든 가치판단에 있어서 특정 의견의 진실성을 보장하고
그 의견이 다른 모든 의견을 압도하고 우위에 서도록 하는 마법의 지팡이처럼 사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팩트를 전달한다고 여겨지는 언론의 기사 한 줄, 단어 하나는 마치 성경의 문구처럼 인용된다. (pg 275)
언어로 표현된 모든 팩트는 언어의 편향성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로 표현된 팩트는 엄밀한 의미에서 팩트가 아니다. (중략)
진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구성물이다. 사실은 단순한 구성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구체적 실체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실을 묘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g 275)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는 것 중 진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참된가를 스스로 묻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철학을 찾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 역시 '한국사회는 이렇게만 하면 정의로워질 것이다'라고 하는 절대 명제는 제시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다. 행여나 그런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면 십중팔구는 약 파는 소리만 하고 끝날 것이다.
정의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언제나 출발점에 새롭게 서 있는 것이고 자신의 기존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pg 31)
데카르트의 제1명제처럼 정의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의심할 수 없는 존재인 자신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점에서 이 책은 어떤 가이드라인을 주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의 다소 현학적인 구술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술 상 필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으나 정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12명의 교수들의 수준 높은 진단과 처방들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본다.
오늘날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 자식을 잃고서 깊은 절망과 시름에 잠겨 있는 이들에게조차 조롱과 무시와 폭력을 일삼는
일베충이 기승하는 나라,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pg 217)
우리는 이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고작해야 한 명의 유권자일뿐인 소시민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꿈이라도 꾸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아래는 사족이지만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pg 114)
위 글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계층에 나의 어머니가 속해 있다.
내 어머니의 이익을 우선으로 향상하는 경제정의가 실현되기를 간절하게 비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