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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
H. A. 거버 지음, 김혜연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2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종교 행사 때는 다른 신들과 더불어 프레이야의 건강을 빌며 축배를 마시는 것이 관습이었다.
북유럽에 기독교가 들어온 뒤로 이 관습은 성모마리아나 성녀 제르투르다를 위한 건배로 변했다.
프레이야는 다른 이교의 신들과 같이 악마 또는 마녀로 규정되어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의 산봉우리로 추방되었다. (pg 215)
'신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많은 매체들에서 상상력의 기반이 되고는 한다.
특히 나처럼 만화나 게임을 좋아하면 종종 캐릭터나 무기 이름 등으로 접하게 되는데,
북유럽 신화는 뭔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느낌이다.
그마저도 마블의 '토르'가 영화화 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 보통은 북유럽 신화가 있다는 것도 잘 모를 것이다.
마블의 광팬으로서 원작 애니메이션과 만화책까지 찾아보는 터라 영화 '토르'의 기반이 되는 신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 책의 목차와 소개를 보자마자 '이 책은 봐야겠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번 기회에 북유럽 신화 자체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싶었다.
일단 받아든 느낌 부터가 남다르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가 읽기도 전에 독자들을 압박한다.
하지만 '재밌고도 멋진 이야기'라는 책의 제목처럼 쉽게 술술 읽혀서 읽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제1신인 오딘, 프리가 순으로 서술된 후 중요 신들 위주로 서술이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에도
좋은 흐름이었다.
다만 인물들의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아서 '얘가 누구였더라' 하면서 앞 뒤를 뒤적이는 시간이 좀 필요하기는 하다.
특히나 한 신이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기도 해서 더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저스'가 우리나라에 넘어오면서 '예수'가 되었듯이
신화를 받아들이고 전승해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니 이해할만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북유럽 신화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된다.
특히 목요일이 토르의 날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화요일이 티르의 날, 수요일은 오딘의 날, 금요일은 프레이야의 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도 이 책에 등장한다.
한 욕심 많은 사람이 무엇이든 나오는 요술 맷돌을 얻었다.
그 사람은 당시에 비싼 가격에 팔렸던 소금을 만들기로 하고 배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욕심이 지나쳐 그만 맷돌을 실은 배가 침몰했고
맷돌이 계속 소금을 만들어내면서 지금 바닷물이 짜졌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 전래동화에서 봤던 내용 같은데 이 내용이 북유럽 신화 중 프레이르 신화의 한 조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영화에서 봤던 오딘, 프리가, 토르, 로키, 헤임달 같은 신 외에도
프레이르, 티르, 프레이야 등 비중이 크지만 영화에 나오지 않아 잘 몰랐던 신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끝없이 멋지기만 했던 토르가 여장을 하고 프레이야 대신 거인의 아내로 위장해 들어간다거나,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가진 오딘이 아내인 프리가에게는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영화 속 모습들과는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를 자아냈다.
이렇게 멋지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가진 신화인데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기독교식 풍습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니 아쉬움도 느껴졌다.
특히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 조각상들도 집집마다 하나씩 있었을 정도로 흔했었다는데,
우상숭배 금지 정책 때문에 모두 불태워져 이제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쉬웠다.
문화란 만들어지기는 어려워도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사실도 새삼 와닿았다.
우리나라만 봐도 이제 번거로운 김장 대신 마트에서 조금씩 사다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나.
노예 제도가 사라진 것처럼,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운 것들이지만,
그것이 패권의 이름으로 의도적, 강제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생각이 들지만, 정말 책 자체는 훌륭했다. 내가 딱 원하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 신화에 대해 어디서 아는 척 좀 하고 싶다 한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번역이 매우 깔끔하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중간중간 운문이 섞여 있어 번역이 쉽지 않았을텐데 거슬리는 부분 없이 깔끔한 느낌이었다.
목차가 신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궁금한 신의 이야기 먼저 찾아봐도 무방할 것이나,
책을 보다보면 저자가 목차에 꽤나 신경을 썼다는 것이 드러난다.
때문에 로키 부분을 빨리 보고 싶겠지만 처음부터 쭉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로키의 이야기가 꽤 후반부에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북유럽 신화와 관련된 컨텐츠들을 접하면 반가운 마음이 더 커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