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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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가브리엘 :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에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틀린 :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에요. (pg 54)



이제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있는 프랑스 작가임을 당당히 밝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왔다. 

한국 사람들이 유독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강도 높은 제도권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고나 생활방식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도록 사회화가 되는데, 

이런 '우리'들에게는 제법 신선하게 느껴질법한 발상과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신간을 만나면 늘 새로운 기대감과 함께 주저없이 받아 드는 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매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때로는 인간보다 더 큰 존재가, 

때로는 인간보다 더 작은 존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이번 작품은 사후 세계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존재들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한국 전통신앙의 눈으로 보면 염라대왕쯤 될테고, 서양의 시각(책에서 나오기로도)으로는 천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계관은 작가의 다른 사후세계 관련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작품도 사후세계를 다루지만 절대자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천사)들이 절대자의 대리임을 자각하고는 있지만 절대자와 실제로 접촉해 본 적은 없다는 걸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이들은 죽은자가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를 심판하지 않는다.  

심판하는 곳 자체가 천국이며 심판의 대상자가 받는 가장 심한 형벌은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즉 동양의 윤회 사상과 서양의 사후 심판이 공존하는 세계라 할 수 있겠다.  


이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4명이다. 

판사(가브리엘), 검사(베르트랑), 변호사(카롤린) 그리고 윤회 여부를 심판 받을 피고(아나톨). 

피고의 삶이 윤회를 마칠 정도로 충실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며 검사는 그렇지 않음을, 변호사는 그러함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데, 

윤회를 마칠 정도로 충실한 삶이라는 것이 단순히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판의 기준이 되는 충실한 삶이란 그 이전 사람(아나톨로 태어나기 전에 죽은 사람)이 의도한 바대로 사는 삶이다. 


즉, 윤회를 할 때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하듯 성별과 국적, 장점과 단점, 가족 관계 등 어떤 삶을 살지를 세부적으로

결정하는데 이 때 너무 평온하고 윤택한 삶을 살도록 설정하면 다음에도 다시 윤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극단적인 고난과 극단적인 평온 사이를 저울질해 다음 생을 결정하는데, 

이렇게 윤회 전 자신이 결정한 삶과 얼마나 가까운 삶을 살았는지를 심판하는 것이다. 


 

(pg 128)


베르트랑 :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pg 133)


카롤린 :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외도보다 신의를, 거짓보다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예술 분야의 직업보다 진지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르트랑 : 용기보다 비겁함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안함을 택한 거죠. (중략)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죠. (pg 142)


즉 현재 우리가 공유하는 선과 악의 개념은 여기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판사인 가브리엘은 노예상인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검사 베르트랑은 살면서 한 번도 외도를 저지른 적 없는 

충실한 남편이었음을 주장하는 아나톨에게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빛을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베르트랑의 주장은 

정보가 차단된 개인(천사들이 가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식이 없는)들에게는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이나 꿈 대신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는 현상이 과연 진정으로 바람직한 일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카롤린의 주장이 설득력 없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난 '류현진이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을까'를 묻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카롤린의 주장에 더 마음이 갔다.)


형식상으로 보면 이번 작품은 소설이 아닌 희곡이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이미 연극으로 공연된 바 있다고 한다.


연극의 특성 상 장소와 등장인물, 서사의 길이가 한정되어 읽기에 부담이 없는 작품이었다. 

읽는 속도에 따라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완독할 분량이다. 

실제 공연을 염두해 둔 영향인지 결말 역시 굉장히 속도감있게 말 그대로 '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문학 작품의 감상라는 것이 어떤 작품이든 호불호가 나뉘는 영역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다만 소재의 참신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작가의 희곡은 '인간'이라는 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두 작품 모두 변호인 역할을 하는 자와 검사 역할을 하는 자의 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대립되는 두 가지 논점 모두를 균형감 있게 제시함으로써 읽은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론을 생각해보게 만드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은 구절이 있어 옮겨둔다. 


가브리엘 :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에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틀린 :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에요. (pg 54)



내용 상 중요한 구절은 아니지만 요즘 시국이 이러니 가슴에 와닿는 구절도 있었다. 


베르트랑 : 난 멍청이들을 경멸해.

카롤린 :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야.

베르트랑 : 시대를 막론해 보편적인 멍청이들이 존재하지. 그들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대부분 무자각, 게다가 전염성까지 있어. 우리를 전염시켜 버리지. (pg 39)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목사를 사칭하는 누군가와 그의 추종자들이 불현듯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이런 시국에는 역시 누군가가 소중하게 배달해준 책을 보며 집에 콕 박혀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 다른 희곡 '인간' 서평 :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21203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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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들
J.moonriver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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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깊은 구절

내가 애써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싫어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 시기를 일부러 앞당기지 않아도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기는 온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살아내야 한다. (pg 232)



소설을 거의 안읽었었는데 최근에 책 자체를 잘 안읽다 보니 소설이라도 읽자 싶어서 문학작품을 자주 접하고 있다. 

(책읽기는 내 습관 중 유일하게(?) 타인에게 얘기해도 좋을 습관인데 이게 없어지면 삶을 너무 막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짧은 소설의 모음집이라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나 이복구의 '맨밥'처럼 굉장히 즐겁게 읽었던 책도 있었지만,

'여기 용이 있다'처럼 읽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엄청 실망했던 책도 있었다.

그래서 생소한 작가의 책을 접하는 것은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듯 일정 정도의 긴장감을 갖게 된다. 

책을 덮은 후 다행히(?) 이 책은 전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어봐야 2장을 넘지 않는 분량의 이야기들이 3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에 가득 담겨 있다. 

뭔가 이렇게 소개하면 되게 잡다한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들어있을 것 같아 집중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에 상당히 잘 맞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을 살아가면서 느낄법한 소소한 정서들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

작가 소개가 자세하지 않아서 상세한 이력이나 연령대는 모르지만,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지 않은 한국인 여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각각의 작품마다 남녀노소가 바뀌기는 하지만 뭔가 인상적인 작품들은 대체로 젊은 여성 화자였다. 

특히 아래의 글은 오로지 한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g 58)


읽다보면 누가 읽어도 허구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마치 블로그에 그 날의 일기를 남긴 듯한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최근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서로 연관성 없이 나열되는 짧은 이야기들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제법 된다.

물론 소설이라 했으니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영했을 것 같진 않지만, 공통되는 주제가 별로 없는 이야기들 속에

공통된 주제를 가진 이야기들이 여러편 존재하면 그 인상이 크게 박혀서 그런 모양이다. 

(멀쩡히 살아계시다면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pg 53)


엄청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겪거나 들어봤을 법한, 

혹은 공상이라도 해봤을 법한 생각들이 꽤 많이 담겨있다. 

누구나 한번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부모를 닮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위 이야기를 읽고서는 언젠가 자다 옆을 돌아봤는데 장모님이 누워 계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집사람이 장모님과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이후로는 볼 때마다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뭔가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친숙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출퇴근 길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특히 퇴근길)

작품들의 분량이 책 제목처럼 진짜 짧은 편이라 부담이 없는 반면에, 잊고 있었던 자신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알고 있던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다만 뭔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인상적인 구절이 없는 편이라 다소 아쉬웠다.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들로 친숙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문장에 힘이 많이 안들어가서 그랬을 수 있겠다 싶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톡톡튀는 상상력이 돋보이진 않지만 뭔가 아는 지인이 '재밌는 얘기 해줄까?'라며 들려주는 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여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여하간 작가가 처음 쓴 책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어떤 글을 써가게 될지 궁금해지는 작가를 하나 더 알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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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개정증보판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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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로봇 시대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국, 진짜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작은 실마리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pg 27)



사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견학이 가능한 공장을 가보면 이미 사람보다 로봇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학 시절에 KT&G 공장 견학을 한 적이 있었는데 휴게실 정수기 종이컵 칸에 담배가 담겨 있던 것과 더불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그 큰 공장에 사람이 이렇게 적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기억도 벌써 10년 전 기억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로봇'이란 산순히 생산공정의 일부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좀 더 책 내용을 잘 표현하려면 지금 제목 대신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여하간 인간이 가진 물리적인 힘을 대체하는 로봇은 이미 널리 쓰여지고 있고, 생산직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대체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지각 능력과 판단 능력까지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내 직장(혹은 직업)은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 이후의 세대들은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까? 

이런 궁금증들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물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 TV 시장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여전히 대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국'이라고 하는 초대형 컨텐츠 메이커 시장이 작은 규모의 개인방송 시장과 실시간 스트리밍 시장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처럼 지금의 현상을 잘 분석한다고 해서 미래도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 책 역시 '앞으로 이런이런 일은 인공지능이 있어도 안전할 것이다'라는 식의 섣부른 미래 전망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했고 앞으로 이 정도까지는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하는 일 중 

이런저런 부분까지는 대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에이, 별 것 없겠네' 싶을 수 있겠지만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읽는 이로 하여금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해보게 하는

유의미한 질문들도 많이 던져주고 있다.


일례로 대학에서 월급을 받는 자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역시나 대학에 관련된 챕터였다.

IT인프라가 발달하면서 MOOC니 Flipped Learning이니 하며 대학 강의실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 추세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상당히 속도감 있게 현실화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들은 이제 싫어도 할 수 없이 온라인 강좌를 만들어 제공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대학이 갖는 존재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과연 대학이 학위를 판매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는가?

왜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며, 왜 자식들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돈을 쏟아 붓고 있는가?


물론 대학 졸업장이 갖는 서열적 의미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작가는 대학이 졸업장 장사 외에도 인간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제공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비단 강의실에서의 수업만이 아니라 동료나 선후배와의 토론, 전문 장비를 이용한 실험실습, 공동 프로젝트, 인턴십, 자원봉사, 

외국 유학 등은 실제 대학교육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 대부분의 활동과 관계가 가능해진 현실에서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실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댄 채

공동의 주제를 논의하고 모색하는 시간과 공간이 된다.


대학은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호기심 강한 동년배 집단을 강의실과 실험실, 커뮤니티를 통해서 만나게 하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이자 제도라는 특성을 지닌다. 

온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거꾸로 오프라인에서 면대면 만남과 몰입이라는 

희소해진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도 주목받는다. (pg 104)


최근 대학들에서 온라인으로 수업과 시험을 진행한 결과를 찾아보자. 

학생들은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교수자들도 학생과의 소통이 없는 정보전달은 유부브와 다를 바 없다고 불평하며,

시험에서는 각종 IT 장비를 활용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해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물론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적 성격의 온라인 캠퍼스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로봇이라는 기계가, 그것도 인공지능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지닌 채 인간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릴 때

우리 인간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로봇 시대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국, 진짜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작은 실마리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pg 27)


언어는 주소를 기억하거나 길을 찾는 것처럼 외부저장장치 또는 외부연산장치로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다.

우리에게 판단의 토대가 되어주는 모든 표현과 소통이 이뤄지는 '궁극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에게 언어는 아웃소싱할 수 없는 최후의 기능이다. (pg 85)


외뇌 시대에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외국어를 익힐 것인가라는 물음은 필연적으로 학습의 본질과 삶의 목표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어떤 기능까지 외부에 의존할 것인가.

내가 직접 배워서 몸에 지녀야 할 기능은 무엇인가. (pg 87)


사실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트렌드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에게도 느껴지기 시작하면

각 개인은 그 트렌드를 주도하는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가장 유리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둘러싼 분야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매우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공지능과는 전혀 무관한 인문사회학(특히 철학)이 최근에 다시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것이 과학자들과 입법가의 과제라면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이 각 개인에게 던지는 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특징과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pg 274)


앞으로 로봇과 인공지능은 매우 빠른 변화를 거치며 우리 삶에 녹아들 것이다. 

스스로 작곡하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 기사와 소설까지 쓰는 AI가 우리 눈 앞에 있다.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이 몇 십년 전 아이작 아시모프가 주장한 로봇 3원칙으로 간단히 정리될 리 만무하다. (물론 매우 잘 만들어진 원칙이지만)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사회학적 가치로 무장한 인간이 아닐까.


바야흐로 공학의 시대가 왔다.

기초교육으로 코딩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은 틀딱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학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학 이외의 학문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개인에게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가 서두에 한 이야기처럼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작업을 기계와 알고리즘에 위임하는 상황에서 주요하게 고려되는 작업자의 자질은 인간적인 덕목일 것이다.

사람의 노동을 로봇이 하게 되면, 우리가 사람에게 무엇을 가장 기대하는지가 드러난다.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로서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pg 161)


약 40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책이지만 총 12개의 짧은 챕터들로 나누어 서술되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번에 증보판으로 나오면서 비교적 최신 사례들도 수록하고 있어 읽기에 몰입감도 좋았다.

아주 쉬운 서술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과 성인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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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진화한 공룡 도감 너무 진화한 도감
고바야시 요시쓰구 지음, 고나현 옮김 / 사람in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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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짤 중에 이런 그림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brunch.co.kr/@sting762/431)


딸아이가 공룡지식의 고점을 찍을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 나도 공룡 이름을 제법 외우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어릴 적 한번은 외웠던 것이었을테니 다시 기억해내는 것에 가깝겠지만)


언젠가 본 육아책에서 아이가 관심있어 하는 것이 많아질 무렵 꼭 챙겨야 하는 것이 도감이라고 한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스스로 책을 찾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집 같은 걸 미리 구비해두기 보다는 관심있는 분야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갖추어가는 것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간 그래서 집으로 들이게 된 공룡 도감.

무려 '좀 더 진화한' 녀석이다.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시리즈를 찍어내는 '포켓몬스터' 시리즈 때문에 아이들이 '진화'라는 개념을 잘 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진화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화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지 단순히 포켓몬처럼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물론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진화도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기는 하겠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공룡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 


어릴 적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때는 공룡 도감에 깃털이 표현되지 않았었다. 

시조새 정도 나와야 깃털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상당 수의 공룡 그림에 깃털이 묘사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진행된 연구에서 공룡에 깃털이 있었을 수 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최신 도감으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공룡에 깃털을 표현해주기 시작했다. 
 

(pg 28~29)


아이들을 위한 책이니만큼 텍스트도 간결하고 설명도 엄청 어렵진 않다.

지금까지 인류가 공룡에 대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공룡은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지고 이렇게 살았다'라고 단정짓는 표현 대신,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럴 것으로 추측된다'라는 식으로 표현된 문구들이 많다. 


즉, 아이들에게도 지금까지 연구된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뉘앙스로 알려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깃털을 가진 공룡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나중에 자신이 읽은 것과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어릴 때에는 공룡 이름을 붙일 때 외형적 특성(뿔이 세 개라 트리케라톱스)을 주로 고려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 먹어서 다시 공룡 책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종이 발견된 장소를 기반으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위 예시도 그런 공룡 중 하나이다.)


여하간 딸아이를 보여 주기 위해 접하게 된 책인데 지금까지는 내가 더 재밌게 읽은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읽어줘야 하지만 아이가 한글을 떼면 바로 스스로 읽어도 될 정도로 쉽고 재밌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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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소중하고 예쁜 생각을 하되, 보물처럼 가슴속에 간직하면 더 좋다는 걸 배운 거죠. (pg 192)


이 작품처럼 '세계명작' 반열에 올라 있는 작품의 이름을 접할 때 흔히들 겪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분명 어릴 적 한 번 이상은 읽었던 것 같은데 막상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좀처럼 다시 읽고 싶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나에게 '빨강 머리 앤'도 그랬다. 

어릴 적 TV로 본 동명의 만화영화도 주제가는 가사까지 다 기억이 나는데 막상 만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역시 단순한 텍스트보다는 음악의 힘이 월등히 강한 것인가)

노래 가사처럼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나는 내용이었겠지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래픽노블이라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게 발간된 책이 있어 기뻤다.

더구나 소개 자료로 본 몇 장의 그림들이 너무 이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이미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니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이 작품을 그래픽노블이라는 형태로 접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풍경과 장소에도 이름을 붙이며 사랑에 빠지고 마는 앤이 어떤 곳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글로 보는 것과

예쁜 그림으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서술된 글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떠올린 풍경을 선호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림작가가 예쁘고 개성적인 그림체로 표현한 다양한 장소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예를들면 처음 마차를 타고 커스버트 남매의 집으로 가면서 보게 되는 푸르른 풍경은 밝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반면,

밤에 심부름 길에 나서면서 보게 되는 풍경은 어둡고 으슥한 느낌을 제대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더불어 계절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도록 지면을 크게 활용하여 주변 풍경을 표현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의 표현도 좋은 편이다.

만화라고 해서 등장인물들을 미화해서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어릴적 본 만화 주제가에서는 앤을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고 묘사했지만 막상 만화 속 앤은 '저 정도면 예쁘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표현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정말 그 가사에 매우 적합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주변 인물들도 단순히 외모를 개성적으로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앤을 처음 접하던 순간의 표정과 책의 후미 부분에서 앤을 바라보는 

표정들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원작 소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시점이어서 비교가 어렵지만 분량이 다소 짧다는 느낌은 들었다.

물론 그림의 비중이 큰 책이라 그럴수도 있겠으나 그림을 충분히 감상하면서 읽어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분량이었다. 

일부 장면들은 좀 더 길게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서인지 책을 덮은 후 만족감이 꽤 좋았다. 


다음부터는 사족이지만, 어릴 적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을 법한 부분들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고아를, 그것도 아직 미성년자를 단순히 먹이고 재워주면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

앤이 같은 반 친구 머리를 석판이 깨질 정도로 후려 쳤는데 아무 징계도 없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등등 

(학교에 간 자식이 뚝배기가 깨져서 왔는데 부모가 가만히 있었다고?!)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난 100년간 사람들 인식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온지 100년도 넘은 작품이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매체로 제작되고 있는걸 보면(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시대를 뛰어넘는 감성이 분명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런 작품들은 확실히 나이가 좀 들고 난 뒤에 접하면 느껴지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pg 192)


이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마릴라의 독백은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궁금한 사람은 작품을 접해보기 바란다. 

이처럼 앤이 세상을 대하는 동심 어린 시각과 앤의 성장을 바라보는 커스버트 남매의 심리 변화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들은

사실 세상의 때가 좀 묻은 눈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느껴지는 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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