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들
J.moonriver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내가 애써 죽으려고 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싫어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 시기를 일부러 앞당기지 않아도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기는 온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살아내야 한다. (pg 232)



소설을 거의 안읽었었는데 최근에 책 자체를 잘 안읽다 보니 소설이라도 읽자 싶어서 문학작품을 자주 접하고 있다. 

(책읽기는 내 습관 중 유일하게(?) 타인에게 얘기해도 좋을 습관인데 이게 없어지면 삶을 너무 막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짧은 소설의 모음집이라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나 이복구의 '맨밥'처럼 굉장히 즐겁게 읽었던 책도 있었지만,

'여기 용이 있다'처럼 읽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엄청 실망했던 책도 있었다.

그래서 생소한 작가의 책을 접하는 것은 마치 소개팅에 나가는 듯 일정 정도의 긴장감을 갖게 된다. 

책을 덮은 후 다행히(?) 이 책은 전자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어봐야 2장을 넘지 않는 분량의 이야기들이 3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에 가득 담겨 있다. 

뭔가 이렇게 소개하면 되게 잡다한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들어있을 것 같아 집중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쭉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에 상당히 잘 맞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을 살아가면서 느낄법한 소소한 정서들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

작가 소개가 자세하지 않아서 상세한 이력이나 연령대는 모르지만,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지 않은 한국인 여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각각의 작품마다 남녀노소가 바뀌기는 하지만 뭔가 인상적인 작품들은 대체로 젊은 여성 화자였다. 

특히 아래의 글은 오로지 한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g 58)


읽다보면 누가 읽어도 허구인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마치 블로그에 그 날의 일기를 남긴 듯한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최근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서로 연관성 없이 나열되는 짧은 이야기들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제법 된다.

물론 소설이라 했으니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영했을 것 같진 않지만, 공통되는 주제가 별로 없는 이야기들 속에

공통된 주제를 가진 이야기들이 여러편 존재하면 그 인상이 크게 박혀서 그런 모양이다. 

(멀쩡히 살아계시다면 작가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pg 53)


엄청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겪거나 들어봤을 법한, 

혹은 공상이라도 해봤을 법한 생각들이 꽤 많이 담겨있다. 

누구나 한번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부모를 닮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위 이야기를 읽고서는 언젠가 자다 옆을 돌아봤는데 장모님이 누워 계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집사람이 장모님과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이후로는 볼 때마다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뭔가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친숙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출퇴근 길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특히 퇴근길)

작품들의 분량이 책 제목처럼 진짜 짧은 편이라 부담이 없는 반면에, 잊고 있었던 자신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알고 있던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다만 뭔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인상적인 구절이 없는 편이라 다소 아쉬웠다. 

우리 삶과 밀접한 주제들로 친숙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문장에 힘이 많이 안들어가서 그랬을 수 있겠다 싶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톡톡튀는 상상력이 돋보이진 않지만 뭔가 아는 지인이 '재밌는 얘기 해줄까?'라며 들려주는 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여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여하간 작가가 처음 쓴 책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어떤 글을 써가게 될지 궁금해지는 작가를 하나 더 알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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