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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개정증보판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로봇 시대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국, 진짜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작은 실마리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pg 27)
사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견학이 가능한 공장을 가보면 이미 사람보다 로봇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학 시절에 KT&G 공장 견학을 한 적이 있었는데 휴게실 정수기 종이컵 칸에 담배가 담겨 있던 것과 더불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그 큰 공장에 사람이 이렇게 적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기억도 벌써 10년 전 기억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로봇'이란 산순히 생산공정의 일부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좀 더 책 내용을 잘 표현하려면 지금 제목 대신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여하간 인간이 가진 물리적인 힘을 대체하는 로봇은 이미 널리 쓰여지고 있고, 생산직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대체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지각 능력과 판단 능력까지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내 직장(혹은 직업)은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 이후의 세대들은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까?
이런 궁금증들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물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 TV 시장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여전히 대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국'이라고 하는 초대형 컨텐츠 메이커 시장이 작은 규모의 개인방송 시장과 실시간 스트리밍 시장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처럼 지금의 현상을 잘 분석한다고 해서 미래도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 책 역시 '앞으로 이런이런 일은 인공지능이 있어도 안전할 것이다'라는 식의 섣부른 미래 전망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했고 앞으로 이 정도까지는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하는 일 중
이런저런 부분까지는 대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에이, 별 것 없겠네' 싶을 수 있겠지만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읽는 이로 하여금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해보게 하는
유의미한 질문들도 많이 던져주고 있다.
일례로 대학에서 월급을 받는 자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역시나 대학에 관련된 챕터였다.
IT인프라가 발달하면서 MOOC니 Flipped Learning이니 하며 대학 강의실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 추세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상당히 속도감 있게 현실화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들은 이제 싫어도 할 수 없이 온라인 강좌를 만들어 제공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대학이 갖는 존재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과연 대학이 학위를 판매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는가?
왜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며, 왜 자식들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돈을 쏟아 붓고 있는가?
물론 대학 졸업장이 갖는 서열적 의미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작가는 대학이 졸업장 장사 외에도 인간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제공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비단 강의실에서의 수업만이 아니라 동료나 선후배와의 토론, 전문 장비를 이용한 실험실습, 공동 프로젝트, 인턴십, 자원봉사,
외국 유학 등은 실제 대학교육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 대부분의 활동과 관계가 가능해진 현실에서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실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댄 채
공동의 주제를 논의하고 모색하는 시간과 공간이 된다.
대학은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호기심 강한 동년배 집단을 강의실과 실험실, 커뮤니티를 통해서 만나게 하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이자 제도라는 특성을 지닌다.
온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거꾸로 오프라인에서 면대면 만남과 몰입이라는
희소해진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도 주목받는다. (pg 104)
최근 대학들에서 온라인으로 수업과 시험을 진행한 결과를 찾아보자.
학생들은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교수자들도 학생과의 소통이 없는 정보전달은 유부브와 다를 바 없다고 불평하며,
시험에서는 각종 IT 장비를 활용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해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물론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적 성격의 온라인 캠퍼스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로봇이라는 기계가, 그것도 인공지능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지닌 채 인간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릴 때
우리 인간들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로봇 시대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국, 진짜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로봇 시대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작은 실마리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pg 27)
언어는 주소를 기억하거나 길을 찾는 것처럼 외부저장장치 또는 외부연산장치로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다.
우리에게 판단의 토대가 되어주는 모든 표현과 소통이 이뤄지는 '궁극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에게 언어는 아웃소싱할 수 없는 최후의 기능이다. (pg 85)
외뇌 시대에 어떻게 새로운 방법으로 외국어를 익힐 것인가라는 물음은 필연적으로 학습의 본질과 삶의 목표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어떤 기능까지 외부에 의존할 것인가.
내가 직접 배워서 몸에 지녀야 할 기능은 무엇인가. (pg 87)
사실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트렌드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에게도 느껴지기 시작하면
각 개인은 그 트렌드를 주도하는 분야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가장 유리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둘러싼 분야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매우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공지능과는 전혀 무관한 인문사회학(특히 철학)이 최근에 다시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것이 과학자들과 입법가의 과제라면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이 각 개인에게 던지는 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특징과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pg 274)
앞으로 로봇과 인공지능은 매우 빠른 변화를 거치며 우리 삶에 녹아들 것이다.
스스로 작곡하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스스로 기사와 소설까지 쓰는 AI가 우리 눈 앞에 있다.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 때 과연 우리는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이 몇 십년 전 아이작 아시모프가 주장한 로봇 3원칙으로 간단히 정리될 리 만무하다. (물론 매우 잘 만들어진 원칙이지만)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사회학적 가치로 무장한 인간이 아닐까.
바야흐로 공학의 시대가 왔다.
기초교육으로 코딩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은 틀딱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학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학 이외의 학문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개인에게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가 서두에 한 이야기처럼 자신이 어떤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작업을 기계와 알고리즘에 위임하는 상황에서 주요하게 고려되는 작업자의 자질은 인간적인 덕목일 것이다.
사람의 노동을 로봇이 하게 되면, 우리가 사람에게 무엇을 가장 기대하는지가 드러난다.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동료'로서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pg 161)
약 40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책이지만 총 12개의 짧은 챕터들로 나누어 서술되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번에 증보판으로 나오면서 비교적 최신 사례들도 수록하고 있어 읽기에 몰입감도 좋았다.
아주 쉬운 서술은 아니지만, 중고등학생과 성인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