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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가브리엘 :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에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틀린 :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에요. (pg 54)
이제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있는 프랑스 작가임을 당당히 밝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왔다.
한국 사람들이 유독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강도 높은 제도권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고나 생활방식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도록 사회화가 되는데,
이런 '우리'들에게는 제법 신선하게 느껴질법한 발상과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신간을 만나면 늘 새로운 기대감과 함께 주저없이 받아 드는 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매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때로는 인간보다 더 큰 존재가,
때로는 인간보다 더 작은 존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이번 작품은 사후 세계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존재들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한국 전통신앙의 눈으로 보면 염라대왕쯤 될테고, 서양의 시각(책에서 나오기로도)으로는 천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계관은 작가의 다른 사후세계 관련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작품도 사후세계를 다루지만 절대자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천사)들이 절대자의 대리임을 자각하고는 있지만 절대자와 실제로 접촉해 본 적은 없다는 걸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이들은 죽은자가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를 심판하지 않는다.
심판하는 곳 자체가 천국이며 심판의 대상자가 받는 가장 심한 형벌은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즉 동양의 윤회 사상과 서양의 사후 심판이 공존하는 세계라 할 수 있겠다.
이 세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4명이다.
판사(가브리엘), 검사(베르트랑), 변호사(카롤린) 그리고 윤회 여부를 심판 받을 피고(아나톨).
피고의 삶이 윤회를 마칠 정도로 충실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며 검사는 그렇지 않음을, 변호사는 그러함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데,
윤회를 마칠 정도로 충실한 삶이라는 것이 단순히 '착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판의 기준이 되는 충실한 삶이란 그 이전 사람(아나톨로 태어나기 전에 죽은 사람)이 의도한 바대로 사는 삶이다.
즉, 윤회를 할 때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하듯 성별과 국적, 장점과 단점, 가족 관계 등 어떤 삶을 살지를 세부적으로
결정하는데 이 때 너무 평온하고 윤택한 삶을 살도록 설정하면 다음에도 다시 윤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극단적인 고난과 극단적인 평온 사이를 저울질해 다음 생을 결정하는데,
이렇게 윤회 전 자신이 결정한 삶과 얼마나 가까운 삶을 살았는지를 심판하는 것이다.
(pg 128)
베르트랑 :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pg 133)
카롤린 :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란 뜻입니다. 외도보다 신의를, 거짓보다 진실을 택했죠.
그리고 이 맥락의 연장선에서, 결과가 불확실한 예술 분야의 직업보다 진지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르트랑 : 용기보다 비겁함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안함을 택한 거죠. (중략)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쓰죠. (pg 142)
즉 현재 우리가 공유하는 선과 악의 개념은 여기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판사인 가브리엘은 노예상인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검사 베르트랑은 살면서 한 번도 외도를 저지른 적 없는
충실한 남편이었음을 주장하는 아나톨에게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빛을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베르트랑의 주장은
정보가 차단된 개인(천사들이 가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식이 없는)들에게는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이나 꿈 대신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는 현상이 과연 진정으로 바람직한 일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카롤린의 주장이 설득력 없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난 '류현진이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을까'를 묻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카롤린의 주장에 더 마음이 갔다.)
형식상으로 보면 이번 작품은 소설이 아닌 희곡이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이미 연극으로 공연된 바 있다고 한다.
연극의 특성 상 장소와 등장인물, 서사의 길이가 한정되어 읽기에 부담이 없는 작품이었다.
읽는 속도에 따라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완독할 분량이다.
실제 공연을 염두해 둔 영향인지 결말 역시 굉장히 속도감있게 말 그대로 '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문학 작품의 감상라는 것이 어떤 작품이든 호불호가 나뉘는 영역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다만 소재의 참신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작가의 희곡은 '인간'이라는 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두 작품 모두 변호인 역할을 하는 자와 검사 역할을 하는 자의 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대립되는 두 가지 논점 모두를 균형감 있게 제시함으로써 읽은 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론을 생각해보게 만드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은 구절이 있어 옮겨둔다.
가브리엘 :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죽는 거에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카틀린 : 그렇게 말하니까 별 매력이 없네요. 하지만 존재마다 고유한 서정성을 부여해 주는 미세한 결의 차이는 존재하죠.
케이스별로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에요. (pg 54)
내용 상 중요한 구절은 아니지만 요즘 시국이 이러니 가슴에 와닿는 구절도 있었다.
베르트랑 : 난 멍청이들을 경멸해.
카롤린 :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야.
베르트랑 : 시대를 막론해 보편적인 멍청이들이 존재하지. 그들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대부분 무자각, 게다가 전염성까지 있어. 우리를 전염시켜 버리지. (pg 39)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목사를 사칭하는 누군가와 그의 추종자들이 불현듯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이런 시국에는 역시 누군가가 소중하게 배달해준 책을 보며 집에 콕 박혀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 다른 희곡 '인간' 서평 :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212036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