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살했다 - 상처를 품고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곽경희 지음 / 센시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상깊은 구절

가족의 자살은 슬프고 아픈 일이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떠안은 고통과 슬픔을 말로 표현하고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점점 가벼워지고 마침내 떠나보낼 수 있다. (pg 95-96)


여러모로 2019년과 2020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될 해가 될 것 같다.

작년에 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녀석이 만 나이로 서른이 되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동생이 죽었지만 슬퍼할 수 없었다.
그래봐야 형은 기타친족일 뿐인데 직계비속인 자식을 잃은 부모님 앞에서 나까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직장과 일이 있었다.
신기하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덤덤한 내 모습에 놀라며 어줍잖은 위로들을 건냈다.

하지만 나라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나보다.
아니,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걸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제목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책 소개를 읽자마자 이 책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배송이 오늘 왔고, 애가 잠든 저녁 9시부터 읽기 시작해 벌써 다 읽고 서평을 남기고 있다.

이 책은 장황하게 소개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 그냥 무조건 꼭 보라고 권해주고 싶을 뿐이다. 
특히나 자살한 사람이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그리고 그 시점이 조금 지난 사람일수록 더 추천하고 싶다.

저자는 네 아이를 둔 엄마로서 배우자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상처를 많이 극복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용기도 생겼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건이 주는 충격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난 상태라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 정도는 생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사건을 막 경험한 직후에는 이런 책도 별 위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오히려 시간이 좀 지난 뒤가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소개는 이것으로 끝이다.
주변 사람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인이 있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라.
나도 분위기를 보아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될 때 부모님께 추천해줄 생각이다.


이 이후로는 자신의 상처를 책이라는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가감없이 드러낸 저자의 용기에 감동해 나의 이야기를 좀 쓰려고 한다.
내 이야기 속에 이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구절들을 인용해두었다.
가까운 극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털어놓았던, 그것도 술 기운을 빌려 횡설수설 했던 이야기들이다.
내 개인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글은 별 재미가 없을 것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건 지난 해 여름이었다.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웠고 이를 경찰이 발견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자신을 포함 우리 가족 누구와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낯선 포항의 어느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오랜시간 준비한 흔적이 보였고, 남긴 유서의 내용도 심플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만이 간략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녀석이 살던 부산 근처의 한 절에서 제사를 올린 후 재를 뿌렸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 녀석인지라 우리도 따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묘도 아무런 표시도 없이, 남은 것 하나 없게 다 태워 뿌렸다.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은 계속 많았고 처자식과 함께 사는 삶도 변함이 없었다.

연말 즈음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반복되는 일상이 점점 견딜 수 없어졌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나'와 '이렇게 열심히 살아 뭐하나' 라는 양 극단의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자식을 제외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루틴을 차지하는 직장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운이 좋게도 이전 직장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다.
직장 근처로 이사도 했다. 
셋이 살기에는 비좁았던 투룸 빌라에서 오래되긴 했지만 깨끗하게 수리된 아파트로 옮겼다.
새로 바뀐 일상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진짜 내 삶이 맞는지 가끔 의심스럽기도 하다.
부모님도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가끔 딸아이와 놀다 우시는가 하면 왁자지껄하게 한잔 기울이는 와중에도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일쑤였다.

살아 있는 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중략-
혹여라도 남편이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나를 본다면 "남편이 죽었는데도 저 여자는 잘만 돌아다니네"라며
수군댈 것 같았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저 여자는 남편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먹을 걸 사러 나왔어?"라며 욕을 할 것만 같았다. (pg 91-92) 

위에 적힌 저 감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언젠가 술에 취해 집사람에게 하소연을 했을 때 집사람이 자신도 어릴 적 아버지(장인어른)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힘들었다며,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거라며 위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병으로 가족을 잃는 것과 자살로 잃는 것은 같은 사망이라 할지라도 느낌이 매우 다르다.
일단 전자는 뭔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 
아무리 내가 교통신호를 잘 지켜도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차를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 내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로 인한 죽음은 좀 다르다.

그들은 무언가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마음으로 그 길을 갔는지 모르지만 남은 가족은 평생 그들의 죽음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이는 그들이 자살로써 내던져버린 그 짐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무겁다.
그 짐을 내려놓으려면 결국 먼저 간 그와 같은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pg 95)

나도 그랬다.
녀석에 비하면 참 순탄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부모님 말씀 적당히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해서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다.
나름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나름 예쁜 딸 아이를 낳았다.
아주 잘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운동은 결과가 좋지 못했고, 억지로 들어간 대학도 결국 스스로 그만두고 말았다.
중학생 즈음부터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자살 시도도 한 차례 있었다.
우울증 병력이 있으면 군대도 면제였지만 취업에 불리하다며 박박 우겨서 현역으로 다녀왔다. 
자기 먹고 살 건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들어가는 곳마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우울증 증상도 '이 새끼 진짜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빠졌다가도 금새 웃으며 한잔 기울일 때면 '이제 괜찮은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진짜로 가 버렸다.
나에게 생활비가 모자란다며 60만원만 꿔달라는 것이 마지막 부탁이었다.
다음 달에 꼭 주겠다는 말에 무심하게 이체만 해주고 만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러니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나도 차라리 망했어야 했나. 
나도 뭔가 실패해서 같이 좌절을 겪었어야 했나.
비트코인이라도 해서 빚이라도 왕창 졌으면 이 자식이 좀 덜 힘들었을까.
나도 동생에게 애 분유값이 모자라니 30만원만 꿔달라고 해봤으면 어땠을까.

물론 바보같은 생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걸 막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생각을 달리 함으로써 그 짐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들의 죽음에 우리는 먼지 하나 보탠 게 없다.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온전히 피해자이다. 
게다가 이때까지 느꼈던 고통으로도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
그러니 나는 그 짐을 얼마든지 내려놓아도 된다. (pg 95)

흔히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틀린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도 있지만 돌이킬 수 있는 과거도 있다.
남편이 떠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지만, 
그의 죽음을 해석하는 나의 그릇된 생각은 다시 돌이켜 좋은 생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과거이다. (pg 139)


지금은 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살아있는 소나무 옆에 죽은 소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아래와 같이 썼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해 MSG가 좀 쳐진 느낌이긴 하지만 꽤나 인상적이어서 원문 그대로 옮긴다. 

(pg 124)

맥락은 다르지만 동생을 뿌린 절의 스님이 부모님과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확한 말의 토씨 하나하나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메시지였다.
'먼저 간 자식이지만 부모 가슴에 못 박은 불효자인 것만이 아니라 먼저 감으로써 우리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된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으니 우리의 스승이 된 것이기도 하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때도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위에 인용한 저자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여하간 책을 보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게 되었다.
동생이 죽은 것을 계기로 이직할 생각을 했고 아내와 아이가 좀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이 간 후 아버지가 상속받으신 동생 집이 내 이사 날짜와 비슷하게 처분이 되었고 그 돈을 내가 이사할 때 빌릴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요즘도 가끔 술 마시면 우울해하는 나에게 동생이 보고 털어 버리라고 보내준 모양이다. 

그래서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의 결론을 내자면, 이 책이 나에게 왜 도움이 되었는가를 밝혀야 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나의 깊은 절망과 뼛속까지 사무친, 소화되지 않은 설움을 토하고 싶었는데 그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괴로움은 아예 꺼내지도 못한다.
그저 적당히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입에서 길고 지루한 잔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 (pg 229)

진짜 위 문구는 자살 유가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마 부모님도 비슷한 경험이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도 슬프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동생의 죽음이 내 삶과는 무관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사람들의 값싼 동정이나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덤덤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눈물이 나면 울고 원망하고 싶으면 욕도 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사실 동생은 법적으로 기타친족에 해당한다.
배우자를 잃고 네 명의 자녀를 홀로 키워야 하는 저자에 비하면 내 상실은 매우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 힘든 타인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해서 내 힘듦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의 위로가 없어서 더 좋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상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고 우울이 자신을 삼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자신의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자살로 가족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요즘들어 많이 느낀다. 
심지어 지금 직장에서는 누가 형제관계를 물으면 외동이라고 한다.
한번은 '전혀 외동같지 않네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외동이 된지 얼마 안됐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더 캐묻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어색해지기엔 충분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땐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눈치없이 묻는다면 이제는 그냥 덤덤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게 흉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내가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도 WAR 1
안철주 지음 / 봄봄스토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만에 만화책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독도를 두고 일본과 발생한 가상의 분쟁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표지만 봐도 국뽕 냄새가 그득한데, 국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굉장히 궁금했다. 

(스포일러성 문구들은 흐리게 처리하였다.)


표지도 그렇고 그림체도 그렇고 뭔가 요즘 만화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어릴 적 사우나 휴게실이나 이발소(미용실 아니고)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봤던 느낌의 만화책이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94년에 처음 '대국'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던 것이 최근에 다시 개정되어 나온 것이었다. 

94년이면 2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니 다소 예전 감성이라는 걸 염두해 두고 보기 시작했다.

총 15권이지만 각 권이 약간 얇은 느낌이고 내용 전개가 늘어짐 없이 시원시원해서 금새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내용도 심플하다.


배경은 90년대 말로 한국과 북한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이동하는 등 완전한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독도 근처에서 한일이 협력해 유전을 하나 개발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석유 대박이 터진다.

마침 추석 연휴여서 그 곳에 상주 중인 한국인 기술자가 1명 뿐이었던 것을 노린 일본은 기술자를 살해하고 석유를 독차지하려 한다. 

그 시도를 대한민국 해군 장교이자 정의로운 우리의 주인공이 막고자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년이 넘은 작품인지라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오글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체도 낯선 느낌이고 대사도 약간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정도 대사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항마력이 필요하다.)

 

(8권 pg 102)


또한 인물들의 설정도 특별한 반전 없이 악역은 일관적으로 악역이고 선역은 너무도 완벽하게 선역이어서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속된말로 '통수치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고구마' 같은 전개가 없고 시원시원하게 내용이 쭉쭉 전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요즘 세대들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이 고위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이 아닌

하급 장교(주인공은 대위였다가 소령으로 진급한다.)와 그를 따르는 군인들, 기업가, 기자, 그리고 시위로 들고 일어나는 다수의 시민 등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타올라라 국뽕이여!)

 

(9권 pg 81)


작품에서도 각 권 서두에서 임진왜란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임진왜란 역시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도 중요했지만

평범한 농민들이 주도한 의병 역시 큰 활약을 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큰 장면들이었다. 


또한 만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는 지금 봐도 멋진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위해 합심하는 남북의 노력이 멋지게 잘 그려져서 통일 한국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정부 들어서 북한과의 관계가 좀 개선되는 것 같다가도 최근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역시나'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들을 이 작품을 통해 미리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옛날 작품이어서 아쉬운 점들도 많다.

특히나 작품의 결말은 비교적 최근까지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나라에서 상상하기엔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국을 이유로 총구가 일본을 겨냥했을 뿐이지 군 통수권자 몰래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고위 장교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그렇게 정의로운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분쟁의 원인이 '석유'라는 점도 요즘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겠다. 

천연자원 없이 경제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사람을 갈아 넣어왔던 근현대사 때문인지 '우리도 석유로 꿀 빠는 나라가 되고 싶다'라는 

열망이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인데 여성만 존대말을 쓴다거나, 기업 총수가 계열사 사장에게 자신의 딸을 마치 하사품처럼 만나보라고 권유하는 등 

요즘 사회상에서는 제법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도 종종 눈에 띄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개정판을 낸 만큼 편집 과정에서 폰트 교체와 오탈자 검수가 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폰트가 옛날 만화책 폰트여서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데다 예전에 있었던 오타도 그대로 실려있는 것 같아 작품의 빛을 좀 가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독도 문제가 이 책이 처음 발간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하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아베가 물러나고 정권을 잡은 스가라는 인물이 과거에 독도 문제를 자주 거론했던 인물이라는 점도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괜히 일본이 혼자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 뿐이지만 그런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건

일본이 아직 이 나라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의미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외적인 부분이지만,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 사회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함에 있어서 이 책에서처럼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분 비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 불매 운동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게다가 석유 같은 지하자원 없이도 IT기술과 문화 컨텐츠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야가 많아졌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이론적으로 가장 좋은 결말이란 물론 양국이 서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협력해 가는 것일테지만 

아직까지 그 길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가 굴복할 때까지 힘의 논리로만 승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국뽕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나지만 그런 나에게도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다만 원작의 오리지널리티가 조금 변하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수정되어 다시 개정판을 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3가지 새 이야기
가와카미 가즈토.미카미 가쓰라.가와시마 다카요시 지음, 서수지 옮김, 마쓰다 유카 만화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그런데 최근 딱따구리의 뇌도 충격을 받으면 손상을 입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딱따구리의 뇌에는 타우 단백질이라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물질이 다른 새보다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는 뇌 손상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록키'같은 타고난 승부사인 모양이다. 



뼛속까지 문돌이인 난 자연과학쪽 책은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다독하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독서를 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순전히 글을 읽는 '즐거움' 때문인지라 

뭔가 재미가 없을 것만 같은 자연과학쪽 책은 손이 잘 가지 않게 된다. 

'과학'이라는 단어에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자연과학 서적도 재밌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 바로 '가와카미 가즈토' 작가의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이라는 책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조류학자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빡 주고 쓴 책도 아니고 그저 일반 대중들에게 조류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유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작가가 새로운 책을 발간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새 이야기를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네 컷 만화를 곁들여 진입장벽이 한층 더 낮아진 느낌이 들었다. 


재미난 새 이야기가 83가지나 담겨 있는데, 페이지 구성이 좌측에는 네 컷 만화가, 우측에는 해당 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이야기가 모두 만화 1페이지, 설명 1페이지로 짧게 담겨 있어서 초등학생 이상만 되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출퇴근 길에 잠깐잠깐씩 보기에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난 침대 근처에 두고 잠들기 전에 3-4개씩 짧게 읽었다.)


등장하는 새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새들이 주로 담겨 있어서 친근한 느낌이 든다.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별난 방향으로 진화했거나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새들이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면, 딱따구리는 특유의 따다다다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속도로 나무를 쪼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작은 체구로 나무에 구멍이 날 정도로 들이 받으면 머리는 멀쩡할까가 궁금했다. 

연구에 따르면 딱따구리는 뇌가 두개골에 가득 차는 구조로 진화해서 머리를 빠르게 흔들어도 뇌에 손상이 덜 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재미난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딱따구리의 뇌도 충격을 받으면 손상을 입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딱따구리의 뇌에는 타우 단백질이라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물질이 다른 새보다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는 뇌 손상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록키'같은 타고난 승부사인 모양이다. (pg 39)


그런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도 머리를 자주 부딪히면 알츠하이머가 올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역시 박치기 많이 하면 머리 돌 된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말 중에 나쁜 머리를 놀리는 말로 '새 대가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생각보다 똑똑한 새들도 많았다.

특히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까마귀는 스스로 재미를 위한 놀이를 찾아서 한다거나 소독을 위해 개미와 연기를 이용하는 등 

도구 활용 능력도 대단했다.

심지어는 불을 활용해 사냥을 하느라 산불을 내는 독수리, 매와 같은 새들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주고 그 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다는데 그 때 독수리가 불도 같이 훔쳐간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쉽게 읽히는 책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다만 서술 부분이 워낙 짧아서 그런가 내가 좋아했던 작가 특유의 빛나는 유머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만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읽었던 책에 비해 재밌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화 그린 사람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화 파트보다 글 파트가 더 재미있었다.) 


오히려 이 책이 새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더 좋았다는 느낌이다.

읽고 난 후 다양한 새들의 특이한 생태가 기억에 잘 남았다. 

그림이 있어서 새의 외형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조류는 꼭 애완동물이 아니어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공부한다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작가의 또 다른 책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의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13709248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힘들게 하는 또라이들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 알고 보면 쓸모 있는 분노 유발자의 심리학
클라우디아 호흐브룬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날개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상대가 저렇게 나쁜 짓을 하는데 왜 나만 달라져야 하냐고 묻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싫어하는 인간도 칭찬해야 하느냐고? 항상 그렇게 뒤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대답은 'NO'다. 그렇지 않다. 거짓말하거나 꼼수를 부리라는 말이 아니다.

비굴하게 굽실거리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상대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알고 대처한다면 자신의 뛰어난 사회적 지능을 만방에 알릴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사회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도 역시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감정을 가진 동물인 이상 모든 사람이 다 제각각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뭔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비속어를 그대로 책 제목에 사용해 이목을 끈다. 

역자 말로는 독일어 'Arschloch'를 '또라이'로 번역했다고 한다. (영어로 'Asshole'이라는 단어와 같은 쓰임의 단어인 것 같다.)

해당 단어의 순우리말 번역어은 영 욕처럼 들리지 않는데 또라이라고 하면 어떤 부류의 사람을 지칭하는지 확 와 닿기 때문에

역자의 단어 선택은 가히 초월 번역이라 할 만 하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는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을 유형별로 정리하여 대처방안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가 구분한 또라이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피해망상 또라이 -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는 사람
2. 자뻑이 또라이 - 자신을 너무 확신하는 사람
3. 대마왕 또라이 -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사회성 제로인 사람
4. 변덕쟁이 또라이 -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사람
5. 원칙주의자 또라이 - 말이 안 통하고 규칙을 맹신하는 사람
6. 겁쟁이 또라이 - 상처가 두려워 숨어 사는 예민한 사람
7. 우유부단 또라이 -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의존적인 사람
8. 디바 또라이 - 과장되게 행동하고 이기적인 사람
9. 괴팍이 또라이 - 자기 주관과 고집대로만 하는 사람


사람을 유형별로 구분하는 책들은 워낙에 많기 때문에 이런 접근법 자체가 엄청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책만의 특징이라면 자기 자신이 어떤 유형의 또라이 기질이 있는지 체크해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 주변에 또라이가 없다면 자신이 또라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체크를 해봐야 한다. 


책의 흐름은 먼저 저자가 구분한 9가지의 또라이 유형과 특징을 살펴본 후 자신에게는 어떤 또라이 기질이 있는지를 체크한다.

그런 뒤 각 유형과 상성이 잘 맞는 유형들을 살펴보고 다른 유형들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흐름 상 책을 처음부터 쭉 읽어도 좋지만,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먼저 체크를 해본 뒤 해당되는 부분부터 읽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앞에서 각 또라이들의 유형별 특징들을 알고나면 체크리스트를 진행할 때 정직하지 못한 응답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체크리스트를 먼저 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자신을 속이지 말자. 내가 고른 대답이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선택이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대마왕 또라이라고 결론이 날 것 같은데, 어쩌지?'와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도 테스트를 멈추지 말자. (pg 92)



나도 체크해 본 뒤 결과가 재밌어서 집사람에게도 시켜 보았다.

총 14개의 문항이 있고 각 문항에는 모두 9개의 보기가 있다. 

각 보기들은 위에서 서술한 또라이의 9가지 유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응답한 보기들이 특정 번호에 얼마나 몰려 있는지를 

체크하면 되는 방식이다.  

이 때 특정한 숫자가 10개 이상 나왔을 경우 해당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상당한 또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선택한 14개의 응답 중 7번이 10개라면 자신은 우유부단 또라이라는 의미가 된다.)

특정 번호가 6개에서 10개 내외로 나왔다면 심각한 또라이는 아니지만 해당 유형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이며, 

선택한 번호들의 쏠림이 별로 없다면 다양한 성향이 약하게 골고루 있는 편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나는 겁쟁이 성향이 4개, 원칙주의자 성향이 3개였고 나머지들은 2개 이하로 나타났다.

집사람은 원칙주의자가 6개, 디바가 3개였고 나머지들은 2개 이하로 나타났다. 

다행히 둘 다 심각한 또라이는 아니었지만, 집사람과 함께 해본 뒤 둘 다 이 체크리스트의 엄청난 정확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겁쟁이 또라이와 우유부단 또라이 역시 원칙주의자 또라이와 잘 맞는다.

원칙주의자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고, 

겁쟁이와 우유부단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결단력 부족 때문에 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 것이다. (pg 158)


겁쟁이 또라이는 누구에게나 복종하기 때문에 파트너를 찾는데 가장 어려움이 적은 유형이다.

그래도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pg 159)


집사람과 난 굉장히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렇게 드러나 버렸다.

실제로 나는 집사람이 어떤 의견을 제시할 경우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편인데 집사람에게 디바 성향도 조금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겁쟁이 또라이와 원칙주의자 또라이의 관계는 겁쟁이가 규칙을 얼마나 잘 따라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대부분 원칙주의자에게 복종하지만, 겁쟁이는 우유부단과 달리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도무지 규칙에 동의할 수 없을 때는 속에서

불만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 불만이 도를 넘으면 겁쟁이는 원칙주의자와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다른 파트너를 찾게 된다.

겁쟁이는 떠날 준비를 다 마친 뒤에야 원칙주의자에게 이별을 통고한다. (중략)

바로 이 것이 겁쟁이 특유의 진정한 또라이스러운 미학이다.

관계의 변화를 꾀하느니 차라리 파트너를 바꾸겠다! (pg 161)


집사람과 연애하던 시절 실제로 내가 저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위 구절을 보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시켜보면 상당히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용기가 없어서 직접 해보지는 못할 것 같다. (어차피 난 겁쟁이니까!)


초반에 또라이들의 유형을 소개할 때에는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나 자신을 체크해 본 뒤로는 몰입도가 크게 올라갔다.

확실히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어야 몰입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책을 접하게 될 사람들이라면 꼭 체크리스트 먼저 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김유정의 소설 문득 시리즈 4
김유정 지음 / 스피리투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에서 수능 준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김유정. 

학창시절 경험한 주입식 교육으로 작가의 이름과 함께 '봄봄', '동백꽃'과 같은 대표작의 제목은 기억에 남지만 

소설의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감자 갖다주던 점순이 뿐)

더욱이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위의 작품들 외에 어떤 작품들을 더 남겼는지까지 자세히 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책 소개에 실린 '아내'라는 작품의 일부분을 보고 더 읽고 싶어져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제목에 있는 '떡' 외에도 '봄봄', '만무방', '동백꽃'과 같은 그의 대표작은 물론이고

'아내', '따라지', '땡볕'과 같이 나에겐 좀 생소한 작품들도 함께 실려 있다. 


수능준비를 할 때 김유정을 공부하면 '해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에 걸맞게 위에 언급한 작품들에선 상당한 해학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라는 작품이 가장 읽고 싶기도 했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아내'에서는 요즘 서브컬쳐에서 흔히 쓰는 말로 '츤데레'라는 것이 있는데, 이 츤데레의 전형을 보여준다. 

외모도 별로고 밥도 많이 먹는다며 타박하지만, 가난한 자신과 함께 고생하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준 

아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오, 당신 오면 같이 먹을랴구-." 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괭이 소리로 달라붙느냐. 방에 떡 들어서는 길로 우선 넓적한 년의 궁뎅이를 발길로 퍽 들이질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 차려-."

"이눔이 왜 이래, 대릴 꺾어놀라."

하고 년이 고개를 겨우 돌리면 "나무 판 돈 뭐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하였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한 계집을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겠니. (pg 88-89)


이런 츤데레 성격의 인물들은 '봄봄'이나 '동백꽃' 등의 작품에서 해학의 맛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 츤데레 성격을 갖는 인물의 이름이 '점순이'다.)

그런 인물들의 매력이 지금 젊은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는지 다양한 2차 창작물들이 나오면서 지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면 구글에 '츤데레 점순이'를 검색해보라. 엄청나게 많은 창작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19금도 더러 있다.)

대략 100년 전에 나온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현대에까지 읽히고 또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김유정이 창조한 세계가 매력적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떡'에서도 이런 해학의 정서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굶주림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자란 어린 아이가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잔뜩 얻어먹고 탈이 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때 아이가 음식을 먹는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타인들의 태도가 마치 재미난 서커스라도 보는 듯 유쾌한 문체로 쓰여 있다. 

하지만 실상 작가는 매우 냉소적인 표정으로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읽고 나면 슬프고 섬뜩하게 다가온다. 


사실상 음식을 베푼 이들도 온전한 동정의 감정에서 나온 행동이라 보기 어렵고, 

오히려 굶주림에 지친 아이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구경거리로 소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아이를 생각해서 음식을 주었다면 적당히 먹인 후 나중에 먹으라며 남은 음식을 싸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요즘으로 시대를 바꾸어 설명하면, 어린 아이가 먹방 유투버를 하는데 구독자들이 도네를 쏘면서 '잘 먹네, 더 먹어라'하며

부추기자 금전과 칭찬(을 가장한 조롱)을 이기지 못한 아이가 결국 탈이 나 사경을 헤메는 지경까지 먹고야 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이런 해학적인 느낌이 별로 안 들었던 작품도 있었는데 바로 '생의 반려'라는 작품이다. 

검색해보니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미완성 유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는 뭔가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느낌 보다는 우울한 정서가 더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자전적 소설이므로 등장인물의 설정을 통해 작가의 실제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형의 탕진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공장에서 궂은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누나집에 얹혀 살며 

누나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내야 하는 가난한 한 남자의 무기력함이 생생히 느껴졌다. 

또한 작가의 삶에 있어서 아마도 유일한 논쟁거리로 남을 한 여인을 향한 스토커적인 집착도 관찰자 시점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김유정의 작품을 접하면서 또 하나 인상 깊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우리말의 '맛'이다. 

묘사들이 워낙 생생한데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문체, 적절한 사투리,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날 단어 등

우리말을 모국어로 쓴다는 것의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설령 처음 보는 단어라 하더라도 문장을 소리내어 읽으면 금새 무슨 뜻인지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진짜 모르는 단어들은 찾아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사이트를 알게 되어 겸사 같이 소개한다. 

(김유정 작품에 등장하는 생경한 단어들의 뜻과 원문에서의 쓰임을 같이 알려주는 사이트이다.)


http://www.kimyoujeong.org/Kimyoujeong/DictionaryList?Page=8&LinesPerPage=10&Type=0&Search=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지적한다.

문학 작품을 즐기는 방법 대신 문학 작품을 이용한 문제 풀이에만 초점을 맞추어 교육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김유정'이라는 이름을 평생토록 기억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교육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김유정의 작품들은 '먹고 사는 것'에 관계된 삶의 애환을 담고 있어서 한창 세상 무서울 줄 모르는 학창시절보다는 

사회생활을 좀 해본 뒤에 읽어보면 그 감동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펴낸 곳에서 '김유정'처럼 이름은 잘 알지만 막상 작품은 잘 모르는 작가들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찾아보니 김유정과 함께 피의 우정을 나누었던 이상의 소설집도 있어서 그 역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