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꼬미 동물병원 4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4
권용찬 지음, 이연 그림, 최영민 감수 / 서울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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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딸은 만화책을 정말 좋아한다.

처음에는 독서에 흥미를 붙이려고 사주기 시작한 건데 막상 지금은 만화책만 보는 것 같아 되려 걱정이 되고는 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만화책을 그만 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만화책을 접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용 학습 만화가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와 부모 모두 만족할 만한 시리즈 중 하나가 바로 '쪼꼬미 동물병원' 시리즈다.

제목에 충실하게 귀여운 반려동물들이 어딘가 아파서 동물 병원을 찾게 된다는 평범한(?) 내용이다.

하지만 등장하는 동물들이 참신해서 동물 정보를 습득하기에도 좋고, 동물 역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잘 일깨워 주니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도 좋은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처음 등장하는 동물부터 생소하다.

아이가 처음 읽으면서 '데구라는 동물이 있어?'라고 하길래 물고기 대구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설치류의 한 종류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인데 동료 개체에게 물려서 병원을 찾게 된 케이스였다.


(pg 30-31)


그 밖에도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던 반려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특이하게도 우울증에 걸렸다거나 외로워서 아픈 동물들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인간처럼 감정을 직접 표현할 수는 없어도 동물 역시 분명히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림체가 이전과는 조금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표지를 보니 그림 작가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귀여움이 조금 줄어들고 사실성이 증가한 느낌인데 실물 사진과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귀여운 것도 좋지만 아이들이 귀여운 그림체에 익숙해졌다가 실제 동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3권까지 독파한지라 이번 4권 역시 재미나게 읽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와줄지, 어떤 동물들을 소개해 줄지 기대되는 시리즈라 할 수 있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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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주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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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작가이며 천 편이 넘는 단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여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단편집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호흡들이 아주 짧은 편은 아니었다.

후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역시 지적하고 있듯이 이 책의 원제는 '호러' 이야기가 아닌 '테러' 이야기다.

호러 소설은 많이 들어봤어도 테러 소설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왜 굳이 익숙한 호러라는 단어 대신 테러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물론 사전에서 찾은 뜻으로 그 미묘한 뉘앙스를 깨닫기는 쉽지 않지만 작품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의도한 공포가 왜 단순한 호러가 아닌지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우리가 호러 장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생각해 보면, 주로 괴물이나 유령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해 잔인하게 인간을 도륙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이코패스 범인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헤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존재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평범한 인물들이 굉장히 평범한 장소에서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 안에서 누군가가 죽거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는 나약하면서도 잔인한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이 숨어 있었다.

이야기를 꾸며내야 한다.

겁에 질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이가 더듬거리며 어른들에게 꾸며낸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아이를 믿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얘기가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pg 169, '총기 사고' 中)

표제작인 '인형의 주인'의 주인공이 굳이 따지자면 가장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연약한 정신을 가진 자에 불과하다는 점이 오히려 이야기의 오싹함을 더한다.

이어지는 '군인'의 주인공 역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잘못이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대중의 비난과 옹호를 동시에 받게 될 때 인간의 심리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불쾌하면서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이 '군인' 편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툭 하고 던져졌을 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는 '총기 사고'와 '적도', 그물무늬비단뱀이라는 비현실적인 애완동물을 키우는 기묘한 가족이 등장하는 '빅마마', 한 미스터리 서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밀한 살인 게임 이야기인 '미스터리 주식회사'라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서스펜스라고 해야 할까, 읽으면서 묘하게 느껴지는 불쾌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역시 저자의 명성이 허투루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깨달은 것 같다.

이미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80이 넘은 작가임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들에도 눈을 돌려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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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과학 퀴즈 백과 100 - 풀수록 똑똑해지는 바이킹 어린이 퀴즈 백과 시리즈
장희서 지음, 은옥 그림 / 바이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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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딸은 책을 읽고 무언가를 알게 되면 꼭 이를 문제로 내고는 한다.

주변에서 아이 키우는 집 말들을 들어보면 요맘때 아이는 다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간단한 퀴즈로 가득한 책을 선물해 주면 아주 좋아서 난리가 나는 것은 물론 며칠에 걸쳐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그래서 '바이킹 어린이 퀴즈 백과 시리즈'들은 나오는 족족 아이에게 권해주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과학 퀴즈 백과 100 역시 재빨리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일단 책자의 크기가 작아서 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갈 때에도 챙겨 가기가 용이하다.

게다가 속지가 모두 풀 컬러인데다 문제와 해설로만 되어 있어서 아이가 중간 어디부터 펴서 읽어도 금세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알고 있으면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될만한 토막 지식들을 알차게 전해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용 서적이라고 해서 담긴 지식들이 모두 쉽지만은 않다.

아래 문제 같은 경우에는 물론 선택지 중 인체에 독소로 작용할 것 같은 물질이 하나밖에 없어서 때려 맞힐 수는 있겠으나, 주관식으로 낸다면 어른들도 쉽게 맞히기 어려운 문제일 것 같다.

우측 상단에 있는 별의 개수로 문제의 난이도를 표시하고 있어서 상대에 따라 쉬운 문제, 어려운 문제를 골라가며 낼 수 있다.

(pg 144)

위 문제의 정답은 바로 비소였다.

비소가 독이라는 사실은 알아도 비소에 아래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고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pg 146)



벌써 집에 이 시리즈가 몇 권은 되는 것 같은데 부피가 작아서 책장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물론 디자인이 비슷해서 모아두면 보기에도 예쁘다.)

별별 주제로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는 포맷의 시리즈라서 앞으로도 어떤 주제로 어떤 문제들이 나와줄지 기대되는 시리즈라 할 수 있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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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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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멸종'이라는 단어에 '찬란하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의 경제 활동이 곧 기후 위기를 낳았고 기후 위기가 여러 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멸종이라는 단어에 책임감을 느끼며 기필코 막아야 하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지구상에 다섯 번의 대멸종이 존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절멸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그리고 각각의 대멸종마다 최상위 포식자는 멸종의 길을 걷게 되는데 현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지난 다섯 차례 대멸종의 원인은 자연이었다. 당시 생명은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의 원인은 무엇인가? - 중략 -

오로지 당신들 인류의 소행이다. 그러니 해결법도 간단하다.

당신들만 변하면 된다.

(pg 111)

저자는 수 천, 수 억년 전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 이야기를 여러 존재의 시각으로 들려준다.

때로는 범고래였다가, 때로는 티라노사우루스였다가, 때로는 작은 삼엽충이었다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시간 순서대로 집필된 것도 아니다.

옴니버스 식 만화를 보는 것처럼 각각의 생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본 진화와 멸종, 또 다른 종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지난 대멸종의 계기는 지진이나 운석,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에 따른 급격한 환경 변화였다.

대멸종 이후에는 생물의 약 95%가 절멸하는데, 이때의 95%란 100마리 중에 95마리가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100종의 생물 중 5종만 살아남는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한다.

즉 그 살아남은 5종 중에서도 극소수만 살아남을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는 인간의 짧은 삶에 비추어 볼 때에 너무도 길기 때문에 그 혹독한 절멸을 겪고서도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금 태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번성하게 된다.

인간이 초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만약 인간이 절멸하게 된다 하더라도 또다시 지질학적 수준의 유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자리를 차지할 그 어떤 생물체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되돌아보며 나는 자연의 근본적 진리, 즉 진화와 변화는 필연적이며

변화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룡의 등장은 단순히 힘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들의 등장은 지속적인 지구 생태 변화의 한 부분이었다.

지배적인 조건에 잘 적응한 생물이 챔피언이다.

모든 시대에는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한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 왔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게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pg 230-231)

결국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미 지구는 지금의 온난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적도 있었고 그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물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생물의 조상들이다.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기후 위기에 우리는 '지구를 걱정한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상 지구는 이 정도의 변화쯤 우습게 버텨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과연 막을 수 있을지, 기어이 막지 못한다면 그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척추동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

가축과 인류가 늘어나자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곳이 줄어들었다.

즉 야생동물의 수와 종이 줄었을 뿐이지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의 생물량은 그대로다.

(pg 111)

참고로 "응~ 난 화성 가면 그만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은 한 인물이 떠오른다면,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화성으로의 이주는 실패로 끝날 것이라 말한다.

단기적으로 지구의 생물을 이동시킬 수야 있겠지만 지구 내부의 금속성 물질이 자전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자기장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과학자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화성으로의 이주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력과 자원이라면 지구의 문제 해결에 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지구의 입장에서는 특정 종의 멸종과 탄생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 순환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이 우리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발달, 유지, 적응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멸은 세포의 생명 주기를 조절하며, 보다 넓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pg 324)

저자가 한 유튜브에 나왔던 영상을 보고 읽게 된 책인데, 과연 그만큼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순서는 좀 지켜주었더라면 이해가 더 쉬웠을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시간 순으로 외우는 공부법에 싫증을 느낄 독자들의 시각에서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자료도 풍부하고 설명도 쉽기 때문에 중학생 이상만 되어도 누구나 읽을 수 있을 책이며 내용도 상당히 훌륭해서 널리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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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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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벌써 세 번째 접하는 저자의 책이다.

300페이지 중반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무려 열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집이다.

표지를 열면 저자의 멋진 서명과 함께 '자본주의 타파하고 지구를 지킵시다 투쟁'이라는 문구가 친필로 적혀있다.

아직 빨갱이 감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라 피 끓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지향'이라는 작품으로 다양한 '성적 지향' 중에서도 '무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여러 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쪽으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정도의 감상 이외에 서사적으로는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살짝 실망감이 찾아올 때쯤 읽게 된 두 번째 작품인 '무르무란'은 신석기 시대쯤 될 때의 인류를 상상해 본 작품으로 죽음과 죽음을 먹는 괴물이라는 판타지적인 요소와 사냥과 도구 제작, 동굴 벽화라는 현실적인 소재들이 만나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때에는 모계사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이 작품 역시 모계로 이어지는 지식과 문화의 전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저자가 페미니즘적 작품을 많이 쓰긴 하지만 그런 소재들이 서사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고 오히려 매력적인 장치로 작용하고 있어서 읽는 맛이 좋았다.

두 번째 작품부터 재미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만나게 되는 '개벽'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들이 어떤 심리로 그렇게 되는지를 짧은 이야기 안에 잘 녹여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수록작 중 가장 재미있었는데, 실제로 가족 친지 중 다단계에 빠져 큰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던 터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표제작은 성소수자라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를 사이보그라는 SF의 가장 전형적인 소재와 버무려낸 작품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날 거대 네트워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라며 온전한 사이보그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어떨까?

외로움에 굴복하기보다 그 외로움이야말로 진짜 인간을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한자리에 같이 있더라도, 심지어 신체가 접촉하고 있을 때에도

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감각을 완전하게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몸속에 갇혀있고 그것이 실존적 고립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실존적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실존적 거리 때문에, 실존적으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각자 고유하다는 것이다.

(pg 153, '작은 종말' 中)

그 밖에도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희생된 자들의 기억을 세대를 넘어 전달하는 이야기인 '증언', 군대와 감시 기술로 자유를 빼앗긴 사회에 맞서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이어가는 자매의 이야기인 '행진'이라는 작품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쉽게, 또 악랄하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에 대한 이야기인 '은둔자의 영혼', 외계인의 시각으로 지구인의 모순을 보여주는 '통역', 지식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인프라인 도서관에 대한 찬양이 돋보이는 '도서관 물귀신', 엄연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싸다'라는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낙인'까지, 모든 작품들에서 힘이 없어 당해야만 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모순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저자의 작품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단편집이어서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읽고 나면 한참 동안 여운을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저자의 단편집이 몇 권 더 있지만, 이제는 저자의 장편에도 손을 뻗을 시기가 된 것 같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아서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작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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