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주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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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작가이며 천 편이 넘는 단편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여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에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단편집이기는 하지만 작품의 호흡들이 아주 짧은 편은 아니었다.

후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역시 지적하고 있듯이 이 책의 원제는 '호러' 이야기가 아닌 '테러' 이야기다.

호러 소설은 많이 들어봤어도 테러 소설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왜 굳이 익숙한 호러라는 단어 대신 테러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을까.

물론 사전에서 찾은 뜻으로 그 미묘한 뉘앙스를 깨닫기는 쉽지 않지만 작품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의도한 공포가 왜 단순한 호러가 아닌지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우리가 호러 장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생각해 보면, 주로 괴물이나 유령 등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해 잔인하게 인간을 도륙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이코패스 범인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헤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존재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범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평범한 인물들이 굉장히 평범한 장소에서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 안에서 누군가가 죽거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는 나약하면서도 잔인한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이 숨어 있었다.

이야기를 꾸며내야 한다.

겁에 질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이가 더듬거리며 어른들에게 꾸며낸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아이를 믿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얘기가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pg 169, '총기 사고' 中)

표제작인 '인형의 주인'의 주인공이 굳이 따지자면 가장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연약한 정신을 가진 자에 불과하다는 점이 오히려 이야기의 오싹함을 더한다.

이어지는 '군인'의 주인공 역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잘못이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대중의 비난과 옹호를 동시에 받게 될 때 인간의 심리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줌으로써 불쾌하면서도 계속해서 읽게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이 '군인' 편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어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툭 하고 던져졌을 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는 '총기 사고'와 '적도', 그물무늬비단뱀이라는 비현실적인 애완동물을 키우는 기묘한 가족이 등장하는 '빅마마', 한 미스터리 서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밀한 살인 게임 이야기인 '미스터리 주식회사'라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서스펜스라고 해야 할까, 읽으면서 묘하게 느껴지는 불쾌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역시 저자의 명성이 허투루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깨달은 것 같다.

이미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80이 넘은 작가임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들에도 눈을 돌려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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