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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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나르시시스트가 쓴 것 같은 느낌의 제목이지만 실상은 양자역학에 관한 책이다.

요즘 과학 지식들을 쉬운 언어로 전해주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인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매우 친절한 언어로 양자 물리학을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태생이 문돌이인 주제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교양서들을 몇 권 읽었었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대체로 다 '쉽고 친절하다'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긴 했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도 가장 쉽고 친절한 느낌이었다.

일례로, 책을 통틀어 수식은 단 한 줄만 등장한다.

그것도 '양자역학은 행렬로 표기되기 때문에 곱셈의 순서가 중요하다'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단 한 번 등장할 뿐이다.

나머지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흐름은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 문제를 '눈에 보이는', '실험으로 가능한' 부분만을 놓고 설명하고자 했던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어서 양자의 중첩과 얽힘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 부분이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학설을 소개한 뒤 저자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학설을 설명한다.

헬골란트에서 베르나 하이젠베르크가 얻은 독창적인 통찰에 따르면,

이 이론은 우리가 보지 않을 때 물질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그 입자를 관찰하면

그 입자를 어떤 지점에서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말해줄 뿐이죠.

(pg 55)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보통의 양자역학 소개서에는 각각의 학설을 소개하고 '아직 공통적으로 합의된 학설은 없다' 정도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꺼리는 편인데 이 책은 대놓고 '나는 이 학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준다.

그래서 저자는 '다세계 해석'과 '숨은 변수 해석' 보다는 '관계론적 관점'을 지지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후의 논지에서 왜 양자역학을 관계론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대상의 속성이란 그 대상이 다른 대상에 작용하는 방식 바로 그것입니다.

대상 자체는 다른 대상에 대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일 뿐이죠.

양자론은 물리적 세계를 확정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으로 보는 대신

관계의 그물망으로 보는 시각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대상은 그 그물망의 매듭입니다.

이제는, 대상이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속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불필요하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상호작용이 없으면 속성도 없습니다.

(pg 101)

책의 제목 역시 이러한 양자론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즉 관찰하는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그런 게 어딨냐고 반박하고 싶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진짜로 그럴지 우리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상대가 죽어도 세상이 돌아갈지는 확인할 수 있지만 내가 죽어도 세상이 돌아갈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세상이 없는 나도 떠올릴 수 없다.

아무 상호작용이 없는 원자 하나가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처럼 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공기 안에, 땅 위에, 무엇인가를 섭취하고, 무엇인가와 상호작용하며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양자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양자역학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소개하는 책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 나왔기 때문에 지식적인 측면뿐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와 태도의 중요성도 꽤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많은 사실들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직관들에 반하는 내용이고 이러한 것들이 사실임을 밝혀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과 탐구가 이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자 했던, 그리고 현상을 더 잘 설명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했다.

과학적 사고는 이미 얻은 확실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고이며, 그 힘은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더 유효한 설명을 찾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에 다시 물음을 던지고 모든 것을 다시 뒤집어엎는 능력이죠.

(pg 94-95)

과학은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

진리의 담지자 같은 것은 없다는 자각 위에 놓여 있습니다.

배움의 가장 좋은 길은,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발견한 것에 맞춰

자신의 정신적 틀을 재조정하면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입니다. - 중략 -

우리의 지식 자체도 수많은 자연적 과정 중의 하나이며

자연의 일부로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g 164)

저는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확실성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에 대한 탐구는 확실성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의 근본적인 부재를 먹고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날카롭게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의심에 마음을 열고 더욱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pg 182)

분량도 200페이지가 조금 넘어 부담이 없고 문체도 친절하게 존댓말로 되어 있어서 술술 읽히는 맛이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정보적인 측면에서 다른 양자역학 교양서들보다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역학 관련 책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나마 거부감 없이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들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은 후 약간 더 어려운 양자역학 책을 더 읽는다면 개념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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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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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라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이라는 소개에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된 작품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같은 책인지라 읽기 전부터 심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지만 장담컨대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작품이라 확신한다.

배경이 1830년의 미국이고 고전 소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체로 되어 있어서 꽤 오래된 작품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2006년에 나온 나름 젊은(?) 작품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한 생도가 죽은 채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시체가 한 번 사라졌다가 심장이 도려내진 채 다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전직 경찰인 '거스 랜도'가 파헤치는 작품이다.

그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는 사관학교 1학년생으로 등장하는데 랜도가 그의 비범함을 발견하여 사건 해결의 조수로 활약하게 된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지만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독자들에게 트릭이나 동기에 대한 힌트를 주어 추적하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범죄 스릴러 정도로 분류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약점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끔 힘겨울 때도 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부패는 그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약점. 강점으로 그걸 감추려는 시도.

(pg 563)

서술상 특이점이라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고전 소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토리 상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장면 중에서 한 구절을 예로 들면, 일반적인 현대 소설에서라면 '식당에 도착했지만 배고픈 병사들은 자신의 식사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도로 서술했을 구절을 아래와 같이 풀어쓰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렇게 장황한 서술이 읽으면서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각 인물들의 대화 역시 오래된 문학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대사들이어서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유니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어지는 서술 때문에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책이 다소 두꺼워 보이지만 막상 진행되는 사건 자체는 그리 많지 않고 계속해서 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정보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배경이 1800년대라서 지금처럼 과학적인 수사 방식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탐방과 인터뷰에 의존하며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 해결의 호흡은 다소 더딘 편이다.

제목처럼 옅은 푸른 눈을 가진 유력한 용의자가 작품의 중반쯤 등장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는 것에는 계속해서 실패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이 한순간에 훅 밝혀지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꽤나 충격적인 반전도 있어서 반전 있는 결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끝까지 읽은 후 꽤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반전이 있다는 말조차도 스포일러라서 조심스럽지만)

내가 늘 주장하던 바였잖니?

우리는 가게와 같아서 문을 닫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심지어 그 앞 길거리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pg 660)

이미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며 게다가 주연 배우가 무려 크리스찬 베일이다.

작품이 꽤 재미가 있었기에 주말을 맞아 바로 영화로도 봤다.

다 본 소감은 다소 복잡한데, 일단 소설에 비해 확실히 영상인지라 결말의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복선이 훨씬 더 직관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책으로 읽을 때에는 호흡이 길기도 하거니와 두 번 읽지 않으면 이 장면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영화로는 대놓고 이 부분이 복선이라는 것을 꽤 많이 보여주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결말을 알고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원작에 충실하게 영상화를 잘 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영상으로는 본 작품이 가진 고전 소설 같은 매력을 느끼기는 다소 어려웠고 많은 극적인 부분들도 생략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평점이 넷플릭스 영화 치고는 꽤 높은 편인 것을 보면 작품을 읽지 않고 볼 때의 재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반대의 순서로 접했지만 영화를 먼저 본 후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독특한 사건이 독특한 서술 방식을 만나 독특한 결말을 보여주는 굉장히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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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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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분야의 책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최근에 읽었던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이 이 책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 역시 '분류학'과 '분류학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를 동경해왔는데, 그의 삶을 공부하다 보니 과학자와 스텐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라는 화려한 업적 뒤에 숨겨진 어두운 측면도 알게 된다.

그의 양면성을 긴 호흡으로 보여주고 그와 자신의 삶을 교차시켜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까지도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가 어릴 적 그를 동경하게 된 계기는 그가 30년간 수집한 엄청난 양의 표본들이 지진으로 모두 부서지고 말았을 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물고기의 이름을 바늘로 꿰어 붙였다는 일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일화가 저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과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가 어릴 적 저자에게 해준 말 때문이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pg 54)

과학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진리를 이야기해 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린아이였던 저자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빠 T발 C야?!)

이후로도 소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등 이런저런 굴곡들이 겹치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헤매던 중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대체 그는 어떻게 그 엄청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묵묵히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저자의 탐색은 뜻밖에도 그의 어두운 측면에도 도달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도 '부적격' 인간들을 색출해 강제로 불임 수술을 하게 하는 등 우생학에 기반한 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을 초대 총장으로 만들어 준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 제인 스텐퍼드의 의문의 죽음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진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라 간주하는 그 사고방식,

우리가 초등학생에게 나치, 다른 사람들,

나쁜 놈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그 악행,

그것을 세계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삼은 나라가 바로 우리였다.

(pg 213)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저자는 반대로 그 정책의 피해자들(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은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그 인터뷰 끝에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즉 이 세계의 진화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고 그중에 하나인 우리도 다양성을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우리 모두가 독특한 하나의 개체로서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pg 228)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생전에 저지른 수많은 과오가 바로잡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후에도 분에 넘칠 정도의 인정과 존경을 받던 그였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책의 제목인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게 된 이유'에 주목한다.

데이비드가 평생을 걸쳐 이룩한 '물고기'라는 종이 최근 연구에서 '어류'라는 단일 종으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미 천수와 부귀영화를 누리다 간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후에 평생의 업적이 부정당하고 이 책이 출간된 후 나름의 재인식 운동도 일어났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그저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어류'라는 분류가 의미를 상실했다 정도로만 요약하고 있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최근에 국내에도 소개된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g 242)

사실상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먹이와 천적 정도만 구분할 뿐 그 이상의 구분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를 나누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어떻게든 구분하려 한다.

어쩌면 인간이 이 정도의 문명을 이루고 생태계의 지배적인 종이 된 이유도 이런 '구분하는' 능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구분 능력이 너무도 지나치기 때문에 지금처럼 같은 인간 종 안에서도 서로 차별하고 싸우는 모습이 끊이질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pg 262)

자연과학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저자의 인생 에세이라고도 볼 수 있을 책이다.

저자의 어린 시절 성장 이야기부터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자기 고백이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지식적인 부분을 나열하는 일반적인 자연과학 책에 비해 가독성도 좋고 다 읽은 후 여운도 많이 남는 것 같았다.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생각보다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지만 왜 인기가 있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견이지만 정보적인 측면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자연에 이름 붙이기'가 더 알차게 느껴졌던 것 같아서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그 책도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서평: https://blog.naver.com/rssun_books/22324086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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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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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한동안 그 작가의 작품만 쭉 읽게 되는데 이 작가도 그럴 모양이다.

알게 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세 권째 읽게 되었다.

이전에 읽은 작품들이 모두 단편집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다룬 장편이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몇몇 여성들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시대적 배경이 두 지점인데 이 시대적 구분을 언급하려면 작품의 세계관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체를 분해할 수 있는 실험 물질이었던 '더스트'라는 물질이 사고로 대기에 퍼지게 되는데 스스로 증식까지 하는 물질이라 지표면의 유기체들은 거의 절멸에 이른다.

모든 바이러스가 그렇듯 이 물질에도 자연적으로 내성이 있는 개체들이 있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과 돔 형태의 대피소를 만들어 살아가는 이들이 힘겨운 생존 투쟁을 이어 나간다.

이 절멸의 시기를 이겨내고 세계 복원이 진행 중인 시기의 한 식물 연구자가 '모스바나'라는 의문의 식물을 연구하면서 과거의 암울했던 시기를 버티고 생존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과 모스바나라는 식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둘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밝혀가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과학적인 실험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져 디스토피아가 오는 세계는 사실 식상할 정도로 많이 다루어진 내용이지만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식물이 이야기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 심지어는 로봇이나 기계처럼 일단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 중심이 되는 경우는 너무도 흔한데 정적인 것으로 인지되는 식물이 서사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꽤 참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래의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꽤 논리적인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피리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pg 365)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다루는 여타 작품들처럼 이 작품에서도 배신과 갈등이 반복되고 그 와중에도 피어나는 인류애와 희망이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절망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이미 그 절망을 극복한 세계가 작중에서 이미 제시되기 때문에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보다는 조금만 더 버텨내면 좋겠다 싶은 안타까움의 정서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또한 미증유의 위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난이 모두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는 과거로 묻어버리고 새로운 삶에 금새 익숙해져버리는 인간의 특징도 잘 보여준 것 같다.

지나간 것에 집착하는, 당장 중요한 현실의 문제는 돌아보지 않는 한심한 행태.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아영은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오랫동안 원해왔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pg 82)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어떻게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생물 유전자 조작은 어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등 SF에서 단골로 다룰만한 질문들도 큰 무리 없이 잘 녹여낸 것 같다.

다만 저자의 강박에 가까운 여성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단편집을 읽을 때에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는데 장편으로 호흡이 길어지니 읽는 내내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의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더스트의 내성이 성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도 아닐 텐데 내성종들의 공동체가 전부 여성이라는 설정은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소소한 아쉬움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저자의 첫 장편이라고 하는데 스토리를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는 능력도 탁월한 것 같다.

다만 성별에 대한 강박만 조금 버려주면 어떨까 싶다.

이미 영상화 계약이 완료된 작품이라고 본 것 같은데 원작을 그대로 살린다면 아역부터 노인까지 여배우들만 바글바글하게 나와야 할 테니 PC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도 된다.

물론 요즘 세상이 원하는 게 그런 방향이라면, 또 결과적으로 잘 팔리고 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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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김영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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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노오오오력'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처음 접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재미 삼아 검색해 보니 이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2015년경이었다.

일반적인 신조어들이 뉴스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터넷에 퍼지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에 '노오오오력'이라는 단어가 퍼진 것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는 의미다.

이 단어는 당연히 노력을 강조(혹은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 역시 제목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력 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책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믿음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결과들의 대부분은 '노력' 조차도 '능력'의 일부라고 말한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노력은 자기조절 능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끈질기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열심히 하는 것이 노력이고,

이것은 타고난 능력이고 재능이다.

사실 노력도 능력이라는 말 자체는 여러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다뤘던 내용인지라 그리 새롭지는 않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작정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화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노력'의 신화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가진 특유의 경쟁적인 구조를 꼽는다.

사실상 모두가 노력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런 구조는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노력 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는 모두에게 마이너스라는 주장을 펼친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는 대부분 경쟁을 기초로 한다.

모든 합격과 불합격은 경쟁을 기초로 설계되어 있고,

누군가가 합격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불합격하는 구조다. - 중략 -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실력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불합격한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라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는 타고난 재능과 환경이라는 '운' 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작용한다.

노력 역시 재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재능과 환경이 적절한 시기를 만나면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재능이 사회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지도 시대마다, 국가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따라서 저자는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신분제도는 100퍼센트 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능력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왠지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 사는 사람은 더욱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그것도 똑같은 운일 뿐인데 말이다.

그럼 뭐 어쩌라는 말인가?

그냥 태어났으니 태어난 대로 살자는 의미일까?

물론 저자 역시 그런 결론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노력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공했다고 으스댈 것도, 실패했다고 자신의 노력 부족을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또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노력했으나 실패가 반복될 경우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사회에 기대되는 기회의 수준이나 범위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저자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재능이 아닌 분야에 계속된 노력을 퍼붓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안타까워할 것도 없고, 비난할 것도 없고, 충고할 필요도 없다.

일차적으로는 내게 주어진 재능과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어진 것을 내버려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차적으로는 그것의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

이것은 의무이자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을 나와 같이 존귀하고 존엄한 친구로 대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노력'이라는 단순한 원인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사회의 책임을 보다 강하게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사람들이 가지는 터무니없는 수준의 부가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인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는 정책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에서 개인도 깨어나야 하지만 그러한 개인들의 모임인 사회적 차원에서도 이제는 반성적인 시각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이전에 읽었던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기 때문에 주장하는 바도 비슷했다.

저자 역시 해당 책을 상당 부분에서 인용하고 있는 만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굳이 이 책을 추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마이클 샌델의 책보다 이 책이 월등히 쉽고(분량도 짧다!) 한국 사례 위주라서 이해도 더 잘 되기 때문에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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