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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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라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이라는 소개에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된 작품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같은 책인지라 읽기 전부터 심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지만 장담컨대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작품이라 확신한다.

배경이 1830년의 미국이고 고전 소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체로 되어 있어서 꽤 오래된 작품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2006년에 나온 나름 젊은(?) 작품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한 생도가 죽은 채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시체가 한 번 사라졌다가 심장이 도려내진 채 다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전직 경찰인 '거스 랜도'가 파헤치는 작품이다.

그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는 사관학교 1학년생으로 등장하는데 랜도가 그의 비범함을 발견하여 사건 해결의 조수로 활약하게 된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지만 추리소설이라 하기에는 독자들에게 트릭이나 동기에 대한 힌트를 주어 추적하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범죄 스릴러 정도로 분류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약점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끔 힘겨울 때도 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부패는 그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약점. 강점으로 그걸 감추려는 시도.

(pg 563)

서술상 특이점이라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고전 소설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문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토리 상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장면 중에서 한 구절을 예로 들면, 일반적인 현대 소설에서라면 '식당에 도착했지만 배고픈 병사들은 자신의 식사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도로 서술했을 구절을 아래와 같이 풀어쓰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렇게 장황한 서술이 읽으면서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각 인물들의 대화 역시 오래된 문학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대사들이어서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유니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어지는 서술 때문에 전개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책이 다소 두꺼워 보이지만 막상 진행되는 사건 자체는 그리 많지 않고 계속해서 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정보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배경이 1800년대라서 지금처럼 과학적인 수사 방식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탐방과 인터뷰에 의존하며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 해결의 호흡은 다소 더딘 편이다.

제목처럼 옅은 푸른 눈을 가진 유력한 용의자가 작품의 중반쯤 등장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는 것에는 계속해서 실패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이 한순간에 훅 밝혀지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꽤나 충격적인 반전도 있어서 반전 있는 결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끝까지 읽은 후 꽤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반전이 있다는 말조차도 스포일러라서 조심스럽지만)

내가 늘 주장하던 바였잖니?

우리는 가게와 같아서 문을 닫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심지어 그 앞 길거리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pg 660)

이미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며 게다가 주연 배우가 무려 크리스찬 베일이다.

작품이 꽤 재미가 있었기에 주말을 맞아 바로 영화로도 봤다.

다 본 소감은 다소 복잡한데, 일단 소설에 비해 확실히 영상인지라 결말의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복선이 훨씬 더 직관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책으로 읽을 때에는 호흡이 길기도 하거니와 두 번 읽지 않으면 이 장면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영화로는 대놓고 이 부분이 복선이라는 것을 꽤 많이 보여주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결말을 알고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원작에 충실하게 영상화를 잘 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영상으로는 본 작품이 가진 고전 소설 같은 매력을 느끼기는 다소 어려웠고 많은 극적인 부분들도 생략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평점이 넷플릭스 영화 치고는 꽤 높은 편인 것을 보면 작품을 읽지 않고 볼 때의 재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반대의 순서로 접했지만 영화를 먼저 본 후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간 독특한 사건이 독특한 서술 방식을 만나 독특한 결말을 보여주는 굉장히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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