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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출간된 공상비과학대전의 후속작. 

국내 번역본으로는 후속작이지만 원래는 작가가 이 책을 가장 먼저 냈다고 한다. 

원서는 공상과학독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으며 1996년 출간되었다. 

특촬물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공상과학세계의 설정과 기술, 법칙을 

현재의 과학으로 구현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를 따져보는 책인데,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 진지하게 파고드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질량보존법칙을 따져 히어로들의 현실적인 변신 방법을 강구하고(변신 슈트는 어디서 나오는가?) 

울트라맨과 괴수들이 빔을 쏘거나 불을 내뿜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세세하게 따져보는 과정이 피식피식 웃음을 유발한다. 

과학을 들이댄 아무말 대잔치 같기도 한데 

그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진지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 


하지만, 공상비과학대전 1편과 비교하면 왠지 모르게 재미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고 

내부 이미지가 흑백인 것도 아쉽기는 하다(1편은 올컬러였다). 

번역자의 역주를 보면 물리, 화학 영역에서 상당한 전문성이 보이는데 어투는 좀 아쉽다. 

역자가 저자의 글에 나타난 오류를 가볍게 짚어주고 보완해주는 데서 끝내면 좋을 텐데 

자꾸 딴지를 거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오류임을 모른 채 저자의 흐름대로 넘어갔다면 더 스무스하고  

재미있게 글이 읽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식적인 면에서는 보완이 됐고 특히 마지막 파트인 배리어 부분의 기나긴 역주는 꽤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1권보다 역자가 본인 목소리를 많이 낸 것이 재미를 떨어뜨린 요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책은 아무 생각없이 낄낄거리며 보는 게 제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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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농구선수 오스카 로버트슨의 이야기를 통해 20세기 중반의 흑인 차별 문제를 다룬 책. 

미국 인디애나주의 애틱스 고등학교 농구부가 당시 만연했던 흑백 차별 문제를 

이겨내고 최고의 농구팀으로 올라서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과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부수적인 자료가 많이 실렸고 

편집과 종이질, 전반적인 책의 느낌까지 다 훌륭한데...

정말 안타깝게도 내 기준으로는 읽기 편한 글이 아니었다.  

NBA 최초의 시즌 트리플 더블 달성자인 오스카 로버트슨의 성장기를 

담은 책이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농구를 소재로 삼은 만큼 

어떻게든 읽어보려 했으나 결국 독서는 멈춰버렸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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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속에 나는 사장입니다.

머리 속에 나는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나는 게이머입니다."


모든 이의 행복을 바랐던 사장이자 개발자이자 게이머 이와타 사토루. 

비록 세상을 떠난 뒤에 책으로 접하는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정말 따뜻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확고한 업무 철학과 논리적인 사고력, 세상 만사에 호기심을 갖는 독특한 성격은 한때 위기에 빠졌던 닌텐도를 일으켜 세우고 게임업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가 게임을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면서 떠올린 생각을 담은 책이지만 

다른 업종에 있는 사람이 보더라도 '일을 잘하려면 이래야지!' 하며 공감할 부분이 많다. 

사실 게임 개발이라든지 프로그래밍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 사장이라는 것은 그 전에도 알았던 것 같으나 

어떤 사람인지 안 것은 이미 그가 세상을 뜬 다음이었는데 

관련 일화를 접하면 접할수록 정말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만에 페이지를 쭉쭉 넘겨가며 단번에 다 읽어서 

'역시 재미있는 책은 잘 읽히는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했고 

(요새 보는 책들이 영 안 읽히는 건 진짜 재미가 없어서였구나... 라는 생각도) 

'일에는 열정을, 마음은 따뜻하게' 이런 마음가짐이 남았다. 

다시 읽어봐야지.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는 ‘보스가 나의 일을 제대로 알아주는 회사‘이거나 ‘보스가 나의 행복을 제대로 생각해주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 P026

‘이 일은 내가 하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좋은지 싫은지 따지지 않고 바로 각오를 다집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내가 매진해온 일에 관한 한은 내가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셈이지요. 적어도 그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내가 반드시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 P078

나는 다른 사람이 기뻐해주면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합니다. 이것은 고객일 수도, 동료일 수도, 일의 발주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행복이 나의 에너지입니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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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31 16: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책 전설의 닌텐도를 성공시킨 그분!!

게임보이에서 CEo로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
미리보기로만 읽었는데 술술 읽힐정도네요 장바구니로 주섬 !주섬 ㅎㅎ
상사와 부하가 아닌 친구!
일본의 기업 문화에서 진정 이분은 매우 희귀한,,,
슈퍼 마리오 였네요 ^ㅅ^

JK 2021-06-01 00:35   좋아요 1 | URL
진짜 스콧님 말씀대로 이와타 사토루가 슈퍼마리오였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한 책이네요.
완전 강추!
 
이와타씨에게 묻다 - 닌텐도 부활의 아이콘
호보닛칸이토이신문 엮음, 오연정 옮김 / 이콘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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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고 순식간에 다 읽었다. 90년대 말에 시작된 차세대기 경쟁에서 비틀대던 닌텐도를 다시 일으켜 세운 훌륭한 CEO이자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이와타 사토루라는 사람을 잘 보여주는 책. 이런 인물이 세상을 일찍 떠났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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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인생과 그가 거둔 무수한 실패 및 성공을 기록한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평전의 제16장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떠난 뒤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 시절 초기에 조던의 훈련 태도와 습관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고 인생 친구인 조지 콜러와의 만남도 짤막하게 소개된다. 

조지 콜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인 택시 기사와 마이클 조던의 인연 이야기는 순 뻥이다. 조던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 잡을 돈이 없었는데 한국인 기사가 도와줬다더라... 하는 그런 스토리인데, 그때 조던은 불스와 연봉 계약을 이미 한 상태였고 집에 재산이 많지는 않아도 빈곤한 수준은 아니었다. 택시비가 없어서 어쩌구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기사도 한국인이 아니다. 아래 글에서도 나오지만 조던이 시카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조지 콜러라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미국인인 리무진 기사다. 성이 Koehler인 걸 보면 독일계일 수는 있겠다. 

조던에 관한 가짜 뉴스랄까, 인터넷에 떠도는 순도 100% 뻥인 이야기를 하나 더 짚자면 조던이 어릴 적에 헌옷을 주워 팔면서 깨달음을 얻었느니 하는 것이 있다. 


"그는 흑인이었고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나 

그리고 여동생 한 명이 있었다.

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어려웠다. 

그는 가난과 멸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래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일이 없을 때면 그는 낮은 처마 밑에 앉아

조용히 먼 산 위의 석양을 바라봤다.

조용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이하 생략)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마이클 조던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살던 곳이 빈민가는 결코 아니었고 출생 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윌밍턴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용이 틀렸다. 게다가 조던의 아버지는 공군 제대 후에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은행원이었다. 형제가 다섯이니 생활이 좀 빠듯할 순 있었겠지만 누가 봐도 그 시절 미국의 번듯한 중산층 집안이었기 때문에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이야기 후반에 조던이 헌옷을 팔아서 점점 그 가치를 올렸네 어쩌네 하는데 어린 시절의 마이클 조던은 애초에 일하기를 극히 싫어하는 아이였다. 가령 형들이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돈을 벌 때 조던은 방 청소도 하기 싫어서 동생이나 동네 아이들한테 용돈을 주고 청소를 대신 시킬 정도였다. 아무튼 저 가난한 조던 스토리가 인터넷 여기저기 퍼져 있는데 마이클 조던의 성공 비결이라며 끼워맞춘 거짓말에 속지 마시길 바란다. 조던의 고교 시절 1군 탈락 스토리도 잘못 알려진 경우가 꽤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올려볼 생각. 


아래 글은 책 제16장의 일부 내용.


제16장 첫인상


조던은 8월 말에 고향으로 돌아와 그간의 공로를 축하받았다. 행사 장소는 올림픽 대회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금메달을 공식 수여했던 윌밍턴의 탈리안 홀이었다. 레이니 고등학교는 이날 그의 유니폼 번호였던 2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한 달 뒤 조던은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하고자 시카고로 향했다. 


그는 UNC 타르힐스 소속으로 경험한 삶과 시카고 불스 선수로서 보낼 삶이 분명히 다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감독의 지도 방식부터 달랐다. 그는 이제 딘 스미스나 밥 나이트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었다. 불스 선수단은 당시 만 44세로 NBA 감독 가운데 젊은 편이었던 케빈 로거리의 지휘를 따랐다. 왕년에 볼티모어 불리츠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무모하고 투박했던 1960~70년대 프로 농구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강한 브루클린 억양과 한쪽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는 모습은 그의 유쾌한 농구 철학과도 잘 어울렸다. 


불스의 트레이너였던 마크 파일은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케빈은 완전 옛날 스타일이었어요. 당시 리그에는 70년대처럼 노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었거든요. 다들 시합 날이면 경기장에 와서 할 일을 하고, 그다음엔 모여서 술 마시며 시간 보내는 게 주였죠.” 


빌 클린턴을 살짝 닮은 것 같은 케빈 로거리. 마이애미 히트 감독 시절.


로거리는 직감을 중요시했다. 그는 선수로서 12년간 평균 15.3득점을 기록할 만큼 실력이 좋았다. 조던은 새 감독이 마음에 쏙 들었다. ABA에서 줄리어스 어빙을 지도하며 뉴욕 네츠를 두 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경력 때문이었다. 로거리는 선수 시절에 1965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LA 레이커스의 전설인 제리 웨스트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웨스트는 다섯 경기 평균 46.3득점을 올려 컨퍼런스 결승 신기록을 세웠다. 로거리는 웨스트와 어빙을 겪어본 후, 재능이 특출한 선수에게는 별다른 지시가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불스의 신예 스타는 경기 중에 마음껏 공을 잡을 수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조던은 자기가 거쳤던 감독 가운데 로거리가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로거리 감독님은 저더러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셨어요. 루키 시즌에 감독님이 공을 던져주면서 이러셨죠. ‘어이 신입, 너 농구깨나 하잖아? 나가서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 아마 다른 감독님들 밑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했을 거예요.”



코트에 선 조던은 고교 시절로 돌아간 듯 공격적이고 화려한 고공 농구를 선보였다. 물론 그때보다 체격은 더 크고 단단했으며 기술은 훨씬 정교했다. 이제 그는 능력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조던은 프로 첫해에 만난 감독 덕분에 농구 선수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신감을 얻었다. 로거리는 특정한 틀을 주입하지 않고 조던 스스로 가장 적합한 플레이 방식을 깨우치게 했다. 그는 조던의 거대한 열망을 이해했고 본인의 역할이 그것을 채워주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딘 스미스와 밥 나이트의 시스템에 줄곧 갇혀 있던 조던에게 제 능력을 발견할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그런 재량을 발휘한 데는 로드 쏜 단장의 도움도 있었다. 과거에 뉴욕 네츠의 코치로서 로거리를 보좌했던 쏜은 그의 지도 방식을 철저히 신뢰했다. 


조던이 불스에서 빨리 자리를 잡는 데는 로거리와의 친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하고 전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에요.”


선수 시절에 조던처럼 가드 포지션을 맡았던 로거리는 갓 프로에 입단한 그가 어떤 문제에 부딪힐지 예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팀원들이었다. 조던은 젊고 의욕 넘치는 동료로 가득했던 UNC 시절과 다르게 냉소에 찌든 선배들과 함께 뛰어야 했다. 개중에는 술과 마약에 빠진 이들도 있었는데, 그 중심에 선 것은 퀸틴 데일리였다. 그는 유능한 가드였지만 조던이 시카고에 오기 훨씬 전부터 문제아로 명성이 자자했다.


“퀸틴이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었어요.” 마크 파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참 불쌍한 친구죠. 구단에서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면 내쫓겠다고 겁을 줬지만 그 녀석은 눈도 깜짝 안 하더군요. 도리어 ‘그러다 길바닥에 나앉을 거라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 길바닥이야. 난 거기서 살아남았다고. 그런 말로는 날 겁줘봤자 소용없어.’ 이렇게 받아쳤죠.”



노터데임 대학 출신의 2년 차 포워드였던 올랜도 울리지도 재능은 뛰어났으나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으로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최종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사망했다. 당시 불스 선수단은 그들 외에도 문젯거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구단 홍보 책임자였던 팀 핼럼이 설명하기로, 조던은 시합에 이기는 데만 골몰하여 술이나 마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서는 상대 팀에 약점을 노출하는 그런 짓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로드 히긴스는 불스에서 보기 드물게 착실한 선수였다. 이른바 ‘저니맨’으로서 이후 선수 생활 내내 여러 팀을 전전한 그는 조던보다 세 살 연상이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던 그 시즌에 두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되었고 그 우정은 훗날 NBA에서 은퇴한 뒤로도 계속되었다. 나중에 선수 생활 6년 차를 맞을 즈음, 조던은 한 인터뷰에서 옛 팀원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루키 시즌에 함께했던 동료들이 “운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머리를 쓸 줄 모르던 친구들”이었다며 그 모습이 마치 「루니 툰」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불스의 훈련장인 앤젤 가디언 짐은 문제투성이 팀원들만큼이나 성공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팀 핼럼은 그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분위기가 어둡고 음산한 체육관이었어요. 장식 커튼 같은 것도 하나 없었고 마룻바닥은 돌처럼 딱딱했죠. 또 차는 건물 뒤편의 풀밭에다 대야 했고요. 가는 길에 좁다란 보도가 있어서 그걸 넘어가야 주차가 가능했어요. 탈의실은 구식이었고 식당이나 매점도 없었죠. 편의 시설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어요.”


게다가 그곳은 항상 아이들로 가득했다. 불스의 매표 관리자였던 조 오닐이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우리 팀은 체육관에 도착해서 일단 기다려야 했어요. 먼저 농구 코트를 쓰던 초등학생들이 나가야 연습을 할 수 있었거든요. 우리 선수들이 줄을 서 있으면 그 뒤로 수영장이나 다른 시설을 쓰려는 꼬마들이 복도 여기저기에 쭉 늘어서 있었죠.” 


불스 선수였던 존 팩슨이 설명하기로, 그 체육관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시카고의 악명 높은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범미주 경기 대회에서도 그랬듯이 조던은 훈련 환경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엠피 파크의 야외 코트나 어릴 적에 농구하던 장소들을 생각해보면 앤젤 가디언 짐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대고서 곧장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몇 주간 조던은 훈련장 인근의 링컨우드 하얏트 하우스 호텔에 묵었다. 트레이닝 캠프를 며칠 앞두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은 조지 콜러였다. 당시 만 29세로 개인 리무진 영업을 하던 콜러는 마침 공항 앞에서 태울 손님을 찾고 있었다. 그는 불스의 신인 선수를 발견하고 실수로 ‘래리 조던’이라 불렀다. 그러고는 25달러에 어디든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조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사님, 혹시 제 형을 아세요?” 


그렇게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이 만남은 이후 아름다운 우정으로 이어졌다. 조던은 리무진이 필요할 때마다 콜러를 찾았고 나중에는 그를 개인 매니저이자 일생의 친구로 삼았다. 


콜러는 그날 홀로 대도시에 도착하여 초조해하던 조던의 모습을 회상했다. 

“백미러로 보니까 어린애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그런 고급 리무진을 처음 타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게다가 시카고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낯선 사람이다 보니 자길 아무 데나 떨구고 갈까 봐 긴장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조던은 곧 활기를 되찾았다. 조 오닐은 그의 훈련 광경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마이클은 연습 시간마다 NBA 결승 7차전처럼 죽자고 달려들었어요. 누구랑 붙든 완전히 박살 내겠다는 식이었죠. 그 덕에 우리 팀 훈련 분위기는 꽤 살벌했어요.” 


로거리는 조던에 관한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그 플레이를 면전에서 보는 것은 또 달랐다고 밝혔다. 

“일대일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다들 우리 팀에 대단한 물건이 들어왔다고 느꼈죠. 물론 그때부터 ‘마이클이 역대 최고의 선수다.’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 확실한 건 그 녀석 슛 실력이 꽤 좋았다는 거예요. 그동안 거기에는 매번 의문 부호가 붙었었죠. 돌이켜보면 마이클은 대학 시절엔 딘 스미스 밑에서, 그리고 올림픽 땐 밥 나이트 밑에서 항상 패싱 게임에 주력했어요. 그래서 마이클이 자기 마음대로 공을 다루는 모습은 아무도 못 본 거예요. 게다가 그 녀석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경험해 보니까 진짜 모든 걸 갖춘 선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훈련 둘째 날, 코치들은 자체 청백전을 열어 조던의 기량을 확인했다. 당시에 로거리를 도왔던 빌 블레어 코치가 그날을 이야기했다. 
“마이클은 수비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코트 반대편까지 공을 몰고 갔어요. 그런 다음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서 덩크를 했죠. 감독이 그걸 보더니 ‘이제 연습 경기는 그만해도 되겠네.’ 그러더군요.”

그때 로거리는 조던의 다재다능함에 놀랐다고 한다. 
“코트를 보는 시야가 굉장히 넓었어요. 발도 빨랐고 힘도 상당히 좋았고요. 그땐 다들 마이클의 힘이 얼마나 센지 몰랐을 거예요. 아무튼 그런 걸 보면 그야말로 토털 패키지라 할 수 있었죠.” 

조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 훈련을 마치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다른 수준의 경기가 펼쳐지겠죠. 전 아직 배울 게 많아요.” 

블레어는 조던의 훈련 태도를 설명했다. 
“마이클은 참 남달랐어요. 매일 정해진 훈련 시각보다 45분 정도 일찍 나왔거든요. 늘 슛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했죠. 정규 훈련이 끝난 뒤에는 꼭 코치들한테 자기 연습을 도와달라고 했고요. 그 뒤엔 계속 슛 연습이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었죠. 또 마이클은 연습 경기 중에 좀 쉬라고 벤치로 불러들여도 곧장 코치들한테 와서는 코트에 나가고 싶다고 보챘어요. 저는 그런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더군요. 그 녀석은 농구하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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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5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슛 연습,,,,농구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조던은 즐기고 노력하고 즐기며 농구의 황제가 된,, 조던 뒤에는 훌륭한 코치들까지,, 노력하는 삶에 이렇게 행운까지 뒤따르는 조던의 삶, 부럽 ,부럽 ^0^,

JK 2021-04-05 20:27   좋아요 1 | URL
노력한다고 꼭 운이 따르진 않는데... 생각해보니 조던은 노력하고 즐긴 만큼 인생이 잘 풀린 것 같아서 부럽긴 하네요. 물론 그 반작용도 그만큼 크긴 했지만 그래도 대업을 이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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