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 9월 초에 출간된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의 프롤로그.
알라딘에는 책 미리보기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 관계로 올려봅니다.
이 책은 제가 2017년 6월부터 1년 반 동안 번역한 것으로, 농구의 정점에 해당하는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의 인생과 그가 거둔 무수한 성공 및 실패를 미국의 베테랑 농구 기자가 객관적으로 써내려간 전기입니다. 자서전에서는 흔히 미화되거나 삭제될 만한 일화들도 가감없이 실려 있어 기존에 널리 알려진 조던 신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의 삶을 평가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알지만 농구 규칙은 전혀 모른다 하는 분들도 정말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니 많이들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Prologue
수비수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인간의 눈과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동작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슬로모션 영상으로 돌려본다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인류에게 그 기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한 현란한 움직임을 그는 오롯이 맨눈으로 보고 막아야 했다.
결코 달갑지 않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조금 전 농구 코트 한쪽 끝에서 공격이 중단되고 상대편의 속공이 시작되었다. 방금까지 공격하던 선수들은 모두 수비 태세로 돌아섰다. 그중 한 사람이 골대를 지키려고 코트를 전력 질주하지만, 다시 뒤로 돌아서는 순간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붉은 옷을 입은 시커먼 형체가 드리블을 하며 엄청난 속도로 아수라장 속을 헤집었다. 검은 형체는 농구공을 좌우로 튕기다가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걸음을 성큼 내디뎠다.
그때 입에서 혀가 삐져나왔다. 간혹 이 사이로 살짝만 보일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수비수를 놀리는 듯 기괴하다 싶을 만큼 길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상대편에게는 곧 눈앞에서 당할 덩크보다도 더 치욕적이고 불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표정이었다. 먼 옛날 전사들이 적을 위협할 때 그렇게 공격적인 표정을 짓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가 혀를 내미는 행동에는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깔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단순히 무언가에 집중할 때마다 혀를 삐죽 내밀던 아버지의 버릇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스물두 해째를 맞이한 젊은 마이클 조던은 명백한 공격 의지를 드러내고 죽음과 파괴를 일삼는 시바 신처럼 혀를 길게 내민 채 골대로 돌진하였다. 그러나 혀는 금세 입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그는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어깨높이까지 공을 들어 올린 그는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오르며 두 손을 공중에서 휘저었다. 이미 무너진 수비 대형을 헤치며 떠오른 거구는 골대로 접근하며 공을 커다란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는 고개를 쳐든 코브라처럼 팔을 위로 펼치고 홀로 유유히 날아올라 공격 지점을 확인하였다. 관중은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진 수비수의 모습에 열광하였다. 이런 반응은 마치 조건반사 같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사자의 가젤 사냥 장면을 뚫어져라 볼 때처럼 동물적인 본능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조던이 속공 마무리 단계에서 보인 움직임은 이륙부터 착륙까지 거의 완벽한 포물선을 그렸다. 얼마 후 물리학계의 석학들을 비롯하여 미 공군 장교까지 그 궤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당시에 전 세계 시청자들이 궁금히 여기던 ‘과연 마이클 조던은 하늘을 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조던의 ‘체공 시간’을 측정한 뒤, 그가 공중을 나는 듯 보이는 까닭이 빠른 도약 속도에 의해 가속도가 더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착시 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조던의 허벅지와 종아리 근력, 근섬유의 빠른 수축 속도나 공중에서의 ‘균형성’도 함께 언급했지만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조던이 자유투 라인에서 골대까지 비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1초.
사실 오늘날 미국 프로농구(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이하 NBA)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엘진 베일러나 줄리어스 어빙도 체공 시간은 상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성기에는 그 모습을 전달할 만한 영상 기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에어 조던은 그들과는 어딘가가 달랐고, 새로운 현상 같았으며, 고리타분한 구시대와의 결별 같았다.
농구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등장한 수많은 선수 가운데 하늘을 난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조던은 프로선수 생활 초기에 자신의 경기 영상을 본 뒤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늘을 난 거냐고요?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아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진귀한 재능이란 일순간 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혜성과도 같은 것. 오직 타고 남은 광채의 흔적만으로 그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농구 하나로 수년간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조던이 코트를 떠난 후 팬들과 언론, 그와 함께했던 여러 코치와 팀 동료들은 지금도 그 시절에 벌어졌던 놀라운 일들을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점은 마이클 조던 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 이런 의문을 품었었다.
“저도 이 모든 일이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해요. 그때 가서는 과연 현실처럼 느껴질는지 모르겠어요.”
그것은 모두 진짜였을까?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조던이 만인 앞에서 옛일을 되돌아보던 날, 네티즌들은 퉁퉁 부은 얼굴로 우는 그를 그동안 NBA 구단을 경영하며 일으킨 실수나 개인적인 결점과 얽어매어 심하게 조롱하고 욕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도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던 선수 시절의 업적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어릴 적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마이크’ 조던으로 불렸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이 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던, 어찌 보면 미래가 불확실했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에 농구장의 대천사 ‘마이클(대천사 미카엘의 영어 이름)’로 놀라운 변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이키가 조던의 힘을 빌려 거대기업으로 부상하고, 그도 곧 스포츠용품 업계의 젊은 지배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지위는 그에게 자유와 속박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후 조던이라는 이름은 빼어난 능력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분야의 누구도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시카고의 베테랑 스포츠 기자 레이시 뱅크스는 ‘조던의 능력을 뛰어넘는 건 그의 자신감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과거에 프로농구는 ‘다 큰 어른들이 속옷 같은 것을 입고 설쳐대는 스포츠’라고 폄하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던의 ‘비상’과 더불어 한 단계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또 처음에는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지만 조던이 등장하면서 스포츠 세계에는 서서히 ‘멋’이라는 요소가 생겨났다. 곧이어 미국 텔레비전 방송의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자 그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1991년에 그를 주제로 제작된 게토레이 광고 음악은 공개되자마자 순식간에 청소년들의 주기도문이자 어디서든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Sometimes I dream that he is me. You've got to see that's how I dream to be…… If I could be like Mike……(나는 가끔 이런 꿈을 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꿈. 다들 내 꿈이 뭔지 들어봐…… 정말 마이크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중문화와 기술의 결합은 조던을 스포츠계와 세계 소비 시장을 지배하는 신처럼 비교 불가능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활약에 열광했다. 한때 그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이하 UNC) 농구부의 일개 선수 정도로 치부했던 농구 전문 기고가 아트 챈스키는 나중에 시카고를 방문한 뒤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저는 시카고 스타디움을 가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마이클은 코트를 오갈 때 주로 골대 뒤편의 통로를 이용했는데, 그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사람들 반응이 굉장하더군요. 누구랄 것도 없이 모든 이들이 열광했죠. 경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자리에 앉으려면 꽤 큰돈이 들어요. 그런데 다들 몇 발자국 앞에서 마이클을 보려고 그 자리를 원하더라고요. 표정을 보니 다들 무슨 구세주라도 만난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탈의실에서는 기자들이 마이클 앞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들었고요.”
구세주, 실로 그러했다. 조던을 향한 숭배는 해가 갈수록 심해져서 시카고 불스의 홍보부장이었던 팀 핼럼은 그를 예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때때로 핼럼은 홍보부 직원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자네, 오늘 예수님을 만나 뵈었나?”
조던이 그만한 선수로 발전하기까지는 분명히 행운이 뒤따랐다. 과거 NBA에서 활약했던 랄프 샘슨은 대학 시절에 조던과 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두고 다투던 경쟁자로서, 이후 수년간 오랜 적수의 성장을 유심히 지켜봤다. 샘슨도 인정했듯이 사실 조던은 뛰어난 신체 조건과 견줄 데 없는 성실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공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간과할 수는 없다. 선수 시절에 최고의 감독과 코치들, 훌륭한 동료 선수들과 함께하는 축복을 누렸기 때문이다.
랄프 샘슨. NBA 입성 초기 휴스턴 로케츠에서 하킴 올라주원과 이룬 일명 '트윈 타워'로 명성이 자자했다.
“마이클은 열심히 시합에 임했고, 몸에 익지 않은 기술이 있으면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늘 노력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이클은 좋은 팀에 있었고 전반적인 여건이 괜찮은 편이었죠. 선수들의 재능을 잘 알아보는 좋은 코치들이 있어서 마이클을 중심으로 팀을 유기적으로 잘 짜줬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여러 가지 조합 덕분에 지금의 마이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샘슨이 2012년도 농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전날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물론 누구도 마이클 조던의 삶을 만든 놀라운 사건들을 당사자만큼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 오십에 이른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그러나 타이밍과 행운은 조던 신화를 만든 밑바탕에 불과하다. 스포츠 심리학자 조지 멈포드는 만 서른둘이라는 나이에도 훈련 중에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쏟아내던 조던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불스 구단에 고용되기 전에 조던의 왕성한 욕구나 잠을 거의 자지 않는 특성 등을 이미 전해 들었던 멈포드는 이 팀의 슈퍼스타가 혹시 조울증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멈포드는 당시 훈련 광경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 심리학자 조지 멈포드. 1990년대 후반 시카고 불스에서 mindfulness(마음 챙김) 훈련을 담당했다.
“마이클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어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사방에 뿌려댔지요. 저는 마이클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기억하기로 조던의 반응은 분명히 조증에 가까웠다. 조울증에 걸리면 기분이 극단적으로 들뜨는 기간과 심하게 가라앉는 기간이 번갈아 나타난다. 멈포드는 이후 몇 주간 조던에게서 우울증의 조짐이 나타나는지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나 한참을 지켜본 뒤 극히 활동적이고 과하다 싶을 만큼 경쟁적인 심리가 조던의 평소 상태임을 깨달았다. 매사추세츠 대학 시절에 농구부 활동을 하며 줄리어스 어빙과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멈포드는 우수한 운동선수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그런 그는 조던이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결론지었다. 다른 선수들은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반면에 조던은 그 경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멈포드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마이클은 동기부여를 할 만한 목표를 찾으면 늘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었어요. 선수들은 그 영역에 도달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 역시 길어지길 바라지요. 하지만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계속 집중하는 그런 상태를 줄곧 지탱한다는 건 초인이나 다름없어요. 한마디로 마이클은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시합 중에는 또 어땠을까? 멈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태풍의 눈 같았습니다. 주변 상황이 정신없이 돌아갈수록 점점 더 침착해졌거든요.”
조던은 프로선수가 된 후 그 능력을 팀 스포츠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그는 무엇보다 승자가 되고 싶어 했다. 처음 관중의 시선을 끈 것은 화려한 ‘에어쇼’였지만, 그 쇼를 유지한 힘은 그의 넘쳐나는 승부욕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조던에게 무한한 추진력이 되었고, 이윽고 그는 자신과 맞닥뜨린 모든 상대를 시험하기에 이르렀다. 조던은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의 신의를 시험했고, 팀 지도부와 동료들이 자신만큼 단단히 정신무장을 했는지도 시험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더 많은 이를 시험에 들게 했다. 이런 부분에서 가혹하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UNC 농구부 선배이자 동료였던 제임스 워디는 그런 조던을 ‘깡패 같은 놈’이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조던도 1998년에 인터뷰에서 그 점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남들한텐 좀 힘든 사람일 수 있어요.”
사실 그가 가장 많이 시험한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경쟁으로 가득했던 생애 초반에 자신의 비밀을 알아냈다. 스스로 강한 압박을 가할수록 더 큰 능력이 나타난다는 특성이었다. 이후 그 깨달음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결과를 낳았다.
시카고 불스에서 전술을 담당하며 역대 어느 코치보다도 조던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텍스 윈터는 60년간 농구계에 몸담으면서 그토록 난해한 인물은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조던과의 동반자 관계가 끝나갈 무렵 이런 말을 했다.
“마이클의 성격은 진짜 한번 연구해볼 가치가 있어요. 녀석이 지금처럼 까다로워진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머리로 그걸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렵겠죠. 물론 내 나름대로는 그놈을 잘 분석했다고 봅니다만, 여러모로 신기한 녀석인 건 분명합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고, 아마 마이클도 본인 성격을 다 이해하진 못할 거요.”
2009년에 농구팬들은 조던의 유별난 면모를 알게 되었다. 그는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식 연설에서 선수 시절에 만난 주요 인물들을 혹평하여 잡음을 빚었다. 그중에는 대학 시절 은사였던 딘 스미스도 있었다. 선수 시절의 동료들과 방송해설자들, 팬들은 그 연설이 끝난 뒤 놀라움과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그 옛날 완벽한 인간으로 상상했던 마이클 조던이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