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저 | 신성림 역 | 예담 | 2005.06.20
(2011년에 읽고 예전 블로그에 남겼던 기록. 10년 전보다 열정이 많이 줄어든 지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해바라기 연작'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엮어 만든 책.
『식물, 역사를 뒤집다』를 번역할 때 '해바라기' 편에 고흐의 편지 내용이 등장하여 자료 조사를 하다가 발견한 책이다. 당시 책 번역을 하면서 고흐의 인생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고 그의 슬픈 삶을 접하면서 꼭 읽어보자고 생각하다 이번에 다 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기부터 죽기 전까지 그의 남동생 테오, 동료 화가인 베르나르, 여동생 윌, 어머니 등과 주고 받은 편지 내용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생활을 지원해준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주를 이룬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고흐는 죽기 전까지 늘 자신이 그림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데 자괴감을 느꼈고 수년간 경제적 지원을 해준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또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컴플렉스를 느꼈는지 그림이 점점 나아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항상 부족함을 먼저 보고 걱정과 고민을 더 많이 한 사람이었다.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몇 해 전에는 정신질환과 발작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님에도 많은 그림을 완성했는데, 그 무렵 그가 느꼈던 고통은 창작에서 오는 고뇌와 현실의 궁핍한 환경 때문에 오지 않았나 싶다. 태생적으로 몸이 약한 고흐였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그림이 팔리고 이름이 알려졌다면 건강한 모습으로 더 오래 살아 더욱 전설적인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정신이 피폐해질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을 보면 고흐가 모든 이성과 정신, 영혼을 그림에 쏟아부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 점을 고려하면 이름이 좀 더 일찍 알려졌더라도 결국 그 최후는 지금과 같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편지를 통해 그의 생각 중 일부만을 접할 수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흐는 생각이 깊고, 품성이 바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 마음이 너무도 맑고 여렸고,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종국에는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는 노력과 연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모든 것을 바친 전문가 중의 전문가, 예술가 중의 예술가였다.
책을 읽고 얻은 교훈이라고 하면, 삶은 강하게 살되 열정과 노력은 고흐처럼 발휘해야겠다는 점. 지금 쌓여 있는 다른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림 속에는 무한한 뭔가가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정말 매혹적인 일이다. 색채들 속에는 조화나 대조가 숨어 있다. 그래서 색들이 저절로 조화를 이룰 때면 그걸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 P73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 완성한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니.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빌리지도 못하다니.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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