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되는 법 - 책 읽기 어려운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땅콩문고
이옥란 지음 / 유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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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되는 법, 이옥란 지음, 유유 출판사, 정가 10,000원


아마 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알라딘은 아니고... 시청 쪽의 한 서점을 구경하다가 고민 없이 집어들었던 책이다. 아, 150쪽이라는 얇은 두께에 만 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하지만 대강 훑어봐도 꽤나 읽어볼 만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어서 눈에 띈 김에 구입했다.

저자는 오랜 세월 편집자로 일하고 출판 관련 강의를 해온 이옥란이라는 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직접 편집 일을 하고 그간 강의를 통해 출판인들을 만나며 느낀 바와 경험을 실무적으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다시 말하면 감성 위주의 에세이가 아니라 실제로 젊은 편집자들(혹은 출판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풍부하게 담고 편집 및 출판 과정을 잘 소개한 책이라는 뜻이다. 나는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 원고를 넘긴 뒤 편집 단계가 어떻게 되는지, 책 제작은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항상 궁금했고 그래서 출판 관련 서적을 자주 찾아봤다. 그러나 이 『편집자 되는 법』만큼 단순하고 명확하게 알고 싶었던 부분을 잘 설명한 책들은 없었던 것 같다. 원래는 책이 얇은 만큼 가볍게 볼 생각이었으나 저자의 글솜씨가 워낙 좋은데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잘 알아둬야 할 내용'이다 싶어 줄 긋는 곳이 많아졌다.

일단 이 책의 주요 대상이라 하면 3~4년차 이하의 출판 편집자가 될 것 같은데, 꼭 그쪽 직군이 아니라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어떤 분야든 취업을 앞둔 사람(특히 5챕터 지원서 쓰는 법과 6챕터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가 도움이 될 듯)이거나 회사에서 자기 프로젝트를 맡을 위치가 된 사람(6챕터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와 7챕터 편집자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이라면 읽어봄직한 도서라고 생각한다. 책을 편집하는 업을 다룬 책이지만 편집자 역시 조직의 일원이고 조직의 생리란 여느 회사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편집자'라는 단어에 다른 직업을 대입해도 완전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꽤 많다.


조직에 막 들어간 사람은 해당 조직의 생리를 따라 배우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 잘 해내면 쉴 틈도 없이 더 잘하기를 바라는 것이 조직의 생리죠. (...) '일머리'란 개인이 지닌 지식이나 기술만 가지고 파악하기 어렵고, 거기에 더해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인적 시스템을 일정한 기간 동안 경험해서 스스로 운용해 보아야 어느 정도라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일하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질 수 있는가'가 '왜 지금 내가 결정할 수 없는가'보다 중요합니다. (...) 좋은 일터가 적지 않지만 일하는 당사자에게 좋은 회사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 적절한 수준을 스스로 정하려 하지 않으면 협상은커녕 결정권 자체를 넘기게 됩니다. 임금은 일단 정해지면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 자기 소개서는 읽는 이를 설득해야 하는 목적이 뚜렷한 실용문입니다. (...)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지원서를 쓴 이유는 누군가 지금 이 지옥에서 나를 꺼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무기력 말고는 없습니다. (...) 자기 소개서는 시간을 내서 조사를 하고, 전략을 짜서 목적에 맞게 성실히 써야 하는 '자기 보고서'입니다.


『편집자 되는 법 -책 읽기 어려운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중 '5 지원서 쓰는 법'에서 발췌



목차


이 책의 핵심은 아무래도 '2 편집자는 판을 운영하는 사람이다'이겠지만 아마 책을 쓰는 작가나 번역가라면 '3 편집 기획을 하십니까?'가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판사와 편집자의 관점에서 원고와 기획안을 선택하는 기준을 알 수 있고 그 점을 직접 쓰는 기획서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제시된 관점만 편집자에서 작가와 번역가로 바꿔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3챕터는 '기획서 쓰는 방법'에 관한 일종의 포인트레슨 처럼 느껴진다.

또한 편집자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그 관계를 설명한 챕터 '7 편집자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도 글을 다루고 편집자와 소통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9 제작은 어떤 일인가'는 책의 구성 성분을 하나씩 나눠보고 제작 시 필요한 자원을 계산해보는 챕터인데 책의 원가를 계산하거나 특정 도서의 판매 전략을 역추정(책 출간 기간과 부수를 이용)해보는 데 유용하다. 그리고 전체 챕터가 끝난 뒤 덧붙은 '+ 편집자의 책 읽기'와 유유 출판사의 출간 도서 목록도 앞으로 읽을 책을 찾아보는 데 꽤 유용했다. 현재 글을 다루는 일을 하거나 앞으로 글을 다뤄보고 싶다면 참고해볼 만한 책이 많았다.

나는 번역을 하는 사람이지만 교정, 교열처럼 편집자와 일부분 작업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함께 일을 하고 때로는 만나기도 하는 관계여서 이런 책이 필요했다. 출판에 관한 서적이 적지 않지만 이만큼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짚어주고 거기다 읽기까지 편한 책은 드물지 않나 싶다. 사실 내가 편집 분야를 다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저자의 글솜씨가 좋은 것인지 글이 정말 술술 읽혔고 내용도 쉽게 이해됐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책이고 나와 관계 없는 부분도 꽤 있는데 담담한 글귀 속에 유머처럼 느껴지는 센스가 많이 담겨 지루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넘어가는 문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크... 내가 문학 서적도 아닌 걸 읽고 이렇게 감탄할 줄이야!

편집자 되는 법. 이 글을 초년의 편집자들께 드립니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두어 해, 어쩌면 가장 왕성하게 일하실 분들입니다. 부디 빛나는 실력을, 지금 발 디딘 곳을 널리 두루 살피시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기만의 작은 영토에 도달하실 때까지 연마하시기 바랍니다. - P9

원고는 대체로 편집자 개인의 역량보다는 출판사의 이력과 저자에 대한 대우, 홍보력, 시장 점유 등의 역량에 영향을 받습니다. - P33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매번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판‘을 운영합니다. 당면한 원고나 일정, 닥친 문제에만 빠져서는 판을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일을 장악할 수가 없습니다. - P35

교정은 그런 일입니다. 잘했을 때는 안 보이고, 못했을 때 두드러져 보이는 일. - P45

신간은 발행 후 3년이 지나면 대부분 수요가 쇠퇴하고 상품으로서 의미를 상실합니다. 책의 수명은 3년! 발행 후 서너 달 동안의 판매량이 총 출고 부수의 30~40퍼센트, 1년 이내에 50퍼센트 이상이라고 합니다. - P72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좋은 결과를 얻는 것, 열심히 하는 것, 잘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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