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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디지털이 빠른 속도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언제나 긍정의 엔트로피를 향해 나아가지는 않듯이 디지털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디지로그’를 주창한다.
보(報)만 있고 정(情)은 없는 정보(情報)화 시대에 아날로그적 정(情)을 추가해야 디지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정, 믿음, 상호성 등에 바탕을 둔 한국 문화 원형을 분석하면서
한국인이야말로 디지로그 시대를 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
디지로그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책을 썼다
문화의 원형은 조화와 화합,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균형으로 요약!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가 미래를 이끌 수 있다.
한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음식과 언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국인의 음식문화는 나물과 비빔밥, 젓가락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조화와
통합, 상호 작용 등 아날로그적 관계를 중시한다.
한자어가 8~9할을 차지하고, 외래어가 범람하는 듯하지만
동해바다, 초가집, ‘모찌떡’, 깡통(캔) 등의 예에서 보듯이 한자나 외국어를 우리말과 섞어 절묘한 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한편 디지털 기술을 돈만 버는 ‘노다지 비즈니스’로 착각한 사람들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하는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통합하는 디지로그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를 깨닫고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
음식은 문명이다.
먹는 것이 문명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헤브라이즘), 아프로디테에게 바친
파리스 왕자의 사과(헬레니즘), 빌헬름 텔의 사과(민주주의의 탄생),
뉴턴의 사과(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이성의 탄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과 하나만으로도 인류 문명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에 이르면 종말의 이미지까지 담고 있다.
사과문명론은 애플컴퓨터에까지 이어져 정보시대의 상징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음식 문화는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국 음식과 언어는 아날로그의 총아
한국의 식문화는 음식을 만드는 재료부터 먹는 도구(젓가락)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적 요소가 강하다.
대표적인 한국 요리인 비빔밥은 조화와 통합을 상징한다.
그 속에 들어가는 갖은 색깔의 나물 중 푸른색, 붉은색, 황색, 흰색, 검은색은 음양오행설의 우주를 나타낸다.
또 인류가 시간에 쫓기고 중노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농업혁명을 이룬 신석기시대 이후의 일임을 감안할 때 채집 시대(농경사회 이전)의 산물인
나물 문화는 현대문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되기도 한다.
음식을 먹는 데 이용하는 젓가락에서도 아날로그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젓가락을 쓰게 된 이유는 조리할 때부터 모든 음식이 한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차려지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의 먹거리는 고기나 빵과 같이 덩어리가 기본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를 하는 사람이고 먹는 사람은 먹는 사람이다.
각자 제 역할만 하면 된다.
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아날로그적)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디지털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정한 디지털, 돈 밝히는 디지털
정보(情報)의 특성은 ‘정(情)’이다. 즉 정(情)을 알리는 것(報)이 정보다.
그러나 0과 1의 디지털 세계에는 정이 없다. 이로부터 디지털 사회의 근본 문제가 시작된다.
여기에 정보기술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정보기술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의 결과물과 달리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하자면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에 해당한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 없으며,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한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노다지 비즈니스’로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여기서 발생한 것이 e비즈니스나 IT관련 산업의 거품이다.
결국 지식정보의 신개념은 독점보다는 나눔이, 경쟁보다는 협력이,
폐쇄보다는 개방이 우선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의 가격이 아니라 마음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시스템의 인식이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추임새
0과 1의 숫자로 만들어내는 비트의 세상은 무정(無情)한 세상이다.
따라서 정보사회의 미래는 결핍된 그 정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김치, 나물, 비빔밥, 쌈 등과 함께 젓가락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식문화는
이 결핍을 해소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채집시대의 산문인 나물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채집문명와 현대문명이 서로 혼합된 것이다.
이 나물들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은 조화와 통합을 상징한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섞어서 한입에 먹는 쌈도 마찬가지다.
젓가락 정신은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정, 믿음, 상호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젓가락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은 지금까지의 IT를 RT(Relation Technology)로 바꿔주는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바로 한국인의 시간이다.
이어령 교수의 시각에서 해석하자면 이 모든 일들은 지식정보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보사회의 미래는 결핍된 정(情)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또 정보시대의 지식기술은 상호성을 바탕으로 독점보다는 나눔이,
폐쇄보다는 개방이 우선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결국 정과 상호성, 나눔, 개방 등이 제2의 디지털 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소비자를 무시하는 일방향성을 선호하고 있으며,
나눔보다는 독점에, 개방보다는 폐쇄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젓가락 문화에 깃들어 있는 정과 상호 관계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IT 강국’이라는 구호는 공염불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나아가 한국인 모두가 이어령 교수의 ‘젓가락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