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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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의사는 한결같이 크게 신뢰받고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힌다. 이런 존경은 대부분 의료 전문가의 진실성을 믿는 데서 비롯한다. 변호사 백에 아흔아홉은 변호사라는 직업에 먹칠한다는 오랜 농담이 있지만, 의사를 놓고서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효과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확립하는 데 필수인 이런 폭넓은 신뢰를 유지하려면 의학전문대학원 의사면허위원회가 미심쩍은 기질이 있는 응시자의 입학과 면허 응시를 거절해야 한다 -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중에서

당시에는 별문제 없었으나 이제는 매우 비윤리적인 것으로 드러난 실험도 있다. 예컨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공중보건국 연구자들이 진행한 악명 높은 터스키기 매독 실험에서는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병세가 어떻게 진행하는지 지켜보고자, 매독에 걸린 가난한 흑인 남성들을 치료하지 않은 채 내버려뒀다. 의료계가 이런 추악한 역사 기록을 바로잡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 지 이제 겨우 몇십 년이 지났을 뿐이다. 예를 들어 나치에 협력한 의사 프리드리히 베게너Friedrich Wegener와 한스 라이터Hans Reiter의 이름을 딴 병명에는 최근에야 다른 이름을 붙였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었던 심스의 동상도 2018년 철거했다. -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중에서

터스키기 실험이 대중에게서 격분을 자아내자, 정부는 비로소 1974년에 국가연구법National Research Act을 통과시켰고, 생의학 및 행동 연구의 연구 대상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 of Biomedical and Behavioral Research를 설립했다. 그리고 1979년에 나온 〈벨몬트 보고서Belmont Report〉와 1981년에 미국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공통 규칙Common Rule에 근거해, 향후 그런 학대를 막고자 기관생명윤리위원회를 설립했다. -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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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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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태아 안에서 왜 갈등하는지를 알려면 유전자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모계 유전자는 현재 태아의 생존에도 신경 쓰지만 앞으로 낳게 될 다른 태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모체를 끝까지 쥐어짜 더는 자식을 못 낳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손해다. 이와 달리 부계 유전자의 관심사는 엄마보다 태아다. 이 여성한테서 태어날 다른 아이 역시 나와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계 유전자는 엄마를 압박하는 유전자들로 선발되며 태반에 자원을 전달하는 데 관여하는 영역에서만 발현한다. 이런 유전자가 만든 호르몬은 엄마의 혈액 속 영양분 농도를 높이고, 엄마의 행동을 조절하는 뇌 영역에까지 변화를 일으켜 출산 뒤에 아이를 더 살뜰히 보살피게 한다. - <협력의 유전자> 중에서

태반세포는 엄마가 아니라 태아에서 나오므로, 엄마가 아닌 태아를 위해 일한다. 인간의 태반세포는 모체의 혈액에 직접 닿기 때문에 임신부가 태아에게로 가는 영양분을 통제할 수 없다. 유인원도 마찬가지다. 인간에서든 유인원에서든 모체에서 얼마나 많은 영양분을 가져올지를 결정하는 쪽은 엄마가 아니라 태반이다. - <협력의 유전자> 중에서

실험 장소는 학과 교직원 휴게실, 더 구체적으로는 싱크대였다. 공동 부엌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런 곳의 싱크대에 더러운 식기가 쌓이지 않는 상황은 기적과도 같다. 그러므로 깨끗한 싱크대는 공공재다. 누구나 이익을 얻지만 유지하기 어려운 것 말이다. 누구나 자기가 어지르고 사용한 것은 직접 치워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을 싱크대에 남겨두고 빠져나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게으름을 피운 증거를 마주하면 가장 양심적인 사용자마저 얌체 짓을 하고 싶어질 가능성이 크다. - <협력의 유전자> 중에서

실험 장소는 학과 교직원 휴게실, 더 구체적으로는 싱크대였다. 공동 부엌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런 곳의 싱크대에 더러운 식기가 쌓이지 않는 상황은 기적과도 같다. 그러므로 깨끗한 싱크대는 공공재다. 누구나 이익을 얻지만 유지하기 어려운 것 말이다. 누구나 자기가 어지르고 사용한 것은 직접 치워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을 싱크대에 남겨두고 빠져나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게으름을 피운 증거를 마주하면 가장 양심적인 사용자마저 얌체 짓을 하고 싶어질 가능성이 크다. - <협력의 유전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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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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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순간에 일상에 쫓겨서 살고 있습니다. 학생은 시험공부에, 어른은 직장 일 혹은 자식 일에 쫓깁니다. 온통 이런 일들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우리는 그 일과 관련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오늘날 대학에서 주로 가르치고 학생들이 습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정보언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언어를,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성경의 언어를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배우려 했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배우려는 것은 정보언어입니다. 속된 말로 정보언어는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언어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흔히 이성이라고 부르는 과학적이고 계산적인 이성을 넘어선 근원적인 이성, 즉 시적 이성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는 과학적이고 계산적인 이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시적인 이성을 통해서 사물들의 고유한 진리가 드러난다고 여겼습니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묵직한 돌을 들어 올리면서 그 돌에서 어떠한 이론적인 개념으로도 파고들어갈 수 없는 독자적인 깊이와 자체-내-존립In-sich-Stehen과 자생성Eigenwü-chsigkeit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러한 느낌이야말로 돌에 대한 그 어떠한 과학적인 관찰보다 돌의 사태 자체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이 순간에는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온 모든 것이 무가치해지고, 그것들에 집착해온 삶 전체가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지요. 이러한 무상감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전적으로 다르게 드러내는 기분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기분을 불안이라고 부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불안은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낯설고 불가해한 존재에 대한’ 불안입니다. 따라서 불안이라는 기분을 느낄 때 우리가 불안해하는 대상은 어떤 특정한 무엇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불안’이라는 기분과 ‘두려움Furcht’이라는 기분을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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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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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개인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기술적인 처리 대상으로 격하시키고 그것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들의 에너지를 내놓도록 몰아대는 현대세계를 가리켜 하이데거는 ‘몰아-세움의 세계Ge-stell’라고 부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과학기술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세계는 가장 이성적인 세계인 것 같지만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광기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하이데거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우리 주변을 바라보면 이 시대는 미친 시대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하이데거와는 다른 맥락에서지만 한때 ‘유럽은 거대한 정신병원이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지요.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사람들은 보통 현대기술문명의 문제점을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 과학기술의 발달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서 찾곤 합니다. 다시 말해 현대기술문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이성은 멀리하고 도구적인 이성만을 발전시킨다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일종의 신적神的인 존재가 되었고, 현대는 종교와 가장 무관한 시대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가장 종교적인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현상을 가리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산업종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현대인들이 기꺼이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심신을 혹사하는 대가로 받는 물자들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뽑아낸 대가로 안락한 주택이나 자동차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고급 가전제품을 구입합니다. 이러한 물자들을 통해 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이 안전해졌을 뿐 아니라 풍요롭고 행복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우리 삶의 안전과 풍요를 신이 가져다준다고 믿었지만, 현대에는 기술적인 물자들이 그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 것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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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철학에는 여러 의의가 있지만 가장 큰 의의 중 하나는 과학기술시대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극복 방안으로 시가 갖는 심대한 의미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는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전반을 포함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모든 참된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시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하이데거는 시적인 태도란 사물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고, 이러한 태도에서야말로 사물들은 자신의 진리를 스스로 드러낸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사물들을 우리의 이해관심에 따라 평가하거나 그것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무심無心의 상태에서야 사물들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시적인 태도란 사물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을 내세우고 사물들로 하여금 그런 관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의 소명을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한다’는 것은 ‘지상의 모든 인간과 사물의 성스러운 신비를 경험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이데거는 오직 인간만이 이러한 소명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소명에 따라 살 경우에만 우리 삶에 참된 기쁨이 주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하이데거에게 인간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도 아니고, 생존과 번식이 확보된 여유로운 상태에서 누리는 사치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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