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syeong21/223840255310내가 봄을 성찰하며 ‘잘 보기’를 사유하듯, ‘잘 듣는 법’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했다. ‘봄’이라는 말이 지닌 계절의 봄과 지각으로서 봄의 중의성처럼, 나는 지각의 현상학으로서의 봄을 성찰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들음’이라는 지각은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들어야 잘 듣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나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주변에 좀처럼 없었고, 나는 챗GPT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이 AI는, 망설임 없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애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와 로저 스크루턴의 『아름다움』 이었다.
모차르트는 독일어 가사를 가지고 희가극을 썼다는 점에서도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1782년작인 <후궁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은 독일 오페라의 미래로 직통되는 첫 번째 획기적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그가 밟은 길을 따랐고 그 가운데는 <뉘른베르크의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쓴 바그너도 있었습니다. - P294
그렇지 않다면 드뷔시 유일의 오페라인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et Mélisande>에서 무소륵스키의 영향이 느껴지는 걸 설명할 수 없을테니까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 <보리스 고두노프> 다음에 오는 획기적 작품입니다. 몬테베르디의 이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작곡가의 의중이 읽히는 작품으로, 마테를링크 MauriceMaeterlinck(1862-1949)의 시적 드라마가 담은 언어를 최대한 충실하게살리고 있습니다. 음악은 그저 언어를 담을 틀 정도로만 기능하게 하면서 가사의 시적 의미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 P299
한마디로 <펠레아스와멜리장드는 절제된 표현의 승리라고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포르테 패시지는 손에 꼽을 정도고, 어디나 신비롭고 통절한분위기 속에서 멱을 감는 것만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지요. 드뷔시의 음악은 마테를링크의 작은 희곡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고, 이제는 음악과동떨어진 원작 희곡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 P300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음악이 원작 희곡과 완벽한 일체성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다소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노선을 따르는 후속 오페라를 기대하긴 그만큼 더 힘들었던 것이겠죠. 당장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만큼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희곡 자체가 극도로 드물기도 하고 말이지요. 게다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주는 매력을 십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게 필수입니다.작품 고유의 특성 중 상당 부분이 가사의 이해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계보를 이을 만한 후속작이 등장했더라면 상황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지 못한 관계로 음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고대신 교향곡이나 발레 같은 장르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지요. - P300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려도 현대 오페라의, 아니 총체적인 극음악의향후 존립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벗지 못하는 독자들이 계실 테지요?그렇다면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현대음악의 발전 과정에서 획기적사건으로 기록된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 모두가 무대를 위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일보 전진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오페라극장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리한 예측은 아닐 겁니다. - P305
제가 이렇게 갈라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니 동의하지 않으신다 해도 괘념치 마십시오. 모든 현대음악이 하나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건 아니라는 점만 전달되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십이음기법에 입각한 쇤베르크 악파의 음악은 심지어 뮤지션들조차 난색을 표할 정도로 까다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 P310
모든 음악적 시대는거기에 진정한 활력이 깃들어 있다면-실험적이고 논쟁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현상입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이 때로는 험난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받아들이는 애호가가 무척이나 드문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 듣는 음악이 대번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당장 호기심부터 듭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집니다. 도전의식이 생기고 의욕이 솟아납니다. 음악 예술에 대한 저의 흥미를 계속 살아숨 쉬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몇 번을 되씹어 들어도 곡이 제 마음을 두드리지 못한다 해서 현대음악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그저 방금 들은 그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요. - P315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는 반복 청취입니다. 음반이 지천에 널린 세상이니 우리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낯선 곡이라 할지라도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도 점차 안개가 걷히며 뚜렷해진다는 것이 많은 애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대음악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판별하기 위해서는 일단 음악을 들어보는 것 이상의 길은 없습니다. - P318
작곡가가 주는 건 바로 그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빚어낸 작품은 그 자신의표현일 테지요.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작품과 창조자 사이의 관계가 한층 직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외부 ‘사건‘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본질적인 부분-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진, 그리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담은 가장 완전하고 깊은 표현을 떼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P334
감상자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음악 역시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듣고, 의식적으로 듣고, 우리 지성을 모두 동원해 들읍시다. 그리하여 인류가 남긴 영광된 유산인 음악 예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도록 합시다. - P344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에게 돌리는 것이 음악계 전반의 공통된 분위기입니다. 에마누엘 바흐가 새로이실험한 소나타라는 형식이 후대에 가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손에 의해 공고하게 굳어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베토벤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데 자신의 천재성을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슈만과 브람스는 비록 선배의 족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소나타라는 형식적 틀의 의미를 확장한 공이 적지 않습니다. - P237
모든 소나타 알레그로 악장은 시대를 불문하고 제시부-발전부-재현부라는 3부의 얼개만큼은 올곧게 유지합니다. 제시부는 다양한 음악적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만약 제시부가 담고 있는 음악의 내실이 보잘것없다면 발전부가 써먹을 소재 또한 빈약하다는 뜻이될 테니까요. - P242
소나타 형식은 제대로 이해하자면 본디 심리적이고 극적인 형식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둘 이상의 상이한 요소가 공존하는 제시부만 하더라도 주제끼리 서로 우열을 다투는 몸부림의 느낌, 드라마의 느낌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발전부는 작곡가의 창조력, 상상력이 도전받는 시험 무대와 같은 영역입니다. 심지어는곡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일반인을 가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발전부를 다루는 솜씨라고까지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극한 표현도 아닙니다. 들어줄 만한 가락을 뚝딱 지어내어 휘파람 부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선율을 가지고 멋진 발전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곡가가 가진 기술과 솜씨가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니까요. - P245
교향곡의 선조는 초창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서곡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포니아‘라고 부른이 서곡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1660-1725)의손에 의해 완벽한 형태로 다듬어졌습니다. 빠름-느림-빠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서곡은 곧 고전시대 교향곡의 세 개 악장이 취하는 전형적인템포로 이어졌습니다. 1750년을 전후하여 신포니아는 모태인 오페라에서 떨어져 나와 콘서트홀로 진입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 P255
그리하여 저 유명한 아홉 곡의 베토벤 교향곡이 걸어야 할 길이 펼쳐졌습니다. 이제 교향곡은 그 근원이 되었던 오페라와의 연결 고리를모두 저버리게 됩니다. 형식은 확장되었고, 담아내는 감정의 진폭도 넓어졌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그때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방식으로 포효했습니다. 베토벤은 오로지 자신만이 부려낼 수 있는 거인을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 P257
20세기 들어 진정한 자유 형식에 대한 작곡가들의 관심에 다시 불이 지펴진 것은 드뷔시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드뷔시는 고도로 개성적인시각을 가지고 짤막한 형식을 다뤄냈습니다. 알려진 과거의 모델에 조금도 기대지 않고 지어낸 곡이 스물네 편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전주곡집>입니다. 스물네 곡 각각이 저마다의 독자적인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곡은 곧 작곡가가 창조적인 형식에 관해 고민한 결과물이었지요. 따라서 드뷔시가 평생에 걸쳐 발표한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게 이해가 됩니다 - P269
표제음악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자기두 발만으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악을 들어도 거기서 얻는 즐거움이 반감되지 않을 테니까요. 환언하면, 이야기는 덧붙은 흥밋거리 이상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말입니다.<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은 설령 우리가 그 제목을 모른다 할지라도 차이콥스키의 걸작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 P274
교향시를 고안해낸 공로는 보통 리스트의 몫으로 돌립니다. 그가 쓴교향시는 모두 열세 곡이며 그중 일부는 아직까지 연주되고 있지요. 리스트는 시材가 되는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형식의 굴레 안에 가둬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에 앞서 베를리오즈가 여러 표제적 교향곡에서 시도한 바 역시 어딘가 미흡하다 여긴 것이지요. 그가 내세운 해결책은 단악장 교향시였고, 청중의 이해를 돕기위해 출판 악보 서문에 음악의 씨앗이 된 이야기나 사건을 설명하는 글을 덧붙였습니다. 리스트가 터놓은 길을 따른 후배는 적지 않았습니다.유명 작곡가만 꼽더라도 생상스Camille Saint-Saëns(1835-1921), 세자르 프랑크, 폴 뒤카Paul Dukas (1865-1935), 차이콥스키, 스메타나BediichSmetana(1824-1884),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1837-1910) 등을 거명할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교향시가 모두 자유 형식에 입각한 건 아닙니다만, 최소한 교향시라는 장르에 대한 원칙은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 P276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첫 번째 핵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은 것입니다오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례에 묶인 채로 존재하는 장르라는 점입니다. - P283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예술은 곧 현실의 거울임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거기서 단순히 현실적인 예술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미적쾌락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에서 비롯되는쾌락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오페라하우스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한 것 같지만 압축해서 말하자면 이겁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오페라가 가진 관례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 P285
음악에 있어서 구조란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재료를 논리 정연하게 조직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예술과 다를 바가 없지요. 다만 여타 예술과의 차이점이라면 음악의 재료는 유동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입니다.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에 구조를 쌓아 올리는 작곡가의 책무는 이중으로 난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163
오히려형식은 작곡가가 곡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품은 전제에서 비롯되어살아 움직이며 서서히 성장해가는 유기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올바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음악 작품은 저마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형식을 가진다‘라는 귀결이 자연스레 이어지겠지요. 그러니까 음악의 내용물이 형식을 결정하는 셈입니다. - P164
기존 형식에 안주하는 경향을 곧 음악의 취약점으로 파악한 페루치오 부소니 Ferruccio Busoni(1866-1924)는 음악의 미래는 미리 정해진 형식에 과잉 의존하는 작곡가들의 굴레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을담은 팸플릿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과거 및 현재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역사가 물려준 형식 유산에 기대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음악 구조의 등장은 아주 드문 현상이 되어버렸죠. - P166
그렇다면 기억해야 할 점은 다음의 두 가지가 될 것입니다. 첫째, 형식적 틀의 일반적인 윤곽을 알아두십시오. 둘째, 작곡가의 악상이 담고있는 내용에 따라 그 일반적인 윤곽이 독특하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즉오로지 해당 작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방식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점을 유념하십시오. - P167
2부 형식의 좋은 예가 되는 작품으로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Couperin (1668-1733)이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1685-1757)의 곡들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음반은 하프시코디스트 반다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1879-1959)의 것을 추천합니다. - P178
초기 론도의 훌륭한 모범으로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9번 D장조)종악장을 들 수 있습니다(187-188쪽). 187쪽의 악보 하단, 론도 주부가재현되는 지점을 앞선 주부와 비교해보면 다소간의 변형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공간 제한 때문에 다 싣지는 못했습니다만, 론도 주부는 되풀이될때마다 조금씩 바뀝니다). 덕분에 몇 번을 거듭해서 등장하더라도 흥미로운 들을거리가 조금씩 더해집니다. - P186
반면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두 번째 의미로서의 변주, 즉 형식 기법으로서의 변주입니다.음악사를 놓고 볼 때 변주 원리는 그 연원을 거슬러 짚을 수 없을정도로 오랜 발자취를 가집니다. 변주 원리를 포함하지 않는 음악 예술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 P191
모든 파사칼리아 곡의 시작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베이스 성부가 주제를 반주 없이 연주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제는 이어질모든 변주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이의 뇌리에 확고하게 각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앞에 오는 몇차례의 변주는 주제를 베이스에 확고하게 깔아놓고 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는 동안 상성부는 서서히 추동력을 붙여나가고 말이지요. - P198
푸가 형식은 다시 네 가지 주요 형식으로 가를 수 있습니다. 첫째 엄밀한 의미의 푸가, 둘째 콘체르토 그로소, 셋째 코랄 전주곡, 그리고 넷째모테트와 마드리갈입니다. 대위법적 작법이 오로지 이들 형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변주의 원리가 그 어떤 형식에도 적용 가능한 것이듯, 대위법적 텍스처 역시 그 어떤 형식을 가리지 않고 대뜸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들을 때는항상 폴리포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의 끈을 풀어선 안 됩니다. - P215
카논은 모방을 한층 치밀하고 정교하게 적용한 형태입니다. 모방이음악의 국지적 차원에서 기능하는 장치라면, 카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형식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 P217
음악이 구사하는 대위법을 들어 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장치들을 이해할 수 있는 깜냥은 푸가 형식을 구체적이고 총명하게 감상할 수 있는 핵심 발판입니다. - P221
푸가 주제가등장할 때는 다른 모든 성부에 우선해서 귀에 꽂히는 게 일반적이지요.따라서 푸가에서는 주제를 단단히 기억해두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푸가는 예외 없이 주제만을 무반주로 제시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에 조금만 유념하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푸가 주제는 대부분이 두세 마디 정도로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고, 모두冒頭와 매듭을 분별해내기도 쉬운 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두 권에 담긴 마흔여덟 개 푸가 각각의 주제만을 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 P222
이 강의로부터 우리는후설의 고백을 여기에 모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cogitatio(나는 생각한다 즉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의 명증성을 설립한 후에..." 훈설은 실제로 cogitatio의 명중성과 그것의 실존 사이에 선택해야한다는 가장 심각한 실수-cogitatio를 그것이 주어지는 명증성에 환원하는 실수를 저지른 순간에 전적으로 혼동에 빠진다. 데카르트가 cogitatio의 실존을 자기 자신 위에, cogitatio가 어떤 매개도 없이, 즉 명증성의 매개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식하는직접적인 지각의 형식을 가지고 토대를 놓았다는 것, 그리고 바로이 순간에 명중성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반박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후설이 증여를 명증성으로, 그것의 가장 완벽한 공식화로 환원하는 한에서 표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 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