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명한 어울림은 즐거움이다. 또한 이것을 소유한사물들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울림은 관조 자체의 대상이며, 그 의미는 어떤 독립된 용도에 있지 않다. 이것은 추론된 판단의 중심문제로, 그 판단은 경험에 근거하며 간접적으로 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정도의 문제인 것처럼, 어울림 또한 정도의 문제이다. 요컨대 내가 이번장에서 설명한 것은 바로 ‘최소한의 아름다움으로, 이것은 이성적 존재의 영원한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질서를성취하고 공동의 세계에서 편안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 P107
뒤샹의 농담으로 인한 즉각적인 결과로‘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전념하는 지적 산업 industry이 촉발되었다. 이 산업의 문헌은 뒤샹의 제스처를 끝없이 모방하는 것만큼이나 지루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문헌은 회의주의를 남겼다. 어떤 것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러한 꼬리표를 얻는 것의 의미나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은 다른 것을 본다는 별나지만 근거 없는 사실만이 남게 된다. 객관적인 가치와 인간 정신의 영구적인 기념물을 추구하는 비평 사업이 존재한다는 주장은손쓸 수 없이 묵살되는데, 그 이유는 뒤샹의 <샘>의 배수구로 씻겨 내려간 예술 작품의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P110
좋은 취미는 유머에서 중요한 만큼 미학에서도 중요하며, 실로 취미는 미학의 전부라 할 만한 것이다. 대학 과정이 이러한 전제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예술과 문화에 관한 학업을 그들이 시작했을 때처럼 무지한 채로 끝내게 될 것이다. 예술에 관한 한, 미학적 판단은 당신이 좋아해야 할 것과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련되며, (주장하건대) 여기서 ‘해야 한다‘는, 정확하게 도덕적 명령은 아닐지라도, 도덕적 무게를 지닌다. - P111
동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것은 대상을 알고 싶어 하고,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고자 하며, 대상의 핵심이 부당하게 허비되지 않기를 원한다. 『도덕 감정론 The Theory of the moral Sentiment』에서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동감은 저절로 공정한 구경꾼의 관점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동감은 미학적 맥락에서처럼, 결코 능동적이지않으며 판단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상상적인 것과 틀 지어진 것에 대해 우리는 1장에서 설명한 무관심적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한번관심을 제쳐 두게 되면, 우리는 보통 일상의 거래에서 해서는 안 되는방식으로 동감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의 목적을 규정한다고 주장하는것은 타당하다. 이 목적이란 우리가 공정한 관심의 자세를 미학적 태도의 일부로서 취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선사하는 것이다. - P118
스타일은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숨겨진 스타일 같은 것은 없다. 쇼팽 Chopin 마주르카 Mazurkas나 파울 클레 Paul Klee의 데생처럼 노력과세련됨을 감추는 교묘한 방식에서도 스타일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동시에, 스타일은 비교를 통해 지각된다. 이것은 표준과의 구별과 연관되는데, 이 표준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지각 속에 존재해야만 스타일의표현법과 이탈을 알아차릴 수 있다. 스타일을 통해 예술가들은 말하지않고도 암시할 수 있고, 비교하지 않은 것을 불러올 수 있으며, 그들의작품과 주제를 모든 표현이 의미 있는 맥락 속에 둘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브리튼Britten의 첼로 교향곡이나 엘리엇의 『네 개의 4중주』에서목격되는 의미의 집중을 성취하는 것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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