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라인홀트 글리에르Reinhold Gliere에 따르면 마리아 그리고리예브나는 ‘고상하고 지적인 눈매에 키가 큰 여자‘였다. 훌륭한 피아노연주자였던 그녀는 아들의 타고난 음악성을 금세 알아보고, 쇼팽, 안톤 루빈시테인Anton Rubinstein, 베토벤의 피아노곡들로 이끌어줌으로써 아들의 재능을 길러주었다. 이 작곡가들은 모두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적 생애 초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 P10
1909년에 그는 전혀 남의 이목을 끌지 못할 성적으로 작곡 과정을 졸업했다. 따라서 피아노 연주와 지휘 쪽이 명성을 얻을 더확실한 길이라 생각하고 방향을 바꿔 그쪽 과정에 매진했다. 그는오래된 음악과 새 음악을 같은 이해와 평가의 잣대로 논할 수 있는 지휘 스승 니콜라이 체레프닌Nikolay Tcherepnin을 숭배했다. 그가 하이든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체레프닌 덕분이었으며, 나중에 <고전 교향곡Classical Symphony>에 그 취향을 표현했다. - P21
프로코피예프가 악상이 부족해서 한 번 사용했던 소재를 재활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의 머릿속은 악상으로 충만해 있었다. 다만, 많은다른 작곡가들이 그랬듯이 그 또한 그 악상으로 최상의 것을 빚어내야만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명확하고 논리적인 재활용 과정에서 기존 주제의 중요성을 더욱더 드높이곤 했다. - P23
프로코피예프는 머지않아 이보다 훨씬 모더니스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악명까지도 높은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된다. 이 젊은 작곡가의 본격적이고 성숙한 작품으로 첫 인정을 받은 것은 <피아노협주곡 제1번 Op.10>(1911-2)이다. 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비교적 간결한 작품을 의도했는데, 그 결과물은 새로운 착상들이 넘치고 피아노 부분이 반짝이는 화려한 작품이 되었다. - P25
당분간은 러시아도 미국도 그에게 알맞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1920년 4월 파리행을 택한 그의 결정은 경제 사정으로 보아도, 예술가로서도 합당했다. - P46
이 협주곡은 시게티의 유려한 곡 해석에 힘입어 많은 청중을 얻었고 곧이어 여러 훌륭한 연주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도입부를 가진 협주곡 중 하나로 꼽힐 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걸작이다. 제2악장 론도는 빠르고 까다로운 스케르초이며 황량함보다는 동화적인 부분이 많은 피날레는 그 짜임새와 울림의 조화가 훌륭하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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