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그것의 의식-외부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악 속에서 수동성이다. 여기서 ‘의식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더는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한다는 것은 더는 의식의 행위를 함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겪는 것이고 심지어 겪음을 겪는 것인데, 왜냐하면 아픈 의식이 의식하는 ‘내용‘이 바로 이 고통의 시련 그 자체, 즉 고통의 악이기 때문이다. - P142
있다. 고통은 삶과 존재의 막다른 골목, 즉 고통이 말하자면 소박하게의식을 처해 있음으로 우연히 ‘채색하게‘ 되는 삶과 존재의 부조리다. 고통의 악, 즉 해로움 그 자체는 부조리의 폭발이고 말하자면 부조리의 가장 깊은 표현이다. - P143
이 사건들 가운데 히틀러 치하에서의 유대 민족의 홀로코스트가, 악이 그것의 악마적 공포 속에서 나타나는 이유없는 인간 고통의 패러다임으로 나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어쩌면 주관적 감정은 아닐 것이다. 고통과 모든 신정론 사이의 불균형은 아우슈비츠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것의 가능성은 수천 년의 전통적 신앙을 문제 삼는다. - P151
대인들에 대한 의무. 아우슈비츠 이후 유대인은 유대교에 대한 자신의 충성과 자신의 생존의 물질적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조건들에 대한자신의 충성에 운명 지어져 있다. - P154
모든 타인은유일합니다. 정의를 걱정할 이 필요성에서 객관성의 관념의 토대인평등의 관념이 나타납니다. 어떤 순간에 ‘가능‘, 비교, 사유의 필요성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이 최초의 자비의 깊이로부터 지혜의 출현일 것입니다. 철학은 이 자비의 지혜, 사랑의 지혜 말장난하는것이 아닙니다일 것입니다. - P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