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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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아이가 다가와 "아저씨 다리 어디 갔어요?"라고 물을 때 "네가 찾으면 5000원 줄게. 망할 다리가 어디 갔는지 일주일 내내 찾아도 없거든!"3이라고 말하는 냉소적 유머 감각도 여기 해당한다. 장애나 만성질환을 오랜 기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상호작용 기술의 전문가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신체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장애인들에게 이런 기술을 전수받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저 두 종류의 노련함으로 깔끔하게 돌파 가능할 만큼 허술하지는 않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두 사건은 이처럼?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의 범인과 달리 우에마쓰 사토시는 단지 장애인을 혐오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장애인을 죽이면서 자신이 그들을 구원한다고 생각했다. 더 중요하게는 자신이(형사처벌과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구원했다는?그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하기를 원했다. 그는 단지 장애인이 혐오스러워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구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공연(퍼포먼스)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타인을 돕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혹은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것까지 모두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군의 사회학자들은 우리가 타인과 만나 상호작용하는 일상 그 자체가 사실상 ‘공연’의 성격을 갖는다고 이해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Goffman은 공연을 "개인이 특정 관찰자 집단 앞에서 계속하는 모든 활동, 그리고 관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공연에 장애인이 참여하는 경우를 모두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행위자인 장애인도 당연히 공연에 참여해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나는 내 퍼포먼스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 내 퍼포먼스를 위해 누군가를 모욕한 일도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우아함’을 위해 그 순간 나와 함께했던 많은 이들과 나 자신을 게임의 일부로 만든 것은 아닌가. 이들을 현실에서 배제하여 내 삶을 가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삶이 일종의 연극이라는 사실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큰 진실을 위해 거짓을 연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빛내는 데만 몰입하는 사람들은 작은 진실을 위해 큰 거짓을 연기한다. 나는 이를 ‘품격주의적 태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모든 인간이 왜 존엄한 존재인지는 국제 인권 규범이나 헌법, 법률에 근거할 수 있지만, 그 규범과 법률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지는 늘 논쟁적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종교인들에게는 유효하겠지만, 세속적인 현대인들에게는 타당한 근거가 아니다. 나는 추상적인 인권 규범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출발하고 싶다. 우리는 각자가 왜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존엄한 존재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에 화답하는 상호작용, 즉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를 실천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이처럼 서로의 반응에 반응하면서 반응은 더더욱 크게 확장되고, 각자의 반응이 향하는 방향은 이제 하나로 수렴된다. 이러한 인간적 상호작용의 특징을 성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타인을 존중할 때에도 동일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알라딘 eBook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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