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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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경기도의 한 자율형 공립고에서는 모의고사 1등급을 받은 학생에게는 10만원, 2등급 학생에게는 5만원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24 2012년 6월 26일, 충북의 한 여중에서는 시험문제를 일찍 푼 상위권 학생 한명이 자신의 문제지에 답을 커다랗게 쓰면 옆자리 학생들이 이 답을 그대로 OMR 카드에 적은 뒤 같은 방법으로 정답을 시험지에 큰 글씨로 옮겨 적는 일이 있었다. 교사들의 묵인 아래 학생들이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성적 우수 학생과 부진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좌석을 재배치해서 시험을 치게 하기도 했다. 학교 측이 기초학력 미달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부정행위를 조장한 것이다.25 학생들은 학교에서 ‘최악의 교육’을 직접 체험한다.

-알라딘 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중에서

그래서 한국의 시험공부는 고립된 개인들의 전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머니의 코디, 아버지의 무관심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결합된 가족 단위 총력전이다.50 특히 한국에서는 전업주부 어머니들이 학력 경쟁의 주역이다. 어머니들이 가정에서 자기 자리를 구축하기 위한 ‘인정투쟁’이 자녀 교육열로 드러났다. 필자가 한국 근대를 ‘가족 개인’의 형성사이자, 차별받던 여성들이 가족 내 전업주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과정이자, 개인주의체제에 순응하는 과정이라 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중에서

시험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 학력·학벌이라는 정치자본을 가진 신분이 (생산)노동(자) 신분 위에 군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점에서 한국 교육사를 연구한 소런슨(Clark W. Sorensen)도 한국의 과잉교육열은 노동 천시와 맞물려 있는 현상이라고 보았다.12 노동 비하나 노동 천시는 시험능력주의의 바로 뒷면의 모습이다.


-알라딘 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중에서

학력·학벌 자격이 과거의 ‘신분’을 대신할 수 있는 보증서가 되고, ‘좋은 학교’ 졸업장이 지위를 보장한다면, 입시경쟁은 1차 선별, 즉 지위 경쟁 1라운드가 될 것이다.31 학력자격증을 발급하는 ‘일류 학교’는 현대사회에서 지위 경쟁에 나서는 선수들 간의 1단계 경합의 장이지만 이 경합은 이후의 경합에서 누적효과를 낼 결정적인 기반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 교육, 지식은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지배자의 일원이 될 자격을 얻는 길이다. 그런데 지배는 복종이라는 동전의 다른 면이다. 그리고 지배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필요하면 더 높은 곳의 누구에게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학교는 교육의 장이지만, 지배(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이고, 가장 중요한 국민 훈육기관이다. 일본 교육의 진짜 목적은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복종의 습관을 기르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여기서 나온다.32 그래서 그람시는 근대 학교가 이데올로기적 지배기구임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순응주의를 형성하는 현장이라 말했다.33

-알라딘 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중에서

학교를 시험 준비나 평가의 장이 아니라 교육의 장으로 만들자는 수많은 교육자들의 호소와 실천, 특히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의 실험들이 이 거대한 바윗덩어리에 바늘구멍을 내는 정도의 변화만 가져온 이유도 대입 시험이 학교 운영을 지배하고, ‘지위’의 이동 혹은 지위의 재생산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시험능력주의> (김동춘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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