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중문학과 순문학을 나누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시장이다. 시장이 그런 구획을 정하는 이유는 양자의 상품성을 위해서다. 그렇게 임의적이기 때문에 어떤 시대에는 대중문학이었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순문학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독자(소비자)는 시장의 이런 임의적인 구획을 내면화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2.
나는 순문학이 엄격한 기준을 고수한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소설이 대중문학에 가깝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대중문학이라 할 지라도, 평단과 출판사가 순문학이라는 감정서를 발부하는 순간, 순문학이 된다. 오히려 기준이 엄격한 것은 대중문학이다. 대중문학의 마니아들은 평단을 대신해(평단은 아예 관심이 없으므로), 한 소설이 장르의 규칙과 플롯에 부합하는지 꼼꼼하게 따지는 '진풍명품'의 감별자가 된다.
그들은 사회파, 본격, 변격, 또 그 아래로 갈라지는 온갖 헛소리같은 이름들에 집착하여 작품을 범주화하고, 또 그 작품이 자신의 구분에 잘 맞아 떨어지는지 판정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흠... 이것은 함량이 약 19.2% 정도 되는 엉터리 사회파 미스터리로군! 나는 왜 그들이 한 작품이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 재미없다면 왜 재미없는가를 따지지 않고 어떤 장르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지 모르겠다. 원래 장르의 규칙과 플롯은 독자들을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3.
어떤 사람은 내 두번째 소설이 스릴러의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스릴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정한다. 나는 스릴러를 그냥 정형화되지 않은 범죄소설의 어떤 경향이라는 의미로 막연히 썼다. 그런데 스릴러인가 아닌가라는 문제가 그에게선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그는 말한다. 한국 소설들은 다 그래, '스릴러답지 않은' 플롯이야.
그의 말은 틀렸다. 한국의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장르 작가들은 전형적인 플롯과 규칙에 집착한다. 늘 외국소설과 비교당한다는 공포 때문에, 작가들은 자신의 '장르소설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장르의 틀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소설을 한 권이라도 대 보라!(순문학의 딱지를 달고 있는 대중문학 말고.)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대중문학에 있어서, 이런 태도는 치명타다. 오히려 그래서 한국 대중문학은 재미가 없는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전형적인 탐정이나 형사도 등장하지 않고, 정교한 트릭과 반전도 없고, 범죄의 동기에만 집중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일본 독자도 그랬을까? 이건 추리소설 함량이 19.2%밖에 안되잖아! 이건 추리가 아니야! 일본 소설은 한참 멀었어! 이렇게?
4.
나는 한동안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기웃거렸다. 거기엔 새로운 형식, 새로운 소재,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지만, 딱 한 가지, 독자가 없었다(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