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아시지요? 일주일 동안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한두시간을 넘지 않는 '아저씨'인 저도 이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 대부분이 한두번쯤은 텔레비전에서 얼굴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예, 이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전남대에서 근무하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훗카이도의 한 대학에 재직중인 미즈노 순페이 교수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주었는데 일본에서 한국의 '뒷담화'를 심하게 깠다는 것이지요. 사태는 2007년인가, 미즈노가 일본의 우익지들에 쓴 기고를 한 월간지가 폭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즈노가 본명으로, 혹은 필명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비하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를 잘 뜯어보면 미즈노 기고의 핵심은 한국인이 증오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고대사 부분은 그렇지요. 미즈노는 한국학 관련 학회에서 일관되게 일부 민간 연구자들이 한국고대사를 과장하는 것(고조선과 삼국이 중국을 다 지배했다, 백제가 일본을 식민지화 했다 등등)이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역사의식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미즈노는 보는데요, 첫째는 그 논의가 일본의 역사왜곡과 묘한 쌍생아 관계라는 겁니다.근거가 희박한 일본서기 등을 왜곡하여 일본은 황국식민사관을 주장하고 조선을 비하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한국 역시 말도 안되는 일본서기를 거꾸로 인용하여 백제의 우월을 입증하려 하거나 거의 조작이라 보이는 한단고기 등을 통해 역사를 과장한다는 겁니다. 두번째 문제는 이런 고대사 과장이 진정한 한-일의 이해와 우호를 해친다는 겁니다. 뭐, 논지의 핵심이 그렇게 증오할 만한 것은 아니지요?
월간지는 또 미즈노가 필명을 이용해 우익지에 한류를 부정적으로 보는 글을 썼다고 폭로했습니다. 우익지가 편집을 통해 기고를 과장하고 왜곡한 것 같지만 이런 글 역시 이해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본인들이 겨울연가 등만 보면서 한국과 우호를 증진한 것 처럼 여기지만 실상은 한국 대중 문화 속에는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과 증오가 많으며, 이런 것들을 제대로 봐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북의 미녀 응원단에 반하고 드라마에서 남남북녀의 연애담을 그린다고 남북의 이해가 증진되지는 않는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우익지들이 이런 논리를 교묘하게 반한으로 포장했을 수는 있지만, 그 핵심은 이해못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한 인터넷 방송이 미즈노를 인터뷰하러 찾아갔는데, 미즈노가 '나는 한국과 관계가 없다' '인터뷰하려면 돈을 내라'고 손사래를 쳤다는 겁니다. 인터넷에 뜬 당시의 동영상을 본 제 입장에서는 무례한 사람은 미즈노가 아니라 그 방송국이었습니다. 아무리 막무가내로 '들이대는'게 한국언론이라지만 미즈노 취재건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그 프로의 리포터들은 사전 연락 한번 없이 찾아가서 허락도 없이 미즈노 교수의 제자들한테 교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캐묻고 바로 연구실로 카메라를 들이밀었습니다. 시종일관 미즈노에 대해 비아냥대면서 말이죠. 일본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인터뷰를 위해 최소한 일주일 전에 연락을 취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인터뷰 대상에게 원고료에 상당하는 돈을 지급하는 것도 일반적입니다. 취재관행이 엄격한 거지요. 미즈노의 발언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당황해서 손사레를 치면서 한 말 정도이지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 겁니다. 김구라씨는 미즈노한테 찾아가서 "만두나 쳐먹어"라며 만두를 던지자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은 김구라가 간만에 옳은 말 했다고 칭찬으로 떠들썩 했습니다. 미즈노가 한 짓을 전남대가 알고 미즈노를 일본으로 쫓아내버린 거라는 말도 떠돌았습니다. 그건 근거없는 이야기였지요. 미즈노와 전남대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즈노는 방송 출연으로 번 돈중 상당액을 전남대에 기부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은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습니다.
김재범씨 사태를 보며 저는 미즈노 순페이를 떠올렸습니다. 적어도 미즈노의 말은 김재범이라는 철없는 소년의 욕설보다는 논의할 가치가 많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미즈노가 2003년 오키타 쇼리라는 작가와 공동으로 쓴 책인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책 비판>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미즈노 이야기의 핵심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요.
글이 길어지는 군요. 좀 있다 다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