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회사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잔비를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우리 회사에선 옥상에서만 흡연이 허용됩니다) 다시 내려왔습니다. 오전에 할 일을 오후로 미루고 서재에서 놀고 있습니다.  

어제밤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었습니다. 알라딘 블로거 베스트셀러로 꼽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교사가 반의 아이들에게 딸이 살해당했으며, 살인자가 그 반의 학생이라는 것을 고배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장마다 각기 다른 시점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가는 형식이더군요. 일본 장르소설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형식이지요. 책은 분량도 적고 전개도 빨라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반전과 트릭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일본 서점대상'이라는 뭔가 대단할 것 같은 상 이름에 걸맞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책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의 병적인 의식, 뒤틀린 의식이었습니다. 서구 미스터리 소설에서 병적인 의식은 철처하게 분석과 수사와 단죄의 대상으로 드러납니다. 무시무시한 '타자'이지요. 하지만 일본소설에서, 특히 여성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병적인 의식과 정상의식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누구나의 의식 속에 잠재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특히 아이의, 혹은 성장하지 못한 어른의 독백 속에서 드러납니다.  

왜 이런 뒤틀린 의식을 아이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걸까요? 소설 속에서 슈야라는 아이가 재미있습니다. 그 아이는 뛰어난 두뇌로 범죄를 기획하는데요, 그 이유는 엄마를 찾기 위해서 였어요.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을 버렸고, 자신이 충격적인 일을 벌이면 어머니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지요. 

나오키란 아이의 어머니는 '이상주의자'로 그려집니다. 아이를 어떤 틀에 맞춰 양육하려고 하는 어머니지요. 나오키는 늘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전 그 아이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부터 '내가 부족해서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듯 느껴졌어요. 그 아이도 엄마를 잃어버렸던 거지요. 그래서 아이는 나중에 어머니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왜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는 걸까요?  <고백>에서 아버지는 어디에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주 희미하게 회사에서 밤늦게 들어왔다거나 헌신적인 교사라거나, 로 그려질 뿐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기 싫어합니다. 즉, 아버지는 은폐됩니다. 어떤 억압으로, 아이들 마음 깊숙히 은폐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세계가 엄마를 망쳐놓거나 엄마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때 아버지는 생물학적인 아버지 뿐 아니라, 세상으로 상징되는 약육강식의 위압적인 질서 아닐까요?  

아이들은 세상이 엄마를 빼앗아 갔으므로, 엄마만이 만들 수 있는 자신의 자아마저 뺏긴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없는데, '자기'가 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소설에서 트릭으로 활용되는 '만14세 이하 어린이는 살인을 해도 기소되지 않는다'는 법은 자아가 없는 아이들, 무슨짓을 해도 괜찮은 아이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은 아주 끔찍한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칭얼대고 있는 겁니다.

 

아이의 뒤틀린 의식과 관련해서 역시 여성 스릴러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는 이런 문제를 좀더 확장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여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죠.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는 아주 위압적이거나 무책임한 인물로 실체 없이 그려지고 있어요. 즉, 은폐되고 있죠. <아웃>은 일본의 한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경쟁과,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이들의 뒤틀린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 세상, 명예와 권력과 돈을 위한 경쟁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향해 칭얼대죠. 한결같이.  

문제는 <아웃>의 아이들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커서도 계속 뒤틀린 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멀쩡한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는 매춘을 하는 식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미야베 미유키보다 뒤틀린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미미여사는 뒤틀린 의식을 분석이나 처벌의 대상으로 다루지요.  

이렇게 쓰고 보니 이젠 서재의 문패를 '책 엉뚱하게 읽기'로 바꿔야 하는 생각까지 드네요. 여러분은 혹시 <고백>을 이렇게 읽지 않으셨나요? 저만의 과장된 생각일까요? 확신이 들진 않습니다만, 어쨌든 전 이렇게 읽었어요. 뒤틀린 의식의 문제와 관련해서 김승옥의 재미있는 소설이 한편 떠오르는 군요. 나중에 써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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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09-11-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겠습니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까지 언급하시니 저에겐 이 소설이 점점 더 아득해지네요.

톨트 2009-11-1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자이 오사무 부분은 뺐습니다. 원래 비약이었어요. 소설은 그렇게 무섭지 않답니다^^

Tomek 2009-11-17 10:1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한번 도전해볼만한 작품이네요. 기회 있을 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yesyesyes 2010-06-2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랑 헷갈리신 것 아닌가요.

톨트 2010-07-07 14:39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댓글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맞습니다. <그로테스크>와 헷갈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