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편과 함께 은행에서 일합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긴 8월의 오후, 여자는 신세계 백화점 앞의 육교 계단을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삼십대의 비대한 남자가 여자의 팔꿈치 근처를 움켜쥐었습니다. "조용히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힘주어 잡았습니다. 여자는 손목을 빼내기를 단념하고 남자를 따라갑니다. 남자는 회현동 골목 속의 여관으로 들어갑니다. "자, 그만 울어. 경찰에 가서 강간당했다고 고발해도 돼. 당신의 팔뚝이 몹시 미끄러워 보이더군. 내 손 속에 넣고 만지고 싶었어." 남자는 말합니다.  

그날 이후 여자는 명동의 밤거리를 막차시간이 끊기기 전까지 돌아다닙니다. 남자들은 댁이 어디십니까, 라든가 어디 가서 커피라도, 라며 여자를 유혹합니다. 여자는 그럴 때면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망설이다가 어떤 두려움을 느끼며 돌아섭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남자의 억센 손아귀 입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여자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결단입니다. '다른 곳'은 더 나은 곳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곳'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두려워 합니다. 여자는 비겁한 남자들을 뒤로 하고 막차를 탑니다.

남편은 여자와 같은 은행의 사무직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는 직장을 그만 두거나 옮겨야 합니다. 직장에서 여자는 부부 관계를 숨겼습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 선생님' '미스 리'라고 불렀습니다. 여자는 이제 그 모든 짓이 역겨운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탈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밤거리에서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아침이 되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여자가 바라는 것은 구원입니다. 속임수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여자는 자기의 손목을 억세게 움켜쥘 남자를 찾아 오늘도 밤거리를 걷습니다. 누군가 말을 겁니다. "집이 어디세요? 커피라도 한잔.." 

김승옥이 1969년 발표한 단편 <야행>의 줄거리입니다. 여자는 왜 이런 뒤틀린 욕망을 갖게 되었을까요? 저는 양우당에서 1980년에 나온 '오늘의 한국문학 33인선' 전집을 가보처럼 모셔놓고 있습니다(헌책방에서 사 모았는데 33권 중 두 권이 빠져 있습니다). 이 전집의 부록이 재미있는데요,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는 글을 묶었습니다. 김승옥은 편집자와의 인터뷰로 글을 대체했습니다.  

김승옥은 인터뷰에서 1960년대를 '피난민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50년대가 아니라 60년대인 이유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유교적인 질서가 완전히 파괴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김승옥이 본 피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윤리나 가치를 도외시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60년대의 젊은이들은, 사람들이 신뢰감을 가지고 성장해 오다가 어느순간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의 청년작가들에게 고향의 상실은 심각한 상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향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라고 여겼습니다. 김승옥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마치 작은 배를 타고 방향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바다에 나가서 어디로 갈 지도 모르는데 결국은 내가 젓는 방향을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막연하게 까마득하게 보이기도 하고, 허술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야행>의 여자는 이 피난민의 시대에서 탈출을 꿈꿉니다. 그런데 여자는 어쩌다가 "무모하고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욕구를 갖게 된 걸까요? 그런 욕구가 있더라도 대부분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데, 어쩌다 밤거리를 돌아다니게 된 걸까요? 앞서 얘기한 줄거리에서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여자는 그해 8월 여름휴가를 계획과 다른 엉뚱한 곳에서 보냅니다. 이런 저런 계획들으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결국은 '의무감에서'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김승옥은 여자의 휴가를 아주 짧고 퉁명스럽게 표현합니다.  

"모녀는, 첫날은 오랜만의 상봉에 기쁨으로 들떠서 지냈다. 다음날엔, 어머니 특유의 나무랄 수 없는 잔소리가 시작됐으며, 그 다음날엔 딸 특유의 신경질이 되살아났고, 마지막으로 모녀는 한바탕 크게 싸웠다. 다음날 새벽, 딸이 버스 정류소로 가기 전에 모녀는 어느새 슬그머니 화해를 하고 있었으며... 그뿐이었다. 그 여자의 휴가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곤."  

여자는 고향에 돌아가고 나서야 자신이 고향을 상실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고향은 이제 영원히 자신의 고향이 아니며, 의례적인 만남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자는 고향으로부터 뚝 떨어져나와서 남편의 세계에, 팽창하는 남자들의 세계에, 베트남전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아버지들의 세계에, 그들의 무모하고 희극적인 연극에, 갇혀 있습니다. 여자는 어머니를, 고향을, 모성을 잃어버린 겁니다. 여자의 뒤틀린 욕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자는 남자의 억센 손아귀를 찾아 밤거리를 걷습니다. 최근들어 여자의 욕구는 비틀거립니다. 여자는 이제 해방이 아니더라도, 구원이 아니더라도 사내의 손에 이끌려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치 창년들처럼, 기도해야 할 것이 별로 없음에도 미사에 참석하는 신도들처럼, 그렇게... 여자는 그런 자신이 두렵습니다. 여자는 언젠가는 아무 남자의 손이나 잡고 여관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구원이 아니면 타락이라도... 그것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라도... 여자는 밤거리를 계속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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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1-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 소설 중에서 대체로 '무진기행'이나 '서울 1964년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야행'도 부위기가 독특해서 좋더라구요.거기 나오는 여자 헌팅하던 남자들은 지금은 70세가 넘은 노인이 되어 있겠지요?

톨트 2009-11-2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렇네요. 할머니들한테 구박받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