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 -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
조진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사랑한 공간들, 그곳을 만든 건축의 비밀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는 의식주이다. 자연을 경험하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거주 공간을 발전시켰다. 현대 인류는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며 건축 과정을 거친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다들 비슷하게 거주하는 공간에서 지낸다는 선입견을 조진만 건축가님은 공간이 가진 특별한 곳을 소개한다.

 

일상의 공간은 우리에게 무의식중에 우리의 사고방식과 관계성을 형성한다. 병원이 가지는 상징성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떠오르고, 학교에서 공부하던 때 친구들과 선생님이 떠오르는 건 공간이 일상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 가지는 인문학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 공간의 철학적 의미가 더해진 배경 이야기는 공간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저자인 조진만 건축가님은 편리함과 익숙함을 넘어 일명 뒤통수치는 건축’, ‘당황시키는 건축을 표방하는 젊은 건축가. 한양대학교와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건축가 렘 콜하스의 ‘OMA’와 승효상의 이로재를 거치며 중국과 유럽에서 건축 수련을 했다.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역임했다.

[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 책날개 중 ]

 

 

그는 도발하는건축을 표방하는 이 책의 저자 조진만 건축가는 젊은 건축가상,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 디자인 뱅가드상 등 국내외 굴지의 건축상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다.

 

건축가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틀을 깨고 창의적으로 도전하며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으로 우리 삶을 향상시킨다.

 

훌륭한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로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은 한국 근현대 건축의 최고봉을 꼽을 때 항상 단골로 선정된다.

이 건축물은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며 최초의 건축지인 <공간>의 발행인이기도 한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내외부가 단절 없이 흐르며 풍요로운 한국적 건축미와 세련된 재료 활용이 돋보이는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도시를 생각할 때 건축가가 떠오르는 특별한 도시가 있다. 가우디가 활약한 바르셀로나가 그곳인데, 가우디는 인간은 창조하지 않는다. 그저 발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창의적인 작품도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신의 업적을 모방하는 행위일 뿐이다.

 

가우디가 완성한 구엘 공원의 산책로는 공원 내에 도로를 내기 위해 파쇄한 쓸모없는 돌들을 사용해 만들었다.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페스는 서기 789년부터 형성되어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문화의 중심지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자형의 집들이 마치 벌집처럼 붙어있다. 모두가 엇비슷한 형태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종교인 이슬람교가 가진 평등의 가치가 도시와 건축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미로와 같은 작고 복잡한 도로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장터이며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광장으로서 기능한다.

 

 

프랑스 건축법 1조는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라고 한다.

 

건축은 단순히 콘크리트와 벽돌로 된 구조물이 아니며, 도시는 길과 건물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일부가 화재로 사라졌을 때 전 세계인이 안타까워했고 다시 원형을 재건하여 잃어버린 영광과 추억을 되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에두아르 필립 프랑스 총리는 과거를 복제하기보다는 현시대의 기술과 정신에 들어맞는 새로운지붕과 첨탑을 만들기 위한 설계를 공모한다.

 

우리나라 경주의 불국사도 신라 시대 건물이 아니다. 1970년 복원 당시 신라 시대의 기구 양식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양식을 혼용해 복원했기 때문이다.

 

 

 

기념건조물과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인 <베니스 헌장>에는 추정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을 멈춰야 하며, 불가피한 변화의 경우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라고 나와 있다.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 또는 공간을 우리는 통상 랜드마크라 칭한다. 원래 랜드마크의 사전적 의미는 주변 경관에서 차별화되고 멀리서도 인식할 수 있는 자연 또는 인공물로, 항해 목적의 용어였다.

 

랜드마크가 도시의 재생에 이바지한 대표적인 사례는 스페인의 빌바오이다. 쇠락한 탄광 도시였던 이곳은 스타 건축가의 미술관 하나로 이른바 관광도시가 되었다. ‘빌바오 효과로 고유 명사화된 이 현상은 건축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도시의 건축이 가지고 다양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으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이 책은 저자와 함께 떠나는 인문학 건축 여행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를만나면그곳이특별해진다 #조진만 #쌤앤파커스 #건축 #건축가 #도시 #환경 #책과콩나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니체 아카이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오늘 소개할 책은 책세상에서 출판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은이, 김정현 옮긴이의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이다.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세상에서 출판한 강렬한 빨간색의 니체가 세상을 내다보는 듯한 얼굴을 표지로 니체 전집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가 많다. 니체의 철학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고 문학, 종교, 정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된 배경에는 니체 전집의 역할이 크다.

 

그런데도 니체의 철학을 재해석하고 발견하는 열정은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루 살로메에 의해 니체를 낱낱이 분석한 책이다.

 

 

저자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18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장군의 딸로 태어났으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서 신학, 철학, 예술사를 공부했다. 188221세에 로마에서 니체를 만나 청혼을 받고 거절했으나, 그해를 니체와 더불어 지냈다. 이후 26세에 독일의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와 결혼했다. 당대 유럽의 최고 지성인 파울 레, 릴케, 톨스토이, 부버, 프로이트 등과 만나며 소설, 저서, 논문 등을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유럽 지성사의 길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 니체를 철학사의 무대에 올리고 릴케를 대시인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으며, 프로이트와 만난 이후 정신분석가로 활동했다.

[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책날개 중 ]

 

루 살로메에 관해서는 연애의 대상으로서 팜므 파탈로 바라보는 내용만 접하다 그녀가 저술한 책을 읽고 니체가 사랑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었던 여인이 살로메였다.

 

니체와 가장 친한 친구인 파울 레가 동시에 사랑한 여인이었던 살로메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동거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에 대한 사랑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두 사람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구설에 오르는 성삼위일체라는 동거를 시작한다. 이 책은 그동안 살로메가 니체와의 대화를 통해 분석한 내용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그 외 니체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안 1894년까지 니체의 저서를 꼼꼼히 읽고 분석한 내용이다.

 

살로메가 베를린대학교 교수였던 안드레아스와 결혼하자 파울 레는 그들의 추억이 담긴 강의 절벽 아래 몸을 던진다. 살로메에게 청혼을 거부당한 니체는 당시의 분노를 에너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저술한다.

 

살로메에 반한 릴케는 유부녀였던 그녀에게 끝까지 구애하고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시를 보내고 애정을 표현한다.

 

살로메가 프로이트의 애제자 중 한 명이고, 프로이트 역시 자신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악마적 재능을 가진 사람을 살로메로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책상 위에는 그녀의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정신분석학을 배우는 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것을 잘 알았던 프로이트는 그녀 모르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결과 살로메는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가가 살로메가 되었고, 그녀의 강점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당대 지식인들도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여기는 니체의 철학을 저서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니체라는 존재 편에서는 니체의 개인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1844년 뤼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가족이 니움부르크로 이사한 후, 그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당시 유명한 문헌학자 리츨이 가르쳤던 본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하던 학생이 되었다.

 

1865년 라아프치히대학에서 니체는 바그너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1868년 바그너의 누이이자 브로크하우스 교수 부인의 집에서 그를 만난다. 1869년 바젤대학교는 스물네 살의 니체에게 문헌학과 학과장 자리에 초빙했다. 라이프치히대학은 박사학위 논문 없이도 그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궁금증투성이였다.

 

바젤대학교에 재직하는 교수들은 니체의 역량을 바로 알았다. 그가 강의하는 그리스어 강의에 교수들도 배웠다. 그들은 니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영향력과 재능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바젤에서 처음 나타난 선생님이라 칭했다.

 

1869년에서 1879년까지 10년 동안 니체는 바젤에서 교수활동을 했다. 이 문헌학적 활동은 시기적으로 보면 그가 바그너의 문하에 있던 10년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며,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에 영향을 받아서 작품들을 출판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32)

 

모든 경우 정지보다는 순환이 있을 수 있다.” (78)

 

자기 안으로 되돌아오는, 결코 정지하지 않는 운동은 니체의 정신적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다. 순환의 모습 영원한 반복 속에서 영원한 변화라는 모습은 그의 저작의 입구에 걸려있는 놀라운 상징이자 비밀 기호처럼 있다.

 

 

살로메는 니체의 저작을 추적하며 그가 어떤 내면적 강박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점점 더 가혹한 결론으로 첨예화해가는지, 어느 정도의 자기 극복으로 이러한 일이 매번 일어났는지를 분명히 느낀다.

 

 

1882년 가을에 니체는 이후 10년 동안 모든 저술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1880년대에 오히려 끊임없는 생산력을 발휘했지만, 그가 전제했던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침묵하게 되었다. 1889년에는 두통이 난폭하게 덮치면서 니체의 모든 정신적 작업은 급작스럽게 종착점에 도달했다.

 

살로메는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정신세계와 철학사상의 변화 과정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상세히 분석하고, 더 나아가 니체 사상의 체계를 그 사상의 발전 과정과 변화 과정을 고려하며 철학적 주제로 정리하고 있다.

 

아직 니체의 저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니체의 다른 작품을 보는 동안, 니체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살로메니체를말하다 #루안드레아스살로메 #김정현 #책세상 #철학 #서양철학 #리뷰어스클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니체 아카이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를 철학의 무대에 올렸던 그가 사랑한 살로메가 니체를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기의 음악가들
장옥님 지음 / 형설미래교육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어난 클래식 명곡들

 

오늘 소개할 책은 형설미래교육원에서 출판한 장옥님 작가님의 <위기의 음악가들>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KBS 클래식FM을 청취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장옥님 작가님이 클래식 FM의 프로듀서로 재직했다고 하니, 괜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음악을 들으면서 막연하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작곡가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과 곡을 만들 때 상황이나 창작 의도를 알면 음악을 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작가님은 이러한 요구에 응답하듯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14명의 대표곡과 그들의 인생사, 시대적 배경을 치밀하게 설명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14명의 작곡가는 다음과 같다.

 

헨델, 바로크 시대의 글로벌 스타

바흐, 음악의 바다

모차르트, 천재 중의 천재

베토벤, 음악의 성인聖人과 거룩한 괴짜 사이

슈베르트, 영원한 겨울 나그네

베를리오즈, 환상 속의 그대

쇼팽, 피아노의 시인

슈만, 로맨티시즘의 꽃

베르디, 희망은 금빛 날개를 타고

바그너, 시대의 풍운아

차이콥스키, 행복한 시작비극적 결말

말러, 세상 모든 것을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라흐마니노프, 러시안 멜랑콜리

쇼스타코비치, 20세기의 붉은 베토벤

 

 

근래 재미있게 시청했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곡으로 등장해 두 작곡가에 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있어 가장 큰 시련은 1905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었다. 부르주아 출신인 그에게는 혁명은 부담스러운 사건이었다. 1917년 또다시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더 이상 조국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기 힘들 거라는 생각으로 핀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조국을 등지고 낯선 땅에서 새 출발을 해야 했다.

 

드라마에 등장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곡으로 선정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러시아에 거주할 당시 역경을 극복하고 탄생한 곡이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고, 대중은 그에게 혹평을 가했다. 사촌이자 동료 피아니스트였던 나탈리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그의 시름을 커져갔다.

 

급기야 그의 증세는 신경쇠약으로까지 발전해 가족과 주위 사람의 걱정과 그를 치료하기에 이른다.

 

많은 방법으로 그를 치료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당시 최면술의 신봉자였던 니콜라스 달 박사의 자기 암시요법으로 최면으로 치료한 결과 탄생한 곡인 피아노 협주곡 2이었다.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에 관해서는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슈만의 사후, 브람스가 클라라의 생계를 많이 도와준 거로 묘사되지만, 작가님은 클라라가 당시 독일 전역으로 연주하러 다녔고, 리스트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는 견해를 밝힌다.

 

말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음악원에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용되어 활동했다고 한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에 가깝다.

 

 

헨델이 조지 1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왕의 템스강 뱃놀이에 <수상 음악>을 작곡해 바친다.

 

모차르트는 장남을 잃고 다시 셋째 아들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기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아버지 레오폴트가 돌아가시고 남긴 재산을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누나에게 부탁한다.

 

베토벤은 자신의 청력이 서서히 잃어가는 사실을 알았지만, 주위 사람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점차 악화하는 청력으로 사람들을 피하게 되면서 생긴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서부터 간경화, 신장 질환, 폐 질환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저자는 제한된 지면에서도 이들 작곡가에 관해 자세하고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위기의 음악가들>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위기의음악가들 #장옥님 #클래식 #음악 #음악가 #작곡가 #형성미래교육원 #책과콩나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1950 미중전쟁 - 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
KBS 다큐 인사이트〈1950 미중전쟁〉 제작팀 지음, 박태균 감수.해제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

 

책과함께에서 출판하고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팀에서 저술한 <1950 미중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1950년 한국전쟁이 미중전쟁의 전초전이라는 사실을 지목한다.

 

작년 10월 두 가지 사건이 불안한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

 

중국의 파워 블로거 요리사가 계란볶음밥 레시피를 소개했다가 195010월 한국전쟁에서 계란볶음밥을 만들다 사망한 마오안잉을 조롱했다는 비난과 함께 요리사의 인신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 인민의 가슴 속에는 미국은 국부의 아들을 죽인 원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 10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6·25 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의 묘소에 참배한 김정은 위원장은 항미원조보가위국(미국에 대항에 북한을 돕는 것은 내 집과 나라를 지키는 것)’을 강조했다.

 

 

앞으로 미중전쟁이 일어난다면 최고 유력한 곳은 타이완의 진먼섬과 인근 지역이다. 북한은 그때 중국이 미국에 항전해 자신을 도와준 것을 계속해서 인지시키고 다음번에도 중국이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1950년 미국과 중국이 참전한 것은 여러 가지 오산과 오판으로 비극이 벌어졌다.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팀은 1950년 한국전쟁을 미중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다시금 재조명하고 있다.

 

제작팀은 2000, 2010년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전쟁의 전개 과정 즉 북한의 남침, 인천상륙작전과 북진, 중국군 개입과 전선의 고착, 그리고 지루한 정전 협상과 고지전이라는 흐름 속에서는 국제적인 힘의 역학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빠져있는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시각은 미중전쟁으로 확대해석한 결과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내용을 인식했고, 미중전쟁이 오판’, ‘충동’, ‘대치로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미국의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은 서태평양 마셜 제도의 비키니 섬에서 핵실험을 시작했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이 섬에서 67번이나 핵실험이 진행되었다. 핵폭탄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핵심 전력이었다.

냉전 시대가 시작되고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으로 치닫던 19493, 김일성이 북한 지도부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김일성은 지속해서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선제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이 만든 38선을 넘는 순간 미군이 참전할 것이었다.

 

19498, 상황이 변했다.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로써 소련도 미국과 대등한 힘을 갖게 되었다.

 

19499월 중국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45년 이후 4년이나 이어진 치열한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주석 및 혁명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랐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가야 했다. 중국은 두 개로 나뉘었으나 사실상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앨저 히스 사건으로 반공주의 열풍이 불었고 매카시는 반공 열풍을 미국에 불어넣었다.

 

하지만 애치슨은 미국의 주안점을 서유럽에 두고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작전을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96, 38선 이남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1년 전에 한반도에는 미 군사고문단 5백여 명을 제외한 주한미군은 없었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명분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지만, 1948년 남과 북에 각기 정부가 세워지고 1948년 말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하면서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사라졌다.

 

1950112,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발표했다.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었다.

이 방위선에 한반도와 타이완은 빠져있었다.

 

이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을 오판하게 했다. 스탈린은 19502월에 갱신한 중소 우호 동맹 조약으로 마오쩌둥이 요구한 창춘 철도와 뤼순, 다롄 항구의 이용권을 회수했다.

 

그 대가는 한국전쟁에 중국을 참전하게 하여 미국과 중국이 오랜 시간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전쟁에 반대했지만, 스탈린이 동의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한국전쟁의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원산까지 중국의 국경을 넓힐 기회로 보았다.

 

전쟁 당사자 모두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바라는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1950625, 북한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강행했다.

7개 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 수 개의 특수 독립연대로 구성된 총병력 11만여 명과 각종 포 1,600여 문, 전차 280여 대 등이 동시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6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에 대해 필요한 원조를 할 것을 회원국에 권고했다.

소련과의 전면전이 아닌 것을 확인한 미국이 곧바로 한국전에 개입했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19507, 미군 병력 5만여 명과 영국, 호주, 타이, 터키 등 16개국에서 파견한 유엔군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북한군의 승승장구로 김일성이 호언장담한 대로 한반도는 공산화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19509,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성공시켰다.

마침내 928,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했다. 전쟁이 발발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유엔군은 북상하기 시작해 38선 이남을 모두 회복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다시 한번 움직였다. 중국군이 참전하면 소련이 참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맥아더는 정주와 함흥을 잇는 선을 북진 한계선으로 삼았다. 중국의 펑더화이는 미군이 평양-원산 인근에서 진격을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맥아더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참전하더라도 5~6만여 명의 소규모 파병이라 예상했다.

 

마침내 중국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다. 항미원조전쟁이라는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이었다.

 

중국은 참전을 통해 싸우지 않고 국경선을 확대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중국의 오산이자 오판이었다.

 

중국은 30만 대군을 항미원조전쟁에 내보냈다. 중국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았고, 경무장한 중국군을 빠르게 남하했다.

 

미군이 북진 한계선 너머로 진군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의 예상, 그리고 중국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개입하더라도 그 병력이 많지 않으리라는 미국의 예상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19501126일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겨울 전투로 처절하고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가 시작되었다. 장진호 전투는 특히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군 총사령관 펑더화이는 미군의 이동과 배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군우리에 주둔하던 미 2사단은 처절한 피해를 보았다. 3천여 사상자를 남긴 후, 맥아더는 모든 전선에서 철수하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7사단과 미 해병 1사단도 철수를 시작했다. 펑더화이는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야밤에 공격을 개시했다. 밤 온도는 영하 30도를 넘었다. 영하 3040도를 오가는 동안 치열한 공격을 하는 동안, 동사자가 속출했다. 5일간의 전투가 끝나고 많은 부대는 10%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동사자와 사상자가 속출했다.

 

해가 뜨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괴한 자세로 몇 분 안에 얼어버린 시체가 지천으로 널렸다. 중국군은 이동 속도로 높이기 위해 경무장으로 진군한 것이 동사자가 속출한 원인이었다. 게다가 중국군에 대한 군수지원품도 빈약했다.

 

유일한 탈출구인 흥남으로 살아있는 인원은 모두 집결했다. 원산은 이미 중국군이 집결했기 때문에 흥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당시 흥남부두에는 피란하려는 수많은 민간인이 흥남 부두에 몰려와 있었다.

 

10군단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수백 톤의 물자와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의 승선을 허락했다.

 

19501224일 크리스마스이브는 흥남 철수 작전의 마지막 날이었다. 군인 105천여 명, 피란민 98천여 명, 물자 35만 톤과 차량 17,500대가 미군 수송선에 올랐다.

 

미군 수송선들이 부두를 떠나자 흥남 부두 전체가 폭발했다. 모든 기반 시설이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이 책은 이후 대치 국면을 지나 휴전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책을 보는 것처럼 느끼듯 수많은 사진 자료를 첨부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국제전인 미중전쟁으로 바라보니 스탈린의 노림수가 보였다. 스탈린은 중국군을 한반도에 참전시킴으로써 미국이 한반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국전쟁은 19세기 말의 청일전쟁이나 20세기 초의 러일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강대국의 주도권 경쟁에 전장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950미중전쟁 #KBS다큐멘터리 #책과함께 #박태균 #한국현대사 #한국전쟁 #국제질서 #책과콩나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