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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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하시면 강력 추천합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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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 걸프 전쟁,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 시리아 전쟁 ㅣ 세계통찰 시리즈 16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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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전쟁,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 시리아 전쟁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과학 전쟁인 걸프 전쟁, 소말리아 어부가 해적이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인 이라크 전쟁, 그리고 현재 많은 난민이 생기고 있는 시리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총 16권 중 15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세 번째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감과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글로 읽었을 때 궁금한 시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알 자르카위,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이라크를 생각하면 사담 후세인을 떠 올릴 수밖에 없다. 이라크의 수재 출신으로 나세르의 영향을 명문 카이로 대학에서 수학했고, 석유수출기구의 탄생에 크게 이바지한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였다.

 

이란은 시아파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 맹주 국가이고, 이라크는 시아파가 60%, 수니파가 40%인 시아파 다수 국가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엇비슷한데다 지도자인 후세인이 수니파 출신이라 이라크는 종파에 따른 갈등이 잠재해 있었다.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왕조의 붕괴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등장으로 강력한 시아파 중심의 신정국가 체제로 전환한 이란과 이라크의 갈등을 불 보듯 뻔했다. 호메이니가 이라크 내 시아파를 지원해 시위를 벌이자 사담 후세인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내세운 카드는 선제공격이었다. 이는 미국이 이란의 팔레비 왕조의 붕괴로 이란을 잃어버렸기에 사담 후세인에게 전쟁을 부추긴 측면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채택한 공군을 활용한 선제 타격을 시도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이라크는 이란이 차츰 공세를 취해 수세에 몰렸다.

 

더구나 이스라엘 공군의 오시라크 원자력 발전소 타격으로 이란 공격에 집중되었던 이라크 공군은 이스라엘 방어로 양분되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담 후세인은 패전을 면하기 위해 1982년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고 이란 내 점령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쿠웨이트는 이란 이라크 전쟁 동안 같은 수니파 출신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지만,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 지역에 있는 루마일라 유전의 석유를 이라크 몰래 시추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에 이라크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걸프 전쟁이 발발했다.

 

기존의 전쟁과는 달리 걸프 전쟁은 하이테크 무기의 시험 무대였다. 테드 터너의 CNN은 전투 장면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도해 전 세계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소말리아 전쟁

 

1960년 소말리아 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통솔력 있는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아 소말리아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1969년 군인 출신 사이드 바레는 혼란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뒤 철권통치를 이어 갔다. 사회주의에 호감이 있었던 바레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손을 잡으면서 미국과 적대 관계가 되었다.

 

바레는 정부 요직의 인사 파동이 있어 이를 타개할 정책으로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선택했다. 1977년 바레는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오가덴 지역을 잠시나마 점령했다. 하지만 믿었던 소련의 배신으로 우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소련은 에티오피아에게 더 좋은 무기를 제공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고 바레는 소련과 관계를 끊고 미국과 손을 잡았다.

 

1991년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로 밀려들자 겁에 질린 바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망쳤다. 이제부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각 부족 간 내전이 소말리아를 집어삼켰다. 내전은 소말리아를 석기 시대로 돌려놓았다.

 

1991년 바레 정권이 무너지면서 소말리아 국민을 지켜 줄 정부가 사라지자 외국의 대형 어선이 아무런 제약 없이 소말리아 영해를 무단으로 침입했다. 또한 유럽은 산업 폐기물을 수출해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환경 규제가 심한 유럽에서는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에서 군벌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산업 폐기물을 값싸게 내다 버릴 수 있었다.

 

소말리아는 출산율이 높고 일자리가 없다 보니 청년 중 제대로 된 일자를 가지고 있는 이가 거의 없는 지경이었다. 이들은 무기력하게 삶을 살기보다 해적이 되어 단번에 큰돈을 버는 것을 꿈으로 삼으면서 소말리아에는 해적이 되려는 사람이 넘쳐났다.

 

해적질을 위해 사람과 돈이 모이자 해적질은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군벌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적질에 나서면서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최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라크 전쟁

 

미국은 19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국의 부활을 지구촌에 알렸다. 이라크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전의 풍요로운 삶을 이제는 누리지 못했다. 2000년이 되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석유 결제 대금을 달러화 대신 유로화로 바꾸려고 했다. 그는 미국에게 치명타를 주기 위해 세계적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끌어들였다.

 

사담 후세인은 석유 수출 대금을 유로화로 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국가 부채 규모가 2조 달러를 넘었고, 무역 수지는 매년 5천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고 있었다. 만약 석유 대금을 달러화가 아닌 다른 통화로 결제하는 일이 벌어지면 미국은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길이 없어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를 수 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흐마드 찰라비라는 은행가가 후세인을 제거하고 자신이 권좌에 차지하려고 했고, 그는 이라크에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정보를 흘렸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 이를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적인 여론도 많았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라크를 침공해 20일 만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장악하고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종전 선언 후 이라크를 구석구석 뒤졌지만,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한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석유 자원 때문인데, 당시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저품질 석유와 달리 고품질이고 채굴도 비교적 쉬운 편이라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차지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가지는 셈이었다.

 

다른 이유로는 미국 내 군사 복합체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다. 전쟁은 무기나 군사 장비 등을 만드는 업체에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고, 군수업체들은 정부와 손을 잡고 무기를 판매한 이익을 나누었다. 매년 총기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교나 거리에서 죽는 일이 발생해도 미국 정부가 총기 판매를 금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국 정부와 무기 업체, 총기 제작 업체들 전부 정경 유착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이라크를 장악해 중동 지역에 군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21세기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군사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미국 정부는 그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동맹국들까지 전쟁에 끌어들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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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다 - 냉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ㅣ 세계통찰 시리즈 15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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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초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다>는 전쟁을 수행하지 않지만, 실제 전쟁상황이 연출된 냉전의 시대와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 전쟁, 독립과 통일을 위한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총 16권 중 15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세 번째 책이다.

 

 

냉전의 시대

 

지금까지 미국이 초강대국의 입지를 굳히기까지 미국을 전쟁을 수행하면 높은 승률로 주변 국가를 압도해왔다. 미국의 패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전쟁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과 소련은 나치 독일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힘을 합쳐 싸웠다. 하지만 전후 두 나라는 함께하기에 너무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였고, 소련은 민주주의를 실제로 경험하거나 겪어 보지 못한 나라였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노출한 균열은 유럽 사회에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소련이 무기를 갖추고 급성장한 배경에는 독일을 막기 위한 미국의 무기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이제 미국은 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독일을 지원해야 할 차례다.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의 공산주의를 막아야 하는 자유세계의 선봉장이 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통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지원하기로 한다. 일차적인 과정은 화폐 개혁이다.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얻은 국제사회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 들었고, 루마니아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화했다.

 

서방 연합국은 긴장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재무 장관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발표한 유럽경제재건계획의 가장 선두에 서독이 자리했다. 서독에 막대한 경제 지원은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의 차이를 가져왔다. 특히 서베를린의 경제 발전을 지켜본 동베를린 사람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런 물결이 차츰 심해지자 동독과 소련은 동베를린에 장벽을 설치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진입하는 육로를 봉쇄한 경우이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유세계 진영은 항공편을 통해 서베를린 국민이 생존할 필수품을 전달했다.

 

독일 사람의 명절인 부활절에는 하루 1천3백여 편의 수송기가 열 달 동안 수송기 17만 8,228편의 식량과 물자, 연료 등 232만 6406톤을 실어 날랐다. 독일 어린이를 위한 ‘초콜릿 폭탄’ 작전에 돌입하는 날이면 하늘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가득 실은 상자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서베를린의 육로를 통제하면 서방 연합군이 철수할 거라는 소련의 계산은 빗나갔다.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얻은 국제사회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 들었고, 루마니아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화했다.

 

이들 나라 중 체코는 1968년 개혁파 정치인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공산당 지도자가 되면서 체코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민주화를 맛보게 되었다. 같은 해 소련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 대군 20만 명 이상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체코를 장악하자마자 둡체크를 권좌에서 쫓아내고 꼭두각시를 권좌에 앉혔다. ‘소련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공산 국가들을 무력으로 침공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동유럽 국가의 주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실제 전시상황과 마찬가지인 냉전을 지속했다. 스파이를 이용한 첨예한 전쟁은 이들을 목숨을 담보로 무수한 작전이 수행되었다.

 

 

한국 전쟁

 

중국 마오쩌둥은 소련이 관리하고 있던 만주를 다시 차지하고자 했다. 마오쩌둥은 스탈린의 70세 생일에 스탈린과의 담화를 통해 이를 얻고자 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말에 격노해 회담장을 나가버렸다.

 

마오쩌둥은 모스크바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며 마침내 회담을 통해 만주에 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 스탈린이 내건 조건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예정이니 중국이 이를 도와 전쟁에 참전하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만주를 얻기 위해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세계 최고의 부유하고 군사 대국인 미국과 인구 대국인 중국이 한반도에서 오랜 시간 교전하게 되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해 이 일을 허락했다.

 

김일성이 그토록 간절하게 요청한 남한 침공 작전이 무르익은 배경이다.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야심한 새벽을 이용해 거침없이 침공했다. 북한군의 질주에 스탈린 역시 당황했다. 한국군이 오합지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약체일 줄은 몰랐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 안보리가 열렸다.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있을 거라는 관측과 달리 소련 대표가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아 유엔 안보리는 유엔군의 파병을 의결해 역사상 처음으로 16개국이 참여한 다국적군을 결성했다.

 

이들 나라 중 특히 터기와 에티오피아는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커피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우리에게는 한국 전쟁 때 유엔의 일원으로 참전군을 보내 준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 이탈리아가 침범했을 때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어느 나라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은 끝까지 투쟁해 1941년 기적적으로 승리해 에티오피아에서 이탈리아를 몰아내 독립을 이룬다.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한 서러움을 잘 아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50년 7월 중순 유엔으로부터 한국 파병을 요청받자 세계평화를 위해 황실 근위대인 강뉴부대 파병을 결정한다.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 승리한 황실 근위대 강뉴부대.

 

강뉴부대 대원들은 ‘초전박살’이라는 부대 이름에 걸맞게 치열한 전투 속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자신들과 아무 상관 없는 우리나라를 지키던 용감한 군인이었다.

 

안타깝게도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공산주의자들이 에티오피아의 정권을 차지해 실각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한 강뉴부대원은 공산주의 국가를 상대로 참전했다고 해 지금도 푸대접을 받고 있다.

 

 

티카와 한국이 형제의 나라라 불리는 데는 오랜 인연이 있다.

 

삼국 시대부터 한민족과 인연을 맺은 터키의 조상은 한반도 북쪽에서 돌궐족으로 불리며 살았다. 6세기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중원에 자리 잡은 수나라를 견제했고, 7세기에는 당나라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고 돌궐족을 탄압하자 고구려 유민의 귀족 계층 중 상당수는 돌궐족과 함께 서역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서역으로 이동하며 아랍인과 광범위한 혼혈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 정착해 튀르크족으로 불리며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튀르크 등 여러 나라를 건국했다.

 

물론 터키의 참전에는 소련과의 전투에 대항하여 미국과 유대 관계를 강화해 나토에 가입하려는 이해득실도 있었다. 동유럽을 오랜 기간 점령했던 오스만 튀르크와 슬라브족의 대표하는 제정 러시아, 소련과 전쟁이 빈번했다. 미국의 원조로 군사 강국으로 거듭난 소련에 대항할 수 없었던 터키는 유럽 세계와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다.

 

한국 전쟁의 참전은 그런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전쟁에 참여한 터키군은 예니체리의 후예답게 백병전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다. 총과 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터키군은 151고지 전에서는 열 배가 많은 중공군이 차지하고 있는 고지를 탈환하는 믿기 힘든 전과를 보여준다. 터키군이 착검하고 휘두르는 총은 마치 칼춤과 같아 중공군은 백병전으로 터키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고지를 버리고 도망갔다.

 

터키군 병사들은 대한민국 고아를 돕기 위한 선행에도 앞장서 ‘앙카라 고아원’을 설립하고 전쟁고아 600여 명을 돌보았다.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권이 흔들리는 결정적인 전쟁이었다.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참전하는 미국은 베트콩이 구사하는 전술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은 주민과 군인을 구별하기 힘들었고 베트남은 결정적인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로 승기를 잡았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파병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군사 최강국 미군이 고전하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 주저했다. 미국은 한국 내 주둔하는 미군을 베트남으로 파병하겠다는 압박으로 한국군은 최초로 해외 파병에 나서게 된다.

 

미국 내 베트남 전쟁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는데 편파 보도를 한 에디 애덤스 탓이 크다.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한 장의 사진이 미국 전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 사진은 길거리에서 즉결처분하는 생생한 사진이었는데 사실은 적법한 전쟁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사이공식 처형’이라 알려져 응우옌응옥로안 장군은 곤경에 처한다.

오랜 역사를 비교하며 한반도와 베트남의 역사가 비슷해서 놀라게 된다.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며 유교문화를 가지고 있고, 분단국을 경험하고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베트남은 지금 개혁과 개방의 문을 열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직접 파병된 군인뿐 아니라 미국에서 출항하는 선박을 통한 수출길이 열려 산업화에 성공하게 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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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 ㅣ 세계통찰 시리즈 14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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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는 유럽 대륙을 초토화한 유럽 전쟁과 일본 제국의 패망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굳힌 태평양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곳곳에 들어찬 전쟁의 단면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총 16권 중 14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두 번째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감과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글로 읽었을 때 궁금한 시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그랜트 장군, 리 장군 등 평소 접하지 못한 인물의 사진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미국사에 관심을 가진 분에겐 만족할 만한 책이다.

 

 

1918년 독일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뿐 아니라 승전국인 연합국에도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를 주었다. 베류사유조약으로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고 본국 영토의 8분의 1을 승전국에 나눠 주게 되었다. 더구나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부과해 압박을 이어갔다.

 

당시 영국 협상단 대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런 가혹한 응징은 독일인의 좌절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켜 또 다른 전쟁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케인스의 말은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스 정당으로 사실로 드러났다.

 

히틀러는 다수결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점을 알고 있었다. 하층민을 상대로 빈민구제를 역설하고 자신의 우상화 과정을 동시에 수행했다.

 

1939년 히틀러는 존경하던 무솔리니와 강철조약을 맺고 전 세계를 함께 정복하기로 약속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함께 침공하기로 약속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했으나 무솔리니는 주저했고 독일군 단독으로 프랑스를 공격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영화관, 목욕탕까지 갖춘 마지노선을 믿고 있었지만, 독일은 마지노선의 끝자락인 아르덴고원을 공격했다.

 

프랑스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는 독일의 상황을 지켜보던 무솔리니는 1940년 참전을 선언하고, 30만 명의 이탈리아 군인에게 프랑스 남부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프랑스군은 북쪽에서는 독일의 위세에 눌렸지만, 이탈리아군을 맞아서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과시했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 병사는 제대로 한 번 싸우지도 못하고 프랑스군의 공격에 떼죽음을 당했다. 프랑스 공격에 실패한 무솔리니는 북아프리카, 그리스 등 이곳저곳을 침략했지만 다니는 곳마다 패전을 거듭하며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리스를 침공한 이탈리아 군대는 민간인들로 급조된 민병대에도 크게 패해 몰살 위기에 처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 군대가 위기에 처할 때 구출해야 했다.

 

농담이지만 독일이 이탈리아와 연합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흘렀을지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이탈리아는 독일은 배신했기에 히틀러 군대의 용맹함을 보고 적극적으로 무솔리니가 독일군과 함께 참전한 것은 오히려 동맹군이 아닌 돌봐줘야 할 패잔병을 붙인 것 같다.

 

히틀러의 독일 군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영국의 런던대공습과 기점으로 공군과의 대결에서 영국의 공군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독일 비행사는 추락하면 적진으로 추락하는 것이지만, 영군 공군 비행사는 자기 땅에 떨어진 것이다. 공군에 있어 비행기만큼 중요한 전투 요소는 비행사였다.

 

독일군의 패착은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으로 침공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희생은 독소전쟁에서 나타난다.

 

독일군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한 소련군은 처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나선 소련군은 스탈린의 대기명령에 따라 꼼짝도 못 한 채 그대로 몰살당했다.

 

스탈린은 독일과 적대관계에 있던 영국이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1930년대 자국민을 상대로 과도한 숙청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나라의 인재들이 대거 사라졌다. 소련군은 막강한 독일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잘 훈련된 개에 폭탄을 설치하고 개가 전차 밑으로 들어가면 원격조정 폭탄을 터트려 독일군의 전차를 폭파했다.

 

독소전쟁의 분수령을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거칠 것 없었던 독일군은 소련의 맹렬한 추위에 주춤했다. 전차, 전투기와 병사의 발이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이와 동시에 독일군은 처음으로 소련의 여군을 맞아 전쟁을 치른다.

소련이 채택한 전략은 무제한 소모전이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독일은 불리했는데 소련의 명장 주코프는 이를 제대로 파악했다.

 

소련에서 총을 들 수 있는 모든 남성과 여성도 징병 대상으로 삼았고 이들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물밑 듯이 스탈린그라드로 모여들었다.

저격병으로 활약한 여군과 세계 최초로 여성 조종사만으로 이루어진 588연대는 큰 전과를 올렸다.

 

독일군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당시 동부 전선에서는 소련군이 독일군을 연전 연파하면서 서쪽을 향해 진군하고 있어 미국을 긴장시켰다. 소련은 독일군이 지배하던 동유럽을 점령함과 동시에 공산화했기 때문에, 소련군이 연합군보다 먼저 서유럽에 진입하게 되면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 전체가 공산화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연합군은 하루빨리 유럽으로 진군해야 할 상황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수많은 극적인 요소가 연합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독일 본토를 향해 진군했고, 이를 막아낼 수 없었던 독일은 패전의 길로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는 731부대의 생화학무기 개발과 유대인, 집시, 장애인 학살을 지켜보았다. 가장 끔찍한 개발은 오펜하이머 주도로 이루어진 맨해튼 프로젝트로 발명된 원자폭탄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을 평생 후회했다. 2개의 폭탄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꿈을 매일 꾸며 수소폭탄 개발 계획에 거부하여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나간 후 모든 공직에 내려와 63세에 후두암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을 무렵 전 세계에는 1만 개가 넘는 핵폭탄이 만들어져 인류를 위협하고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세계통찰미국 #강대국중의강대국이되다 #한솔교육연구모임 #솔과나무 #제2차세계대전 #미국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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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 시련과 고비를 딛고 일어서다 ㅣ 세계통찰 시리즈 13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독립 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으로 일어선 미국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시련과 고비를 딛고 일어서다>는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오늘의 국경을 확정하고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직전인 1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이 겪었던 전쟁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총 16권 중 13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첫 번째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감과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글로 읽었을 때 궁금한 시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그랜트 장군, 리 장군 등 평소 접하지 못한 인물의 사진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미국사에 관심을 가진 분에겐 만족할 만한 책이다.

 

전쟁이라는 주제로 미국을 설명하기에 효과적으로 논점을 전달한다. 이 책에선 독립 전쟁, 영미 전쟁, 멕시코 전쟁, 남북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첫 번째는 미국을 만든 독립전쟁이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로 한 계기가 되는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이다. 영국은 그동안 프랑스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도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 전쟁에 임했고, 유럽의 다수 국가가 영국과 프랑스 편으로 나눠 싸운 국제전이었다.

 

7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승전국이 된 영국은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다. 전쟁은 영국 정부에 1억 4,000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올라앉게 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를 쥐어짜는 방법으로 이를 해소하려 했다. 당밀법(설탕법), 인지조례(인지법)을 제정해 식민지로부터 세원을 늘린다. 1767년 영국 재무장관 찰스 타운센드의 결정적인 ‘타운센드법’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유리, 종이, 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이고 이제는 더는 보고 있을 수 없는 지경이다.

 

보스턴은 중심으로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독립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벌인 활동 중 보스턴 대학살이 벌어지고 영국에 대한 민심을 극도로 악화한다.

 

제1차, 제2차 대륙회의를 거쳐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하기로 했다.

 

미국 국민에게 독립심을 불러일으킨 건 영국에서 세무서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고발해 자리에서 쫓겨난 토머스 페인이 지은 <상식>이라는 책 덕분이다.

 

그는 미국 땅에서 5,000㎞나 떨어진 영국이 식민지 종주국으로 군림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임을 <상식>을 통해 역설했다. 미국인은 이제 독립이 시대적 사명임을 깨달았고 독립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다.

 

1776년 7월 4일 미국 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을 하며 미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이한 점은 독립전쟁을 향방을 결정짓는 데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를 교묘하게 활용한 점이다. 두 나라는 견원지간이라 불릴 정도로 상대가 잘되는 일은 어떻게든 막는다.

 

독립전쟁의 분기점이 된 요크타운 전투에서 대륙군과 영국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영국군은 본국의 보급과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영국군을 지원하기 위한 군대를 파병했으나, 미국 앞바다에서 프랑스 해군을 만나 격전을 벌인 끝에 패하고 말았다.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패배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이 전보는 요크타운의 영국군의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1783년 파리조약 이후 미국은 헌법제정회의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오늘날 상원 하원으로 의회를 나누게 된 이유는 13개 주의 의결권을 인구수에 비례해 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인구수가 적은 주는 연방 의회 의원수를 적게 배출한다.

 

따라서 하원은 인구수에 비례해 연방 의원을 선출하고, 주별로 2명의 연방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양원제가 채택되었다.

 

 

미국이 루이 14세의 땅이라는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나폴레옹이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루이지애나를 미국 정부에 매각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비상한 전략이 있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와 프랑스 내부 정보에 밝았다. 스파이를 통해 미국과 영국이 합동으로 프랑스 본토와 루이지애나를 공격할 의도가 있다는 거짓 편지를 동봉하고 프랑스에서 체포되는 작전을 펼쳤다.

루이지애나에 프랑스 병력을 파견해 북아메리카를 접수하고자 했던 프랑스는 뜻밖의 복병인 아이티 주민의 거센 저항으로 파병군을 미국이 아닌 아이티로 보낸다. 그런 와중에 토머스 제퍼슨의 편지는 나폴레옹에게 루이지애나 매각을 결심하게 한다.

 

1803년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전체를 1,500만 달러에 팔기로 한다. 루이지애나의 현재 가치가 7,500억 달러인 점에 비추어 볼 때, 토머스 제퍼슨의 편지 한 통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멕시코 전쟁 당시 텍사스가 공화국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멕시코는 리오그란데 이북의 황무지와 같은 땅에서 세금을 얻을 목적으로 미국인의 거주를 묵인했다. 사람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텍사스에 거주하게 된 미국인은 멕시코의 간섭과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텍시안 민병대가 몰살한 알라모 요새 전투에 관해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왜 미국인들이 알라모를 기억하라고 그렇게 외치는지.

알라모 요새에서 텍시안 민병대가 몰살한 소식은 텍사스 전역에 퍼졌고, 지도차 샘 휴스턴은 지원병을 모아 멕시코 군대와 결전을 준비했다.

 

1836년 마침내 멕시코로부터 독립한 텍사스는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고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당시 미국은 노예 문제를 찬성하는 남부 13개 주와 반대하는 북부 13개 주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텍사스의 연방 가입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대부분의 미국 사람은 호전적이고 거칠기로 유명한 텍시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텍시안은 미합중국에 합병되고자 텍사스 국기에 큰 별 하나를 그려 넣은 ‘론스타 공화국’으로 정했다.

 

우리나라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고 배당 및 매각이익을 챙겼고 지금도 한국 정부와 소송 중인 론스타 펀드는 텍시스 주에서 설립되었다.

 

아무튼 미합중국은 론스타 공화국을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가장 황당한 건 멕시코 정부다. 텍시안이 멕시코로부터 독립하는 조건으로 미합중국 연방에 참여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론스타 공화국은 멕시코와의 약속은 안중에도 없이 미합중국의 일원이 되었다.

 

결국 미국과 멕시코는 전쟁에 돌입한다.

 

결과적으로 미국 멕시코 전쟁은 미국의 압승으로 끝나고, 오늘날 멕시코 면적과도 같은 텍사스주,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주를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차지한다.

 

오늘날 미국 경제를 주도하는 쌍두마차가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라는 사실은 멕시코 국민에게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로써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취한 영토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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